소설리스트

읍토미. 라 세상 속에 들어와 버렸다-5화 (5/54)

19 EP.13 청춘은 사랑과 우정(3)

#012화. 청춘은 사랑과 우정(3).

“나, 타케시라고.”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나의 포커페이스가 깨지 일은 없었다.

그것보다 타케시라고?

나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금태양 시절, 날 보면 모두 오줌을 지리며 도망치기 바빴던 시절이라, 친구라는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말을 아니 뜨거운 주먹을 섞은 인간들은 오로지, 금발 태닝의 양아치 혹은 범죄조직의 보스라거나, 인신매매단 아니면 촉수를 부리는 흑마법사나, 서큐버스 등등뿐.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남자와는 말을 섞은 적이 없었다.

“미안한데, 타케시 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었더라?”

상심한 듯, 격렬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린 타케시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먼지들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내 주변은 깔끔하게 해놓는 편이라, 먼지 한 톨 없을 텐데.’

아, 또 이해하려 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쿨럭, 뭐,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어쩔 수 없나, 내 모습도 옛날이랑 많이 다르고. 하하.”

왠지 김이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흘려대는 녀석이 제 뒤통수를 긁어대다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나는 네 눈만 봐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데 말이야….”

예전 딸쟁이 시절, 그런 심연까지 내려다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고 그런 만화들에서 저 녀석과 같은 열혈 캐릭터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녀석 설마?’

BL물 속의 주인공?

드드드드득, 끼이익-!

“에에-! 류가 순식간에 창가 옆으로 가버렸어!”

“대단해, 어떻게? 류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책상으로 드리프트를 마치니, 책상 밑에 달아 놓은 고무 받침대가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타케시, 미안하지만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만의 취향을 존중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나의 바운더리에 BL이라니 그딴 건 마굴에서나 볼 법한 것들!

“어? 어? 아, 아니야!”

당황한 듯 손을 양옆으로 마구 휘저어대는 타케시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며 손짓 발짓으로 설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 중에, 남자! 여자를 좋아한다고.”

“내 눈만 봐도 나를 알아볼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BL물에나 나올 그렇고 그런 대사를 내뱉었지 않나.”

-에에에! 로맨틱 해!

-하앍, 하앍. 류가 그렇고 그런 일들을 츄릅!

-등짝! 등짝을!

안경을 고쳐 쓴 나는 빠르게 위험한 대사를 내뱉은 반의 여자 학우들을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평범하게 생겨서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라….’

나는 정중히 손을 뻗어 다가오려는 타케시에게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 이상 다가온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등짝을 보호하기 위해, 연필을 집어 들었다. 광택이 날 만큼 완벽하게 깎인 흑연이 서늘하게 빛을 반사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류는 특별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검은색의 푸른 빛이 돌잖아.”

-어머머머, 특별한 눈동자?

-로맨틱해!

“젠장! 아니라고! 나 타케시라고, 타케시. 츠바키초의 타케시!”

응?

츠바키 초등학교는 내가 다녔었던 학교의 이름이었다. 확실히 검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기 전, 나름 친구라기에는 그렇고 동생이라는 느낌으로 끌고 다녔었던 녀석들이 있었기는 했었다.

“츠바키초의 타케시. 타케시....타케시라.....그 땅콩?”

“응, 젠장! 아직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믿고 있었다고! 류!”

나는 내게 달려오는 타케시를 한 발짝만을 움직여 가뿐히 피해줬다.

쿠당탕-

의자와 책상에 얽혀 나자빠져 있는 녀석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니, 옛날 그 모습이 보이는 듯했었다.

“어, 기억하고 있지.”

타케시는 내 말에 무엇이 그렇게 감격스러운지, 곧바로 뜨거운 눈물을 터트려댔다.

“크흑, 남자 중의 남자, 류가 절대로 친구를 잊을 리가 없잖아.”

나는 녀석의 말에 살짝 코끝이 간지러워졌다.

땅콩 타케시, 이 녀석은 나의 흑역사다.

*

“역시, 류라면 나를 기억할 줄 알았다고. 의리의 류. 남자 중의 남자 류!”

나는 흐물거리는 뼈를 최대한 붙잡아 세우며, 겨우 자리에 멀쩡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근데 이 녀석 왜 이렇게 변했지?’

집에 들어가면, 핑챙과 떡두꺼비가 붙어 다니는 시절. 나는 항상 밖을 나돌아다녔었다.

그런 내 눈에 어디 이지메의 나라가 아니랄까, 괴롭힘을 당하던 타케시를 구한 뒤, 녀석은 나를 어미 오리라 생각하는 듯 내 뒤를 쫄쫄 따라다녔었다.

그 당시에는 나도 평범한 일상이 너무나도 필요해 녀석을 잘 데리고 다녔었다.

문제는

그날-

금발로 염색을 하고 떡두꺼비를 집에서 내쫓은 순간부터였다. 여동생이 있는지도 몰랐던 녀석이 갑자기 여동생과 함께 나와 놀러 다니고, 언제 친구를 사귀었는지.

소꿉친구를 끌고 왔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금태양으로서 이 녀석과 이별을 선택해야겠다고.

속에서 끓어 오르는 NTL의 욕구와 멍청하게 빌드를 쌓아가는 타케시의 히로인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류가 몰라 봐줘서. 진짜, 슬플뻔했다고, 하하하!”

“많이 변해서 그렇지. 그것보다 많이 남자다워졌네.”

나도 이 녀석의 남성성 예찬에 오염이 되는지, 내 입으로 오글거리는 말을 꺼내 버렸다.

‘아, 혀가 녹아간다.’

“류가 남자라면 당연히 근육. 남자라면 운동이라 했잖아.”

내가?

아, 확실히 그 당시에는 금태양 컨셉의 가능성을 보고, 미친 듯이 운동을 해댈 때였었다.

그러다, 이 녀석에게 갑작스레 여동생과 소꿉친구과 생기는 걸 보고 반강제로 스쿼트, 오래달리기, 푸쉬업들을 시켜댔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랬었지.”

이리저리 끓고 다니면서, 강제로 남자애들과 싸움도 시키고, 눈물 콧물을 질질 짜대도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수련을 시켜댔었다.

‘잠깐, 이거 생각해보니 그냥 괴롭힘 아닌가?’

욱신

죄책감이 날 선 바늘이 돼 가슴을 찔러댔다.

나름대로 변명을 하자면, 당시에 나는 심리적으로 많이 몰려있는 상태였고.

그런 내 눈에 여동생과 소꿉친구를 가진 찐따 녀석을 보게 되었으니 정신 줄을 놓을 법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감정이입이 너무 깊어져, 못난 부모들처럼 내가 원하던 것을 녀석에게 투영해댔었으니 말이다.

‘평범하게 소꿉친구와 자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것들.

“미안하다.”

나는 기억나는 과거의 내 잘못에 곧바로 녀석에게 사과의 말을 꺼냈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친구끼리는 사과하는 게 아니야. 류. 갑작스레 이사를 하는 바람에 연락이 끊긴 거는 어쩔 수 없으니까.”

굵직한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따봉을 날리고, 환하게 드러난 이빨에서 반사된 빛이 ‘반짝’했다.

“우리는 친구잖아!”

나는 너무 눈이 부시는 바람에, 끼고 있는 안경을 선글라스로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

오글거리지만, 나의 전생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외로움에 일그러진 얼굴을 보니, 옛날 한 인터넷의 밈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름도 유명한 셜록홈즈를 영국에서 드라마화시킨 것이었는데.

거기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소름 끼치는 연기력을 뽐내며 명대사를 뽑은 적이 있었다.

「난 친구 같은 거 없어.」

나는 이제 더는 금태양이 아니다. 녀석에게 아직 소꿉친구와 여동생이 잘 붙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는 NTL을 하게 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말 외로웠던 6년의 세월이었다.

나는 일그러진 내 전생의 얼굴에 작별인사를 보낸 뒤, 환하게 웃으며 타케시를 바라봤다.

이 상황이 마치 잃어버린 6년의 삶에 대한 보상 같았다.

“그래, 친구지.”

“하하하. 류. 그것보다, 너 여전히 인기 많은걸?”

코끝에, 베이비 파우더에서나 맡을 수 있는 향긋한 냄새가 느껴진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내 눈에도 보이는 선명한 그림자가 내 책상 위를 가렸다.

“어머,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자연스럽게 자리에 온 마오는 내 책상 위로 엉덩이 자국을 남기며 다리를 벌렸다.

드러나는 새하얀 허벅지 안의 과감한 티팬티.

옆에 앉아있던, 타케시는 코를 감싸 쥐며 앞으로 엄지를 내밀어댔다.

“역시 류! 저렇게 예쁜 여자가 먼저 말을 걸다니!”

오랜만에 나눠 보는 평범한 대화, 동성 친구와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그런 대화를 방금 저 처녀 비치 갸루가 망쳐버린 것이었다.

돌아가는 내 반응이 고울 수가 있나.

“마오, 당장 내 책상에서 내려와. 그리고 그런 속옷을 입는 건 네 자유지만, 그렇게 다리를 함부로 벌려대는 것은 너 같은 처….”

“꺄악, 뭐래! 아, 맞다. 이제 선생님 오실 시간이랬지. 그럼, 나는 얼른 돌아가서 수업 준비를 해볼까나?”

어색하게 내 말을 중간에 끊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마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이 처녀라는 사실이 그렇게 부끄러운 건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이 읍토미 세계에 찌들어버린 생각을 하기에는 내 옆의 빛이 너무나 밝았다.

“쟤는 누구야? 류의 여자친구?”

“무슨, 나는 심기체 모두 단정하고 순결한 여자가 이상형이야. 그리고 쟤는 갸루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단하게 들려 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갸루는 걸러야 한다. 그것이 짝퉁 갸루라고 할지라도.

나는 타케시와의 얘기를 이어갔다. 어떻게 지내왔는지, 아직도 대전격투게임을 좋아하는지, 그런 소소한 일상의 대화들.

‘평범한 대화.’

마음속의 나는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려댔다.

*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타케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류를 노려봤다. 덜덜 떨리는 새하얀 허벅지가 피를 빠르게 돌려 그녀의 남들보다 잘 돌아가지 뇌에 피를 끝없이 집어 넣어댔다.

‘대체 왜 안 넘어오는 거야!“

얀치 마오.

그녀는 지금 미친 듯이 불안했다.

혹시나 자신이 처녀인 사실이 이 학교에서 소문이나 버릴까 봐.

“야, 그거 들었어? 키라라년 새로 샀다는 백 있잖아? 그거 짝퉁이래.”

“정말, 어쩐지. 자랑이랑 허세는 다 부리고 다니던 게, 입만 벌리면 구라나 치는 년이었네.”

“어머, 정말? 재수 없어라. 그런 년이랑 놀아줄 거 아니지?”

쿡━!

친구들의 뒷담화가 마오의 가슴을 쿡쿡 관통해댔다.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이 까발려져 버린다면-.

‘절대, 왕따 당해버릴 거야.’

류에게 처녀라는 사실을 들켜버린 마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류의 입을 막아야 했다.

여성잡지와 관능소설로 절여진 그녀의 뇌에서 튀어나온 해결법은 바로.

처녀가 아니게 되면 그만이지 않는가!

처녀인 게 밝혀지는 게 두렵다면, 처녀가 아니게 되면 되었다. 덤으로 류에게 처녀를 바쳐, 멍청한 남자들이 처음이야? 앞으로 내가 책임질 게 같은 반응, 약점을 노려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것.

그게 마오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써먹기로 한 마오는 곧바로 육탄공세에 들어갔다. 남자를 유혹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방법이었느니 말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

‘도대체 왜 안 넘어오는 거지, 고자도 아니면서.’

마오는 류가 고자가 아니라는 것의 확실한 증거를 본, 화장실에서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쯔읍-」

자신이 보지가 벌어지면서, 여태껏 써왔던 가면을 모조리 벗겨져 버린 그 순간.

곧바로 관능 소설 속에서의 일을 당한다 생각했던 마오였었지만, 실눈을 뜬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왜 저런 걸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는, 수수한 여자 팬티를 자신에게 입혀주는 류의 모습이었다.

그러고는 내뱉는 말이 ‘어떻게 입는 지는 네 자유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챙겼으면 좋겠다’였다.

‘조금은 멋있지만.....뭔가 이상하잖아!’

그래도 확실하게 바지춤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걸 본 마오였다. 그게 엄청 묵직하기도 했었고 남자들이 그녀만 보면 바지를 부풀려대는 건, 흔한 일이었느니 알아차리기 쉬웠다.

‘이상한 놈, 미친놈.’

고자도 아닌 놈이 자신을 길가는 돌보듯이 한다?

자존심이 잔뜩 상한 마오는 류의 선명한 턱선을 노려보며 네일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절대로 처녀를 바쳐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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