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읍토미. 라 세상 속에 들어와 버렸다-3화 (3/54)

19 EP.11 청춘은 사랑과 우정

#010화. 청춘은 사랑과 우정.

나는 오늘 내가 얼마나 편협했고 편견에 눈이 멀었었는지를 깨달았다. 저런 걸 처녀 빗치라고 부르는 걸까.

아니면 처녀 빗치인 척하는 그냥 처녀인 걸까.

생각을 해보니, 이 읍토미에서는 처녀인 걸 부끄러워하고 섹스를 많이 해본 여자일수록 ‘쿨’하다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지만, 이세계는 그렇다는 뜻이었다.

‘그런 페이크 갸루가 있을지는 상상도 못 했어.’

그저 진짜 갸루라 생각하고, 무시했었다면 또 선량한 한 명의 여자가 타락의 길로 빠질 뻔했지 않는가.

왜 전생의 수많은 철학자와 선각자들이 편견은 나쁜 것이라 설교를 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편견에 덮여 있던 눈꺼풀이 벗겨진 기분이었다.

이런 걸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겠지. 기분 좋은 놀람이었다. 나는 경쾌한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류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

드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의 손에 들린 뼈다귀를 기다리는 것처럼 헥헥거리고 있는 양호선생 리카가 내게 튀어왔다.

“류━! 헥헥, 이번 투명인간은 과학자의 실험체? 아니면 초능력자?”

나는 투우사처럼 내게 달려드는 리카를 간단히 피한 뒤, 그대로 잡혀있는 투명인간을 양호실 안으로 던졌다.

“아니요. 이번에는 무슨 약을 먹었다고 하더군요. 들어보니깐, 여분의 약은 포장해서 위장에 보관 중인 거 같던데.”

“하악, 하악. 투명인간이 되는 약이라고? 대단해!”

그녀는 곧바로 풍만한 가슴속에 들어가 있는, 고급진 선글라스를 껴 양호실 한복판에 나자빠진 투명인간을 바라봤다.

그리고 가슴속을 뒤적거리며 곧바로 메스를 꺼내 드는 그녀.

몸을 Y자로 가르려는 그녀의 어깨에 나는 손을 올려 막았다.

“어금니에 줄을 묶어 놨으니, 그대로 빼내면 될 듯합니다만?”

“흠.....우리 류, 왜 이렇게 착해진 걸까? 재미없게.”

리카는 불퉁하게 볼에 바람을 집어넣은 뒤, 입술을 내밀어댔다.

“전혀 안 귀엽습니다.”

“알겠다고! 그리고 착해지기는 무슨 또 불알을 이렇게 잔인하게 짓이겨 놓아놓고는.”

“그건 사회 평화와 가정의 화목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네, 네. 그러시겠죠.”

툴툴거린 리카는 곧바로 투명인간의 입을 열어, 어금니에 걸려 있는 줄을 빼내기 시작했다.

“이거, 바보 아니야? 콘돔에다가 약을 싸놓기는 했는데. 위액에 닿으면 콘돔은 녹는다고. 이거 오늘 너 아니었으면 죽었어. 뭐 지금도 죽기 직전이지만.”

리카는 흉악한 주사기 권총을 들어 그대로 심장에 꽂아 넣었다. 그녀가 연구한다던 인체 재생의 물질이라던가?

대충 뭐 그런 것이었다.

그녀 덕에, 마음껏 불알을 으깨어 댈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라는 것은 이곳에도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가요, 뭐. 양호선생님이 잘 처리하시겠죠.”

나는 이곳저곳 구멍이 난 콘돔에 약병들이 대구르르 굴러다니는 것을 잠시 보다, 등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그럼, 이만 전 수업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원래였다면, 끈적하게 내게 달라붙었을 리카 선생이,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실험체가 된 투명인간만을 바라봤다.

‘며칠은 조용하겠네.’

*

‘우웅-, 누구지?’

츠우미는 시끄러운 커튼 너머에 잠에서 깨어 버렸다. 몽롱한 정신이 점점 맑아지며, 그녀는 커튼 너머의 목소리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류!’

“하앗! 어떻게...그런 꼴을 또 보이다니.”

츠우미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곧바로 엎드려, 머리를 베개에 쿵쿵 박아대기 시작했다.

상냥하게 양호실에 데려다줄 뿐인 류가 엉덩이 한 번 잡았다고 또 조수를 뿌려대다니.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의 츠우미였다.

‘그런 추잡한 꼴을 봤으니, 류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당연히 싫어하겠지.

츠우미는 자신의 눈에 커도 너무 큰 흉측한 지방 덩어리를 내려다봤다. 류가 경멸하는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자신의 지방 덩어리 엉덩이를 손으로 만지게 만들어버리다니.

“정말, 민폐잖아.....”

그 류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을 자신의 추잡한 엉덩이로 더럽히다니!

“사과해야 해.”

츠우미는 곧바로 일어나 커튼으로 향했다. 하지만, 원체 소심한 츠우미가 커튼을 열어 재치고 류에게 사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녀는 커튼을 붙잡고 어영부영 엉덩이만 흔들어대다, 눈물을 찔끔 흘려댔다.

‘어, 류가 돌아가는데....’

류가 돌아가기 전, 사과해야 한다는 마음에 츠우미는 땅바닥에 붙은 다리를 힘겹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 발자국을 내디뎠을 때.

그녀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어 버렸다.

“아코....아파….”

축 처진 눈망울로 엉덩이를 비벼대는 츠우미는 자신이 밟은 것을 들어 살폈다.

‘이게 뭐지?’

「투명피린」

‘made by 세이탠카? 파란 약을 먹으면 투명인간이 되고, 빨간약을 먹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츠우미는 일단 그 약을 챙겨 호주머니에 넣었다.

*

“차렷, 선생님께 경례.”

나는 반장으로서, 선생님에게 인사를 마쳤다. 전생에서는 이미 일제의 잔재라고 없어진 문화였는데. 이곳은 아직 존재했다.

‘아, 이곳이 일본을 본 떠 만든 세상이었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일본도 아니고, 읍토미와 섞여 버린 탓에 이게 정말 일본의 문화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뭐 상관없나.’

““수고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인사를 마치고,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휘날리며 하교를 시작했다. 나도 옛날에는 이 학교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던 기억이 있었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아....류....저기, 그 손가락이 이상한데…….”

소심한 목소리를 따라 손가락을 내려다보니, 짱돌에 박은 포크처럼 이리저리 휘어져 있는 내 손가락이 보였다.

‘오그라들었었나?’

한 편의 심마와 마주친 기분이었다. 나는 눈앞에 떠 있는 글귀를 손으로 휘적거려 치운 뒤, 무뼈 닭발이 되어버린 내 엄지를 물어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 멀쩡해졌다!”

이 정도의 만화적 허용도 신기해하다니, 역시 음침녀답게 집밖에 나돌아다니지를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나를 기다리고 있지?

“부반장, 이제 하교 시간인데. 왜 하교를 안 하고 있지?”

“아, 그, 그게! 우리 이제 반장, 부반장이기도 하고....앞으로 합을 맞춰야 할 때가 많은데. 그 같이 하교도 하면서 서로 알아 가면...어떨까...하지만, 류가 싫다면 괜찮아!”

말을 하려면, 조금 따박따박 해줬으면 좋겠다만 답답해서 말을 중간에 끊어 버릴 뻔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말을 중간에 끊어 버리는 것임에도.

나는 천천히 츠우미를 바라봤다.

갱년기라도 왔는지, 이상할 정도로 붉게 발광을 하는 볼에 축 처진 어깨.

그녀가 내 앞에서 보인 추태를 생각하면, 말을 못 붙이지 않을까 했는데. 양호실에서 반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게 사과를 했었다.

-류, 혹시 내가 너를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꽤 기합 섞인 목소리였었지. 저런 캐릭터가 용기를 내다니, 지금 우리 사이에 어떤 클리세가 흐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라고 모든 클리세를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전생에 나는 성인지와 야애니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야인, 일개 딸쟁이었다.

“혹시 소꿉친구 있어?”

“응? 아니?”

“남동생은?”

“외동이야.”

“그럼, 널 짝사랑하는 사람이거나 그런 사람은?”

츠우미는 거대한 가슴을 포동 거리며, 손을 휘저어댔다.

“에이, 나 같은 걸 누가 좋아 한다구. 남자랑 말도 섞어 본 적 없는걸.....”

탁탁

나는 오늘 공부한 책들과 필기 노트를 정리해 가방 안에 넣었다. 방금 물은 질문들은 내가 금태양이던 시절에 입에 붙은 버릇이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여자가 소꿉친구도, 형제도, 그렇다고 짝사랑하는 남자도 없다는 게 꽤 신선했다.

“그럼, 하교해볼까?”

“응-! 빨리, 가방 들고 올게! 어이쿠-!”

쿠당탕

대체 뭐에 걸렸는지, 그대로 나자빠지는 츠우미는 넘어진 자세도 특별했다. 무릎은 세워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가슴은 땅바닥에 붙인 야한 자세.

아직도 젖어 그녀의 보지 둔덕에 착하고 달라붙어 있는 흰 수수한 팬티를 보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심해야지.”

“고마워, 류.....”

원래의 나였다면, 저런 음침녀 컨셉의 여자와는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을 건다면, 금태양의 ‘진심 양아치 눈빛’을 보여줘 오줌을 지리게 만들었겠지만-.

꼴을 보니 하교를 하는 와중에도, 남자들에게 성희롱을 당해 암컷타락할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내 학급의 부반장이 암타녀라니 옳지 못하다.

나는 츠우미를 대충 일으켜 세워주고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 주었다.

“고마워.....류.”

그리고 오늘의 나는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이 학교에 와, 굉장히 평범한 하루를 보냈었기 때문이다. 고작 만난 게 허접 투명인간 하나라.

신기록이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하루라....’

나는 창밖의 하늘을 바라봤다. 황금빛을 내뿜는 노을진 하늘.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이 학교에서의 나의 미래와 같이.

‘이제, 친구 정도는 사귀어도 괜찮지 않을까.’

완벽 안경남 컨셉이 되었으니 말이다. 더는 혹시 모르게 NTR을 해댈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 친구.

마음속에서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나는 허둥지둥거리고 있는 츠우미의 모습에 시간이 걸릴 게 분명해, 미리 사물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내 앞길을 막는 반쯤 열려있는 와이셔츠, 그 속의 깊은 가슴골. 흰 와이셔츠에 그대로 비치는 붉은 레이스의 브래지어.

“마오, 넥타이는 어디 갔지? 분명히 내가 그 차림새는 분명 복장 불량이라 말했을 텐데.”

마오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치만, 불편한걸…”

왠지 내게 가슴을 더 내밀면서, 윙크를 해대는 마오.

나는 내 2대 8머리가 흐트러진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복장 불량 참을 수 없다.

손을 뻗어 그대로 와이셔츠를 잡아 당겨왔다.

물렁-

“하읏! 류, 정말 거칠다니까.”

하는 짓은 밑바닥 육변기로 굴러먹은 듯한 교태로움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처녀인 페이크 빗치였다.

다 아는 나로서는 귀여워 보일 뿐.

원래도 마른 몸에 비해 큰 가슴에, 와이셔츠는 이상하게 작으니 와이셔츠가 잘 잠기질 않았지만, 내가 누군가 완벽 안경 컨셉남. 이 정도쯤은 가뿐했다.

“오의(奧義) 바느질의 술”

떨어질 것 같은 단추를 다시 단단히 묶어 준 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나를 졸졸 따라오는 마오는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뒷짐을 쥐고 돌아봤다.

그 투명인간에게 구해준 뒤, 줄 곳 이 상태.

나에게 흥미가 생긴 것 같은데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딱히 구해줄 생각도 없었고, 컨셉에 잡아먹혀 보지를 벌려 버렸는데도 나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세상은 정말 난해하다.

“류는 내가 나를 잘 챙겼으면 좋겠어?”

저 말은 내가 그녀의 처녀막을 확인하고, 내 눈을 가린 편견에 변명하는 마음으로 꺼냈던 말이었다.

그런 꼴이면 당연히 갸루 빗치로밖에 알 수 없지 않냐는 의미였다.

“자신의 가치는 너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 지에서 오는 거야.”

“멋지네 류는, 챙김 받는 거 나쁘지 않은 기분이야. 류, 그럼 챙겨주는 김에 오늘 우리 집, 내 방 안까지 데려다줄래?”

“빼애애애액-! 무슨, 안 돼요. 안 돼. 오늘 류는 저랑 하교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나는 서로 싸워대는 두 여자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문 너머로 보이는 노을 진 하늘. 평범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노는 학생들.

‘아름답다.’

그건 그렇고.

좌 가짜 빗치 갸루, 우 음침 거유녀.

내가 반장이 아니었다면, 말도 섞지 않았을 종류의 캐릭터들이었다.

‘잠깐?’

내가 왜 이런 애들과 하교를 하는 거지?

나는 정상적인 남자학생과 우정을 쌓고 정상적인 여자와 썸을 타고 싶었는데.

“반장!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반장」

그렇군.

나는 지금 반장이었다.

못나고 학급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불우한 친구들도 보살펴야 할 반장.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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