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EP.10 투명인간은 울부짖었다(4)
#009화. 투명인간은 울부짖었다(4)
오직 모서리 사이를 다리의 힘만으로 기어 다니기 시작한 류, 그의 모습은 투명인간이 보기에도 기괴했다.
습한 화장실, 안경 위에 서린 작은 물방울들의 모습이 마치 거미의 눈과 같았다.
마오는 이슬 속에 나누어진 여러 명의 자신의 모습과 마주했다.
“뭔가, 대단하지만 소름 끼쳐....”
그리고 그 인간 거미가 품속에서 실을 내뿜었다. 정말로 거미 인간처럼!
천천히 내려온 실 끝에 달린 것은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낚싯바늘.
털컥
낚싯바늘이 그대로 바 형태의 자물쇠를 걸어 올렸다.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려버린 화장실의 문. 인간 거미, 류는 모서리를 기어 옆으로 빠진 뒤, 뛰어내렸다.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니. 참을 수 없군.”
“……”
변기에 박혀 빨갛게 물든 보지를 드러내고 있던, 마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반장? 내 모습은 안 보…”
“젠장! 아까 전부터 마음에 안 들게 생겼었어.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방해하지 말라고!”
손을 들다 만 상태로, 굳어있는 마오는 섀도복싱을 시작하는 류를 바라봤다.
혼자서 가상의 주먹을 피하며, 스텝을 밟아대는 모양새.
‘뭔가 좀, 이상하지만 날 구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녀는 류가 갸루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
턱살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주먹을 휘둘러대는 토메이. 자신의 주먹에 오히려 무게 중심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다.
‘이 정도 녀석한테는 컨셉에 몸을 맡길 필요도 없으려나.’
컨셉에 몸을 맡긴 채, 품속에 전기 충격기를 꺼내 깔끔하게 지져버리려 했지만, 그럴 가치조차 없었다.
아?
왜 품속에 전기 충격기나 낚싯바늘 그리고 실 따위를 들고 다니냐고?
묻지 마라, 원래 완벽 안경남의 가방과 품속은 아공간과 같은 것이다.
나는 작가가 그리기 귀찮아, 그저 원하나만 딸랑 그려놓은 감자 같은 주먹을 화려한 스텝으로 피하며 천천히 장갑을 꺼내기 시작했다.
일명, 탭댄스 스텝.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흥겨운 박자가 화장실의 벽에서 울려 증폭되어갔다. 단화가 화장실 바닥을 때리며, 흥을 올리고.
“헤엑, 헤엑, 왜 안 맞는 거야!”
투명인간의 타령이 코러스로 맞춰 한 편의 무대가 어우러진다!
‘아쉽지만....’
공연은 끝이다.
탁!
왜인지 모르겠지만, 품속에 들어있던 라텍스 장갑이 나의 손에 맞춰 끼워졌다.
더러운 남자의 육수 따위 손에 묻히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타닥
마지막 박자가 화장실에서 메아리친 뒤, 기묘한 긴장감이 화장실 안에 맴돌았다.
“헤엑, 헤엑, 시발. 너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글쎄, 음....야쿠자 동성회? 아니면 악의 간부단? 그것도 아니면 불량 폭주족 서클, 쿄소 만지회? 미안하지만….”
내가 하나, 하나씩 부르는 이름에 녀석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예전에는 하나 같이 꽤 유명했던 조직들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 갑작스레 전부 풍비박산이 났다는 그 조직들...설마 네가 그, 그…”
입으로 라텍스 장갑을 깨물어 손에 딱 맞게끔 당긴 뒤, 살짝 내려간 안경을 올렸다.
“이미 다 정리한 지 오래다.”
두둥-
“이 기세는? 크흑.....”
내가 한 발짝을 다가가니, 토메이라는 놈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미 기세에 밀려 버린 녀석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압만으로 숨도 쉬기 힘들어했다.
쯧
적어도 내가 지금껏 정리했었던 사악한 범죄자들은 끈기와 기세라도 있었다.
저런 피라미와 다르게.
“오지마......”
화장실 벽에 등을 붙이고, 손을 휘저어대는 토메이. 벽을 타고 내려가더니 어느새 땅바닥으로 쓰러져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오지 말아주세요. 그 혹시, 투명인간이 되는 약 같은 거, 필요하지 않아?”
토메이는 갑자기 입을 벌려대더니 백태가 낀 혀를 내게 보여줬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모습.
“여기, 이빨에 어금니에 줄로 묶어 놓은 거 보이지. 그 줄에 내가 투명인간이 되는 약을 넣어놨어. 해독제도 있다고 제발! 다 줄테니까. 응?”
나는 녀석의 말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더욱 더 다급한 얼굴로 침을 튀기며 나를 설득하려는 투명인간.
“응? 이거, 투명인간이 되면 대단하다니까? 여자 목욕탕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막 여자들 강간해대도 경찰에 잡힐 일도 없어. 네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터벅
나는 쭈그려 있는 투명인간의 앞에 가, 섰다. 도게자를 박고 있는 토메이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딱히, 그딴 한심한 건 필요가 없어서.”
나의 차가운 눈동자를 본 탓일까, 수용 다음의 분노 단계에 들어간 듯한 놈이 고개를 들더니 허탈한 웃음을 내뱉다 갑작스레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한심한 거? 하하하. 운 좋게 잘생기게 태어나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다 얻을 수 있으니까. 이딴 게 필요 없다는 거냐?”
토메이는 손을 이리저리 휘둘러대며 침을 튀겨 댔다.
“네가 나처럼 못생긴 돼지로 태어난 기분을 알아? 친구 없이 외로운 삶을 살다가, 겨우 노력을 했는데, 그게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기분을 아느냐고! 너처럼, 알아서 여자가 꼬여 될 거 같은 얼굴을 가진 놈이 아냐고!”
빠직
‘노력’
저런 놈에게 ‘노력’이라는 말을 듣자니, 머릿속에서 퓨즈가 끊기는 기분이었다.
노력, 노력, 노력.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오자마자 해댔던 것 아닌가?
“네가, 핑챙 엄마를 가진 기분을 알아?”
내 눈이 매서웠던 탓일까. 놈이 곧바로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토메이의 머리채를 잡아 다시 내 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핑챙 엄마를 제대로 된 엄마로 만들기 위해, 해왔던 내 노력을 너는 아냐고?”
금태양이 되었다고, 핑챙엄마 옆에 붙어있던 사악한 NTR남들이 ‘금태양님을 몰라뵙습니다.’ 하며, 조용히 제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었다.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나는 금태양 중의 금태양이 돼야 했었으니 말이다.
완벽한 금태양이 되기 위한, 그동안의 노력.
매일, 매일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드 100회, 그리고 10KM 달리기.
이것은 고작 아침 훈련이었다.
그 뒤로도 삼대 오백을 들기 위한, 헬스장에서의 수련과 도전해 오는 금태양들을 이기기 위해 해왔던 무술 수업. 그리고 매일같이 하는 탈색에 두피는 바람만 불어도 따가웠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에, 매일 같이 새벽공부!
“겨우 갈색 머리로, 똑바로 된 엄마로 만들었나 싶었는데. 곧바로 근친 태그를 달려고, 방 안으로 몰래 들어오는 엄마를 막기 위해 날 밤을 새우는 기분을 네가 알아?”
꽈직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손에 힘이 들어와 토메이의 머리카락이 끊겨갔다.
“으악, 아프다고! 대체 뭐라는 거야.”
“친구? 하....웃기는 군. 나도 친구 따위 사귈 수 없었어. 말만 걸어도 따먹어 달라고 쫓아오는 갸루들, 눈빛만 줘도 제집에 집문서를 들고 오는 미시들.....”
날 바라보는 토메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역시 나의 고생은 고작 저런 놈이 당해왔던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지금, 뭔 소리야. 자랑…”
뭐라 말을 한 듯했지만, 지금껏 마음속에서 쌓여왔던 울분에 그저 귀에서 튕겨 나갔다.
“하...투명인간. 나라고 성욕이 없는 것 같아? 매일 같이 보는 헐벗은 여자들. 따먹어 달라고 육탄공세를 해오는 데 흔들리지 않을 거 같냐고?”
“시..발, 자…”
퍽
시끄러운 놈의 아가리에 주먹을 먹여줬다. 예의가 없었다. 지금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들다니.
“삶이란 그리고 행복이란, 네 놈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그런 추잡한 욕망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짐승처럼 자지만 흔들어댄다고,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 거냐?”
“그만...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
퍽-!
“들어, 인간의 삶이란, 행복이란. 바로 건전한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 모든 걸 참는 이유. 그것은 단 하나. 아름다운 순애태그를 타기 위해서.”
“쿨럭.”
피 섞인 기침을 내뱉은 토메이의 입에서 이빨이 튀어나왔다.
“항상 너 같은 놈들을 보며, 생각이 들었었지. 최면앱이나 이능력으로 고작 여자를 따먹는데다 써? 너희들은 그걸로 자기 최면을 걸어 운동을, 공부를 할 생각은 못하는 건가? 대체 사회적 성취의 욕구는 어디로 간 거지....”
왜, 이 세상에는 세상의 모든 비밀을 담은 책, 시크릿이 없는 걸까.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 변해간다는 그 진리를 담은 책 말이다.
“그 투명인간이 되는 약으로, 첩보원이 된다던가, 적어도 은행이라도 털어서 부자가 되어 볼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건가? 그런 대단한 능력으로 고작 한다는 짓이 뭐? 여자의 엉덩이나 쫓아다니는 거라고?”
녀석의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체념한 듯 거멓게 죽어버린 눈이 보였다.
역시, 이 한심한 놈도 내 말에 자신이 어떤 가능성을 가졌는지 깨달은 듯했다.
“한심한 놈.”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지금껏 저지른 죄는 사라지지 않기에. 죄를 저질렀으면, 죗값을 받는 거랬다.
퍽━!
턱에 제대로 들어간 주먹. 그래도, 내 설교를 듣고 마지막에 깨달음과 후회를 느낀듯하니, 불필요한 고통까지 주고 싶지 않았다.
“고작 그런 한심한 마음가짐으로....나를 판단하다니.”
오의(奧義) 은행 밟기.
콰직.
“후우.....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토메이는 앞으로 더는 남자로서의 삶을 살 수 없을 것이었다.
오늘도 이 엉망인 세계에 태어나, 성욕이라는 번뇌에 잡아먹힌 마인을 정화해 주었다.
앞으로 더는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으리.
나는 손을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매우 급한 상황이라도, 남자가 여자 화장실에 계속 있으면 좋지 못한 법.
‘아직 금태양이었던 물이 덜 빠진 걸까.’
안경 완벽남이 된 이후로, 화를 낸 적은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투명인간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을 나가기 위해 발을 돌렸다.
그런 내 귀에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
“저기.....반장? 나 좀 꺼내달라고....”
갸루였나.
손을 대기도 불결한 갸루. 거기에 육변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다가가기도 싫었다.
고작 엉덩이가 변기 커버에 낀 것으로 못 일어날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아.....이 세상은 읍토미 세상이니 못 일어나려나?’
발을 목 뒤에 걸어나 요가 자세를 취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못 빠져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갸루 아닌가?
그들에게 일상인 일에 굳이 내가 도움을 줄 필요는 없다. 나는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
“에? 정말 나 두고 갈 생각이야? 안...돼.”
“손을 변기 커버에 짚고 밀어라, 그러면 알아서 엉덩이가 빠질 테니.”
“흐읍! 저기, 안 빠진다고! 아, 진짜!”
마오는 손으로 아무리 밀어내려 애써봤지만, 이미 녹은 아이스크림과 같은 몸에 힘이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면 내가 쌓은 이미지가....반장, 지금 그, 꺼내주면, 그 내가 입으로 빼줄 테니까. 어때? 나, 잘 빨 자신 있으니까...꺼내줘.”
“학교에서 불순 교제는 교칙에서 위반된다만?”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갸루를 바라봤다.
잠깐━
내 손이 저절로, 음성변조 장치가 있는 넥타이를 들어 올리더니 입 앞으로 가져다 붙였다.
음성변조기를 통해 나오는 중후한 음성.
「 떨리는 눈가, 당당하지 못한 목소리. 갸루가 펠라를 해주겠다는데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
‘이거 이상하다!’
“아니, 갑자기 왜 이상한 변조기를 쓰는 거야.”
나는 마오의 앞으로 가,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보지와 눈높이를 맞춘 탓에 심히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와 있었다.
「 역시. 」
“뭐가, 역시냐고! 빨리 꺼내줘.”
“잠시, 네 보지를 벌려봐도 괜찮을까?”
“에에에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