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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775화 (775/775)

< 775화 > 저, 섹스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3)

"제가 생각해도 진짜 말도 안 되는 부탁이라는 건 아는데.."

"괜찮으니까, 말해도 돼."

서윤희는 여전히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듯 우물쭈물하고 있었지만, 저 입에서 무슨 부탁이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언니 남자친구분이랑.. 한 번만 해보고 싶어서.. 아, 안 되는 건 알아요! 저도 그냥 답답해서 말만 해본 거니까..!"

'에휴.‘

한 번 최면에 걸려서 성욕에 불이 붙으면 얼마나 참기 힘든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서윤희의 횡설수설 하는 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재차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까 속으로 쉬었던 한숨이 '그럼 그렇지'라는 의미였다면, 이번 한숨은 '나도 모르겠다'라는 의미의 한숨이었다.

"해도 괜찮아."

"..네?"

자기 입으로 부탁하면서도 정말 허락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서윤희는 횡설수설하던 말을 멈추고 벙찐 표정으로 되물었다.

"해도 괜찮다고."

"어.. 정말요..?"

"고민 많이 하고 꺼낸 얘기잖아. 한 번 한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

물론 서윤희가 지금껏 지켜온 처녀막은 찢어지겠지만, 이미 결심을 내린 이상 깊게 생각하는 쪽이 손해였다.

"그렇다고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 좋아서 허락해 주는 건 아니니까. 그냥.. 너무 간절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는 거야. 상태도 많이 안 좋아 보이고."

"언니...."

실상은 혹시라도 최민석에게 미움받지는 않을까. 그런 이기적인 이유로 친한 동생을 팔아 넘겨버린 셈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서윤희는 정말 감동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진심으로 부탁받았다고는 해도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자는 걸 허락해 주는 건 감동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취향이 있나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일이었지만, 최면에 걸린 데다가 술까지 취해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엥.. 언니이.."

"..그래, 그래. 많이 힘들었지."

정말 고민이 심했던 건지, 술에 취해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건지. 갑작스레 눈물을 글썽이더니 품에 안겨 오며 훌쩍이는 서윤희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줬다.

애초에 원인 제공 자체를 이쪽에서 했으니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지만 약도 주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흐읍, 훌쩍."

"이제 좀 괜찮아졌어?"

"....네."

민아의 품에 안겨 울기를 한참.

울음이 가라앉고,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서윤희는 얼굴이 터질 듯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가슴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대답했다.

'도대체 왜 운 건데..!?‘

최근 몇 주 동안. 특히 요 며칠 사이에는 욕구를 절제하기가 힘들어 지치긴 했어도 이렇게 울어버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아마, 계획했던 것보다 심하게 취한 탓에 이렇게 돼버린 것이리라.

그런 주제에 이성을 완전히 놓을 정도로 취하지는 않아서, 애매하게 남은 이성으로 밀려드는 수치심을 견뎌내야 했다.

'언니 가슴..‘

옷 위로, 그리고 옷 안으로도 브라를 입고 있어 선명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팔로 허리를 꽉 끌어안고 가슴에 깊게 고개를 파묻고 있던 탓에 조금은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브라도 하지 않고 방에서 나왔던 모습을 직접 봤으니 대충은 크기를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감촉을 느끼는 건 또 다른 기분이었다.

밀려드는 수치심에 자기도 모르게 현실 도피하듯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막상 의식하고 나니 민망한 기분이 들어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팔을 슬그머니 풀며 품에서 빠져나왔다.

"음, 으흠. 죄송해요. 너무 취해서.."

"..아냐, 괜찮아. 실수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

다 이해한다는 듯한 대답과는 달리 표정과 말투가 조금 어색하다.

물론,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의 어색한 대답이 얼마나 배려심 넘치는 행동인지를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언니."

"고맙기는 뭘.."

민아로서는 완전히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라 감사를 받는 게 불편했을 뿐이지만, 서윤희에게는 저 불편하다는 표정마저도 자신의 기분을 신경 써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착해..‘

그렇지 않고서야, 대뜸 자기 남자친구와 섹스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들어 줄 리가 없다.

아니, 착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저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부탁마저도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착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성이 남아있으면서도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 정도로는 취해 있는 덕분에, 복잡한 생각은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아무튼, 시간도 늦었으니까 슬슬 정리하자."

"아..! 정리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언니는...."

그냥 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하려다가, 반사적으로 말을 멈췄다.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민아 언니랑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술에 취해 집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자고 가지 않을래요?"

"자고 가라고?"

"어, 음.. 이 시간에는 택시도 잘 안 잡히고.."

시간은 이제 막 오후 11시를 넘긴 상황. 택시가 잘 안 잡히는 건 사실이지만, 택시 어플이 있으니 문제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싶어 급하게 추가로 변명을 덧붙였다.

"언니도 피곤할 테고요. 그리고..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고.. 그렇잖아요."

새로 덧붙인 변명 역시 궁색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민아의 눈치를 살폈다.

"음, 그럼 그럴까?"

뭐 하러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떠올렸나 싶을 정도로, 시원스럽게 대답이 돌아왔다.

서윤희는 민아가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을 뿐. 내심 이상하게 여기거나 불편하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민아는 서윤희의 행동이 모두 최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전부 이해하고 있었고, 죄책감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저렇게 더 같이 있고 싶다는 티를 냈으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정리는 제가 할 테니까, 언니는 먼저 씻고 오세요! 갈아입을 옷이랑 수건은 치우고 갖다줄게요."

"그래? 그럼 뭐.. 먼저 씻고 올게?"

"네!"

어차피 치울 거라고 해 봤자 빈 소주병 3개에 거의 다 먹은 안주 약간뿐이었으니, 서윤희의 말대로 정리는 맡겨두고 먼저 씻기로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아가 욕실 쪽으로 걸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윤희는 등 뒤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씻으려면 옷을 벗어야 할 텐데.

따로 탈의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옷을 벗으려면 욕실 앞에서 벗어야 할 것 아닌가.

딱히 레즈 성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 몸에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민아 언니가 등 뒤에서 옷을 벗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그렇닥도 해서 부담스럽게 대놓고 볼 생각까지는 없지만..

달칵-

"아...."

안에서 벗으면 되는구나.

평소에 씻을 때는 혼자 사는 만큼 방에서부터 옷을 벗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욕실에 들어가는 탓에 이 당연한 경우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아.. 진짜 취했나 봐.."

민아 언니 몸을 봐서 뭐 하겠다고.

아니, 워낙 예쁘고 비율이 좋다 보니 관심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집중하고 실망할 일은 아닌데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오늘따라 유독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짧게 한숨을 쉬고는 본격적으로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내려놓고, 욕실 쪽을 슬쩍 돌아보니 조금씩 물소리가 들려온다.

"......"

설거지부터 해야 하는데.

어느새 물은 틀지도 않고 욕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을 집중하고 자연스럽게 안의 풍경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자기 집인 만큼 익숙한 욕실의 풍경 안에서, 하얗고 뽀얀 살결을 숨김없이 드러낸 민아 언니가 뿌연 수증기와 함께 물을 맞으면서 씻고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남자친구와 섹스하는 장면도 아니고, 그냥 샤워만 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쿵쿵 뛰어대서 꿀꺽, 침을 삼키며 정신을 차렸다.

"..설거지 하자, 설거지."

이것도 다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 거라고, 그렇게 변명하며 스스로를 타이르듯 중얼거리고는 물을 틀었다.

최면의 영향으로 성욕이 상당히 늘어났다는 걸 제외한다면,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로 떠올린 상상.

물론 서윤희가 정말 레즈 성향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만약 본인이 팬인 연예인이나 다른 방송인이 자신의 집에서 몸을 씻고 있다면, 누구라도 이 정도 상상은 하지 않을까. 비록 같은 여자 끼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망측한 상상을 변명하면서,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빠르게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옷장을 열었다.

"잠옷 대신이니까, 편한 옷이 좋겠지..?"

다행히도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조금 신장 차이가 있더라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은 많았다.

흰색의 헐렁한 티셔츠와 마찬가지로 헐렁하고 짧은 반바지를 꺼내고, 수건까지 챙기고는 다른 쪽 서랍을 열었다.

"속옷은.."

브라는 사이즈도 안 맞고, 자면서 입을 필요은 없으니 빼고, 적당히 심플한 디자인의 팬티까지 챙겨 거실로 나와 욕실 앞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서니, 안쪽에서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지만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짧게 심호흡을 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언니?"

"응, 왜?"

"수건이랑 갈아입을 옷, 앞에 뒀어요."

"응~ 고마워~"

샤워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 걸까. 묘하게 밝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옷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 방으로 돌아와 풀썩,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 민아 언니의 남친과 섹스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상상력이 폭주하는 탓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섹스도.. 진짜 하는 거겠지..?"

거기에. 정말 남자 친구와 섹스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했다.

민아 언니라면 허락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허락해 줄 줄이야.

어느 쪽이든, 술에 취해 제대로 머리가 굴러가지 않는 상태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지라. 이제는 스스로도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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