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774화 (774/775)

< 774화 > 저, 섹스 좀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2)

서윤희가 민아에게 처음 가졌던 감정은 방송을 시청하는 시청자로서의 팬심이었지만, 합방을 진행한 뒤로는 착하고 마음이 맞는 친한 언니라는 호감이 더해졌다.

민아 역시,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으로 합방을 제안해 준 상대라는 것에 더해 자신을 잘 따르는 서윤희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외동으로 자란 탓에 동생을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까.

그런 서윤희에게서 이번에는 자기네 집에 놀러 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온갖 잡무와 야근의 연속이었던 공무원 생활의 반동으로 완전히 집순이가 돼버렸지만, 나가는 게 귀찮을 뿐이지 딱히 나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간만에 외출을 결심했다.

갑작스러운 일정이었던 탓에 준비한 컨텐츠는 없었지만, 합방을 진행하면서 기세를 타 술먹방까지 함께 진행했다.

아쉽게도 몽마가 된 몸은 술을 들이켜도 취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친한 동생과 함께 술 마시며 토크를 진행하는 것도 재밌고, 안주도 맛있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대로 끝내기는 좀 아쉬운데.. 조금만 더 마실래요?"

"뭐, 그럴까?"

방송은 유니가 취하기 전에 적당히 마무리했지만, 방송이 끝난 뒤에 2차로 편하게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쪽은 취하지도 않으니 사고 칠 일도 없을 테고, 살짝 취기가 올라와 뺨이 발그레해진 유니가 귀여워 보이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주로 방송에 관한, 그리고 게임에 관한 잡다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 술이 한두 잔씩 비워졌고, 유니는 슬슬 제대로 취하기 시작했는지 표정이 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는 왜 하나도 안 취한 것 같아요..?"

"원래 잘 안 취하는 체질이라 그래."

뭔가 불안하기라도 한 듯,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묻는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는 소주 반병만 마셔도 몸이 화끈거리고, 한 병을 비우면 조금씩 이성에 브레이크가 안 듣는 수준이었지만, 다 옛날 일에 불과했다.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렇게 하라고 최면으로 유도당한 것도 아니었는데.

스스로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비워버리고는 최민석을 모텔로 끌고 갔던 일이 떠올라 뺨이 살짝 화끈거렸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했다.

지금도, 가끔 자기 전에 그때 일이 떠오를 때면 이불을 뻥뻥 걷어찰 정도의 흑역사였다.

그렇게, 민아가 스스로의 흑역사를 떠올리고 기억에서 지우려고 애쓰는 사이, 연거푸 소주 두 잔을 더 들이킨 유니는 잔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언니."

"아, 응. 왜?"

"제가 취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언니 말고는 이런 얘기를 할 상대가 없어서 그런데.."

변명이 조금 길기는 했지만, 정말 취해서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떠오르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얘기나 꺼내 보자는 생각에 민아를 집으로 초대하고, 미리 계획해 둔 술 먹방과 방송이 끝난 뒤의 2차 술자리까지.

미리 계획하고 여기까지 온 거였으니까.

계획에서 조금 어긋난 부분이 있다면, 자신과 함께 어느 정도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어야 할 민아 언니가 조금도 취하지 않고 멀쩡하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마신다고 해서 민아 언니가 취할 것 같지도 않고, 자신만 더 취해서 자제력을 잃을 것 같아 그나마 제정신일 때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여?"

"음.. 그게.."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방송할 때와 똑같은 사심 없는 표정으로 묻는 모습에 뒤늦게 불안감이 떠올라 말을 멈추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상대의 집에 놀러와 같이 술까지 마실 정도로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결국 만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사이.

그런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정말로 맞나 싶었지만, 최근 들어 계속해서 고민에 시달려 지친 마음과 적당히 오른 취기가 불안을 이겨내고 말을 잇게 만들었다.

"언니는.. 남친분이랑 고시원에서 만났다고 했었죠..?"

"어? 뭐.. 그랬지..?"

이제 막 이야기를 꺼냈을 뿐인데.

남자친구 얘기가 나오자마자 희미하게 경직된 표정과 함께 어색한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제가.. 여중, 여고에 졸업하기도 전에 방송을 시작해서.. 그런 쪽으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보니까.."

무슨 얘기를 하나 했더니. 연애 상담이었던 모양이다.

남자가 남중, 남고, 군대 테크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모쏠이 되듯이, 여자 역시 여중, 여고를 나와 대학에 가지 않거나, 대학에서 연애를 하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모쏠이 되어버린다.

아르바이트든 뭐든, 다른 일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인터넷 방송인이라는 직업은 따로 사람을 만날 일도, 외출할 일도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만큼 더욱 남자를 만날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전에는 부끄러운 꼴을 보여버렸지만, 그 부분은 최면으로 어떻게든 얼버무려서 넘어갔고, 순수하게 연애 쪽에 관심이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나도 똑같은데 뭘. 나도 여중, 여고 나왔고, 공시 준비하느라 남자 만날 일은 전혀 없었어. 걔랑도 우연히 친해지고 어쩌다 보니까 사귀게 된 거지."

사실대로 말한다면 설명할 내용도, 불평할 내용도 한 트럭은 되겠지만, 남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 이렇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요. 어쨌든 언니는 연애 경험이 있는 거잖아요."

"그거야 뭐.. 그렇긴 하지.."

집에서라면 모를까. 밖에서 데이트한 횟수는 사귄 기간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지만, 그래도 경험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원래는 연애에 크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는데. 언니랑 언니 남자친구를 보니까.. 계속 신경 쓰여서.."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봤자 문 너머에서 잔뜩 신음해 대고, 여운도 제대로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온 모습밖엔 보여주지 못한 탓에 뭐라고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사실.. 지금도 막 연애가 해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래?"

이젠 슬슬 유니가 하고 있는 고민의 윤곽이 보인다.

당장 연애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남자와 만날 일이 전혀 없는 상황이 유지되는 건 불안하다. 대충 그런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 섹스.. 는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해서.."

"뭐..?"

주변이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조용한 거실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유니의 말을 듣지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온 탓에 순간적으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당황 가득한 벙찐 대답에 유니 역시 당황해 허둥지둥 변명을 덧붙인다.

"아, 알아요..! 저도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아니, 변명이라기보다는 알더라도 계속 말하고 말겠다는 의지 표명에 가깝다.

"저번에.. 언니랑 남자친구분이랑 하는 소리를 들어보니까.. 그렇게까지 좋은 건가 싶어서.."

"......"

당황스럽던 감정이 순식간에 수치심으로 바뀌어 얼굴이 뜨겁게 화끈거렸다.

유니가 말하는 '그렇게까지'라는 건 아마 그날 자신이 정신없이 쏟아냈던 신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굳이 해석한다면 '그렇게 신음할 정도로 좋았던 걸까' 같은 뜻이겠지.

'이.. 변태 새끼..‘

속으로 온갖 불만과 분노를 담아 중얼거린 말은 유니가 아닌 이 자리에 없는 최민석을 향한 것이었다.

그날 유니를 거실에 두고 했던 섹스도 인생의 흑역사로 남았는데.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고민을 밝히도록 최면을 걸어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신경 쓰였다고 하더라도, 취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얘기를 진지하게 꺼낼 리가 없었다.

"특히.. 언니 남친분은 그게.. 엄청 크니까.."

"하아.."

"죄, 죄송해요."

"아니, 아니야. 기분 나빠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정확히는 유니에게 화나서 한숨을 쉰 게 아니라, 최민석에게 열이 받아서 나온 한숨이었다.

"유니.. 아니, 윤희야."

"..네."

짧은 한숨과 함께 감정을 추스르고 윤희, 아니 서윤희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이름을 부르자, 윤희는 마치 커다란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건 다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였다.

'얘는.. 아무 잘못도 없지..‘

너무 열이 받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기는 하지만, 순전히 피해자에 불과한 서윤희에게 화를 내는 건 잘못된 일이었기에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알았어. 나랑 남자친구랑.. 그.. 하는 소리를 들었더니 호기심도 생기고 너무 신경 쓰이고, 그렇다는 거지?"

"....네."

"하아아...."

차이는 조금 있겠지만, 자신 역시 최면에 걸려본 경험이 있는 만큼 계속해서 음란한 생각이 떠오르고, 성욕이 들끓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어떻게든 최면을 풀고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민석에게는 윤희는 손대지 말라고 제대로 설득도 해보고.

상식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무조건 정답이다. 하지만..

'걔도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을 텐데. 그걸 방해해 버리면..‘

나한테 실망하는 건 아닐까. 미움받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같이 지내면서 봐온 최민석의 성격을 떠올려 본다면 자신이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화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는 것 아닌가.

평소에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변태 새끼니 뭐니 욕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최민석을 좋아한다는 자각만큼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역시 싫어.‘

최민석이 서윤희와 섹스하는 것보다, 친한 동생을 변태 새끼의 마수에 넘겨주는 것보다도, 그에게 미움받는 쪽이 훨씬 싫었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시 서윤희 쪽으로 눈을 돌리자,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서윤희와 눈이 마주쳤다.

서윤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윤희야."

"..네. 언니."

다시 한번. 낮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서윤희를 부르자 마찬가지로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죄책감 가득한 태도에 다시 한번 양심이 찔려 왔지만, 이미 내린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진짜 섹스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궁금하기만 해? 그것만 알려주면 돼?"

"그건...."

상대에게 최면이 걸려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어도, 최면의 내용까지는 읽어낼 수 없다.

그런 만큼 만에 하나라도 최민석은 서윤희에게 아무런 최면도 걸지 않았고, 윤희가 정말 순수한 본인의 호기심과 취기에 떠밀려 이런 이야기를 꺼냈기를 바랬는데.

더 바라는 게 없냐는 식으로 추궁하는 말에 다시 고개를 푹 숙이며 망설이는 모습에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아아..‘

이번에는, 서윤희가 더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속으로만 길게 한숨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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