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5화 > 간호사 코스프레와 컨셉 플레이 (1)
최근 들어. 이은설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초조함이 다시 올라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최민석에게 스폰을 받게 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나름대로 커리어에 추가할 만한 일만을 골라 받게 되면서 업계에서의 인지도도 착실하게 늘려가고 있다.
심지어 이미 전속 계약도 몇 번 제안받았지만, 제안을 건넨 브랜드가 눈에 차지 않아서 거절했을 뿐이다.
지금 상황을 생각한다면 초조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이 보기에만 그럴 뿐이다.
우선 모델 일 쪽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결국 눈에 차는 레벨의 브랜드에서는 전속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대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중견 기업부터는 전속 모델을 쉽게 뽑거나 바꾸지 않으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최설아가 계약한 브랜드보다는 급이 높은, 최소한 비슷한 수준이라도 되는 브랜드와 계약하고 싶은 이은설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더욱 자존심이 상하는 게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쪽이었다.
스폰 관계라고는 해도 최민석에게 한 명의 여자로서 제대로 매력을 인정받고 말겠다는 목표는 모델 쪽 일보다도 더 진전이 없는 상태였으니까.
단순히 쾌락적인 만족만을 채워주는 게 아니라, 그가 자신에게 푹 빠질 정도로 만족시켜 주고, 최고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만약 그렇게 했다가 그가 정말로 자신에게 반해 고백이라도 해버린다면.... 뭐, 받아주지 못할 것도 없다. 나름대로 고마운 마음도 있고, 인물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크흠."
순간 생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 느낀 이은설은 혼자 헛기침을 하며 화끈거리는 뺨을 진정시켰다.
아무튼, 그를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여러 종류의 속옷을 보여주며 흥분을 유도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는 걸 감수하고 새롭게 내놓은 대책이 지금 입고 있는 간호사 코스프레였다.
남자들은 이런 코스프레 섹스 같은 플레이에 환장한다는 모양이었으니까.
"아무튼.."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거울 앞에 다가가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흰색과 배경에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착 달라붙은 재질 탓에 D컵의 가슴이 터질 듯이 눌려 가슴골이 깊게 파여 있다.
거기에 미니스커트처럼 짧은 아랫단에 새하얀 레이스가 달린 가터벨트까지.
말이 간호사복이지. 현실의 간호사가 할 만한 옷차림은 절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섹시함'이라는 테마 하나는 제대로 잡았다는 게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흰색 장갑에 모자, 청진기까지 챙긴 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이왕 하는 거라면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어차피 속옷만으로는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었으니, 그가 코스프레 섹스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좀 더 여러 방향으로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테고.
"..나쁘지 않아."
스스로가 보기에도 섹시한 표정이라, 최민석에게는 더욱 잘 먹힐 거라고 생각하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역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미 세 번이나 거울 앞에 서서 옷차림을 확인한 뒤였지만, 그저 이상한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 하는 점검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약속 시간인 오후 7시까지는 이제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가 어지간해서는 약속 10분 전. 늦어도 5분 전에는 도착한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바로 도착해도 이상할 게..
똑똑-
"......"
정말, 양반은 못 된다고 해야 할지. 슬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바로 문을 두드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며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꼼꼼하게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노크 소리가 들려온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구세요?"
"누구긴요. 저예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문을 잘못 두드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까칠하게 목소리를 내자 웃음기를 머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온다.
이렇게 모텔에서 만나는 일 정도는 익숙해졌을 텐데.
오늘따라 유독 가슴이 콩닥거리는 탓에 짧게 숨을 고르며 표정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들어와요."
찰칵.
잠금을 풀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살짝 열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말하자, 최민석이 문을 마저 열고 들어와 다시 문을 닫았다.
"오래 기다렸어요?"
"..별로 안 기다렸어요."
실상은 20분 전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안절부절못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괜히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담담한 태도로 대답했다.
자신의 대답에 최민석은 잠시 자신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고, 다시 엷게 웃는 얼굴로 말한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더 예쁜 것 같은데요? 역시 은설 씨네요."
"흥. 운 좋은 줄 알아요. 남자친구가 있어도 이런 건 안 해줬을 텐데. 정말 특별히 해주는 거니까요."
최민석의 칭찬에 기분이 들뜨는 걸 느끼면서도, 괜히 틱틱거리며 까칠하게 대답한다.
원래 성격이 이런 것도 있지만, 최민석에게는 자신이 칭찬 한마디에 기뻐할 정도로 쉬운 여자라고 생각되고 싶지 않은 탓에 유독 더 이렇게 대하게 되곤 했다.
자신의 이런 태도에 최민석이 아무런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한몫했다.
"그거야 은설 씨랑 만날 때마다 생각하고 있죠."
오히려, 매번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듣기 좋은 아부를 건네는 탓에 되려 이쪽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곤란할 때가 많았다.
"아, 아무튼. 오늘은 제대로 서비스해 줄 테니까 기대해요."
"서비스요?"
"지금 해줄 테니까, 들어와요."
자지가 너무 크고 기분이 너무 좋은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는 것 역시 큰 문제점이다.
오늘은 그에게 서비스를 해준다는 핑계로 주도권을 가져간 채로 섹스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일단 누워봐요."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전 미리 씻었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어차피 매번 씻기 전에 한두 번씩 하고 들어가잖아요."
"그거야 뭐.."
"됐으니까, 누워요. 편하게 베개도 베고."
"..알겠습니다. 오늘은 은설 씨한테 다 맡기겠습니다."
시작부터 최민석이 달라붙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곤란했는데. 이쪽에서 먼저 강하게 나간 덕분에 최민석을 얌전히 침대 위에 눕힐 수 있었다.
거기에 자기 입으로 다 맡기겠다는 말까지 하게 만든 것도 뜻밖의 수확이다.
침대에 누운 최민석을 서서 잠시 내려보다가, 속으로 기합을 넣고 침대 위로 올라가 최민석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며 자연스럽게 그를 내려다본다.
일단 확실하게 위를 잡았으니 첫 단추는 제대로 채웠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자, 진료 시작하겠습니다."
"진료요?"
아무런 맥락도 없이 툭 내뱉은 말에 눈치 없이 되묻는 말이 돌아왔지만, 모르는 척 미리 잡아둔 컨셉대로 말을 이었다.
"환자분은.. 성욕이 너무 심한 게 곤란해서 진료를 요청하셨네요. 맞으시죠?"
"음.. 네. 맞습니다."
그래도 최민석 본인 자체가 아예 눈치가 없는 성격은 아니라, 자신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연기를 이어가자 바로 분위기를 맞춰준다.
그러면서도 시선이 힐끔, 미니스커트나 다름없는 짧은 치마 아래로 향하는 걸 보니 역시 코스프레 의상이 제법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의 알기 쉬운 시선에 한층 자신감을 얻어, 한층 과감하게 연기를 이어갔다.
"우선, 간단하게 신체검사부터 진행할 테니, 가만히 계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플레이에 흥분했다기보다는 재밌다고 느끼는 듯 작게 웃음기를 머금은 대답을 들으며 그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기 시작한다.
'정말.. 무슨 몸이..‘
어지간한 여자보다도 깨끗한 피부도 그렇고, 깊게 푹 파인 쇄골이나 과하지 않고 보기 딱 좋게 갈라진 매끈한 복근도. 매번 보면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평소라면 의식하지 않는 척 시선을 피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환자분.. 몸이 굉장히 좋으시네요. 이렇게.. 몸이 좋으면 당연히 체력도 좋으실 테고.."
단추를 전부 풀어버리고, 앞섶을 옆으로 밀어 흘러내리게 만들고는 손끝으로 복근을 가볍게 눌러 쓰다듬으며 감촉을 확인해 본다.
근육이라고 해서 그냥 단단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제대로 만져보니 겉은 매끈하고, 안은 단단하면서도 의외로 꾹 눌러보면 손가락이 살짝 들어갈 정도의 탄력도 느껴진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중독적인 감촉이라 좀 더 제대로, 진득하게 만져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성욕까지 강하면 확실히 곤란하시겠어요."
"곤란하죠. 사실 저보다는 만나는 여자분들이 곤란하실 거예요. 다들 끝까지 버티기 힘들어하거든요."
"음.. 정말.. 힘드시겠네요."
자신의 연기에 어울려 주느라 하는 말이겠지만, 끝까지 버티기 힘들어한다는 말에는 찔리는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그의 욕구를 끝까지 다 받아낼 때까지 버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그의 자지가 반칙 수준으로 커서, 그리고 반칙 수준으로 정력이 강해서 그런 거였지만 그를 끝까지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단 심박수부터 확인해 볼게요."
목에 걸고 있던 청진기를 귀에 끼우고, 동그란 판을 최민석의 가슴에 가져다 대자 소리가 조금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쿵- 쿵- 쿵-
'진짜로 들리는 거였어..?‘
코스프레 의상이랑 같이 왔길래 그냥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심장이 뛰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서 놀랐다.
그래도 직접 청진기를 대놓고 놀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으니 놀란 감정을 바로 추스르고 소리에 집중하는 척 눈을 감았다.
'심장 소리가.. 원래 이런 건가..?‘
느리게, 그러면서도 강하게. 쿵쿵 울리듯이 맥박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쪽도 가슴이 조금씩 크게 뛰기 시작한다.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몸도 그렇고. 이렇게 심장이 강하게 뛰고 있으니 자지도 그렇게 단단하고 지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냥 심장 소리인데.. 기분이..‘
"으, 음. 확실히 건강하시네요. 아주 건강해요."
제대로 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장이 어떻게 뛰어야 건강한 건지 알 리가 없지만, 민망한 기분을 얼버무리기 위해 다 알았다는 척 말하며 청진기를 떼고 대충 옆으로 던져놨다.
그 짧은 사이에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져 후회가 먼저 밀려들었다.
'..이건 하지 말 걸 그랬어.‘
아무리 세상에 별의별 페티쉬가 다 있다지만, 설마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 기분이 들 줄이야.
스스로도 몰랐던 기묘한 취향을 발견해버렸다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다시 손을 뻗어 복근을 쓰다듬으며 다음 차례로 넘어간다.
"환자분은 확실히.. 성욕이 강한 것 같긴 하네요."
복근을 가볍게 누른 채로 손끝을 천천히 위로 올려, 어느새 발딱 서버린 젖꼭지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사실 원체 정력이 강하다 보니 조금만 흥분해도 곧장 발기해 버리기는 하지만, 남자 주제에 이렇게 가벼운 손길만으로 이렇게 돼버렸다는 사실에 기묘한 흥분과 함께 정복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평범하게 진료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돼버리시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