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0화 > 신입 모델 맛보기 (2)
내가 휴게실에서 나온 건 꼬박 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였다.
휴게실에서 나오자마자, 한예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다가와 커피잔을 내밀었다.
눈에 확 띄는 백금발과 앳된 얼굴. 그리고 살짝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웃음. 커피보다도 먼저 한예지의 외모 쪽으로 시선이 갔지만 내색하지 않고 잔을 받았다.
"수고하셨어요."
"오, 고마워."
이미 강하윤의 몸으로 개운하게 뽑고 나온 참이지만, 차갑게 얼음이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니 희미하게 남아있던 열기까지 확 가라앉아 기분이 좋아졌다.
"점장님은요?"
"안에서 쉬고 있어. 나오려면 좀 걸릴 거니까, 고생 좀 해줘."
거칠게 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한 시간 내내 자지를 빼지도 않고 후배위 자세로 안쪽을 집요하게 찔러댄 탓에 끝낼 때쯤에는 다리가 풀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못해도 30분 정도는 푹 쉬어야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깜빡 잠들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를 대비해 알바를 뽑아놓은 거였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우. 악독 사장이다."
물론 강하윤이 체력을 회복하고 나올 때까지는 한예지 혼자 일을 다 맡아야 했으니, 이렇게 불평이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래봤자 반쯤은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하는 불평이기는 했지만, 곧 배달이 많이 몰리는 타임이 되면 한예지 혼자서는 일을 감당하기 빠듯한 것도 사실이었다.
"거기다 검사도 맨날 점장님만 해주고."
"검사를 덜 한다고 하면 좋아해야지, 그게 뭐 좋은 거라고 투덜대냐."
"기분이 좋잖아요."
한예지는 그래도 다른 손님들을 신경 쓰기는 하는 모양인지 목소리를 낮춰 장난스럽게 속삭인다.
"그냥 매일 검사하셔도 되는데."
그리고는 작게 툭 내뱉으며 덧붙이는 말은 장난도 뭣도 아닌 진심이다. 엷게 웃는 입과는 달리 은근하게 달아오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나름대로 일과 섹스를 구분하려는 강하윤과는 달리 한예지는 섹스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는 탓인지 카페에서 하는 [검사]는 일이라고 최면을 걸어놨는데도 매번 이런 식으로 욕구를 드러내곤 했다.
물론 나도 싫은 게 아니었으니 얼마든지 해줄 수는 있었지만, 이런 타입은 조금 애태우는 편이 더 즐길 수 있었기에 적당히 조절하면서 상대해 주고 있었다.
"아니면 일 끝나고라도.."
"됐네요."
"윽..!"
여기가 카운터라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또 고개를 슬쩍 들이밀며 수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한예지의 이마 위로 가볍게 딱밤을 날려 떨어뜨렸다.
한예지에게는 이미 일전에 따로 [검사]를 하면서 사귀자는 고백을 받았지만 거절한 상태였다.
그랬더니 이제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도 좋으니 가끔 만나서 즐기자는, 소위 섹프 같은 관계를 제안하길래 그마저도 거절하고 있었다.
한예지를 여친으로 만들어도 딱히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그냥 지금처럼 카페에 두고 먹고 싶을 때마다 따먹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아, 아파요!"
"아프기는, 살살 쳤는데."
"아팠거든요!"
"그래?"
정말 가볍게 밀어낼 생각으로 쳤으니 아프지 않을 텐데. 괜히 투정을 부리는 모습에 다시 한번 동그랗게 만 손가락을 들이대자 흠칫하며 몸을 뒤로 빼 버린다.
어디까지 의도하고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장난기 많은 동생 같은 분위기가 그런대로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아무튼, 알바를 하나 더 뽑아야 하나?"
"안 돼요."
한예지를 밀어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말에 한예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불쑥 끼어들었다.
"응? 왜?"
"지금도 주에 한 번 검사받을까 말까인데. 경쟁자가 늘면 더 못할 거 아니에요. 차라리 일을 더 하고 말지."
"에라이."
진지한 목소리로 끼어들길래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나 했더니, 실없이 늘어놓는 말에 다시 딱밤을 치려고 손을 들어 올리자 한예지는 아까보다 더 멀리 휙 물러나 실실 웃는다.
그대로 쫓아가서 딱밤을 놔줄까 하다가, 너무 휘둘리는 것 같아 넘어가 줬다.
"아무튼, 가볼 테니까 일 열심히 해."
"벌써 가시게요?"
"오래 있어서 뭐 하냐. 일하는데 방해만 되지."
"전 사장님 있으면 안 심심하고 좋은데."
"말은 잘한다. 간다."
컵을 내려놓고 일어나자 한예지가 또 쪼르르 다가와 귀여운 척 애교를 부렸지만 대충 머리를 쓰다듬는 척 헤집어 놓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여기서 알바를 또 뽑으면 카페로 돈을 벌기는 힘들어지겠지만,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었으니 돈 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알바 뽑는 건 서연이 시키기로 하고."
오늘은 누구를 만나러 갈까.
평소라면 집에서 나오기 전에, 혹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결정했겠지만, 오늘은 한예지가 귀찮게 굴다 보니 결정을 못 하고 나와버렸다.
일단은 주차해 둔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아 밀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제대로 깊은 관계를 맺은 여자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섹프 같은 관계는 나름대로 여기저기 만들어 놓은 덕분에 여자들이 먼저 연락해 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밤사이에 온 메시지를 확인하고, 적당히 답장을 보내며 만날 여자를 고르는 게 평소 여자를 고르는 방식이었다.
'혜수는 저번 주에 만났으니까 넘기고, 혜연이는 아직 더 애태우는 게 나을 것 같고, 이은설은 또 사진인가?‘
메시지를 자주 보내는 단골인 정혜수와 유혜연에게 답장을 보내고, 이은설에게 온 [사진]이라고 떠 있는 이은설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최대한 잘 나온 사진만 엄선해서 보내는가 싶더니, 조금씩 만나주지 않으며 살살 애태우기 시작하니 이제는 나오는 대로 사진을 보내는 물량 공세 쪽으로 방향을 바꾼 상태였다.
"오..?"
오늘은 또 무슨 속옷을 입고 찍었을지 궁금한 마음에 메시지 창을 띄워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진이 나와 나도 모르게 짧게 감탄을 흘렸다.
평소에는 그래도 화려하고, 섹시한, 그런 속옷을 위주로 촬영을 진행했었는데.
이번에 보낸 사진은 그런 '평범한' 속옷이 아닌, 성인몰에서나 팔 법한 코스프레 사진이었다.
허벅지 중간까지 올라오는 흰색 가터벨트에 가슴골이 깊게 파인 흰색과 빨간색이 섞인 간호사복 스타일의 코스프레 의상은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
"이건 한 번 맛을 봐야겠는데?"
이은설은 여자로서가 아닌 모델로서의 자존심 역시 상당했기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섹스어필을 하는 쪽의 촬영은 은근히 깔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 만나주지 않으니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하다 코스프레 촬영을 결심한 게 분명했다.
그 증거로,
[<평소에는 이런 거 절대 안 찍는데. 이런 것도 다 경험이다 싶어서 한 번 찍어본 거예요. 이런 거 찍는 건 진짜 처음이었으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평소에는 사진만 보내놓고 아무 말도 없고, 비싼 척 늦게 답하거나 단답만 하던 여자가 아주 장문으로 변명을 늘어놓은 상태였다.
"자존심 센 여자가 이래서 좋지."
본인은 평소처럼 도도하게 굴며 관계를 주도하고 싶어 하지만, 몸이 너무 달아올라 참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속이 뻔히 보이는 자존심을 세우며 하고 싶다는 티를 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다 보여 귀엽다는 생각과 은근한 정복감이 함께 올라와 나도 참지 못하고 넘어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답장을 해줘야 하나.."
일단 이은설과 만나는 건 확정이고, 적당한 칭찬으로 기분을 띄워줘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감상하며 답장할 내용을 고민하는데.
그 잠깐 사이에 새로운 메시지가 날아와 흐름을 끊었다.
까톡! 까톡!
[임예진 : 주인님?]
[임예진 :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메시지 창을 바꾸기도 전에 연달아 메시지가 날아오며 화면 위쪽에 뜨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오늘은 이미 이은설과 놀기로 결정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중한 노예가 시간을 내 달라고 하는 일이었으니 일단 들어는 볼 생각이었다.
[>무슨 일인데?]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새로 모델 애들이 들어왔는데 괜찮은 애들이 있어서요. 주인님만 좋으시면 소개시켜드리려구요.]
"흠."
신입 모델이라.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새로 온 애들? 얼마나 예쁜데?]
[<음.. 주인님 기준으로 봐도 그럭저럭 A급은 될 것 같아요.]
내 기준으로 A급이라. 그럼 적어도 어지간한 모델이나 연예인급은 된다는 말이다.
애초에 모델을 하려고 학원에 등록했으니 당연히 예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모델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몸매만 좋고 얼굴은 평범하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만나면, 소개만 받고 끝이야?]
[<설마요. 바로 즐기실 수 있게 준비 다 끝내놓고 연락드리는 거예요.]
[>어떻게 준비해놨는데?]
[<다른 언니들이랑 비슷해요. 학원에서 싹수가 보이는 애들만 골라서 하는 테스트가 있는데, 거기서 합격하면 학원에서 성공할 수 있게 밀어준다는 식으로 해놨고, 오늘 하겠다고 대답까지 받아서 연락드린 거예요.]
테스트라고 하는 걸 보니 섹스로 날 만족시키면 합격이라는, 그런 식의 최면을 걸어둔 모양이었다.
"이은설은 나중에 만나야 하나..?"
연락을 받기 전만 하더라도 오늘 바로 이은설과 약속을 잡고, 데이트도 하지 않고 모텔에서 만날 생각이었는데.
막상 예진이의 제안을 듣고 나니 신입 모델들을 만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정확히는 모델도 아니고 모델 연습생이겠지만, 그래서 더 신선한 느낌이 든다.
뭐가 됐든, 이미 다 잡은 여자보다는 새로운 여자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만나볼 테니까 준비 되면 연락해.]
[<알았어요. 금방 준비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짧은 고민 끝에 결국 새로운 모델 연습생들을 만나보기로 결정하고 메시지를 보내자, 귀엽게 하트가 붙은 답장이 돌아와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이은설의 대화방 쪽으로 넘어가 메시지를 보냈다.
[>귀엽기만 한데요, 뭘. 마음 같아서는 오늘 바로 보고 싶은데. 일이 있어서 아쉽네요. 혹시 일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평소보다 성의가 없는 칭찬이었지만, 코스프레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는 나중에 직접 만나서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목요일이었지만 일요일에 만나자고 한 건 금요일은 엘레나가 날 독점하는 날이었기에 넉넉하게 다음날인 토요일까지 비워두려고 일요일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화면을 끈 순간.
까톡!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화면이 켜지며 화면 위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은설 : 어차피 오늘은 저도 일이 있어서 못 만나요. 일요일도 저녁에나 시간 될 것 같은데. 괜찮아요?]
스폰 관계라기에는 상당히 고개가 빳빳한 답장이었지만,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답장이 돌아온 탓에 오히겨 더 귀엽게만 느껴졌다.
굳이 일요일 저녁에 만나고 싶다는 건 아예 같이 밤을 보내고 아침까지 맞이하고 싶다는 계산인 것 같은데. 이렇게 머리를 굴리는 것도 귀여웠다.
[>네. 저녁때 만나도 괜찮습니다. 일요일 몇 시에 만날까요?]
그렇게 이은설의 귀여운 태도에 웃음을 흘리며 약속을 잡고, 민아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