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8화 > 열심히 일한 노예에게 상 주기 (3)
유서연은 지금의 생활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집이 부자인 덕분에 원래부터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오긴 했지만, 몽마가 되고 최면을 쓸 수 있게 된 뒤로는 최민석 단 한 명을 제외하면 더더욱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돈 때문에 달라붙는 사람들은 있었어도 정말 친구라고 말할 만한 상대가 없었던 자신의 주변에는 이제 자신과 같은 주인님을 모시는,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이들이 생겼다.
최민석이 온갖 여자들을 바쁘게 건드리고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잠은 대부분 집에서 자는 탓에 밤이 외로울 일은 거의 없었다.
보통 부부라면, 연인이라면 어느 정도 매너리즘이 생겼을 법도 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와 함께할 때는 여전히 행복했다.
잠자리 역시 여전히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러웠고, 눈물이 흐를 정도로 우악스럽게 가슴을 움켜쥐거나, 엉덩이를 내려치는 손길은 정말 황홀할 정도로 짜릿했다.
누군가의 노예로 산다는 게 이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이들은 최민석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친구나 연인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유서연만큼은 정말 마음을 다해 그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최민석을 위해 미인 관리사들을 모아 에스테틱을 차려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을 만들고, 카페를 차려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직업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그가 평소에 먹는 음식, 입는 옷, 타고 다니는 차, 돌아다니면서 쓰는 돈. 모든 것이 자신이 직접 준비한 것이라는 사실에 충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와 함께 지낼 새로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인님은 너무 욕심이 없어서 탈이야.'
본인은 나름대로 최면을 잘 써서 만족스러운 향락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유서연이 보기에는 가진 것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생활이었다.
만약 유서연이 최민석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진작에 온갖 방향으로 마수를 뻗어 사회의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권력을 손에 넣고, 왕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즐겼을 것이다.
단지 최민석 본인이 권력을 쟁취하고, 얻은 것들을 관리하고 키워나가는 식의 쾌락에는 흥미가 없는 탓에 이런 생활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이들이나, 편하게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 중에는 최민석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도 제법 흔한 편이었기에 딱히 이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챙겨드리는 맛이 있는 거니까.'
욕심은 없지만 욕망은 있다.
게으르기는 해도 목표가 있으면 바로 행동할 줄 알았고, 일이 너무 커지면 부담스러워해도 본인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범위 내의 선물이라면 마음 편하게 받아들인다.
여기서 말하는 선물은 자신이 최민석을 위해 준비한 에스테틱이나 카페, 임예진이 소개해주는 모델 같은 것들이었다.
우선은 크고 호화로운 집으로 최민석의 사치의 기준을 조금 더 높이고, 다른 쪽으로 손을 뻗어 새로운 여자를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단순히 예쁘기만 한 여자가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상대들.
이를테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연예인이나 배우, 가수, 운동선수 같은 유명인이나, 일본에서 만났던 여관 주인, 엘레나 같은 외국인 역시 좋을 것이다.
요트 위에서 백인 미녀들을 모아놓고 호화로운 파티를 즐긴다.
최민석이 그런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라면 한 번쯤 상상할 법한 '성공한 삶'의 표본 같은 플레이 역시 유서연의 머릿속에서 계획되고 있었다.
단지, 아직은 때가 아닐 뿐이다.
지금은 최민석이 조금 더 사치에 익숙해지고, 색다른 자극으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주변 환경부터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단계였다.
─♪
'주인님이다.'
가방 안쪽에서 들려오는 벨소리에 유서연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목을 가다듬었다.
"음, 음─."
다른 연락처와는 달리, 그에게 오는 전화는 항상 곧바로 받을 수 있도록 따로 컬러링을 지정해놨기 때문에 굳이 누구에게 온 전화인지 확인해볼 필요도 없었다.
"네. 여보세요."
[어, 서연아. 지금 바빠?]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런 건 아니고, 간만에 둘이 데이트나 할까 해서.]
"데이트.. 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민석의 말에, 살짝 당황해서 말끝을 느리며 되물었다.
[그동안 서연이가 이것저것 많이 노력해줬는데, 내가 해준 건 별로 없잖아. 그래서 둘이서만 데이트라도 하면 좋을까 해서 말이지. 어때?]
'아..♥’
어떻냐니. 당연히 기쁘다.
엘레나가 새로 최민석의 노예 하렘에 합류하게 되면서, 최민석도 노예들을 챙겨주기로 했는지 신경 써주는 비율이 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끔은 민아네 집에서 자고 오거나, 엘레나와도 모텔이 아닌 집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임예진과도 단둘이 쇼핑과 드라이브를 즐겼었으니까.
아무래도 이번에는 그게 자신의 차례가 온 모양이었다.
"..저는 좋아요."
기쁨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티나지 않도록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해서, 달리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다른 애들이 최민석과 단둘이 데이트를 즐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는 내심 부러워했고, 자신에게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먼저 티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래? 그럼 지금 데리러 갈게. 점심은 먹었어?"
"점심은 아직이에요."
시간은 이제 막 오후 1시가 지났고, 최민석과 함께 늦은 아침 식사를 즐기고 난 뒤였기에 아직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그럼 일단은 밥부터 먹자. 지금 데리러 갈 테니까, 있는 곳 주소 찍어서 보내.]
"네. 바로 보낼게요."
"그래."
뚝-
대답과 함께 곧장 통화가 끊어졌고, 유서연은 곧바로 최민석에게 위치를 찍어 메시지를 보냈다.
최민석의 노예가 되고 한동안은 같이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점심이나 저녁도 같이 먹으러 다니고, 집에서도 둘이서만 함께 지냈었는데.
지금 생활도 만족스럽기는 하지만, 가끔은 둘이서만 생활하던 때가 그립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간만에 최민석을 온전하게 독점할 수 있는 상황이 찾아왔다는 게 더욱 기쁘게 느껴졌다.
*
통화를 끊고 잠시 뒤. 주소가 찍힌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곧장 유서연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아 이동했다.
그래도 아직 2월이라 날이 꽤 쌀쌀할 텐데. 유서연은 언제나처럼 검은색과 흰색의 깔끔한 오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가슴이 너무 커서 아무 옷이나 입으면 너무 살쪄 보인다고, 매번 옷을 고르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오피스 정장을 고집하고 있다.
같이 지낸 기간이 긴 만큼 이제는 익숙한 차림이었기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본인이 저게 편하다니 뭐..'
어차피 타고난 비주얼부터가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매일 같은 옷을 입어도 질리지 않고 예뻐 보인다는 이유도 한몫했다.
"날도 추운데. 어디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지."
"괜찮아요. 슬슬 날도 풀리고 있고, 이러고 다니는 것도 익숙하니까요. 아, 제가 운전할까요?"
아무리 겨울용 정장이라고는 해도 목은 다 드러나 있고, 치마가 짧아서 스타킹을 제외하면 바람이 다 통할 텐데. 유서연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눈치였다.
생각해보면, 몽마가 되기 전부터 저러고 다녔으니 몽마가 된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밥부터 먹으러 가자. 초밥 괜찮지?"
"네. 좋아요."
메뉴는 오는 동안 미리 생각해뒀고, 유서연 역시 고민도 하지 않고 확실하게 좋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연의 대답을 듣자마자 곧장 차를 몰아 이동했다.
처음에는 말없이 내 옆모습을 감상하던 유서연은,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혹시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오랜만이지?"
유서연을 처음 노예로 만들었던 날. 같이 점심을 먹었던 가게였다.
아주 엔드급의 고급 스시집은 아니었지만,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가게 중에서는 퀄리티가 굉상당히 좋은 편에 속하는 곳이었다.
일을 그만두기 전만 해도 점심시간에 둘이 자주 왔었는데. 일을 그만둔 뒤로는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곳이라 그런지 꽤나 반갑게 느껴졌다.
유서연 역시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모양인지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풀어져서는 입꼬리를 슬며시 올려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곧장 룸으로 안내받아 서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처음 먹었을 때 너무 감동해서 그런가, 요즘도 가끔 여기 맛이 생각이 나더라고."
"..저도 그래요. 맛 때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부잣집에서 자라 비싸고 맛있는 요리를 마음껏 먹으며 자란 유서연에게 이 가게의 수준은 그냥 평범한 곳보다는 조금 낫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서연이 이 가게를 가끔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처음으로 내 노예가 된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리라.
몽마가 된 넷 중에서는 노예라는 입장에 가장 진심이었기에 그리워할 수 있는 일이었다.
"둘이서만 지낼 때도 좋았지."
"정말요?"
잠시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리자, 유서연이 반색하며 물었다.
"뭐 하러 거짓말을 하겠어. 지금이랑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둘이서만 지낼 때도 정말 좋았어."
유서연을 노예로 만들면서 일이 편해지고, 식사와 주거의 수준이 확 올라갔다.
고시원에서 지낼 때는 주말이 아니면 민아와는 섹스가 힘들었고, 아침이나 자기 전에나 펠라를 받는 게 고작이었지만, 유서연과 동거를 시작한 뒤로는 원할 때마다 욕구를 풀 수 있었다.
지금처럼 여러 장소에서, 색다른 자극을 즐길 수는 없었지만 처음 겪어보는 호화로운 생활과 유서연의 존재 덕분에 아주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시기였던 것은 확실했다.
"후후.."
유서연은 망설이지도 않고 돌려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게 웃었다.
"아무튼, 지금도 내가 이렇게 편하고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서연이가 부지런하게 힘 써준 덕분이니까."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대답은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겸손했지만,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와 부드러운 미소가 유서연의 기분을 대신 드러내고 있었다.
드르륵-
잠시 옛날 이야기로 분위기를 좋게 풀어나가는 사이 문이 열리고, 종업원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룸으로 들어왔다.
본격적인 식사가 아닌 가벼운 전채 요리. 전복이 들어간 계란찜이나, 향부터 입맛을 돋우는 튀김류, 바지락이 들어간 장국 등등.
나름대로 입맛이 고급이 됐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굉장히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테이블 위로 올라온다.
슬슬 배가 고플 시간대라 그런지 벌써 입맛이 돌고 위장에서 신호가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일단은 요리 쪽에는 신경을 끄고, 계획했던 대로 빠르게 한쪽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은 쪽 발을 들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며 다리를 들고 발을 뻗어, 유서연의 허벅지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으, 읏!?"
가능하면 발끝이 보지에 닿을 때까지 들키지 않기 위해 발끝을 뾰족하게 세웠지만, 중간에 뒷꿈치가 허벅지에 닿은 탓에 유서연이 깜짝 놀라 흠칫하고 몸을 크게 떨며 숨을 삼켰다.
뺨이 확 붉어진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기 쉽게 당황한 티를 내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라, 벌써부터 흐뭇하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데이트도 데이트지만, 유서연을 위한 상으로는 이런 플레이가 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