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8화 > 카페 알바 면접 (6)
"면접 수고하셨고요, 결과는 며칠 안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네에.“
옷까지 제대로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지만, 눈빛과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빠져 풀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넋을 놓고 있는 정도는 아니고,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저 사람 지금 멍때리고 있구나' 하고 곧바로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 정도면 알아서 집에 돌아가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 수준이었으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일단 피임약 받으시고요.“
"감사.. 합니다.“
수납장에서 꺼낸 '피임약' 역시 평소에 다른 여자들을 속일 때 쓰는 비타민제였지만 이소연은 그게 중요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면접에 관해서는 확실히 비밀을 지켜주셔야 하는 거, 알고 계시죠?“
[면접 중에 진행하는 '신체검사'는 불법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상 주변에 알려질 경우 이미지가 굉장히 나빠지기 때문에 가게 입장에서는 면접 내용이 알려지지 않기를 원한다.]
우선은 제대로 최면을 걸기 전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때문에 '신체검사'를 진행한 면접에 관해서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 만약 누군가에게 면접 내용에 대해 알리게 될 경우 소송까지 당할 수도 있다.]
확실하게 최면에 대해 남들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최면을 건다.
[또한, 당사자 역시 면접 중에 '신체검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주변에서 굉장히 문란하고 불결하다는 취급을 받기 때문에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절대 본인이 '신체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거기서 한 번 더. 상대 입장만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도 비밀을 엄수해야 할 이유를 붙여 한층 더 조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면접에서 떨어졌을 경우, 면접 내용에 관한 내용을 떠올리지 않으며 점점 기억에서 잊어버리게 된다.]
정기는 정기대로 들어가고, 귀찮기도 더럽게 귀찮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최면은 걸어 놔야 안심할 수 있다.
어차피 여자가 누구에게 최면의 내용에 대해 떠든다고 해도 본인만 미친 사람 취급받고 말겠지만, 혹시 모를 귀찮은 일은 최대한 미리 방지해두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마지막 최면은 이소연을 채용한다면 굳이 걸 필요 없는 내용이었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걸어둬야 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밀려드는 최면에 잠시 또 눈빛이 흐릿해졌던 이소연은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됐습니다. 면접 수고하셨고, 이제 가보셔도 괜찮습니다.“
"네. 그럼..“
재차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이소연은 느릿한 움직임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섹스방을 나와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나 역시, 이소연의 뒤를 따라 휴게실 밖, 카운터로 나왔다.
"아, 소연 씨.“
그렇게 이소연과 함께 카운터로 나오자, 카운터 의자에 앉아있던 강하윤이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이소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면접 결과는 이번 주 안으로 전달해드릴 거예요. 바로 내일일 수도 있고요. 괜찮으시죠?“
"아, 네. 괜찮습니다.“
"네. 면접 수고하셨어요.“
"네, 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이소연이 카운터를 지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소연이 가게를 나가자마자, 강하윤이 내 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신체검사는 어떻게 됐나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하윤 씨만큼은 아니어도, 접객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쪽은 잘 모르니까, 결정은 하윤 씨한테 맡기겠습니다. 그보다, 다음 면접 보실 분은..“
"저쪽이에요.“
이소연에 대한 평가를 적당히 넘겨 버리고, 다음 면접자를 찾아 카페 안쪽을 천천히 둘러보며 묻자, 강하윤이 카페 구석 자리 쪽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강하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와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마 나와 이소연이 카운터 안쪽에서 나올 때부터 이쪽을 보고 있던 것 같았다.
"흐음..“
이력서 사진으로 봤던 것과 똑같은 눈에 확 띄는 백금발과 앳된 얼굴.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웃음기를 머금은 밝고 장난스러운 인상이다.
타입이 전혀 다르다 보니 누가 더 낫다고 하긴 애매했지만, 이소연이 아슬아슬하게 A급을 줄 만한 미인이었다면 이쪽은 무난하게 A급을 줄 수 있을 수준이었다.
"지금 바로 할 건가요?“
"네. 마침 손님도 없기도 하고, 어차피 제 차례는 금방 끝나니까요.“
"..그러고 보니, 질문이 금방 끝나긴 했었네요.“
"그게.. 이맘때 오는 대학생들은 거의 비슷하거든요.“
내가 이소연의 면접 때를 떠올리며 묻자, 강하윤은 어째서인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비슷하다고요?“
"..네.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상황 자체가 비슷해요. 대학생들은 정말 돈이 급하면 방학 전부터, 아니면 시작하자마자 알바를 구하는 편이거든요.“
"그럼, 지금 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개강하고 나면 얼마 못 가서 그만두는 편이죠. 저희야 당장 일손이 급하니까 알면서도 뽑아주는 거고요. 애부터 한 달만 일하고 나갈 생각으로 오는 애들도 많고요.“
"음..“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미 카페 운영 경력이 있는 강하윤이 하는 말이었으니, 적당히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면접 때는 나름대로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더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직접 오셔서 신체검사까지 해주셨는데. 뽑은 사람이 얼마나 일할지는 저도 확신을 못 하는 일이라..“
모처럼 직접 와서 수고를 들여줬는데, 그 직원이 금방 나갈 걸 알면서도 뽑는다는 게 미안하다는 건가.
강하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한두 달 뒤면 다시 또 새로운 여자가 알아서 찾아온다는 말이었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은 기분이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별로 힘든 것도 아닌데요.“
나름대로 최면을 걸어놓기는 했지만, 강하윤이 신체검사라는 일을 정확히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반응으로 봐서는 내가 면접 자체를, 신체검사라는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피곤하고 수고스러운 노동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청소 펠라를 피로를 풀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된 건가?'
피로를 풀어줘야 한다는 건, 피로가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연결됐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튼, 하윤 씨만 괜찮으시면 지금 바로 시작하죠.“
"괜찮으시겠어요..?“
아직 제대로 내 정력을 경험해보지 못 한 탓인지, 강하윤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은근하게 걱정하는 기색이 전해져왔다.
하기야, 보통 남자라면 1시간 넘게 섹스하고 나서 곧장 2차전을 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체력을 쥐어 짜내는 일일 테니까.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하윤 씨가 가신 뒤에 면접을 더 봤었거든요. 저렇게 보고 있는데, 마냥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알겠어요.“
강하윤은 여전히 내 체력이 걱정스러운 눈치였지만, 내가 재차 재촉하니 더는 말리지 않고 이쪽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여자, 한예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한예지 씨?“
"네!“
거리가 꽤 떨어져 있었음에도 목소리가 워낙 밝은 탓인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굉장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자리에 앉은 채로 밝게 대답한 한예지는 곧바로 테이블에 있는 머그컵을 들어 내용물을 깔끔하게 비우고는, 그대로 일어나 컵을 올려놓은 쟁반을 가지고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로 다가왔다.
"잘 마셨어요, 사장님. 그런데, 이쪽 분은..“
가져온 쟁반을 반납하는 자리에 내려놓고, 먼저 강하윤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내 쪽으로 시선을 홱 돌리며 조심스럽게 내 신상을 묻는다.
말이 조심스럽다 뿐이지, 내가 휴게실에서 나왔을 때부터 눈이 반짝거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렬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으니 내게 관심이 쏠려있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가게 사장님이세요.“
"네? 그럼..“
"이쪽 분.. 그러니까, 민석 씨가 가게 사장이시고, 제가 점장을 맡아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흐응..“
알바하는 입장에서는 누가 사장이고 점장인지가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닐 텐데. 한예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와 강하윤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는,
"두 분, 사귀는 사이세요?“
나도 강하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놓고 물어보기에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었다.
"네..?“
"하윤 씨가 예쁘시기는 해도, 사귀는 사이는 아닙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강하윤은 순간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쪽은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답한 그대로, 강하윤이 예쁘기는 해도 남들 앞에서 사귄다고 말할 만한 관계는 전혀 아니었으니까.
육체관계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예정이기는 했지만 강하윤과 나의 관계는 지금처럼 점장과 사장.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흐응.. 그래요..?“
한예지는 이번에도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여전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알겠다는 듯이 애매하게 반응했다.
"그냥, 두 분이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아, 혹시 이런 거 물어봤다고 안 뽑아주시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면접부터 봐야 하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해요.“
강하윤이 딱히 아싸 같은 성격이라는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밝고 인싸스러운 한예지의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듯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강하윤의 뒤를 따라 휴게실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상석에, 강하윤과 한예지가 양쪽으로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일단 면접 자체는 강하윤이 진행하게 될 테니 강하윤과 시선을 맞춰야 할 텐데. 한예지는 강하윤보다는 내 쪽에 더 관심이 많은 듯 계속해서 힐끗거리며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눈빛에서부터 호감이 전해져 오는 게,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기에는 뭔가 노골적인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지은이나 유혜연처럼 내게 첫눈에 반했다고 하기에는 또 아닌 것 같고, 수줍어하는 느낌 같은 것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미묘했다.
'..무슨 생각인지야 뭐, 나중에 물어보면 되니까.'
어차피 최면만 걸어놓으면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건 똑같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예지의 노골적인 시선을 받아넘기고, 강하윤이 입을 열기를 잠자코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