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660화 (660/775)

< 660화 > 모델 둘과 함께 3P (2)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애초에 말로 들은 것도 아니고, 확인하고 싶으면 핸드폰 화면을 다시 확인하면 그만이었지만, 너무 황당한 내용인 탓에 반사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혹시, 다음에 만날 때. 설아 씨도 같이해서 셋이 만나도 괜찮을까요?]

"..하."

너무 어이가 없다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나와 버린다.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라 황당해서 나오는 헛웃음이었지만, 어쨌든 웃음은 웃음이었다.

[>강요하거나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니까,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습니다.]

"싫으면 거절해도 괜찮다고?"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생각이라는 게 없지 않은 이상은 싫다고 생각할 게 뻔한 일을 이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아니, 애초부터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다'라는 식으로 밑밥을 깔고 들어갔으니 기분 나쁠 것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

"조금은 무슨.."

상대가 최민석만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스폰이라는 기회를 주고 있는 상대만 아니었다면 당장 전화를 걸어 쌍욕을 퍼붓고 연을 끊어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역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최민석의 스폰으로 얻는 이득이 너무 커서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울컥 올라온 짜증에 반사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렸을 뿐이었다.

최민석에게는 제대로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목표도 있었고 말이다.

"짜증 나..!"

퍽!

이렇게 열 받는 제안을 받고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자존심이 상해 베개를 퍽 걷어차 침대 밖으로 날려버렸다.

최민석에게는 바쁜 척 굴기는 했지만, 오늘은 일없이 쉬는 날이었기에 자신이 보낸 최민석이 당장 만나자고 했어도 바로 만나줄 수 있었다.

그저 저번과 마찬가지로, 바로 만나겠다고 대답해버리면 너무 싸 보일까 봐 이틀을 미뤘을 뿐이다. 내일은 정말로 촬영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지금 최민석이 건넨 제안은 그런 시도가 무색해지게 자신을 값싼 여자로 취급하는 제안이었다.

비록 강요가 아니라, 싫으면 거절해도 괜찮다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을 제대로 존중해주고 있었다면 이런 제안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면..'

설마, 자신 하나로는 부족했던 걸까?

그냥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지만, 새삼 다시 생각해보니 그나마 이쪽이 더 그럴듯했다.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최민석의 경우에는 정력이 너무 절륜한 탓에 애인을 만들지 않고 스폰이라는 형태로 여자를 둘이나 만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정말 좋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결국 그의 욕구를 끝까지 받아내지 못하고 뻗어버렸던 저번 만남을 생각하면, 역시 이쪽이 더 그럴듯하다.

욕구가 강하기는 해도 나름대로 매너는 잘 지키고, 배려심도 있는 성격이었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첫 만남 때를 생각하면, 매너는 지키면서도 이 관계가 스폰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해두고 있는 것 같았으니, 지금 제안도 그런 생각에서 건네본 게 아닐까 싶었다.

어쨌든 스폰을 받는 입장에서는 해주는 쪽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일거리를 받고 몸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제안이 왔으니 열 받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최민석도 기분 나쁠 거라는 걸 알고 요구한 거였을 테니, 자신의 반응은 결코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니, 그것보다.."

그렇게 좋았다고 했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몸 하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3P 따위를 제안했다는 게 가장 자존심 상하는 부분이다.

이쪽은 나름대로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테크닉까지 공부하고, 기승위까지 해주면서 실신해버릴 때까지 열심히 노력했는데.

결국은 그걸로도 모자랐다는 것 아닌가.

내심 조금 더 경험이 쌓여서 섹스에 익숙해지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 삼고 있었는데 말이다.

열 받는다. 자존심 상한다.

하지만 계속 최민석과의 관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라면 참아야 할 일이었다.

"최설아 걔는, 이걸 또 좋다고 했단 말이야?"

자존심도 없나?

자신이 좋다고 해도 최설아가 싫다고 했다면 셋이 만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최설아 쪽은 이미 동의했다고 봐도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최설아에게 연락해 무슨 생각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최설아와는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전화번호조차 없었다.

아니, 결국은 핑계다. 연락하려고 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잠시 말없이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던 이은설은 검색창에 '스폰 동시에', '여럿이서 만남' 따위의 내용으로 검색을 해봤지만.

스폰하는 여자 둘을 동시에 끼고 데이트를 하거나 잠자리를 가졌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델 업계라는 곳 자체가 다른 곳에 비해 스폰이라는 화제 자체가 가벼운 업계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 한 번 들어보지 못했으니, 최민석의 제안은 스폰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이상한 제안임이 분명했다.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최민석의 질문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것도 벌써 10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자기가 먼저 기분 나쁜 제안을 건넸으니 이 정도는 알아서 이해하겠지.

최설아의 연락처는 없지만, 임예진의 연락처는 가지고 있다.

일전에 처음 스폰 제의를 받았을 때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준 적이 있었으니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최대한 빨리 답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지 신호음이 몇 번 울리다가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요?]

"어, 예진아. 난데."

[네. 언니. 무슨 일이세요?]

밝으면서도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듣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유일하게 외모에서 딸린다고 생각하는 상대였기에 가능하면 마주치기는커녕 연락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설아 씨 번호. 가지고 있지?"

[..있기는 한데, 왜요?]

"그냥,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좀 보내줄래?"

[음.. 무슨 일인데요? 저야 당연히 알려주고 싶은데, 그래도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연락처를 막 주기는 좀 그래서요.]

달라면 그냥 좀 줄 것이지.

그런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올랐지만, 하는 말만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고. 오히려 저쪽이 상식적인 입장이었기에 뭐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좀 그런데, 민석 씨 일로 물어볼 게 좀 있어서 그래.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음.. 알았어요. 지금 보낼게요. 끊을게요?]

"응. 그래. 끊어."

뚝,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기는 걸 확인하자마자 후우, 하고 한숨이 짧게 흘러나왔다.

아무리 자신이 최민석에게 스폰받는 걸 아는 상대라고는 하지만, 최민석에게 3P를 요구받았다는 상황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걸 바로 거절하지 않고 고민하느라 최설아가 무슨 생각인지 물어보려고 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고.

전화가 끊기고 잠시 뒤, 임예진이 최설아의 연락처를 보낸 걸 확인하고는 번호를 등록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신호음이 울리기를 잠시. 금방 통화가 연결되며 핸드폰 너머로 최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설아 씨. 전데요. 이은설."

[..아, 네. 은설 씨.]

자신과 마찬가지로, 최설아 역시 자신의 연락이 마냥 달갑지는 않은지 목소리가 살짝 어색하게 들려왔다.

임예진이야 자기가 먼저 다가와서 붙임성 좋게 굴었던 덕분에 언니 동생 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지긴 했지만, 최설아와는 그냥 얼굴이랑 이름만 아는 정도의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최설아 역시 자기가 좋아서 3P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닐 테니. 조만간 한 침대에서 같은 남자에게 안길 상대와 통화하는 건 불편할 게 당연했다.

"다른 게 아니라, 설아 씨도 얘기 들었죠? 그.. 셋이서 만나자는 거요."

[..들었죠.]

"그거, 설아 씨도 좋다고 동의한 일이에요?"

아주 짧게, 2초가 될락 말락 한 짧은 침묵이 끊기며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괜찮다고 했어요. 은설 씨만 좋다고 하면 저는 상관없다고.]

그래도 혹시나,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결국 최설아 쪽은 확실하게 동의했다는 게 확인된 순간이었다.

"......"

기세 좋게 전화까지 걸기는 했지만, 막상 뭘, 어떻게 물어볼지는 생각해두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번에는 이은설 쪽에서 말을 멈추고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여보세요?]

"아, 네. 아무튼,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요. 저는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을 못 해서.."

대뜸 받아들이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확실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것 역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새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쩌란 건지 모를 정도로 피곤한 성격이었지만, 자존심도 없이 헤헤거리며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설아 씨 생각이 궁금해서요. 저는 솔직히, 조금 자존심 상했거든요. 둘이서면 몰라도 셋이서 만난다고 하니까,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요.”

[아, 네에..]

그래서? 라고 묻는 듯한 짧고 애매한 대답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설아 씨는 무슨 생각으로 받아들이신 건가 물어보고 싶어서요."

듣기에 따라서는, 그리고 자신이었다면 무조건 '넌 자존심도 없냐?'라고 들었을 질문이었지만 최설아는 의외로 불쾌한 기색 없이 담담하게 대답을 돌려줬다.

[그냥, 민석 씨가 요구하는 건 어지간하면 해드리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은설 씨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제가 여기까지 온 게 민석 씨 덕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스폰이라고 해 봤자 달에 돈 몇백 받고 끝나는 게 보통인데. 민석 씨한테는 더 크게 도움받고 있으니까요.]

"......"

기본적으로는 최민석 쪽이 갑의 입장이라고는 생각해도, 내심 이건 서로 원하는 걸 주고받고 있는 거래 관계라고, 꿇릴 것 없다고 생각하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었다.

전속 계약을 하면서 아무 일이나 막 받지 못하게 된 시점에서 무슨 도움을 받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설아가 무슨 생각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알겠어요. 대답해줘서 고마워요. 끊을게요."

네, 하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잠시 말없이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툭 던져 내려놨다.

최설아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았다.

알지만, 아직 최설아만큼 위로 올라가지 못한 자신으로서는 저렇게까지 고마운 마음을 느낄 수가 없다.

아니, 그렇게 되더라도 내가 잘나서 그렇게 된 거고, 덕분에 기회만 수월하게 잡았을 뿐인데 그렇게까지 고마워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런 식으로 생각할 것 같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다른 급 떨어지는 것들이 똑같은 기회를 받았다고 해서 최설아처럼 몇 달 만에 전속 계약까지 따낼 정도로 위로 올라가는 건 무리일 테니까.

최설아도 결국은 스스로가 잘나서 스폰이라는 기회를 잡고, 스폰을 통해 잡은 기회를 성공이라는 결과물로 연결했을 뿐이었다.

스스로가 뻔뻔하거나 싸가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은설이 생각하기에는 스스로의 논리에 틀린 점은 없었고, 감사할 수는 있지만 무조건, 전부 다 최민석의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앗다.

결국, 최설아의 생각을 듣기는 했지만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답답한 기분에 표정을 찡그린 이은설은 다시 한번 최민석이 보낸 메시지를 화면에 띄워 말없이 노려봤다.

그렇게. 최민석이 이은설에게 답장을 받은 건, 처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3시간이 더 지나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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