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5화 > 다 쟤가 쓰레기라 그런 거잖아요 (6)
영화는 적당히 최근에 개봉한 로맨스 영화로 결정했다.
사실 나는 로맨스가 아니라 그나마 자극이 있는 공포 영화를 희망했고, 엘레나도 의외로 공포 영화를 좋아했지만 김민아가 질색하며 거부한 탓에 나와 엘레나가 양보한 결과였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다고 그렇게 무서워하냐."
"씨.. 그거랑은 다른 문제거든? 그리고, 몽마도 있는데 귀신이라고 없으리란 법 있냐?"
"......"
듣고 보니 그렇긴 하다.
애초에 나야 사람이었다 몽마가 됐다지만 진짜배기 몽마인 향설은 남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여기저기 원하는 대로 휙휙 나타나고 사라졌다 하며 돌아다닐 수 있었으니 사실상 귀신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몽마들은 대부분 게으르고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맛보고 노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영화에 나오는 귀신들처럼 사람들을 겁주고 괴롭힐 이유가 없었지만.
아무튼, 다들 팝콘은 필요 없다길래 음료수만 사서 영화관에 들어가 눈에 띄지 않는 구석 자리에 일렬로 앉았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딱 점심시간이 겹쳐서 그런지 상영관 안에는 의외로 빈자리가 많았던 덕분이었다.
"영화관은 처음이 아닌가 보네?"
"아무리 그래도 영화도 못 볼 정도는 아니었거든?"
수족관에 갔을 때와는 달리 차분한 표정에 장난스럽게 묻자 김민아도 투덜거리듯 대답했다.
어릴 때야 나나 김민아나 가족 셋이 좁은 화장실 하나 겨우 딸린 원룸에서 지냈으니 비슷한 수준으로 가난했었지만 나중에는 차이가 벌어졌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내 부모와는 달리 민아의 부모님은 열심히 일해서 민아가 고등학생이 될 때쯤에는 거실에 화장실, 그리고 방까지 두 개 딸린 빌라로 이사할 정도로 돈을 모았었으니까.
민아도 그 무렵부터는 조금씩 용돈도 받으면서 생활이 나아졌다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누나는?"
내가 가운데 자리에 앉고, 양옆으로 김민아와 엘레나가 앉아있던 탓에 잠자코 대화를 듣고만 있던 엘레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응? 나?"
"누나도 영화 보는 건 좋아하잖아. 자주 보러 오고 그래?"
엘레나가 좋아하는 장르가 공포영화나 좀비물 같은 무섭고 긴장감 넘치는 장르라는 것도 영화 얘기를 하면서 들었었다.
엘레나는 내 질문에 잠시 말없이 기억을 떠올렸다가 대답했다.
"음.. 나도 대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자주 보러 다니기는 했는데. 지금은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로 보는 게 대부분이라, 나도 오랜만에 온 거야."
"흐음.. 그래?"
하기야, 돈만 내면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데 굳이 영화관까지 영화를 보러 올 필요는 없다.
정말로 영화를 좋아해서 큰 화면으로 보고 싶거나, 친구나 연인과 같이 보고 싶은 이들이나 영화관까지 와서 영화를 보는 게 보통이었다.
나 역시 데이트 연습을 한답시고 영화관에 몇 번 와보긴 했지만 이왕 본다면 집에서 편하게 보는 쪽을 선호했다.
"그럼 다음엔 둘이서만 보러 오자. 누나가 하고 싶었던 대로 둘이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괜찮지?"
"으읏.."
엘레나의 희망 사항은 알았으니 지금처럼 여럿이서 오는 게 아닌 단둘이서만 하는 데이트도 제대로 해줄 생각이었다.
엘레나는 팔걸이에 올려뒀던 손바닥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가볍게 깍지를 끼며 속삭이듯 말하자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뺨을 붉혔다.
"응? 괜찮지?"
"응.. 좋아.."
"얼씨구."
엘레나가 수줍은 듯하면서도 기쁨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자 옆에서 김민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냥 아예 지금 둘이서만 데이트하게 다른 자리 가 있을까?"
"아, 아니.. 그게.."
"에이, 뭘 또 삐지고 그래. 당연히 우리 민아랑도 둘이서만 데이트해야지. 자, 손잡을래?"
김민아가 대놓고 질투심을 드러내는 모습에 엘레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나에게는 이미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적당히 달래주며 반대쪽 팔걸이에 손을 올리며 빨리 잡으라는 것처럼 손바닥을 펼쳤다.
"뭐래. 됐거든?"
"진짜 안 잡을 거야?"
"....흥."
그래도 자기만 손을 안 잡고 있기는 싫은지 아직 기분이 풀린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짧게 콧소리를 내고는 말없이 손바닥을 맞대고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꼈다.
"너도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해. 나중에 둘이서만 놀러가자."
"....맘대로 하든가."
여전히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귀가 살짝 붉게 물들어 있고 새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어 보니 조금은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엘레나가 익숙해지라고 셋이서 놀러 온 건데. 어째 민아만 달래주는 기분이네.'
그래도 이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민아가 어떤 성격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 사람 대 사람으로 거리를 좁히는 데는 그럭저럭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뒤에는 이 영화를 광고에서 봤다느니, 배우가 누구고 무슨 무슨 작품에 나왔느니 하는 잡다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상영이 시작하기를 기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관의 조명이 꺼지며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관심도 없는 수중 쇼보다는 낫다 싶긴 했지만 아무래도 최면으로 여자들을 수월하게 꼬시고 따먹어온 내 입장에서는 로맨스 영화 특유의 갈등 부분에 이입하기가 힘든 탓이었다.
'나 같으면 그냥 최면 걸어서 뭐가 문제냐고 물어봤을 텐데. 최면이 없어도 주변이라도 좀 캐서 알아보든가.'
'앞에서 저 지랄 하는 걸 그냥 참고만 있네. 나였으면 그냥 최면으로 확..'
'여기서 키스만 하고 끝내는 게 맞나? 이대로 그냥 자빠뜨려서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어 놔야지. 콘돔 쓰면 임신도 안 할 텐데 뭘 저렇게 빼는 거야?'
일단, 스토리에서 생기는 갈등의 대부분을 최면으로 해결할 수 있는 탓에 이입하기도 힘들고, 남자 주인공의 중요한 곳에서만 답답하게 구는 태도도 답답해서 속만 터지는 탓이었다.
'..쯧. 됐다.'
영화가 재미라도 있었으면 끝까지 잠자코 봤을 텐데. 보고 있을수록 답답하고 속만 터져서 안 되겠다 싶어 옆에 앉은 김민아 쪽으로 살짝 시선을 돌렸다.
김민아는 나름대로 영화가 재밌는 모양인지 눈도 거의 깜빡이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양쪽 손 모두 깍지를 끼고 있는 탓에 손으로 다른 곳을 만지고 놀 수도 없고, 그냥 대놓고 나가자는 생각에 민아와 깍지 낀 손을 통해 조심스럽게 정기를 흘려 넣었다.
"읏..!?"
몽마끼리는 다른 사람에게 최면을 거는 것도, 정기가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것도 다 느낄 수 있었기에 곧바로 흠칫하고 놀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야..!"
그래도 영화관이라는 걸 의식해서인지 대뜸 소리부터 지르지 않고 내 건너편에 있는 엘레나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항의해온다.
나 역시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 엘레나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고개만 살짝 돌려 도끼눈을 뜬 민아와 살짝 눈만 맞춘 채로 작게 속삭이듯 대답했다.
"왜?"
"내가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했잖아..!"
"수족관에서 나올 때까지 얘기 아니었어? 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거든..!? 읏.. 그만 안 해..!?"
정기가 흘러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다고 해서 효과를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내 정기에 길들여진 게 내 손으로 만들어진 몽마의 몸이었기에 보통 사람보다도 내 정기의 효과를 강하게 받는다.
내가 우리 애들과 섹스할 때 굳이 정기를 써서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지 않는 이유기도 했다.
어차피 내 체취만 맡아도, 가볍게 살을 맞대기만 해도 알아서 발정이 나 버리니까.
민아에게 흘려보내는 정기는 아주 적은 양이라 보통 여자라면 몇분 정도는 지나야 몸이 조금 뜨거워졌다고 느낄 정도였지만, 실시간으로 정기가 흘러들어오는 걸 느끼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초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익..! 진짜..! 하지 말라고오..!"
민아는 급한 대로 손이라도 떼기 위헤 힘을 주고 낑낑거렸지만 내가 깍지를 꽉 끼고 있는 탓애 팔걸이에 얹어진 손은 단단하게 고정해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으니까, 이대로 있어. 딱 이 정도로만 살살 넣고 있을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누가 그렇게 귀여우래? 자꾸 괴롭히고 싶게."
"으, 씨.."
민아는 귀엽다는 말도, 괴롭히고 싶다는 말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 뺨을 한층 붉히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기본은 짜증과 초조함이었지만 '이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같은 답답하고 무른 감정이 뒤섞인 탓에 한층 더 꼴리게 느껴졌다.
'둘이서만 왔으면 펠라라도 시켰을 텐데. 그건 좀 너무한가?'
유서연이나 임예진이라면 몰라도, 나름대로 평범한 연애를 원하는 민아로서는 단둘이서만 즐기는 데이트가 그런 식으로 망가지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
'다음에 둘이서만 데이트할 때는 장난 치지 말아야겠다.'
나로서는 섹스가 최고이긴 하지만, 가끔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제대로 어울려줄 필요도 있었으니까.
본심을 말하자면, 엘레나와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도 안 해봤냐는 타박이 조금 찔렸던 탓이었다.
잠깐 가지고 노는 여자도 아니고, 완전히 내 것이 된 여자들만큼은 제대로 사랑해주고 싶다고 늘상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사랑하는 방식이 보통 사람과 다를 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3인 데이트라는 낭만도 뭣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으니 적당히 괴롭혀줄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응?"
"으읏.. 하아.. 몰.. 라.."
분한 듯 숨을 고르며 작게 내뱉는 말은 사실상 항복 선언, 허락이나 다름없다.
그 솔직하지 못한 귀여운 반응에 눈을 마주친 채로 가볍게 웃어주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스토리가 한창 절정으로 나아가고 있는 스크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1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깍지 낀 손에 땀이 흥건하게 차고, 맞댄 손바닥을 통해 희미하게 움찔거리는 반응이 전해져오고 있었다.
"하아.. 읏.. 하앗.. 흐읏.. 하아앗.."
적은 양이기는 해도 꾸준히 흘려 넣은 만큼 이제는 점점 몸이 뜨거워지는지 이마에 땀이 조금씩 맺히고 숨이 거칠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장난삼아 땀이 흥건해진 손에 꽉, 힘을 줘 붙잡아보면.
"으읏..!"
그것만으로도 쾌감이 느껴지는지 움찔하며 다급하게 신음을 삼킨다.
꽉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가 다시 꽉, 움켜쥐고, 매끈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을 점토처럼 주물러대자 김민아는 아예 몸 전체를 작게 움찔거리며 입술을 앙다물어버린다.
그렇게 영화가 완전히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김민아는 아예 반대쪽 손까지 써가며 입을 틀어막고 흥분과 쾌감을 견뎌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