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4화 > 한 명만 스폰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5)
내가 도착하기 전에, 최설아가 이미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놓은 덕분에 물이 차는 걸 기다릴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있었다.
따듯한 욕조에 몸을 푹 담그고 다리를 쭉 뻗으며 앉으니 최설아는 내 옆이 아닌 다리 사이에 앉아 등을 기대며 앉았다.
욕조도 넓은데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긴 했지만, 자기가 이렇게 붙어 있고 싶다고 하는 걸 밀어낼 필요도 없겠다 싶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뒀다.
"..굳이 모델이 아니어도 대학생이나 직장인 중에서도 예쁜 사람들은 많으니까요. 모델이라고 해도 굳이 더 주고 그럴 필요다고 생각한다나 봐요."
"흐음.."
가슴도 주무르지 않고 편안하게 몸을 풀고 있던 나는 최설아의 설명을 들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모델이나 연예인 지망생이 아닌 일반인 중에서도 예쁜 여자들이 많다는 건 나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당장 내가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여자만 해도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인데, 다들 그런 업계와는 관계가 없는 일반인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달에 300이면 많기는 하네.'
세금도 떼지 않고 액수가 그대로 통장에 꽂힌다는 걸 생각하면 어지간한 중소기업 직장인보다 많이 버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300은 어디까지나 용돈으로 주는 거고, 따로 오피스텔 월세를 내준다거나 같이 데이트하면서 이것저것 선물도 사주고 그런다더라고요. 선물은 뭐, 명품 옷이나 신발 같은 것들이고요."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는 언니한테 듣기로는 추가 수당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돈만 받고 몸만 내주면 성의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선물 때문에라도 애교도 부리고 이것저것 잘 보이고 싶게 하려고 하는."
"..여러모로 대단하네요."
나야 최면으로, 일감이라는 미끼를 통해 최설아를 꼬셔서 스폰 관계를 만들었다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스폰을 하나 궁금해서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제법 재밌다.
오피처럼 내 입맛대로 이 여자 저 여자 골라 먹는 재미는 부족하더라도 한 여자와 나름대로 깊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이 스폰의 매력인 것 같았다.
"그래도 돈만 생각하면 오피가 더 나을 텐데.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나 보네요?"
나도 오피를 몇 번 이용해 본 입장이었기에 금방 계산을 마칠 수가 있었다.
오피 쪽에서는 섹스 한 번에 20만원 씩은 받는 게 보통이었고, 그것도 노콘이나 펠라, 질싸, 한 번 더, 이런저런 옵션을 더하면 한 번에 30만 원씩 나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옵션 없이 최소로 견적을 잡아서 한 번에 20만 원이라고 해도, 달에 20번만 섹스해도 400. 하루당 횟수를 두 번으로만 늘려도 800이다.
업소 쪽에 조금 떼주는 게 있다고는 하더라도 의욕만 조금 있다면 달에 천만 원, 2천만 원씩도 벌 수 있는 게 오피였다.
이건 내가 사 먹었던 오피녀에게 직접 들었던 얘기였기에 확실했다.
"음.. 스폰은 그냥 개인 대 개인으로 용돈 받고 어울리는 관계라 괜찮은데, 오피 쪽은 아무래도 불법이라 꺼려지는 모양이더라고요."
그것도 그렇기는 하다.
나도 미션 때문에 오피에 갈 때 내심 '불법인데 괜찮으려나' 같은 생각을 하긴 했었으니까.
그런 쪽과 전혀 연관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불안한 게 당연했다.
"그리고.. 오피는 직접 상대를 못 고르다 보니까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성병 같은 것도 걱정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적게 벌더라도 나름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랑만 하겠다는 거죠."
"흐음.. 설아 씨, 의외로 잘 아시네요?"
"그, 그냥 아는 사람들한테 들은 거예요! 학원에서 친해진 애들도 있고, 촬영 끝나고 같이 일한 모델분이랑 술 마시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가 자기도 스폰 경험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고 생각한 건지, 고개를 홱 돌리며 살짝 빨개진 얼굴로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그 모습이 새삼 더 귀엽고 놀려주고 싶은 기분이 들어 조금 더 놀려줄까 생각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어 고개를 뒤로 돌린 최설아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을 끊었다.
"알고 있어요. 애초에 설아 씨 처녀를 제가 받았는데. 뭐 하러 의심하겠어요."
"아, 음.. 그거야 뭐.. 그렇긴.. 하죠.."
워낙 당황해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었는지, 뒤늦게 부끄럽다는 듯 다시 고개를 홱 돌리고는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수긍한다.
그러면서도 어째 부끄럽기는 더 부끄러워진 모양인지 귀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어 콱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최설아가 제대로 쉴 틈도 없이 이대로 2회전에 돌입해버릴 것 같았기에 살짝 욕구를 억누르며 내려놓고 있던 손을 들어 최설아의 가슴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아응.. 정말.. 지치지도 않아요..?"
"그냥 만지기만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아래.."
"아래? 아...."
그냥 가슴만 살짝 만졌을 뿐인데 왜 이러나 했더니, 그 짧은 사이에 최설아의 엉덩이골 사이로 우뚝 솟아오른 기둥이 불끈대며 엉덩이를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기해버렸다고 하기에는 말이 이상하고, 흥분과 함께 자지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뭐가 문제인지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게 맞으리라.
"이거야 뭐.. 설아 씨가 귀여우니까 이렇게 된 거죠."
"못 말려.."
그래도 최설아가 귀여워서 섰다는 건 사실이고, 최설아 역시 지금 상황에서 자지가 설 이유는 그것밖에 떠올릴 수 없었을 테니 의심하지 않고 싫지만은 않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아, 다들 스폰 제의 한두 번씩은 받아본다고 했었으니까, 설아 씨도 받아본 적은 있겠네요?"
"네..?"
"어차피 안 받아들였다는 건 아니까, 그냥 알려만 줄래요? 받아본 적 있어요?"
"그게.. 흐읏.. 몇 번은.."
갑작 무슨 소리냐는 듯 당황하며 되묻는 최설아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하며 묻자 대답하기 싫은 듯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럽게 대답해준다.
"누구한테서요?"
"그냥.. 개인 쇼핑몰 같은 곳에서 촬영 끝나고 나면 가끔.. 스폰해줄 테니까.. 만나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냥 대놓고 스폰해줄테니까 만나자고 하는 거예요?"
"네.."
"겁도 없네. 신고 같은 건 안 당해요?"
"그냥 촬영 끝나고 물어보는 거라 증거 같은 것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으응.. 그런 제안 받았다고 경찰서에 가면 창피하잖아요.. 소문이라도 나면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도 있고.."
"흐음.."
사실 성희롱이니 뭐니 별것도 아닌 일로, 혹은 하지도 않은 일로 신고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뭐가 문제인가 싶었지만 사실 저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일지도 몰랐다.
'스폰받았으면 편했을 텐데 왜 받지 않았느냐' 그런 질문이 잠시 떠올랐지만 의미 없는 질문이겠다 싶어 의문을 접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고단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몸을 팔지 않던 생활을 최면으로 끝내게 만든 게 나였으니, 상대를 가지고 노는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살짝 민감할 수도 있는 질문에 이어 대화가 끊기니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진 기분에 할 말을 떠올리다가, 그냥 귀찮다 싶어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살살 비벼댔다.
"하읏.. 흐응.. 하으.."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러주던 손길이 갑자기 바뀌자 최설아의 몸이 작게 흠칫하며 얕게 신음이 흘러나온다.
"아무튼, 모델들은 대부분 오피 나가는 것보다는 스폰받으면서 경우가 많다는 거네요."
"아무래도.. 흐응.. 해준다고 접근하기 쉬우니까.. 아..?"
몸에서 힘을 빼고 얌전히 쾌감을 즐기며 대답하던 최설아는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순간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흠칫하고 몸을 경직시켰다.
"왜요?"
"..네?"
"뭐 하고 싶은 말 있는 거 아니에요?"
보통이라면 눈치채기 힘들었겠지만, 몸을 밀착하고 있기도 했고, 최면을 걸면서 남의 표정이나 몸짓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습관이 생긴 탓인지 최설아에게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는 걸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음.. 그게.."
"아, 말하기 좀 그러면 안 해도 돼요."
"그런 건 아닌데.. 혹시, 이은설이라고 아는 언니가 있거든요."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걸 보니 내가 숨기기 미안한 일이거나 상당히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은설이라는 이름은 달리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요?"
"음.. 혹시, 아는 사이.. 아니, 못 들어 보셨어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왜요?"
"그게.."
이미 솔직하게 물어봐 놓고는 다시 한번 망설인다. 다시 한번 기억을 뒤져봐도 이은설이라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한 번 몸을 섞었던 여자라면 전부 이름이나 얼굴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런 사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모르시면 상관없는 얘기인데, 그 언니가 오빠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봤었거든요."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멍하니 되물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가 최설아를 통해 내 신상을 물어봤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인데, 왜.."
"아, 그쪽에서는 민석 씨에 대해 대충 알고 있을 테니까 이상한 건 아니에요."
"네? 그 사람이 저를요?"
"그러니까.. 예진이가 민석 씨한테 스폰받을 상대를 찾으려고 할 때, 저 말고도 두 명 정도 더 찾아가서 물어봤었거든요."
"....아아."
최설아의 설명을 듣고도 잠시 다시 한번 기억을 헤집어보고 나서야 떠올랐다.
임예진이 괜찮은 모델을 골라놨다면서 보여줬던 세 명 중 한 명이다. 사실 여전히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인과 관계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왜요?"
"그게.. 아마.. 자기도 민석 씨한테 스폰받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아, 확실한 건 아니에요."
"저한테요?"
"네. 어쨌든 예진이한테 민석 씨가 스폰 상대를 구한다는 건 들었었고, 제가 오빠한테 스폰 받고 있던 것도 들었었던 모양이더라고요. 근데 이번에 제가 전속 계약까지 했으니까.."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알겠네요."
최설아의 설명을 듣고 나니 대강은 사건의 전말이 보였다.
임예진이 내게 소개해준 세 명은 일단 외모는 기본으로 충족하고 있고, 오피나 스폰을 받지 않고 있으면서도 스폰에 혹할 만한 조건을 가진 여자들이었다.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임예진은 내가 상대를 고르기만 하면 바로 상대와 연결해줄 수 있는 상태였으니 내게 스폰을 받겠다는 동의까지 확실하게 받아놓은 상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셋 중에 내가 고른 건 최설아였었고, 임예진에게 내가 자신이 아닌 최설아를 골랐다는 말을 전해 들었으리라.
본인은 스폰을 받기로 결정했음에도 선택받지 못하고, 선택받은 최설아는 편하게 일거리를 받으며 돈도 벌고 커리어를 쌓다가 제법 큰 브랜드와 전속 계약까지 맺었다.
아마 그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최설아가 전속 계약까지 하게 된 걸 보니 다시 스폰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최설아 쪽을 찔러본 게 아닐까 싶었다.
"상황은 대충 알겠는데, 어떤 걸 물어보던가요?"
"그냥 나이는 몇 살이고.. 성격이나 매너나.. 정말 돈이 많은 것 같냐고도.."
최설아는 내가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지 살짝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로서는 딱히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직 얼굴도 못 본 사이에 돈부터 찾는단 말이지.'
당장 최설아만 하더라도 스폰이라는 거래 관계로 연결되어 있고, 에스테틱의 직원들도 업무인 동시에 자기에게도 지점을 하나 맡겨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내게 정성껏 봉사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돈'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하면서 접근을 시도한 여자는 처음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는 내가 최면으로 미끼를 내걸어 상대 쪽에서 다가와 미끼를 물었다면, 지금은 상대 쪽에서 미끼를 내놓으라고 다가온 것 같은 상황이었다.
"혹시.. 은설 언니랑도.."
내가 신선한 기분에 잠시 말없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최설아 쪽에서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그 목소리에서 약간의 불안감과 질투심이 느껴져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는데요, 뭘. 그쪽에서 해달라고 찾아온 것도 아니고요."
"하긴.. 그렇죠..?"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듯이 대답하자 최설아도 불안한 기색이 가신 듯 밝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차피 한 명만 스폰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머릿속으로는 이미 그 대놓고 돈을 노리고 다가오는 여자를 어떻게 가지고 놀지 이런저런 망상을 펼쳐나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