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616화 (606/775)

< 616화 > 나도 그냥 몽마 할게 (4)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거실 쪽에서 마중 나온 두 사람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온다.

두 사람이 집에 있을 때 돌아오면 항상 이런 식으로 현관까지 마중을 나와주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두 사람의 웃음이 유독 더 화사해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상황인 만큼 함께 따라온 민아는 살짝 불안한 듯 엘레나의 눈치를 힐끔 살피고, 엘레나는 미리 들은 상황이었음에도 조금 당황한 듯 표정이 미묘했다.

"사진 봤었지? 이쪽이 서연이고, 이쪽이 예진이."

"..안녕하세요. 엘레나 로빈슨이에요."

마중 나온 두 사람을 가리키며 소개해주자 엘레나는 빠르게 표정을 정돈하고는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민아와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태도였다.

"유서연이에요."

"임예진이에요."

마중 인사 때문에 조금 어색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분위기 속에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네."

이번에도 유서연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가장 먼저 몽마가 되기도 했고, 나이상 가장 큰언니인 만큼 이런 상황에서 상황을 주도하는 건 대부분 유서연의 역할이었다.

"그럼.. 실례할게요."

"편하게 들어오세요."

실례한다는 엘레나의 말에 대답한 건 임예진이었다. 본심이 어떻든 간에, 웃는 얼굴로 대해주는 걸 보니 엘레나와도 사이좋게 지낼 생각인 것 같아 안심이었다.

현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와서, 나를 제외한 여성진들이 식탁을 빙 둘러앉았다.

예진이나 민아 때도 그랬었지만, 일단은 여자들끼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해줄 생각이었다.

"난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편하게들 얘기해. 얘기 끝나면 말하고. 좀 이르긴 해도 다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러 가자."

"그럴게요."

"편히 쉬고 계세요!"

유서연이 담담하게 대답하고, 밝게 대답하는 임예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침대 위로 풀썩 드러누웠다.

"어떻게 잘 풀린 것 같기는 한데.."

막상 몽마가, 확실하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가 한 명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엘레나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가볍게 즐기는 관계가 아닌 나름대로 소중하게 대해줘야 할 상대가 늘어났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는 탓이었다.

최면 능력을 얻고, 몽마가 되면서 여자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했지만 내 울타리에 들어온 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정을 주게 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말 잘 듣는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했던 유서연 조차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나 연인처럼 여기게 됐으니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 가족은 아닌가..?'

남들은 몰라도 내게 있어서 가족이라는 건 남보다도 못한 관계였으니까.

그래도, 곁에 있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고,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이 관계는 남들이 말하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당연히 예진이도, 그리고 민아도. 단순히 내 '소유물'이라고 하기에는 정이 너무 많이 들어버렸다. 아마 엘레나도 몽마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리라.

"..앞으로는 제대로 고민하고 결정하자."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몽마로 만드는 게 좋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필수적인 사항은 아니었다.

몽마를, 가족을 늘리는 건 최대한 신중하게, 자제하기로 하고. 지금까지처럼 최대한 최면만으로 가볍게 즐기는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

최민석이 침대에 드러누워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여자들의 이야기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일단.. 엘레나 씨? 이렇게 부르면 되나요?"

"아, 네. 편하게 불러주세요."

먼저 대화의 물꼬를 튼 건 당연하게도 하렘의 맏언니 역할을 맡고 있는 유서연이었다.

엘레나는 유서연의 차분한 말투에 약간 긴장하면서도 본인 역시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김민아의 말에 따르면 둘 다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긴장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자들 사이의 은근하면서도 노골적인 심리전은 엘레나가 가장 꺼리는 형태의 관계였기에 더더욱 불안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 엘레나 씨는.. 아직 몽마가 되겠다고 결정하신 건 아니시죠?"

"음.. 사실 거의 결정하고 온 상태예요. 그냥.. 민아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고 하니까, 결정하기 전에 미리 얼굴도 봐 두고 인사도 해두고 싶었거든요."

뭔가 면접 자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였지만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얼굴을 보자마자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대해준 민아의 태도는 고마우면서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으니,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더 정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요? 난 또, 우리가 마음에 안 들면 안 하겠다고 나가고 그럴 생각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대답에 또 다른 한 명. 임예진이 가벼운 목소리로 반응했다.

민아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유서연도 임예진도 같은 여자가 봐도 설렐 정도의 미인이라 그런지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럼 이미 결정한 거나 다름없으니까 친하게 지내요. 그러니까.. 음.. 저는 스물다섯인데, 엘레나 씨는요?"

"스물여덟.. 이에요."

"그럼,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아, 언니도 편하게 말 놔도 괜찮아요."

시작부터 대뜸 나이를 물어보길래 나이를 빌미로 시비를 거는 건 아닐까 불안했었는데, 아무래도 그냥 순수하게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물어본 모양이었다.

"아, 네.. 아니, 응.. 그럼 편하게 말할게."

"나중에 더 친해지면 나도 말 놔도 괜찮죠?"

"아, 응.. 괜찮아."

민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임예진 역시 거리를 좁혀오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확 거리를 좁히고 편하게 대해주는 덕분에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아 고맙게 느껴졌다.

"그럼 저도, 스물아홉이니까 편하게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 네. 편하게 해주세요."

유서연 역시 이렇게 나이를 밝히고 호칭을 정리하는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는 듯 차분하게 나이를 밝히며 끼어들었다.

"그럼, 말은 편하게 할게. 사실, 결정을 못 내리고 왔으면 이것저것 얘기할 게 많았을 것 같은데. 이미 다 결정하고 왔다니까 우리 쪽에서는 딱히 할 말이 없네. 기본적인 건 주인님이랑 민아한테 다 듣고 왔을 테고. 우리한테 따로 궁금한 건 없어?"

"그럼..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그러니까, 예진이랑 서연 언니는.."

아직 이렇게 편하게 부르는 게 어색했지만 서로 친하게 지내기로 했으니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민이랑 다르게 크게 고민 안 하고 몽마가 되겠다고 결정했다고 들었는데. 몽마가 된 걸 후회하거나 불행하다고 느꼈던 적은 없나요?"

"없어."

"나도."

내심 기분 나빠하지는 않을까 고민하며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이었지만 정작 질문을 들은 두 사람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돌려줬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돌아온 대답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자, 유서연 쪽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할 수 있고, 어쨌든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

"음...."

독점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는 확실하게 공감을 느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면,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만을 사랑해주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유서연은 굳이 자신만을 사랑해주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그렇게 타협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내 경우에는 성욕에서 시작된 관계라 그런 부분도 있어. 그냥 주인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결정한 뒤에 같이 지내면서 점점 좋아하게 된 경우니까."

그 뒤에 이어진 설명은 조금 노골적이었지만 이것 역시 나름대로 공감할 수 있었다.

자신 역시 처음에는 몸뿐인, 성욕뿐인 관계에서 시작됐지만 그렇게 몸을 섞는 사이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됐다.

남들이 들으면 더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유서연과 마찬가지로 성욕에서 시작된 사랑인 셈이었다.

유서연의 설명을 들으면서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임예진이 입을 열었다.

"저도 비슷하기는 한데, 제 얘기는 들었어요?"

"아, 응. 불감증이었다고.."

"맞아요. 그놈의 불감증. 그거 해결하겠다고 쪽팔린 거 무릅쓰고 불감증 클리닉 같은 것도 다니고, 관심도 없는 남자랑 사귀고, 몸까지 팔고 별의별 짓을 다 했었는데.."

아무래도 불감증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말하는 것만 들어봐도 본인은 정말 절박했다는 게 느껴졌다.

"거기서 주인님이 나타나서 떡하니 해결해주니까, 선택권이 있었겠어요? 처음에는 적당히 말로만 노예하고 욕구만 풀면서 지내려고 했었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좋아서 주인님이 아니면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언니랑 비슷해요. 성욕에서 시작해서 좋아하게 된 거죠."

주인님이니 노예니 하는 말들은 여전히 내심 움찔하게 될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임예진 역시 최민석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다.

애초에 그게 아니고서야 초면의 상대에게 최민석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얘기까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서연, 임예진의 얘기까지 듣고 나니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태 말 한마디도 없었던 김민아에게로 향했다.

"뭐, 뭐에요. 내 얘기는 오기 전에 다 해줬잖아요."

자기까지 그런 얘기를 해야 하냐는 듯, 살짝 뺨을 붉히며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이미 분위기가 이렇게 흘렀으니 말하지 않을 수도 없다.

처음 민아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사건 위주로 흘러갔다면, 이번에는 본인의 심리가 어떻게 변했는지까지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라고만 생각했지만, 힘들 때마다 최민석을 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최민석을 좋아하게 됐다고.

나중에 자신이 최면에 걸려 몸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이미 좋아하게 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용서하고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였다.

셋 중에서는 가장 성욕의 지분이 적은, 순수한 사랑에 가까운 이야기였고, 엘레나 자신과 가장 비슷한 경우이기도 했다.

"그럼, 몽마가 된 뒤에는 어떻게 할 거니?"

"몽마가 된 뒤에요?"

"우리처럼 주인님이랑 같이 살면서 지낼지, 아니면 민아처럼 따로 살면서 만나고 싶을 때만 만날지. 아, 몽마가 되면 금전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건 들었지?"

"아, 네. 듣기는 했는데.."

"사실 지금은 같이 지내려고 해도 집에 빈방이 없어서 안 되기는 해. 조만간 새집으로 이사 갈 예정이 있기는 해도 그것도 몇 달은 걸릴 거고."

"그래요..?"

"이사 갈 집은 애초에 방을 몇 개 남겨둘 생각이니까 천천히 결정해도 돼."

"언니, 들어봐요. 언니랑 새집을 어떻게 할지 이것저것 얘기했었는데, 일단은 다같이 들어갈 수 있는 목욕탕도 두고....“

유서연이 담담하게 사정을 설명하고, 임예진이 들뜬 목소리로 늘어놓는 설명에 반쯤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아직 몽마가 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결정은 확실하게 해뒀으니 들어둬서 나쁠 건 없는 이야기였다.

민아의 말대로 유셔연과 임예진 모두 성격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최민석에게 여자를 바치기 위해 에스테를 차렸다던가, 모델 학원에 들어가 괜찮은 여자를 스폰 시킨다는 이야기에는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이미 최민석이 최면으로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걸 용인한 시점에서 따질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기에 적당히 외면하고 넘어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