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화 > 나도 그냥 몽마 할게 (3)
갑자기?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민아의 입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 민아 역시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발언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엘레나는 이미 마음을 거의 굳힌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응. 그냥 해도 괜찮을 것 같아서."
"아니, 뭐.. 언니가 하고 싶다면 하는 건데.. 급한 것도 아니니까 좀 더 제대로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아요?"
"뭐 어때. 이미 들을 만한 건 다 들었잖아."
"그렇기는 한데.. 한번 결정하면 무를 수도 없잖아요. 사실상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는 건데.."
내 나름대로 돌려 말하던 것과는 달리 노골적인 표현이었지만 틀린 말도 아닌지라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지켜봤다.
유서연과 임예진은 처음부터 노예라고 확실하게 관계를 잡아두고 계약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민아는 자유롭게 풀어주긴 했지만, 섹스에 한해서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엘레나 역시 민아처럼 노예 취급은 하지 않겠지만 비슷한 조건으로 설득하기도 했고, 내 소유물이라는 조건만큼은 확실하게 못을 박아둔 상태.
노예나 소유물이나. 표현만 다를 뿐이지 사실상 별다를 게 없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노골적인 표현에도 엘레나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도, 민아 너는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아니.. 그거야 뭐.. 그렇기는 한데.."
"지금 생활이 힘들거나 불행한 것 같지도 않고."
"그것도 뭐.."
민아의 표현이 노골적이라면 엘레나의 질문은 직설적이라 민아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움찔하면서도 차마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고 수긍해버린다.
그러면서 뺨을 살짝 붉히며 내 쪽을 힐끔대는 걸 보니 지금 관계에 나름 만족하고 있다는 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게 내심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언니는 막상 하고 나면 후회할 수도 있잖아요. 제가 진짜 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알아. 나 생각해서 해주는 말인 거."
"......"
자신과 시선을 맞춘 채로 생긋 웃으며 대답하는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냥.. 내가 질투 나서 그래."
"질투요?"
편안한 표정으로 작게 내뱉은 엘레나의 말에 민아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냥 말로만 누구 소유가 됐다고 말하는 거랑 진짜 그렇게 되는 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민석이가 차별하고 그럴 성격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누나, 그건.."
"조금만 들어봐."
그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엘레나 쪽에서 먼저 단호하게 말을 끊으며 말하는 탓에 일단은 들어보기로 하고 잠자코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민석이가 민아나 다른 두 사람을 말할 때 '우리 애들'이라고 말했었잖아. 나도 거기에 확실하게 들어가고 싶었거든."
나로서는 그냥 평소 생각하던 대로 말했을 뿐이었는데. 엘레나는 그 부분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그건 아니라고, 똑같이 사랑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었지만, 엘레나의 말을 듣고 보니 대충 넘어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확실히.. 차이를 안 둘 수는 없겠지.'
엘레나를 설득할 때는 진심으로 몽마가 되지 않더라도 똑같이 사랑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겉으로는 차별하지 않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확실하게 내 것이 된 세 사람과 같은 울타리에 두지 못하고 다르게 생각했으리라.
"..듣고 보니까, 누나 말이 맞는 것 같아. 속이려고 했던 건 아닌데. 비슷하게 대해줄 수는 있어도 완전히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 같아. 미안해."
"그렇지?"
어쨌든 내 것이 되기로 한 여자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만큼 엘레나의 지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사과하자 엘레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엷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완전히 민석이 게 되고 싶은 것도 있고.. 다른 부분에서도 질투가 났거든."
"무슨 부분이요?"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민아 쪽에서 먼저 끼어들어 되물었다.
"그러니까.. 조금 민망한 얘기긴 한데.. 섹스.. 쪽에서도 내가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했거든."
"......"
이번에도 아까처럼 끼어들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었지만, 이미 한 번 끝까지 들어보라는 말을 들은 전적이 있는 만큼 잠자코 엘레나의 설명을 기다렸다.
담담하게 말하는 듯하면서도 귀가 살짝 붉게 물든 걸 보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하는 말 같았으니까.
"어쨌든 일반인보다는 몽마 쪽이 더 조이고, 뜨겁고.. 기본적인 부분에서 더 좋다는 건 민석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었잖아."
"그랬지."
다들 알고 있는 부분이긴 했지만, 기본적인 부분부터 설명하며 '그렇지?'하고 묻는 듯한 엘레나의 시선을 받으며 솔직하게 수긍했다.
질내가 좁은 것과 부드럽게 조이는 건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영역이었다.
질내가 똑같이 좁고 같은 힘으로 조인다고 해도 민아처럼 질벽이 말랑말랑한 타입과 서연이나 예진이처럼 자지를 밀어내듯 탄력적인 타입은 전혀 다르다.
그 밖에도 서연이처럼 질주름이 걸리거나 감기는 방식에서 확 차이가 날 수도 있었고, 질내의 구조 자체도 직전이 아닌 구불구불한 형태였기에 넣는 것만으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괜히 부드럽다거나 쫄깃하다던가 하는 식으로 애매하게 표현하고, 명기라는 말을 따로 쓰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체력적인 면에서도, 나만 금방 지쳐버리면 차이가 많이 날 수밖에 없잖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고 빨리 회복해야 민석이도 더 만족할 텐데."
"그거야.. 그렇지."
이번에도 대답을 재촉하는 것처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에 밀려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정력이 끝이 없다 보니 더 오래, 더 거친 플레이를 받아줄 수 있는 우리 애들과의 섹스는 기본적으로 보통 여자들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분에서도 뒤처지지 않고 싶어서 그래. 민석이가 나랑 하면서 더 만족해줬으면 하는 것도 있고."
"으음...."
엘레나의 설명이 끝나자 민아는 뭔가 입이 근질거리는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지만 결국 입 밖으로는 내지 못하고 넘겨버렸다.
사실상 설득을 포기한 셈이었다.
"누나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리고 나야, 처음부터 이런 선택을 해주길 원했으니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라면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잠깐 쉬고 있어. 시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
시간이야 없으면 만들게 할 수는 있지만 일단 기본적인 상황 설명은 해둘 필요가 있었기에 엘레나와 민아는 욕조에서 쉬게 두고, 잠시 욕실을 나와 젖은 상태 그대로 핸드폰을 찾았다.
[최민석 : 예진이랑 서연이, 지금 바빠?]
[유서연 : 안 바빠요. 지금 집에 있어요.]
[임예진 : 저도요. 집이에요. 오늘 집에 오실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고 10초도 지나지 않아 두 사람 모두 답장을 보내왔다.
어쨌든, 두 사람 모두 마침 집에 있다고 하니 잘된 일이다 싶어 곧바로 상황을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엘레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자잘한 설명은 생략하고 필요한 내용만 전달했다.
엘레나에게도 몽마가 되어 완전히 내 것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했다는 것.
그리고 설득하는 도중에 민아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게 됐고, 이제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어본 뒤에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는 것까지.
아주 짧고 대략적인 내용만 전달했지만 이 두 사람에게는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유서연 : 편하실 때 오세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임예진 : 저도요.]
민아처럼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는 깔끔한 대화에 내심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침대 위로 가볍게 던져놨다.
물론 실제로는 갑자기 몽마 될 사람과 찾아가겠다고 말했으니 당황하긴 했겠지만, 따로 전화를 걸어 따지거나 메세지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것만 봐도 민아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문제는 그 태도가 남들한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건데..'
민아야 그냥 평범한 친구, 혹은 섹스 프렌드 정도의 관계로만 보일 테니 괜찮았지만, 유서연과 임예진은 '주인님'이라는 호칭 하나만으로도 위화감이 확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엘레나 앞에서만 호칭을 고치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었으니, 그 두 사람과의 관계 역시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짧게 생각을 정리하고, 일단 설명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욕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을 열기도 전에 민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니까.. 언니들이 좀 이상해 보일 수는 있는데 컨셉 플레이라고 해야 하나, 강제로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몇 번.. 하는 중에 주인님이라고 하기도 했었고.."
"아, 음.. 그래..?"
그리고 조금 작게, 미묘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엘레나의 목소리까지.
그 두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할지 내심 막막했는데, 이미 민아 쪽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날 생각해서인지, 그 둘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해주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맙고 기특한 기분을 느끼며 문을 열고 들어가 당연하다는 듯이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담그며 다리를 쭉 뻗었다.
"둘 다 지금 집에 있고, 아무 때나 와도 괜찮다니까 조금만 더 쉬다 가자. 그리고, 누나."
"알았.. 으, 응?"
민아가 우리 관계에 대해서 정확히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갈 때와 달리 약간 어색하게 굳어져 있는 표정을 보니 더 제대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예진이는 몰라도, 서연이는 진짜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알아서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그러는 거야. 그냥 민아처럼 편하게 해도 괜찮다고 한 적은 있어도, 그렇게 부르라고 시킨 적은 한 번도 없어."
"....으응.”
이걸로 일단 내 결백함은 주장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서연의 이미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유서연의 성향이 이상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몽마가 돼서 같이 지내려고 하면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부분은 굳이 변호하지 않고 넘어갔다.
임예진의 경우에는 내가 그렇게 부르라고 시키긴 했지만 편하게 해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뒤에도 그게 편하다며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했으니 적당히 유서연과 세트로 넘겼다.
오해가 있다면 본인들이 알아서 풀겠지만, 애초에 오해랄 것도 없는 관계였다.
*
한편, 유서연의 아파트 거실에서는 유서연과 임예진 두 사람이 거실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더 늘어나는 거야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걸 빠르다고 해야 할지 늦다고 해야 할지.."
"늦은 거지."
메시지로는 아무런 불평도 없이 넘어갔던 것과는 달리 임예진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지만, 유서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주인님 정도면 엄청 검소한 편인 거 알잖아. 다른 남자가 같은 입장이었으면.."
"그거야 알지. 돈은 돈대로 챙기고, 애인은 한 14명쯤 만들어서 월화수목금토일별로 두 명씩 불러다 3P를 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몇 년쯤 지나면 한 365명쯤 사귀고 있을 수도 있고."
순진한 김민아와는 달리 남자라는 생물이 얼마나 욕심이 많고, 성욕에 휘둘리는 생물인지를 아는 두 사람이었기에 지금의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도, 한 명 더 늘어나면 그만큼 순번이 나뉠 텐데.. 에휴.."
"그거야 어떻게 될지 모르지. 민아처럼 생활은 따로 혼자서 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어차피 지금은 집이 좁아서 따로 지낼 수밖에 없기도 하고. 4명 정도면 아직은 여유 있는 편이니까."
항상 최민석과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두 사람에게 있어 따로 지내며 기껏해야 달에 몇 번 최민석과 만날 뿐인 김민아는 경쟁 상대가 아닌 귀여운 동생 정도의 포지션에 불과했다.
새로 최민석의 하렘에 들어오는 여자가 어떤 성격일지는 모르겠지만, 4명, 아니 김민아를 제외한다면 3명이 같은 집에서 생활한다고 친다면 아직 크게 경쟁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서 하룻밤 자고 헤어지는 패턴이었으니까, 딱 그대로 유지하면 좋긴 하겠네. 아무튼, 주인님 앞에서는 싫은 티 내지 말고, 친하게 지내."
"알고 있어. 근데 언니, 그 사람 사진 같은 건 없어? 외국인이라고 듣긴 했는데 정확히 어디 쪽 사람이라고는 못 들었네. 막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도 실례일 수도 있잖아. 어떻게 생겼는지 미리 봐 두면 좋을 텐데."
"없어. 그리고, 주인님 마음에 들었으면 성격도 나름 괜찮을 테니까 보는 것 정도로 싫어하진 않겠지. 그래도 너무 노골적으로 보지는 말고 적당히 하고."
"그 정도야 알지. 그런데, 서양인이면 역시 가슴도 크려나? 아무리 그래도 언니보다는 안 크겠지?"
"......"
최민석이 결정한 이상 엘레나의 합류를 거부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떠올리지도 않고, 별다른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녀들은 진작부터 최민석의 하렘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합류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