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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603화 (596/775)

< 603화 > 다 쟤가 쓰레기라 그런 거잖아요 (4)

몽마의 몸과 보통 사람의 몸으로 느끼는 쾌감은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걸까.

안타깝게도 그 답을 아는 건 최민석 한 명뿐이었고, 김민아도 이미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며 확실하게 못을 박아둔 상태.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남자가 얼마나 쾌감을 느끼고 있는지 같은 걸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더 궁금한 건 없어요?"

"..지금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김민아는 궁금한 게 있으면 더 물어보라는 듯 물었지만 몽마와 일반인의 차이에 생각이 묶인 탓인지 더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럼 뭐.. 아침 먹었어요? 아침 시키려다 전화 받은 거라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나도 아직.."

배는 한참 전부터 고프긴 했다. 거의 새벽 시간대에 일어나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땀 흘리고 목욕까지 했으니까.

이미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늦은 아침 시간이 됐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같이 먹어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음.. 글쎄..?"

"차 타고 온 건 맞죠?"

"민석이 차 타고 오긴 했는데.."

"그럼 나가서 먹어요. 전부터 가고 싶었던 데가 있는데, 직접 가기에도 애매하고 배달도 안 해서 고민만 하고 있었거든요. 아, 칼국수 좋아해요?"

"좋아하기는 하는데.."

"그럼 칼국수 먹으러 가요. 제가 방송을 오전에 켜는데, 거기가 오전에서 점심까지만 영업하고 저녁 영업을 안 하거든요."

역시, 친절하긴 하지만 얘기가 휙휙 넘어가는 느낌이 조금 따라가기 힘들다.

이쪽은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김민아는 이미 침대에서 내려와 방 한구석에 있는 옷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럼, 가서 밥 먹으러 가자고 좀 전해줄래요? 저도 옷만 갈아입고 나갈게요."

"..그럴게."

어차피 배도 고프겠다, 더는 물어볼 것도 안 떠오르겠다. 같이 밥이나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나오자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최민석이 곧바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얘기 끝났어?"

"일단은..?"

"막 텃세 부리고 그러지는 않았지?"

"안 그랬어.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착하더라."

"다행이네. 결정은 내렸어?"

"그건 아직.."

"천천히 결정해. 기다릴게."

최민석은 따로 재촉하지 않고 엷게 웃으며 가볍게 화제를 넘겼다.

김민아에게는 기다린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자기 게 되던가 아예 다시는 안 만나던가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고 했으면서 자신은 기다려주는 이유가 뭘까.

확실하게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좋아해서?

아니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결정을 요구할 정도로 탐나는 건 아니라서?

전자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후자일 가능성을 생각하면 물어보기가 무서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민아.. 가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던데."

"그래? 마침 배도 고팠는데, 잘됐네. 근데, 벌써 말 놓기로 한 거야?"

"아, 응. 그게 더 편하다고 하길래."

"잘됐네. 친하게 지내줘. 애가 원래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반쯤 히키코모리처럼 돼서 밖에도 잘 안 나가고 그러거든."

"어.. 그래..?"

딱히 은둔형 외톨이 같은 낌새는 전혀 없었는데. 조금 의외였다.

"대학도 안 가고 공시 공부만 죽어라 하고, 합격한 뒤에도 일만 하다 보니까 그 반동으로 저렇게 된 것 같더라고."

"으음.."

초면부터 워낙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했고, 서로 속을 터놓고 얘기를 하면서 그새 정이 든 건지 상태가 안 좋다고 하니 괜히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난 건지, 최민석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다고 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걱정하진 말고. 밖에 못 나가고 그런 게 아니라 귀찮아서 안 나가는 거니까. 지금도 자기가 먼저 나가자고 한 거잖아."

"그렇네..?"

"그냥 좀 게을러졌다는 얘기였어. 어쨌든 방송으로 돈도 제대로 벌고 있고."

그냥 농담삼아 가볍게 던진 말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김민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기를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청바지에 롱패딩을 걸친 김민아가 거실로 나왔다.

*

생각보다 잘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몽마가 된 뒤에는 마주칠 수밖에 없겠지만, 유서연과 임예진은 아예 자기들 쪽에서 노예를 자처하고 있는 만큼 나쁜 인상을 줄 것 같아 김민아를 먼저 소개해주긴 했지만 불안한 점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유서연이나 임예진보다는 낫겠지만 그런 만큼 질투도 심한 편이고 다른 의미로 필터링이 없이 할 말은 하는 성격이었으니까.

대뜸 여자끼리 얘기하겠다며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할 때는 정말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얘기를 마치고 나온 엘레나의 표정을 보니 그런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오히려, 중간에 갑자기 밖으로 나와 자기한테는 왜 기다려주겠다고 안 했냐며 따지고 들어 그쪽이 더 당황스러웠다.

'그때는 네가 너무 화난 상태라 그냥 뒤가 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어. 거기서 거절당했으면 당연히 기다릴 테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겠냐고 매달릴 생각이었고.'

'..대충 둘러대는 거 아니야?'

'애초에 욕이란 욕은 다 먹고 몇 대 맞을 각오까지 하고 고백한 거였는데. 자존심 버리고 매달리는 걸 못 했겠어? 내가 널 얼마나 갖고 싶어 했는데.'

'흐음.. 진짜지..?'

'당연하지. 몽마 되고 난 뒤로는 너한테 거짓말한 적 없잖아.'

사실, 당시에는 그냥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들이댔을 뿐이었으니 진심으로 거절당했다면 포기하고 물러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잘 끝난 일을 굳이 다시 끄집어내 기분 나쁘게 만들 필요도 없었으니 적당히 둘러대서 잘 넘길 수 있었다.

'..흥. 알았어.'

거짓말이기는 해도, 김민아는 내 대답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수긍하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서로 싸우지 않고 기분 좋게 상황을 넘겼으니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따로 느껴지지 않았다.

"뭐해, 가자."

"그래."

엘레나와 김민아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외출 준비를 마친 김민아가 거실로 나왔고, 곧장 집을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랐다.

나 혼자만 운전석에 앉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통에 운전기사가 된 기분이었지만 둘이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차를 몰았다.

가게 메뉴는 보리밥 비빔밥에 바지락 칼국수가 기본이었고, 사이드로 직접 빚은 손만두를 시켰는데 만두 쪽이 의외로 내 취향에 맞아 만족스럽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으읏..! 맛있었다..!"

"그러게. 맛있더라."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로 들어온 김민아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고, 엘레나 역시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조금 복잡해 보였던 표정이 한결 풀어진 모습이었다.

"근데, 방송 시간은 괜찮아?"

"괜찮아. 휴방한다고 공지 올려놨으니까."

"그래?"

"언니랑 얘기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얘기하다 말고 방송 켜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역시나. 짜증은 짜증대로 내면서도 거기까지 생각하고 준비해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착하고 무른 성격이다 싶었다.

유서연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임예진 역시 날 위해서라면 다른 여자한테 최면을 걸어 갖다 바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만큼 착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유서연과 임예진이 나쁘다거나 부담스럽다는 건 아니었고, 그 두 사람 역시 내게는 착하고 순종적인 만큼 항상 고마운 마음을 느끼고 있다.

애초에 개성처럼 가벼운 성격 차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 누가 더 착하고 나쁘고를 따질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성격이 어떻든 간에, 나랑 평생을 함께하기로 해준 고마운 여자들이었으니 다들 공평하게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럼 시간도 남겠다. 셋이 데이트나 하러 갈까?"

"데이트?"

그냥 가볍게 뱉은 말이었지만 김민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하며 되물었다.

"모처럼 셋이 나왔으니까. 마침 시간도 남는다고 하고."

"나야 좋기는 한데.. 언니는요?"

"나도.. 시간은 괜찮아."

엘레나야 주말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민아는 원래 오전부터 저녁때까지 방송을 했겠지만 오늘은 쉰다고 하니 하루를 통째로 어울릴 기회였다.

"언니도 괜찮다니까 상관은 없는데. 이왕 할 거면 둘이 있을 때 말하지, 셋이서 데이트가 뭐야. 셋이서가."

"뭐, 어때. 익숙하면서. 그리고 누나랑도 친해지면 좋잖아."

"그거야 뭐.."

막상 좋다고 받아들일 때는 언제고, 민아는 너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버린 게 멋쩍었는지 작게 툴툴거렸지만 엘레나를 핑계로 써먹으니 곧바로 조용해졌다.

"그래서, 어디 가게?"

"글쎄. 아직 시간이야 많으니까, 멀리 가기 싫으면 일단 영화나 보러 가도 괜찮고, 차도 있으니까 당일치기로 멀리 놀러 갔다 와도 괜찮고."

"..멀리 가는 건 귀찮으니까 근처에서 놀아."

"어련하시겠어."

아무래도 집순이 체질이다 보니, 멀리 간다는 말에 잠시 귀찮은 표정을 짓더니 대뜸 자기 쪽에서 결정해버린다.

나도 귀찮다는 걸 억지로 끌고 다닐 생각은 없었기에 내심 속으로 속초해변이나 해운대에서 바닷바람이나 쐴까 했던 생각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럼, 거긴 어때? 코엑스에 아쿠아리움 있잖아."

"..아쿠아리움?"

"저번에 수족관 가보고 싶다고 했었잖아. 코엑스면 그렇게 멀지도 않고."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내가 혼자 부산에 놀러 갔을 때. 아쿠아리움에 갔다는 얘기를 했더니 자기도 수족관에 가본 적이 없는데 그걸 혼자만 가냐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있어 한 제안이었다.

이렇게 바로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떠올린 것도, 그때 민아가 투덜거리는 말을 듣고 근처에 또 수족관이 있나 알아본 덕분이었다.

말로는 뭘 그런 걸 기억하고 있냐며 투덜거리고 있지만, 룸미러로 살짝 표정을 살펴보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 듯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누나는 어떻게 생각해?"

"나? 나야 뭐.."

모처럼 셋이 하는 데이트인데 민아의 의견만 들을 수는 없었기에 조용히 눈치만 살피고 있던 엘레나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묻자 엘레나는 움찔하며 조심스럽게 상관없다는 듯 대답한다.

"우리 데이트하는 데 누나가 끼는 게 아니라, 누나도 같이 데이트하는 거니까. 누나도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해.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 있으면 말해도 괜찮고."

민아의 말대로 쓰레기 같은 마인드기는 하지만, 엘레나가 이렇게 여럿이서 어울리는 상황에 익숙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아예 몸을 돌려 엘레나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며 조금 강하게 밀어붙였다.

"읏.. 그럼...."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재촉한 모양인지, 엘레나는 당장 떠오르게 없는 듯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생각나는 거 없으면 억지로 말 안 해도 돼. 아직 시간도 많으니까 천천히.."

"아, 아니야. 영화.. 보러가고 싶은데. 괜찮아..?"

"당연히 괜찮기는 한데. 눈치 보느라 아무거나 대충 말한 건 아니지?"

"..아니야. 그냥.. 평범하게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평범하게 데이트 같은 것도 해보고 싶었거든.."

부끄러운 듯 뺨을 살짝 붉히며 말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엘레나가 성숙한 외모나 분위기에 비해 귀여운 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와.. 언니, 왜 이렇게 귀여워요?"

"어, 어..?"

"그렇잖아요. 이미 할 거 다 한 사이에 이제 와서 영화관도 가고 같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런 데이트가 하고 싶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말하니까, 너무 귀엽잖아요."

"읏...."

불쑥 대화에 끼어든 김민아가 나랑 똑같은 생각을 대놓고 입밖으로 꺼내며 귀엽다고 놀려대자 엘레나의 얼굴이 확 붉게 물들어버렸다.

"쟤도 지금 말만 안 했지, 똑같은 생각일걸요? 언니 밤에 조심해야겠다."

"......"

김민아의 말에 엘레나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엘레나의 고개가 살짝 올라오며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근데 너도 진짜 너무했다. 언니랑 만난 지 몇 달은 지난 거 아니야? 근데 여태 평범하게 데이트 한 번을 안 해줬냐?"

"....크흠."

그 부분에서는 할 말이 없어 짧게 헛기침하며 뒤돌아 있던 몸을 앞으로 돌려 대답을 피했다.

"하여튼, 머릿속에 그냥 섹스밖에 없지. 쓰레기 새끼."

"......"

아무래도, 오늘 밤 조심해야 할 건 엘레나가 아니라 김민아가 될 것 같다.

결코 할 말이 없어서 속으로만 다짐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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