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8화 > 본격적인 설득은 몸으로 (10)
유서연에게 임예진을, 김민아에게 유서연과 임예진을 소개해주면서 생긴 경험 덕분에 엘레나의 기분이 언짢아진 이유가 질투라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질투해주는 건 좋은데.."
질투라는 감정 자체는 좋다.
어쨌든 나한테 다른 여자가 있음에도 날 포기하지 못하는 탓에 생기는 감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유서연과 임예진 말고도 김민아가 남아 있었고, 그밖에 주기적으로 만나는 여자들은 더더욱 많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주에 한두 번씩 연락을 주고받는 유혜연이나 에스테틱의 여직원들과 예약 손님들. 그리고 빈도는 적지만 임예진의 소개로 가끔 만나는 모델 최설아.
특히 유혜연은 매번 유혹하듯이 은근히 노출도가 높은 옷차림으로 찍은 셀카를 보내오고, 최설아 역시 보고처럼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오곤 했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을 따로 저장해두진 않았지만, 다른 관계가 더 있냐고 묻는다면 어차피 다 알게 될 일이었으니 숨길 수도 없었다.
"그리고 한 명 더 있는데.."
"......"
결국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자진 신고를 해버렸지만 엘레나의 눈빛이 한층 더 싸늘해진 것 외에는 아무런 반응도 얻을 수 없었다.
"일단 사진부터 볼래?"
"..보여줘봐."
그래도 마지막 한 명. 김민아의 정체가 궁금하기는 한 모양인지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준다.
민아를 설득할 때 셀카를 보내줬던 다른 둘과는 달리 민아는 따로 셀카를 찍어 보내준 적이 없었기에 적당히 김민아의 방송을 검색해 나온 사진을 띄웠다.
방송을 시작한 지도 이제 반년 가까이 지나기도 했고, 사기적인 비주얼과 나름대로 방송 감각이 있는 덕분에 뉴튜브 구독자도 이미 10만을 넘긴 상태라 검색만 해도 사진이 주르륵 나올 정도는 됐다.
"..얘야. 이름은 김민아고."
"......"
검색한 사진을 띄운 핸드폰을 받아 든 엘레나는 잠시 말없이 화면을 노려보듯 언짢은 눈빛으로 사진을 확인했다.
"..이 사람도 예쁘네."
"그야 뭐.."
아무래도 외모에 관해서는 다들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아니라는 말은 할 수도 없다.
엘레나 쪽에서 먼저 예쁘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아니라고 둘러대봤자 다 티가 날 테니 기분만 나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좀 어려 보이는데.."
"스물세 살이야. 내년이면 스물넷이고."
이제 해가 넘어갈 때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으니 사실상 이제 스물네 살이겠지만, 여자들은 나이에 민감한 면이 있었으니 나이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정리해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흐응.."
엘레나는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듯 짧게 반응하고 넘겼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두 사람은..?"
"서연이는 스물아홉이고, 예진이는 스물다섯인데.."
"..그래?"
내가 곧장 대답하자 엘레나는 짧게 미묘한 반응만 보이고는 핸드폰을 돌려줬다.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인데..?"
"..민아는 사진 봤으니까 알겠지만, 인터넷 방송하고 있고. 예진이는 모델. 서연이는 사업하고 있고."
유서연 같은 경우에는 에스테틱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고 정확하게 설명해도 괜찮겠지만 아직 거기까지 밝히기에는 엘레나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적당히 둘러댔다.
에스테틱에 관해서도 다 밝혀야겠지만, 그쪽에는 또 내가 최면을 걸어놓은 여자가 가득했기에 조금 나중에 기분이 풀어지면 설명할 생각이었다.
물론, 대화가 내 생각대로 흘러갔다면 말이다.
"..이 셋이 끝이야?"
"일단은..?"
완전히 내 걸로 만든 상대가 끝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엘레나는 주변에 여자가 더 없느냐는 의미로 물었을 테니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초반에만 하더라도 김민아 때보다 이야기가 쉽게 풀리겠다 싶었었는데.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거치고 가야 하는 과정이었다.
"왜 대답이 애매해?"
"그러니까.. 아예 숨기는 거 없이 완전히 나랑 살겠다고 한 애들이거든."
"다른 여자는 더 있다는 거네?"
처음에는 힘이 빠져 조심스럽게 묻던 목소리에 조금씩 생기가 돌고 있다. 나한테는 좋지 않은 방향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있지."
"다른 여자들은 또 얼마나 되는데?"
"..잠깐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밝힐 건 지금 다 밝혀버리고, 조금 더 강하게 수를 둬야 할 것 같아 짧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 연락처는 가지고 있지만 한두 번 만나고 관계가 없었던 여자들은 제외한다.
'혜연이랑 최설아. 에스테틱 직원들이랑 손님들. 혜수도 연락은 자주 하고 있으니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고. 성은영은 조금 애매한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유부녀 성은영까지 생각이 미치자 잠깐 생각이 다른 곳으로 샜다.
최면을 얻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만난, 세 번째 최면 대상.
남편이 해외 파견을 나간 김에 불륜 예방 부서라는 설정의 최면을 이용해 마음껏 따먹었던 여자였지만 주변에 여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언제부턴가 연락을 하지 않게 됐었다.
남편이 오거나 나한테 연락을 받기 전에는 성욕도 느끼지 않고 우울함도 느끼지 않게 만들어 놨으니 아마 잘 지내고 있으리라.
'성은영도 떡감이 참 좋았는데.."
유부녀답지 않게 피부는 부드럽고, 질내는 물이 많아서 미끌거리고, 가슴도 꽤 큰 편에 은은한 우유향과 함께 제대로 느끼기 시작하면 모유가 나온다는 점이 정말 최고였다.
'..조만간 다시 가서 맛이나 볼까? 아니면, 에스테틱 손님으로 불러?"
지금 처한 상황도 잊어버리고 성은영의 부드러운 여체를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하반신에 불끈 힘이 들어가 버렸다.
그 불끈거리는 느낌에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2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누나처럼 편하게 지내는 상대는 없어. 대부분은 같이 밥 한번 먹은 적도 없고, 가볍게 몸만 즐기는 정도야."
"......"
내가 말해놓고도 조금 많지 않나 싶어 변명을 살짝 덧붙였지만 엘레나는 이미 20이라는 숫자에 충격을 받았는지 당황스러운 수준을 넘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안 되겠다."
여기서 한 번 분위기를 바꾸고 넘어가지 않으면 설득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아 엘레나 쪽에서 뭐라고 말을 꺼내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선수를 쳐야 할 것 같았다.
"누나."
"어, 응..?"
정말 어지간히도 충격받았던 모양인지. 내 쪽에서 대뜸 진지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자 화도 내지 못하고 흠칫하며 순수하게 놀란 표정으로 반응한다.
'..체면 같은 거 차릴 필요 없어.'
나는 쓰레기고 양심이 없다. 이 사실을 기본 전제로 깔아두지 않으면 애초에 설득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엘레나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내 쪽으로 돌리며 정면에서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읏..! 뭐, 뭐야.."
어깨를 너무 세게 잡았는지 엘레나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누나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아. 나도 내가 쓰레기 같다는 건 알고 있고. 그런데, 난 이렇게 사는 거, 포기 못 해."
"왜...."
"끝까지 들어줘."
"....."
내가 단호하게 쓰레기임을 인정하고 의지를 밝히자 엘레나는 당황스러운 듯 눈동자를 작게 떨면서도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내 쪽에서 말을 끊고 재차 말을 이어 나갔다.
"어릴 때 워낙 힘들고 구질구질하게 살아서 그런 건지, 내가 원래 쓰레기여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왕 몽마가 되고 능력이 생겼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고 싶어."
내가 20명, 아니 30명이 넘는 여자를 최면으로 손댄 쓰레기라는 걸 알게 된 와중에도 예전 이야기를 꺼내니 엘레나의 눈빛에 순간 슬픈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저 착한 성격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저런 성격이라 좋은 거긴 했지만 지금은 그 착한 성격이 설득에 걸림돌이 된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누나가 듣기에는 어이없겠지만, 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선은 지키면서 행동하고 있어. 내가 도움을 주면 줬지, 나랑 만나고 생활에 뭔가 문제가 생기거나 괴로워하는 여자는 없어."
남편의 해외 파견으로 외로워하던 성은영은 내 덕에 외로움을 잊게 됐고, 에스테틱 직원들은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에서 편하게 돈을 벌며 본인들도 나와의 섹스를 즐겼다.
에스테틱의 고객들은 내 정기로 미용 효과를 톡톡하게 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기분 좋게 풀고 갔고, 최설아는 모델로서 일거리를 편하게 구하며 지내고 있다.
유혜연은.. 내가 최면을 걸기 전부터 유서연에게서 날 빼앗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차라리 이렇게라도 잘 지내게 된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최근에 일본에서 건드렸던 유키에가 예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쾌락만큼은 최면이 풀린 뒤에도 몸을 내줄 정도로 제대로 즐기게 해줬고, 가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도록, 나와의 일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일도 없도록 잘 마무리해뒀다.
불륜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었지만 어쨌든 남편들은 모르게, 가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가 좋다는 것도 진심이야."
"읏.."
내가 진지하게 내뱉는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엘레나는 내가 대뜸 다시 고백해버리자 붙잡힌 어깨를 움찔 떨며 살짝 시선을 피해버렸다.
내가 쓰레기라는 것과는 별개로 날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으니 이런 상황에서도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진짜 쓰레기긴 하네."
이런 상황에서도 상대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발상이 정말 쓰레기 같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새삼 이제 와서 자괴감을 느낄 일은 아니었기에 가볍게 잡념을 털어냈다.
"누나 한 명만 사랑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해. 그래도, 누나가 날 받아줬으면 좋겠어. 나도 누나가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할게."
"하지만.."
"지금 대답해줘. 처음에도 얘기했었지만, 누나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밀어붙이지는 않을 거야. 내가 다시는 눈앞에 안 보이길 원하면 그렇게 해줄 거고, 아예 잊어버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줄게."
"으...."
내가 한층 더 강경하게 밀어붙이며 대답하자 엘레나는 부끄러우면서도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듯 내 눈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지금 당장 대답해달라는 건 계획에 없던 도박수였지만 지금은 왠지 이렇게 밀어붙여야 할 것 같아 저질러버렸다.
욕실 안이 잠시 침묵에 잠기고, 어색하게 1분 가까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시선을 피하고 있는 상태 그대로 엘레나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래도.. 나이도 많고.. 걔들처럼 예쁘지도 않은데.."
누가? 라고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다.
평소와 달리 자신감 없이 불안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다른 셋의 외모를 보고 조금 주눅이 든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나도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에 핑계를 대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이제는 엘레나가 거의 다 넘어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서연이만 봐도 누나보다 한 살 연상인데 뭘. 그리고 예쁜 건 누나도 마찬가지고."
당장의 외모만 놓고 본다면 우리 애들이 엘레나보다 조금 앞서긴 하겠지만, 그건 아직 몽마가 되지 않은 탓이다.
지금의 엘레나도 길 가다 마주치면 백이면 백 뒤돌아볼 만한 미인이었으니, 몽마가 된다면 더 다른 셋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으리라.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인상의 엘레나가 몽마 특유의 색기를 풍기게 되면 도대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됐다.
"누나는 그냥 결정만 해. 누나가 좋다고만 하면 난 누나도 똑같이 사랑해줄 수 있어."
"으...."
평소라면 섹스 도중이 아닌 이상 사랑한다느니 하는 말은 잘 쓰지 않았지만 엘레나는 이런 말이 잘 통하는 편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몇 번이고 당당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였다.
"정말.. 나중에 가서 다른 소리 하는 거 아니지..?"
다 넘어왔다. 이걸로 정말 마지막이라는 듯 조심스레 묻는 엘레나의 질문에 대답보다도 먼저 엘레나의 몸을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꺗..!?"
"누나야말로 나중에 다른 소리 하면 안 돼. 한 번 내 걸로 만들고 나면 누나가 싫다고 해도 절대 안 놔줄 거야.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해."
이번에는 오히려 내 쪽에서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속삭이며 한 발짝 물러났다.
몸을 꽉 끌어안긴 채로 귓가에 속삭여지는 말에 움찔 몸을 떤 엘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확실하게 대답을 돌려줬다.
"네 꺼.. 할 테니까.. 약속 꼭 지켜야 돼..?"
나와 마찬가지로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이는 대답에 순간 겨우 가라앉았던 하반신에 불끈 힘이 들어가며 자지가 우뚝 솟아올랐다.
"당연하지. 사랑해. 누나."
"읏.. 나도.. 응.. 츄읍.."
꽉 끌어안고 있던 몸을 풀어주며 살짝 뒤로 밀어내고, 눈을 똑바로 맞추며 다시 한번 사랑을 속삭이자 부끄러워하는 표정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엘레나가 내 것이 됐다는 만족감에 입을 맞추자, 엘레나 역시 부드럽게 혀를 얽혀오며 자기 쪽에서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결과만 놓도 본다면 민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진작에 엘레나가 내게 반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