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7화 > 본격적인 설득은 몸으로 (9)
최민석이 평범한 인간이 아닌 몽마라는 것.
그동안 가지고 살아온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거짓말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력 같은 건.. 말이 안 되긴 했으니까..'
기묘하게도 엘레나가 최민석이 몽마라는 사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게 된 부분은 비정상적인 정력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아무리 남자 경험이 없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다.
친구들에게서, 혹은 인터넷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로는 남자는 아무리 정력이 좋아도 두 번, 혹은 세 번 정도가 한계다.
하지만 최민석은 언제나 시작했다 하면 세 번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수준이었고, 언제나 자신이 지쳐 의식이 끊길 때까지 지치지 않고 단단함을 유지하며 허리를 움직인다.
솔직히 말해서, 몽마든 뭐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오히려 더 납득이 되는 수준이다.
거기에, 새삼스럽긴 하지만 정력과 마찬가지로 상식적인 수준을 넘은 섹스의 쾌감 역시 의심을 걷어내는 역할을 했다.
평소의 자신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섹스도 그렇지만, 조금 전까지 최민석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쾌감은 정말..
'죽는 줄 알았어..'
절정의 쾌감이 가라앉지 않고 몸이 붕 떠서 녹아내리는 듯한 상태가 끝없이 이어지며 커다란 기둥이 멈추지 않고 질내를 부드럽게 쑤시며 천천히 쾌감을 쌓아 재차 절정으로 올려보낸다.
그렇게 다시 절정에 오르고, 그 절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다시 계속해서 쾌감을 쌓아 절정으로 올려보내는..
그동안 최민석과 꾸준히 관계를 맺어왔지만 이건 정말 위험하다고, 쾌감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는 통에 무섭기까지 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리 크기가 크고 정력이 좋다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쾌감이었다.
결국, 처음부터 믿고는 있었지만 잠깐 사이에 최민석이 보통 인간이 아닌 몽마라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까지 할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최민석의 입에서 '다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최민석이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건 이미 들었다.
몽마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그에 대해서도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최민석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니 이상하게 언짢고 짜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유서연이라고, 누나처럼 아예 확실하게.."
"난 아직 결정 안 했어."
"..아무튼. 같이 사는 애가 있는데.."
같이 산다고?
최민석의 입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온 말에 언짢은 기분이 한층 더 크기를 키운다.
같이 산다는 건 한 집에서 같이.. 즉, 동거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연인이 아닌 섹스 프렌드 같은 관계였으니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었다고 해도 대놓고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왠지 언짢은 기분이 들어 대답이 괜히 까칠하게 튀어나왔다.
평소라면 기분이 나쁘더라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언짢은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걔가 집이 엄청 부자거든. 그래서 같이 사는 김에 이것저것 도와주고 있어."
요컨대, 돈 많은 여자를 낚아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 아닌가.
평소라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은 탓에 결론을 내리는 것도 빨랐다.
"..기둥 서방 아니야?"
"아니라고 하고는 싶은데, 따로 변명할 말이 없네."
까칠하게, 공격적으로 한 마디 쏘아붙였음에도 최민석은 조금 난처하게 웃기만 했을 뿐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 여유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상태에서는 최민석이 뭐라고 해도 다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엘레나는 자신이 은근하게 질투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돈 때문에.."
"아, 돈 때문에 만나는 건 아니야. 여러모로 도움받고 있기는 해도, 처음부터 돈 생각 같은 건 안 하고 만났었거든."
"......"
그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는 듯 자신의 말을 끊으며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는 태도도 얄밉게만 느껴졌다.
"..그럼, 예뻐서 만났다는 거네?"
"그런 것도 있기는 한데.. 사정이 좀 있었거든."
"......"
"이것도 나중에 얘기하려고 했었는데. 듣고 싶으면 지금 말해줄게."
"..해봐."
여자를 만나는데 무슨 사정씩이나 있나 싶었지만 일단은 들어보기로 했다. 어쨌든, 최민석이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러니까.."
최민석의 설명은 이러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가족들과 완전히 연락을 끊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당장 돈 벌 구석이 없었다는 것이다.
고졸에 변변찮은 자격증도, 경력 한 줄도 없는 20대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 일할 만한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심지어 편의점이나 PC방도 사람을 골라 뽑는 통에 일일 알바 같은 것들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이력서를 여기저기 뿌려대다가 유명 백화점의 물류창고 파트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취직자리 자체가 유서연이라는 여자가 자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부러 경력도 없고 스펙도 없는 사라들을 받아 괴롭히기 위한 자리였고, 괴롭힘을 받으면서도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다가 최면 능력을 얻었다.
그래서 유서연의 얼굴이 예쁜 것도 있겠다. 그간 당했던 것을 돌려주기 위해 최면을 걸고 반쯤 강간처럼 관계를 맺었지만, 그때 느꼈던 쾌락이 너무 황홀했던 탓에 유서연이라는 여자 쪽에서 멋대로 달라붙었다.
어쨌든 얼굴도 예쁘고 돈도 많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주다 보니 고시원보다는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게 낫겠다 싶어 동거하는 관계가 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정이 붙어 지금의 관계가 됐다는 얘기였다.
뭐 그런 여자가 다 있나 싶었지만,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관계가, 어떤 관계인데?"
"노예랑 주인..?"
"무슨.."
스스로도 좀 멋쩍은 듯하면서도 거침없이 돌아오는 대답에 순간 황당한 기분이 들어 할 말을 떠올리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자 최민석 쪽에서 곧바로 해명하듯 설명을 덧붙였다.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내가 강요한 건 절대 아니야. 걔 취향이 조금 그런 쪽이라, 자기 쪽에서 먼저 주인님이라고 불러대서 그렇게 된 거거든. 나야 연인처럼 지내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본인이 노예 쪽이 좋다고 하니까.."
"......"
그건 또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유서연이라는 여자의 취향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최민석은 연인처럼 지내도 상관없을 정도로 유서연이라는 여자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나한테도 사랑한다고 했으면서..'
물론 최민석의 좋아한다, 사랑한다의 기준은 남들과 조금 다를 것이다.
애초에 처음부터 본인 입으로 '좋아하지만 연애나 결혼 같은 건 무리다'라고 못을 박아뒀었으니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유서연이라는 여자와 어떤 관계인지. 그다음으로 궁금했던 질문 역시 참지 못하고 입 밖에 낼 수밖에 없었다.
"그.. 유서연이라는 사람.. 예뻐..?"
"예쁘지."
정말 조금의 망설임조차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나랑 비교하면.."
"잠깐만."
여자로서 정말 꺼내고 싶지 않은 얘기였지만, 이상하리만치 속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 말을 꺼내려고 하는데. 최민석 쪽에서 말을 끊고 들어왔다.
"폰에 사진 있으니까, 보여줄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단 직접 보는 쪽이 알기 쉽잖아."
"그렇긴 한데.."
"지금 가지고 올게."
이번에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벌떡 일어난 최민석이 물기를 닦지도 않고 욕실 밖으로 빠른 걸음으로 나가버린다.
졸지에 혼자 욕실에 남아버린 엘레나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입술을 가볍게 잘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저렇게 망설임도 없이 예쁘다고 하는 걸까.
귀찮은 일도 여럿 있었지만 스스로도 외모로는 어디서 꿇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깔고 살아왔던 만큼 외모에 대한 불안감이 너무 낯설게 느껴져 더더욱 불안했다.
그리고, 30초도 지나기 전에 욕실 문을 벌컥 열고 돌아온 최민석이 다시 욕조에 몸을 담그며 자신에게 화면에 사진을 띄워놓은 핸드폰을 건넸다.
"자, 여기."
"응...."
불안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핸드폰을 받아 들고, 조심스럽게 화면을 확인해본다.
"......"
예쁘다. 분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상은 사진 속의 여자가 정말 예쁘다는 감탄이었다.
어딘가의 건물 화장실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깔끔한 타일과 잔잔한 조명 아래서 거울 너머로 셀카를 찍은 여자는 자신과 비슷한 흰색과 검은색의 오피스 정장 차림을 하고 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은 사진 너머로 봐도 머릿결이 굉장히 매끈하고 찰랑거린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몸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비슷한 건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워낙 몸매 라인을 드러내는 차림 탓에 사진 속의 여자가 자신보다 가슴이 크고, 날씬한 수준은 비슷하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최민석이 큰 가슴을 좋아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에 한층 더 기분이 불편했다.
가장 중요한 얼굴 쪽 역시, 자신이 조금 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쁘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와 선명한 이목구비, 여우처럼 살짝 치켜 올라간 색기 있는 눈매와 함께 엷게 웃으며 찍은 사진은 같은 여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뻤다.
"..예쁘네."
"그렇지?”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최민석의 태도는 기분이 조금 나쁠 듯하면서도 다시 사진을 확인해보면 당연한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대신, 허탈함이나 패배감 같은 감정이 가슴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예쁜 건 누나도 똑같은데 뭘."
"응..?"
"그렇잖아. 누나가 서연이보다 별로라고 생각했으면, 내가 여태 누나랑 계속 만나고, 이렇게까지 해서 내 걸로 만들려고 했겠어? 내 눈에는 누나도 서연이한테 꿇리지 않을 정도로 예뻐."
"......"
기습적으로 훅 들어오는 듣기 좋은 칭찬에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가슴이 쿵쿵 뛰어대기 시작해 작게 숨을 삼켰다.
"그, 그래..?"
"말했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반했다고. 누나도 엄청 예쁘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정말로."
"그래도.."
최민석의 칭찬에 멋대로 입꼬리가 씰룩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면서도, 힐끔 사진 쪽으로 시선을 돌려 유서연이라는 여자의 사진을 힐끔 살펴본다.
역시 예쁘다. 특히 몸매 쪽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리와 가슴 사이를 확대하기 위해 화면을 터치했다가, 손이 살짝 미끄러져 다음 사진으로 화면을 넘겨버렸다.
"아, 이게.. 응....?"
자신의 실수로 다른 사진으로 넘어간 핸드폰 화면에는 유서연과 또 다른 여자가 비슷하게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어 올린 사진이 띄워져 있다.
최근에 찍은 사진은 아닌 듯 겨울에 입기에는 조금 얇은 옷차림은 유서연 만큼은 아니지만 날씬한 몸매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유서연이 아닌 자신보다도 가슴이 작다는 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평균보다는 훨씬 크고, 너무 크지 않아 비율이 굉장히 예쁘게 잡힌 몸매라는 느낌이다.
팔꿈치까지 내려가는 긴 머리와 앞머리 한쪽을 귀 뒤로 넘겨 은근한 섹시함이 느껴지는 헤어스타일. 그리고 유서연과 눈매가 비슷하면서도 분위기가 확 다르게 느껴지는 웃는 얼굴.
이 여자도 예쁘다.
몸매 쪽도 가슴은 자신이 더 크지만 이겼다고 확신하기는 애매할 정도로 섹시하고, 얼굴 쪽은 잔잔하면서도 밝은 웃음 탓에 화사하게 느껴졌다.
"이건.. 또 누구야..?"
"아, 음.. 걔는 임예진이라고.. 서연이처럼 같이 살고 있는 앤데.."
빠직.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듯한 환청이 들려왔다.
한 명도 아닌 두 명. 아니,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장은 이렇게 예쁜 여자를 둘이나 끼고 지내면서도 자신에게 사랑한다느니 뭐니 하는 말을 속삭여댔다는 사실만이 칭찬을 들으며 겨우 가라앉혔던 언짢은 기분은 어느새 가라앉기 이전보다도 더 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