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2화 > 본격적인 관광, 그런데 야외 플레이를 곁들인 (3)
나름 만족스럽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옷만 갈아입고 나가려는데 현관 앞에서 여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일찍 나가시네요?"
일본어는 아직 제대로 배운 게 아니라 내 실력으로 회화가 잘 될지 조금 불안했는데, 약간 부자연스럽기는 해도 한국어로 말을 걸어준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모처럼 놀러 왔으니까요. 빈둥거리기만 하면 아깝잖아요."
"어머, 일본어도 할 줄 아시네요?"
이번에는 내 쪽에서 약간 어색하게 일본어로 대답하자 여직원도 웃음기 섞인 표정으로 놀란 척 반응해줬다.
"배운지 얼마 안 돼서 잘은 못 합니다."
"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시는데요. 손님 정도면 다니시면서 불편한 일은 없으실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사실 조금 불안했거든요."
사실 귀찮은 일이야 유서연이 알아서 해결해줄 테니 긴장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지만, 거리감을 좁히는 데는 이런 소소한 대화가 딱이었다.
물론 약한 최면을 사용해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건 기본이었다.
"어제도 여기 계셨던 것 같은데, 접객 담당이신가 봐요?"
"호호. 모처럼 와주셨으니까, 직접 맞이해드리고 싶어서요."
"아, 혹시.."
"맞아요. 제 가게거든요."
여직원이 아니라 여주인이었던 모양이다.
잠깐이었지만 돌아다녀 보니 다른 직원들도 서너 명쯤 있었고, 이렇게 비싼 여관의 사장이라면 접객까지 직접 할 필요는 없을 텐데.
하기야, 우리나라에 있는 호텔이나 모텔과는 또 방식이 다른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의외네요. 이렇게 젊고 예쁘신데, 주인분이실 줄은 몰랐어요."
"어머, 농담도. 이런 아줌마한테.."
"농담은요. 진짜 예쁘셔서 하는 말인데요. 그리고, 요즘은 30대 초반이면 아줌마라고 부르기는 너무 이르죠."
"네? 호호호.."
처음 했던 칭찬은 농담처럼 받아들이더니, 두 번째 칭찬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가 잔잔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부럽네요. 젊은 나이에 이런 고급 여관 사장이라니."
"호호. 아니에요. 그냥 부모님이 하시던 걸 물려받은 것뿐이라.."
그게 더 부러운 일이 아닌가 싶긴 했지만 젊다는 칭찬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에 깊게 따지지 않고 함께 적당히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기품 있게 웃고 있는 입을 가리고 있는 손가락 약지에 끼워진 반지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했다.
"결혼도 하셨나 보네요?"
"아, 네. 했죠."
여주인 역시 내 시선이 반지 쪽으로 향했다는 걸 알았는지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은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침 식사는 하셨나요?"
"네? 아침이라면 식당에서.."
뜬금없이 왜 아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하자 여주인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한층 매력적인 웃음을 자아냈다.
"입에는 맞으셨나요?"
"맛있었습니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속이 든든한 게 아침으로 딱이더라고요. 매일 먹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렇죠? 저희 남편이 요리를 참 잘하거든요."
"아아. 남편분이 주방장이셨구나."
왜 갑자기 요리 얘기를 꺼내나 했더니. 결혼 얘기가 나온 김에 남편 자랑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야 상대가 유부녀건 아니건 신경 쓰지 않는 편이지만, 그동안 상대했던 유부녀들은 모두 남편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이들뿐이라 기분이 묘했다.
'저렇게 웃으면서 남편 자랑까지 하고 있으니..'
완전히 없어진 줄 알았던 양심이 조금은 찔려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고, 지금까지와는 색다른 느낌이라 의욕이 솟았을 뿐이지만.
'평소랑은 다른 느낌으로 해야겠어.'
평소였다면 당연히 내가 특별한 손님이라는 식으로 최면을 걸어놓고, 일반 손님에게는 해주지 않는 비밀 서비스로 스스로 몸을 바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업무에 섹스를 덧붙이는 식이 위화감을 최대한 덜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괴롭혀주고 싶단 말이지.'
원래라면 사근사근하게 웃는 여자들은 부드러운 섹스로 녹여주고, 기가 조금 세다 싶은 여자들은 거칠게 몰아붙이면서 괴롭히는 게 취향일 텐데.
남편 자랑을 하며 웃는 여주인은 어째서인지 모르게 괴롭혀주고 싶은 기분이 자꾸만 솟아올랐다.
"아무튼, 부럽네요. 남편분이 요리를 잘하시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가족끼리 여관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우선은 대화가 어색하게 끊기지 않게 적당히 말을 받아주면서, 가볍게 최면을 건다.
[올해 들어 여관의 형편이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아직 위험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계속 수입이 줄어든다면 몇 년 안에는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아, 네. 호호. 그렇죠."
최면을 집어넣은 순간. 자연스럽게 웃고 있던 여주인의 눈빛에 살짝 어두운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가 다시 웃음 속으로 감춰져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최면을 걸 거라면 괜히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그래봤자 잠깐 웃으면서 얘기나 주고받은 정도라 노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지다 보니 조금은 아쉬웠다.
"그런데, 요즘 경영이 잘 안되지 않나요?"
"네, 네..?"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꿔서,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는 것처럼 카운터로 한 발짝 다가가 작게 속삭이듯 말하자 여주인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더듬는다.
"아무래도 불경기니까요. 물가도 오르고, 여행오는 사람도 줄어들 것 같아서요. 상황이 많이 안 좋죠?"
"딱히 그렇지는.."
"에이. 다 알고 왔는데."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하며 눈을 맞추자 여주인의 몸이 작게 흠칫 떨리는 게 보였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제가 조금 도와드릴 수도 있어요."
"그게, 무슨.."
아직 당황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조차 못 한 듯 묻는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지어진다.
"일주일. 일주일 동안만 조금 특별한 서비스를 해주시면 경영에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일단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서 조금 느릿하게 말하며 말하는 동시에 최면을 걸었다.
[이 남자는 여관의 사정을 모두 알고 찾아왔다.]
[이 남자의 제안은 자신이 묵는 일주일 동안 성적으로 '접대'를 해주면 여관의 경영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다.]
[당장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내서는 안 된다. 이런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을 남편을 포함한 누구도 알게 하는 것조차 안 된다.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
[이 남자는 굉장한 부자다. 이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여관의 경영난은 확실하게 해결될 것이다. 이 부분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번에 최면을 많이 걸긴 했지만 이번에는 '여관의 서비스'라던가 '상식적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같은 최면을 걸지 않았기에 막힘없이 최면이 들어갔다.
내가 한 건 여주인에게 내 제안을 이해시킨 것뿐이지, 내 제안이 당연한 일이라거나 옳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
"피, 필요 없어요..!"
조금 전까지의 기품있고 단아한 웃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불쾌감 가득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며 대답하는 모습에 더더욱 가학심이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아시잖아요. 이대로 가면 여긴 몇 년 안에 문을 닫게 될 겁니다. 남편도 있으시고, 아직 젊으신데 괜찮으시겠어요? 부모님께 물려받은 곳이라면서요."
"그, 그건.."
"딱 일주일입니다. 딱 일주일만 눈 딱 감고 고생하시면 경영난이 해결되는 거에요."
"그래도.. 남편이 있는데.."
남편이 없었다면, 홀몸이었다면 내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라는 뜻일까.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닐 테고,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남편을 배신하는 일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나온 말일 것이다.
잠깐 얘기만 나눠봤을 뿐이지만 그렇게 계산적인 타입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짧은 시간에 남편이 없었다면 받아들였을 거라는 가정까지 해봤을 리는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남편을 위해서라도 받아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부부가 나란히 직업을 잃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
이번에는 아예 슬쩍 시선을 돌리며 대답 자체를 피해버린다.
"저도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애인들이랑 놀러 온 거라 상대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끔 탕에 들어갈 때 같이 들어와 주면 좋겠다 싶어서 드리는 제안이니까요."
"읏..!?"
여주인이 시선을 돌리고 있는 사이, 카운터 위에 올려뒀던 손을 슬그머니 붙잡자 깜짝 놀라 팔을 확 당겨 손을 빼 버린다.
이런 반응이 불쾌하기는커녕 더 흥분되고 잠자리가 기대되는 걸 보니 평범한 취향이었던 예전에 비하면 나도 꽤 많이 뒤틀렸다 싶었다.
"아마 오늘 저녁 먹기 전에 애인들은 빼고 혼자 대절해서 탕에 들어갈 것 같은데. 그때까지만 결정해주시면 됩니다. 거절하셔도 정말 억지로 뭘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
말은 미련 없다는 듯이 하면서도, 뒤돌아서기 전에 다시 한번 최면을 건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차라리 눈 딱 감고 일주일만 고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여주인은 내가 뒤도는 사이에도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최면에 걸린 순간 다시 한번 눈동자가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더 몰아붙여서 당장 수락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혼자 고민하다 스스로 결정하는 쪽이 더 좋을 것 같았기에 더는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려 현관을 빠져나왔다.
"귀찮기는 해도 막상 오니까 좋긴 하네."
성격 자체가 워낙 집돌이 체질이라 그런지 약속 때문에 오기는 했어도 오는 내내 귀찮은 마음이 없잖아 있었는데.
객실에 딸린 노천탕도 즐기고, 평소랑은 색다르게 맛있는 아침도 먹고, 저녁에는 아예 탕 하나를 대절해서 쓸 생각을 하니 나름대로 만족스럽다.
거기에 생에 두 번째 외국인. 박음직스러운 일본인 유부녀와 섹스할 생각까지 하니 귀찮은 게 아니라 기다리는 게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몇 분 정도를 바람을 쐬고 있다 보니 우리 애들도 다 준비를 끝마쳤는지 현관 너머에서 발소리가 여럿 들리다가 드르륵 문이 열렸다.
"왔어?"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여자들 준비 오래 걸리는 거야 다 아는 건데. 빨리 끝내줘서 내가 고맙지."
유서연이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모텔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모습을 봤던 나로서는 몇 분 기다리는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통은 정말 가볍게 화장만 해도 10분, 20분씩은 걸리는 게 여자들의 준비였으니까.
우리 애들이야 피부가 워낙 사기적이다 보니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기는 해도 화장으로 가볍게 분위기를 바꾸는 정도는 필요하다 보니 몇 분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 갈까?"
"운전은 제가 할게요."
"부탁할게."
사실 운전은 내가 하고 싶었지만 유서연이 저렇게 하고 싶어 하니 미련 갖지 않고 넘겨줬다.
그리고 차 뒷좌석에 타면서, 안쪽에는 임예진이 자연스럽게 내 팔뚝에 달라붙고, 반대쪽에서는 약간 표정이 굳은 김민아가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았다.
"너, 여관 아줌마한테 최면 걸었지?"
"응. 걸었지."
너무 예상했던 이유라 딱히 당황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몽마끼리는 무슨 최면을 걸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조금만 의식해서 보면 최면에 걸렸다는 것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