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 캠퍼스의 최면 빌런 (6)
"강의 시간표 보내놨지?"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내려주기 전에 정혜수에게 확인차 묻자 곧장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보내 놨어요. 진짜, 밤새 그렇게 해놓고선 아침에 한 번 못한 게 뭐가 대수라고.."
"나한텐 큰일이야. 없으면 몰라도, 아침에 네가 옆에서 누워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나가면 얼마나 아쉬운 줄 알아?"
"..그딴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결국은 자기가 좋다는 얘기로 끝나서 그런지, 짜증은 내지 않고 고개를 슬쩍 돌리며 알게 뭐냐는 듯 대답해버린다.
전날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밤새 괴롭힌 것도 미안해서 오전 7시에서 한 시간쯤 더 자게 해줬더니 강의가 오전 9시부터 있다는 얘기를 뒤늦게 들었다.
섹스는커녕 씻고 바로 출발해도 아침 먹을 시간이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라, 오늘은 결국 모닝 섹스도 하지 못하고 차를 몰아 학교까지 도착했다.
그래도 기상한 뒤로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지난 탓에 발기는 가라앉았지만, 아침부터 밤새 쌓인 욕구를 풀지 못한 탓에 어딘가 답답한 기분만큼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이따가.."
"가기 전에 키스는 해주고 가야지."
"진짜.."
차 문을 열고 내리려는 정혜수를 붙잡고 키스를 조르자 짜증 내는 듯하면서도 살짝 부끄러운 표정으로 문손잡이를 놓고 몸을 돌려 몸을 밀착시켜온다.
"츄읏.. 응.. 츄릅.. 움.. 츄읍.. 쯉..♡"
아주 자연스럽게, 목을 끌어안으며 혀를 얽혀오고, 부드럽게 빨아주는 움직임에 나 역시 정혜수의 등을 감싸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혀를 섞었다.
"후읏.. 하아..♡ 이제 됐죠..?"
"한참 부족한데? 오늘 밤엔 진짜 기대해."
몇 분간 끈적하게 키스를 나눴지만 그래봤자 겨우 가라앉혔던 자지만 다시 불끈거리게 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정혜수도 시선을 슬쩍 아래로 내려 바지 앞부분이 터질 듯이 불룩해진 걸 보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따 점심때 하면 되잖아요. 미안하니까 조금만 참고 있어요."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사과하고 점심시간에라도 빼주겠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불안해한다는 게 느껴졌다.
하기야, 어젯밤에도 소리가 크게 나올 때마다 필사적으로 입을 틀어막고, 옆집에서 다시 문을 두드렸을 때는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고개를 푹 숙였을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옆집 여자는 내가 자지를 빨게 해주면서 잘 달래놨으니 내 기준으로는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정혜수가 나가고, 뉴튜브를 보면서 발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은 씨는 오후에 출근할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오전에는 사람이 없어서 한 사람씩만 도서관을 지키고, 오후에 세 명에서 근무한다고 했었던가.
아무튼 이나은은 도서관에 없었다.
그 대신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아줌마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 아줌마로는 발기도 되지 않는다.
'이나은은 오후에 따먹자.'
[이나은이 근무 중에 자리를 비우는 건 따로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찾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이나은을 찾는다면 티 나지 않게 적당히 얼버무려준다. 업무의 내용에 대해서는 묻지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는다.]
일단 이 아줌마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이나은의 빈자리를 알아서 메꿀 수 있도록 최면을 걸어뒀다.
다른 한 명은.. 오후에 봐야겠지만 예쁘다면 3P라도 즐기고, 그게 아니라면 이 아줌마와 똑같은 최면을 걸면 될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려놓고 도서관을 나와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이제 막 첫 강의가 시작했을 시간이라 그런지 어제 돌아다닐 때보다도 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반은 남자고, 여자라고 해도 내 눈에 차는 외모가 안 보인다.
그렇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니던 도중.
"오."
마침내 눈에 차는 먹잇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건물 현관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장신의 여자. 이나은과 마찬가지로 170은 넘을 것처럼 쭉 뻗은 다리와 큰 키. 날씬하면서도 확실하게 굴곡이 드러나는 가슴이 인상적이다.
연한 청바지에 하얀 긴 팔 셔츠, 그리고 얇은 가디건을 걸치고 있어 노출 자체는 적은 옷차림이었지만 몸매가 워낙 잘 드러나는 탓에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D컵, 아니 E컵 정도인가?'
보정 속옷이 아니라면 E컵일 것이고, 보정이 들어가도 최소 D컵은 될 법한 가슴이다.
얼굴 쪽은.. 인상만 놓고 보면 성격이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피로에 찌든 느낌이라 날이 서 있다는 게 느껴졌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타고났거나 관리를 잘한 여자들은 30대라고 해도 20대와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아서 구분이 어렵다.
그냥 연상 특유의 눈빛이나 표정 같은 분위기로 짐작할 뿐이었다.
'어떻게 한다.'
먹잇감은 찾았다. 하지만 당장 저 여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황인지라 뭐라고 최면을 걸기가 애매..
"교수님, 안녕하세요!"
'나이스다.'
때마침 지나가던 여학생이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준 덕분에 쉽게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내가 타깃으로 정한 여자, 여교수는 확실히 피곤한 모양인지 고개만 살짝 까딱이며 피곤한 목소리로 안녕, 하고 인사를 받아주고는 학생을 지나쳐갔다.
'교수였단 말이지.'
그냥 교수도 아니고 여교수다. 이건 따먹을 수밖에 없다.
일단 적당히 거리를 두고 뒤를 쫓으려고 했는데, 막상 쫓아가 보니 다른 건물이 아니라 내가 왔던 곳과는 다른 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교수님, 잠시만요."
"네? 누구.."
"1학년 최민석입니다.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래. 무슨 일이니?"
적당히 [최민석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다. 이름은 몰랐지만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라고 최면을 걸자 표정에서 경계가 누그러들며 조금 부드럽게 풀어진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가시는 거 보여서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퇴근하시는 길이에요?"
"아, 응. 좀 바빠서 밤새 있다가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오늘 휴강이라고 공지했을 텐데. 전달 못 받았니?"
"아뇨, 들었어요. 그게 아니라, 진짜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지금 운전해도 괜찮으시겠어요?"
"그게.."
[밤을 새긴 했지만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고 졸리다. 이대로 운전하면 정말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네. 택시라도 타야 하나.."
직접 실험해본 적은 없지만, 몸은 정신을 따라가는 모양인지 피곤하다는 최면을 걸었더니 정말로 표정이나 몸짓에서 조금 더 피곤해진 듯한 기색이 풍겼다.
"그러지 마시고, 제가 집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택시에서 잠들었다가 무슨 일 생길 수도 있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건.."
"괜찮죠?"
"그럼.. 이번만 부탁해도 괜찮을까..?"
아침부터 한 발도 못 뺀 데다가 도서관에서도 상대를 찾지 못한 탓에 평소 이상으로 최면을 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도 학교 학생이니까 믿을 수 있다.][너무 피곤하니까 이번만 부탁하기로 한다.][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연타로 새로운 최면을 걸어버리자 곧바로 거부감을 드러내던 여교수의 표정이 빠르게 누그러졌다.
평소에는 이렇게 마구 최면을 때려박기 보다는 천천히 돌아가는 방식을 선호했지만, 막상 해 보니 이런 방식도 나쁘진 않았다.
"그냥 잠깐 운전만 해드리는 건데요. 가요."
"응, 그래. 고마워."
철컥. 교수가 차키의 버튼을 눌러 잠금을 풀자마자 운전석으로 올라타 자리를 잡았고, 교수 역시 옆좌석에 들어와 앉았다.
남의 차를 운전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미 운전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덕분인지 딱히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키 좀 주실래요?"
"응.. 여기.."
교수에게 차 키를 건네받아 시동을 걸었다. 곧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네비가 켜졌다.
"네비에 집이라고 찍혀있는데, 여기에요?"
"응.. 거기야.."
대답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늘어지는 걸 보아하니 이젠 정말로 졸린 모양이다. 어차피 이것저것 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 곧바로 새 최면을 걸었다.
[너무 졸려서 안 되겠다. 최민석에게는 도착하면 깨워달라고 말하고 조금만 자야 할 것 같다.]
"저기..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조금만 눈 붙이고 있을 테니까 도착하면 깨워줄래..?"
"그럴게요. 주무시고 계세요."
"응.. 그럼 부탁할.. 게.."
최면이 얼마나 잘 들었으면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피곤해보일 뿐이었던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잠들어서 새근거리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
없는 피로를 만들어내는 건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이미 있는 피로를 늘리는 건 어렵지 않다. 처음 안 정보였다.
"..다행히 집도 가깝네."
네비에 찍힌 위치를 보니 차로 가면 기껏해야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근데, 혼자 사는 게 아니면..'
성욕에 밀려서 일을 휙휙 저지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집에 가족이 있으면 말짱 꽝인 상황이 아닌가.
그렇다고 모텔로 데려가서 따먹기에는 일이 더 번거로워질 것 같고.
"....일단 가보자."
도착해서 가족이 있다면, 아쉬운 대로 에스테틱에라도 가서 풀면 된다. 거리상 1시간 정도는 즐기고 나와도 점심시간에 맞출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차를 몰아 네비에 찍힌 아파트에 도착하고, 지하 주차장에서 교수를 깨우기 전에 잠시 옆에 내려둔 핸드백을 열어 지갑을 확인했다.
'정선화.. 나이는.. 서른둘..? 하여간, 세상 참 불공평하다니까.'
나이는 내 짐작대로였지만 얼굴만 놓고 본다면 20대 중반,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미모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봤던 학생 중에 평균 이하였던 여자들은 오히려 정선화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우도 꽤 있었으니 불공평하다는 말이 나와도 어쩔 수 없었다.
"교수님, 교수님. 도착했어요."
"으응.. 응.. 그래애..?"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깊게 잠들었던 건지, 반쯤 잠에 취해 말끝이 늘어지는 모습에 내심 성공을 확신했다.
[너무 졸려서 움직이기가 싫다. 이 상태로 조금만 자고 잠이 깬 뒤에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일어나셔야죠."
"으웅.. 여기서.. 조금만.. 갈 테니까.."
말과는 다른 최면을 걸면서 정선화의 어깨를 아주 살짝살짝 흔들자 오히려 몸을 웅크리며 어린애처럼 칭얼거린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건 최면이 아니었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차에서 내려 반대편 문을 열고, 정선화를 밖으로 조심스럽게 끌어내린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서 주무셔야죠. 제가 업어드릴게요. 자, 업히세요."
"으으응.."
이젠 저항하기도 귀찮은 건지, 결국은 우물쭈물 일어나 내 등에 업힌다.
정선화를 등에 업은 채로 주머니에 넣어둔 차키로 문을 잠그고, 지하 주차장 한가운데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잠든 사람의 가방을 뒤지는 일이나, 잠든 사람을 업어다 데려가는 일이나. 영락없는 범죄자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지만 아무런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
확실히 최면 능력이 강해진 만큼 더 과감해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