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화 > 욕구 불만 유부녀들과 19금 술게임 (3)
"남자들은 말이야, 성욕이 쌓이면 무슨 생각부터 들어? 여자들이랑은 다르게 그냥 신호가 확실하게 와서 모를 수가 없잖아."
"재, 재경아?"
다행히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것도 첫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위가 높았다.
아무리 편한 상대라지만 이건 좀 질색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최민석의 눈치를 살폈지만 의외로 최민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눈치였다.
"별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냥 '아' 하고 마는 느낌? 성욕이 쌓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아침에는 그냥 서 있기도 하고, 가끔은 피곤할 때 서기도 하거든요. 워낙 시도 때도 없이 그러니까 정말 별생각 안 들어요."
최민석의 대답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리 정말 솔직하고 가감없는 느낌이었다.
너무 노골적인 토크에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는 걸 느끼면서, 이재경 쪽을 힐끗 쳐다봤더니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최민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정말 시도때도 없이 설 정도로 쌓였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보통은 그렇게 되기 전에 알아서 해결하니까요."
"흐응.. 그렇구나. 그게 말이지, 오늘 민석이 너 말고도 헌팅하러 온 애들이 꽤 있었거든. 근데 걔들 눈빛이 있지? 활활 타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엄청 노골적으로 쳐다봐대서 조금 그랬었거든."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그랬었나? 솔직히 말하면 매번 시선을 느낄 때마다 긴장하느라 정말 어느 정도였는지는 제대로 기억 나지 않았다.
"누나들이야 워낙 예쁘고 몸매도 좋으니까 어쩔 수 없죠. 근데, 그렇게 보는 건 좀 다른 느낌이에요. 성욕이 쌓였다기보단 눈앞에 상대가 있으니까, 실시간으로 성욕이 차오르는 느낌?"
도대체 오늘만 예쁘다는 소리를 몇 번을 듣는 걸까. 남편과 한창 연애할 때도 자주 듣기 힘든 말이었는데. 최민석은 그냥 그게 정말 당연한 사실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예쁘다는 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게 싫다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둘이 다른 거야?"
"많이 다르죠? 평소에 서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아' 하고 서는 거고, 후자는 눈앞에 성욕을 자극할 만한 뭔가가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고,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게 되면서 서는 거니까요. 그냥 생리현상이라기보다는 진짜 욕구 쪽에 가깝죠."
"..듣고 보니까 정말 다르긴 하네. 그럼, 민석이 너도 우리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도 했겠네?"
"그야 뭐..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남자들은 다 어쩔 수 없어요."
스스로 설명해놓고는 그 질문이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되자 살짝 창피한 듯 멋쩍은 말투로 대답하는 모습이 살짝 귀엽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대답은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무슨 상상 했었는데?"
"그냥.. 별생각은 안했어요. 목이 가늘다, 피부가 깨끗하다, 가슴도 크다, 허벅지도 매끄럽고 예쁘다.. 그런 생각이죠. 눈으로 보는 와중에도 그냥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거예요. 진짜 창피하긴 한데, 벗으면 어떨까 상상도 해보고요."
"우리 민석이,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아주 음흉하네?"
"..진짜 불가항력이에요. 누나들은 안 그래도 예쁜데, 수영복까지 입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눈이 간단 말이에요."
"그래, 그래. 남자들은 어쩔 수 없는 거 알지."
정말 귀엽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아하니 이재경도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우리 민석이는 너무 착해보여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나 보네."
"하아.."
좀 전에 자기를 놀려댄 복수라도 하는 건지, 유독 짓궂게 놀려대는 탓에 최민석도 살짝 지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젠 정말로 적당히 하라고 중재를 해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정말, 적당히 좀 하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나만 또 나쁜 년이지."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음.."
이걸 또 변호를 해줄 줄은 몰랐는지, 이재경도 이번에는 살짝 양심이 찔리는 듯 찝찝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야, 누나가 장난이 좀 심했네. 미안해."
"진짜 괜찮은데.. 아무튼, 그럼 다른 고민은 없어요? 은설 누나는 아까부터 고민하는 것 같던데."
"응? 나?"
"네. 아니었어요?"
"아니, 뭐.."
생각을 하려다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느라 결국 아무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저렇게 들어주고 싶다는데 정말 됐다고 말하는 것도 조금 그렇고, 아무래도 가슴에 응어리진 감정이 조금 있다 보니 자꾸만 최민석에게 솔직하게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만 간다.
얘기를 해보니 말도 잘하는 것 같고, 성격도 착하고 이해심도 많아서 이런 얘기라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을까.
나이가 조금 어리긴 해도 남편과 같은 남자니까 남자의 시점에서 뭔가 조언 같은 걸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입술이 불안하게 달싹거렸다.
'..그냥 살짝만 얘기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후회할 것만 같다.
어차피 최민석은 성격도 좋고,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사이니까 말한다고 해서 나중에 뭔가 문제가 생길 일도 없을 테니까.
"이건 좀 창피한 얘기인데.."
*
'드디어 먹혔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층 더 진지해진 눈빛으로 입을 여는 유은설을 보며 내심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이 루프탑에 오게 만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언제쯤 오게 될지를 몰라서, 한참 전부터 여기서 수영도 하고 누워서 우리 애들이랑 영상 통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온 뒤에는 적당히 틈을 봐서 말을 걸었고, 다시 한번 경계심을 낮추는 최면을 강화하고 대충 듣기 좋을 만한 말만 해주면서 그녀들의 감정에 '공감'해줬다.
적당히 너무 심하지 않은 말로 남편이 너무했다는 말로 두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기분을 어느 정도 좋게 만들어줄 수 있었으니까.
그 뒤에는 적당히 무해한 척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얘기를 꺼내고, 두 사람에게 동시에 [최민석에게는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다. 털어놔도 괜찮을 것 같다.] 같은 최면을 걸었다.
그 최면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지 오늘 만난 사이에 하기에는 지나치게 성적인 얘기가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예상하고 있던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나오질 않아서.
다시 한번 [최민석에게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라고 최면을 걸고 나서야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괜찮아요. 비밀은 확실하게 지킬 게요. 어차피 말할 사람도 없지만."
"풋. 그래. 민석이 너니까 믿고 얘기하는 거다?"
처음까지만 해도 이재경이 질문을 하려고 하고, 유은설이 그걸 불안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재경 쪽에서 '설마?' 하는 눈빛으로 유은설을 지켜보고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유은설은 이미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는지, 이재경의 눈빛은 아예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속에 담긴 얘기를 조심스럽게 입밖으로 꺼냈다.
"그게 말이지. 남편도 정말 좋은 사람이고, 결혼생활도 만족스러운데, 정말 딱 하나 불만이 있거든."
유은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지만, 굳이 그 사이에 기어들어 그게 뭐냐고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유은설 쪽에서 알아서 다 말할 테니까.
"그게.. 남편이랑 관계를 안 한게 벌써 반년이 넘었거든.."
과연. 남편과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런 이유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해변에서 본 두 사람의 남편들은 딱 봐도 체격이 괜찮고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인상이었으니까.
이렇게 꼴리는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으면서 그럴 거라고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나였으면 절대 안 그랬을 테니까.
힐끗 이재경의 반응을 살펴보니, 조금 당황하는 듯하면서도 끼어들어 유은설을 말리려고는 하지 않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본인도 제대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관계라면.. 섹스.. 말하는 거예요?"
"아, 응. 아무튼, 그렇거든. 그래서 이번에 여행 오면서 안 어울리게 수영복도 노출 많은 걸로 입어 보고 남편 쪽에서 먼저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남편분 쪽에서 술 마시고 그대로 뻗어버린 거네요."
"응.."
"재경 누나도요?"
"나도.. 뭐.. 응.. 그렇지.."
"후우.."
아주 좋다. 남편에 대한 불만. 그걸 빌미로 파고들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써먹기 딱 좋은 불만일 줄이야.
양쪽 다 남편들이 이런 꼴리는 여자들을 아내로 두고 몇 달씩이나 섹스리스로 지내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국 유은설과 이재경 둘 다 남편이 상대를 해주지 않아 욕구 불만 상태라는 것 아닌가.
아무튼, 운이 좋은 건 좋은 거고,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기에 제대로 각을 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왜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정말 너무하긴 하네요."
적당히 안타까운 척, 마음에 들지 않는 척 목소리를 가볍게 깔고 투덜거리듯 말하자 두 사람의 눈빛에서 은근히 기대하는 기색이 드러난다.
"저야 자세한 사정을 정확히는 모르니까 함부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해도, 섹스리스는 이혼 사유도 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여자들이 남자를 상대해주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만, 여자들도 성욕이 강한 사람은 강하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공감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혹시, 누나들 쪽에서 먼저 하기 싫다고 한 건 아니죠?"
"전혀. 설이 쪽은 자기 쪽에서 자존심 접고 해달라고까지 했는데 피곤하다고 거절당하기까지 했는걸."
유은설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이재경 쪽에서 불쑥 끼어들어 물어보지 않은 정보까지 다 불어버렸다.
'진짜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이재경과 유은설 중 어느 쪽이 더 취향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유은설 쪽이다. 가슴이 더 크고 글래머한 인상이니까.
물론 유은설에 비해 조금 모자랄 뿐이지, 몸매도 좋고 기가 셀 것 같은 이재경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지만.
아무튼, 유은설 같은 여자가 먼저 섹스해달라고 조르는데, 그걸 피곤하다고 거절한다니. 솔직히 말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지쳤거나 아예 안 설 정도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럼 확실히 남편분이 잘못한 거죠. 평일에는 피곤해서 그렇다 쳐도, 주말에 쉬었으면 기억해뒀다 밤에 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건 피곤하단 말로는 변명이 안 되죠."
"그렇긴.. 한데.."
"맞아, 맞아. 말로는 피곤하다면서 애들이랑은 잘만 놀아준다니까? 이러다가 애들한테 질투하게 될 것 같아서 걱정 될 정도라니까."
아직은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은설에 비해 이재경은 이제 아예 신이 나서 또 묻지도 않은 얘기를 술술 들려준다.
"그리고, 그런 걸 떠나서 그냥 이해가 안 가기도 해고요. 누나들처럼 예쁜 사람이랑 같이 자는 건데. 암만 피곤해도 애들이랑 놀아줄 기력까지 있으면.. 진짜 이해가 안 가네."
남편들의 사정 따위는 관심도 없다. 유은설과 이재경. 이 두 사람이 원하는 건 어차피 자기들 기분에 공감해주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것뿐일 테고,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떠오르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누나들이 모처럼 마음 먹고 수영복도 예쁘게 입어줬는데. 예쁘다는 말은 해줬어요?"
"그게.."
"해주긴 했지..?"
서로 살짝 눈을 맞추며 대답하긴 했지만, 말투를 보아하니 그냥 정말 상투적으로 툭 내뱉었을 뿐 제대로 칭찬해준 건 아닌 모양이다.
이 정도면 확실히 아내들 쪽에서 불만을 가져도 할 말이 없다.
물론, 내가 그걸 훔쳐먹는다면 할 말이 많겠지만, 어차피 알지도 못하고 넘어갈 테니 그런 건 애초에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고.
상황은 이제 충분히 이해했으니, 슬슬 본론 쪽으로 넘어갈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