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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398화 (398/775)

< 398화 > 욕구 불만 유부녀들과 19금 술게임 (1)

'결국 아무 일도 없었네.'

옆방에서 애들이 자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모처럼의 여행인데.

애들을 재우고 나와 보니 기분 좋게 쿨쿨 잠들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아쉬운, 아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재경에게 남자들은 30대가 넘어가면 성욕이 줄어들고, 여자들은 오히려 성욕에 불이 붙는다던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평소 하는 짓궂은 농담이겠거니 하고 적당히 넘어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의 처지가 딱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몸을 섞었던 게 반년도 전에 있던 일이었으니, 그닥 섹스를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점점 욕구가 올라오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저번 달에는 용기를 내서 남편에게 관계를 요청했었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었고, 그 뒤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남편 쪽에서 다가와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던 건데.

"하아아.."

스스로도 살짝 놀랄 정도로 크게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저녁 식사 때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잠든 남편은 미동하는 기색도 없이 숨소리만 내뱉고 있을 뿐이다.

'하고 싶어..'

원래부터 느끼기 힘든 체질이라 그런지, 작년까지만 해도 섹스에 별 흥미가 없던 자신의 몸이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 기분 좋지는 않더라도, 안쪽을 채워주는 느낌이나 서로 밀착해 체온과 숨결을 나누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그리웠다.

'재경이는 어떻게 됐으려나.'

이번 동반 여행을 권유한 유재경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편과의 섹스리스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 여행에서 섹시한 수영복으로 서로 남편에게 어필해서 잠자리를 가져 보자는 조금 부끄러운 계획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했다.

'같이 술이라도 마시면 기분이 좀 풀어질 것 같은데. 한창 하고 있을 때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우우웅-.

이재경에게 메세지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도중 협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며 진동 소리를 냈다.

[이재경 : 설아, 바빠?]

"핫.."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메세지를 확인해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감정과 함께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재경 : 바로 확인하는 거 보니까 아무 일도 없었나 보네. 정우 씨도 자고 있어?]

[유은설 : 응. 애들 재우고 나오니까 자고 있더라고.]

[이재경 : 창현 씨도 그래. 저녁때 둘이 그렇게 마셔대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

[유은설 : 어쩔 수 없지 뭐. 휴가 첫날이잖아. 애들 놀아주느라 피곤하기도 했을 테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이재경 : 아, 몰라. 짜증 나. 아까 보니까 꼭대기 층에 수영장에서 술도 마실 수 있는 것 같던데. 둘이 바람 쐬면서 술이나 마실래?]

"하여간.."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어쩜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마침 자신도 이재경과 한잔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먼저 권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남들보다 조금 소극적인 자신에 비해, 밝고 당당한 이재경의 성격은 안 맞을 듯하면서도 여러모로 잘 맞았다.

성격은 달라도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한 덕분에, 이재경 쪽에서 늘 먼저 이런저런 것들을 권유해주는 덕분이었다.

"..그래. 술이나 마시자."

여러모로 아쉽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된 걸 어쩌겠는가. 친구와 둘이 술이라도 마시고 풀어버리면 되겠지.

이재경을 위로하기 위해 급하게 내뱉은 말이긴 했지만, 아직 첫날일 뿐이니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유은설 : 그래. 마시러 가자.]

[이재경 : 수영장이랑 같이 있는 곳이라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야 한다더라. 갈아입고 가운 걸치고 나와.]

"수영복..?"

이재경이 하도 부추겨서, 그리고 반쯤은 스스로 원해서 입은 옷이었지만 30대에 들어선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주책이라고밖에는 생각 못 할 비키니를 떠올리니 괜한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어울리기는 어울렸는지, 정작 관심을 가져주길 원한 남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잠깐 쉬는 사이에 열 명이 넘는 남자들이 다가와 자신과 이재경을 꼬시려고 들었었다.

'..기분 좋긴 했지.'

물론 꼬신다고 해서 넘어가 줄 생각은 전혀 없었고, 대부분이 남편이 있다는 말과 함께 왼손 약지에 끼운 반지를 살짝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포기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그래도 남편과의 관계가 점점 줄어들면서 이젠 나도 아줌마가 됐나보다,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졌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자존감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면서도 은근히 목덜미나 가슴, 허벅지를 훑어내리는 시선도 예전과는 달리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도 않았었고.

중간에 왔던 제일 잘생겼던 남자애는 정말 듣기 좋은 말을 많이 해줘서 간만에 제대로 힐링 받는 기분마저도 들었었다.

"아, 재경이 기다리겠다."

그렇게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머리를 붕붕 휘저으며 일어나 잠든 남편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당당하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뭐야,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오래 걸리긴. 메세지 받고 바로 나온 거야."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툭 던지는 목소리에 마찬가지로 웃음기를 머금고 대답했다.

애초에 바로 옆 객실로 잡아뒀으니, 이재경 쪽에서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늘은 진짜 마시고 죽자."

"죽는 건 안 되고. 알지?"

"난 몰라. 나 마시다 죽을 것 같으면 네가 들쳐업고 병원까지 데려가 줘."

그래도 속에 쌓인 게 많은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와중에도 투덜거리는 느낌이 조금씩 느껴진다.

물론 이재경의 심정이야 당연히 이해하고 있었고, 저렇게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감정을 추스리는 성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 적당히 받아줄 수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야외로 나오니 적당히 시원하고 습한 공기가 확 밀려든다.

시야 정면으로는 어덕어둑해진 하늘과 조명을 받은 바다가 넓게 탁 트여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기분이 살짝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아. 좋다. 그래도 밖에 나오니까 좀 낫네. 그치?"

"응. 그렇네. 경치도 예쁘고. 괜찮은 것 같아."

이재경 역시 자신과 같은 기분을 느꼈는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기지개를 쭉 켜고는 걸친 가운을 벗어두고 라운지 바가 있는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간다.

자신 역지 마찬가지로 가운을 벗어두고, 이재경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래도 이렇게 쳐다보는 건 적응이 잘 안되네.'

해변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자신의 몸을 은근하게 훑어내리는 시선이 느껴져 기분이 미묘하다.

싫지는 않지만 마냥 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일단 술은 생맥으로 시키고, 안주는 뭘로 할까?"

아까까지만 해도 마시고 죽겠다고 하더니, 잘 취하지도 않는 맥주를 고르는 모습에 풋 웃음이 흘러나왔다.

"..글쎄? 재경이 너 입맛대로 시켜. 난 가리는 거 없잖아."

"그래. 너한테 물어본 내 잘못이지. 그럼 모둠 튀김, 이걸로 한다?"

"그렇게 하자."

둘이 같이 뭔가를 먹을 때면, 가리는 게 없는 자신과는 달리 어느 정도 편식이 있는 이재경의 입맛에 맞춰 메뉴를 고르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이럴 때마다 한마디씩 틱틱 건네는 것도, 항상 자기 쪽에서 메뉴를 골라야 하다 보니 이젠 상투적으로 나오는 말에 불과해 기분 나쁘게 느껴질 것도 없었다.

주문을 끝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자 먼저 대형 컵에 담긴 맥주가 도착해 테이블 위로 턱 내려졌고, 서로가 뭐라고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이 곧장 컵을 들어 컵에 담긴 내용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너무 차갑고 양이 많아서 원샷 같은 건 무리였고. 그냥 서로 적당히 마셨다 싶은 시접에 잔을 턱 내려놨다.

"하아아. 시원하다."

먼저 잔을 내려놓은 이재경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고, 자신 역시 똑같이 잔을 내려놓고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오래 친하게 알고 지낸 사이인 만큼 가벼운 얘기로 간을 볼 것도 없이, 곧장 하고 싶었던 깊은 이야기가 이재경의 입에서 먼저 흘러나왔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벌써 여섯 달 째잖아. 여섯 달째. 설이 넌 일곱 달째라고 했었지?"

"후우.. 그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노골적인 질문에 솔직하게, 곧바로 대답할 수 없었을 텐데. 서로의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사이인 덕분에 자신도 속내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한탄할 수 있었다.

"일하느라 피곤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어떻게 여섯 달을 아무것도 안 하고 방치해? 같이 잠만 자려고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몰라. 나는 아예 먼저 해달라고 했었는데, 대놓고 피곤하다고 까였었잖아."

"아.. 그건 진짜 너무하긴 했어.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몇 달씩 안 했으면 여자 쪽에서 먼저 해달라고 하는 건 피곤해도 해줘야 하는 건데. 정우 씨는 평소에 그렇게 눈치 좋은 사람이 왜 그렇게 눈치가 없대?"

"원래 그랬어. 연애할 때부터 다른 건 다 잘하는데 유독 나랑 있을 때만 눈치 없이 굴었잖아. 그냥 돌직구로 번호 달라고 하고, 돌직구로 사귀자고 하고, 돌직구로 결혼하자고 하고. 뭘 바라겠어.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하지 않았을 남편에 대한 험담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물론 이재경과 있을 때 한정이긴 했지만, 이렇게 뒤에서 불평이라도 하고 나면 속이 조금은 후련해진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이럴 때만큼은 참지 않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래. 너랑 비교하면 난 다행인 편이지. 못한 기간도 한 달 더 짧기도 하고. 원래는 내 쪽에서 먼저 얘기 꺼내려고 했었는데. 너 거절당한 거 보고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더라. 나도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고."

"그랬어? 창현 씨는 그래도 눈치 좀 있는 편이니까, 네가 먼저 해달라고 하면 해줄 것 같은데?"

"몰라, 몰라. 결혼하고 나면 있던 눈치도 다 없어지나 봐. 그이도 정우 씨랑 다를 거 하나도 없어. 내 생각은 하나도 안 해준다니까. 애들이랑은 또 잘 놀아줘서 뭐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막말로 그렇게 피곤한데 왜 애들이랑은 놀아주고 나랑은 안 해주냐고 따질 수도 없는 거잖아."

"그렇.. 긴 하지."

자신의 남편도 퇴근한 뒤에는 피곤하다고 하면서도 애들이랑은 곧잘 놀아주는 좋은 남편이었다. 섹스만 제외한다면 자신에게도 항상 부족한 것 없이 잘 대해주고 있었고.

"요즘은 좀 못 해줘도 좋으니까, 밤에 상대만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더라. 자존심 상하게. 한창 연애 할때는 자기 쪽에서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으면서 말이야."

"..자기들은 나름대로 티 안 내려고 하는데 다 보이는 게 웃겼지."

이재경의 말에는 백 번 공감한다.

애 보는 게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힘드냐고 물어보면 그런 것도 아니고,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

애들과 놀아주는 것도 좋지만, 조금은 자신에게도 신경 써줬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게 그립단 말이야. 오늘 우리한테 헌팅했던 애들 있잖아. 걔들 눈빛 봤지, 아닌 척하면서도 다 보이게 눈으로 장난 아니게 훑어대는 거. 그이도 그런 눈빛 좀 해주면 좋을 텐데."

"에이. 그래도 그건 너무 갔지. 그래도 뭐.. 그랬으면 좋긴 하겠네."

"그치? 그치?"

이것 역시 자신이 방에서 나오기 전에 했던 생각이라, 가볍게 핀잔을 주면서도 공감해주지 않을 수는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걔 있잖아, 걔는 좀 마음에 들긴 했어."

"응? 누구?"

"이름이.. 아, 그래. 최민석. 걔는 유독 잘생기기도 했고, 몸도 좋았고. 다른 애들은 그냥 바로 돌아갔는데 걔는 한참 붙어서 우리랑 놀아주다 갔잖아."

"하긴.. 잘생기긴 했었지."

몸은.. 그렇게 좋았었나? 처음에는 긴장해서 잘 못 봤었고, 나중에는 그냥 분위기가 편해져서 몸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던 탓에 잘 기억나지 않았다.

잘생겼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지만.

"걔는 똑같이 어린 데도 다른 애들처럼 불편하고 그런 느낌이 전혀 없어서 좋더라고. 애가 말도 듣기 좋게 잘해주고."

"음.. 그렇긴 하더라."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조금 경계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냥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편하게 느껴지고 말도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걔도 여기 묵는다고 했으니까. 또 마주칠 수도 있겠네."

"그렇겠네."

마주친다고 해서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워낙 편하게 대화했던 상대라 그런지 기억 속에서도 호감으로 남아있고, 마주치면 반갑긴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최민석의 얼굴을 자세히 떠올려 보려는 순간.

"어? 은설 누나?"

결혼하고 아줌마가 된 뒤로는 들어볼 일이 거의 없었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누나라는 호칭이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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