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유부녀든 뭐든 맛만 좋으면 그만이지 (2)
"서른.. 셋인데.."
"네에? 진짜요? 많아 봐야 스물여섯, 일곱 정도 될 줄 알았는데. 거짓말 아니에요?"
뭐가 그리도 걱정인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하는 것처럼 은근히 이쪽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이를 밝히는 유은설의 말에 조금 과장되게 놀라는 척 대답했다.
"얘, 얘는. 아무리 그래도 이십 대는 아니잖니."
경계심을 풀어둔 덕분인지, 당황하고 어이없어하는 와중에도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는 게 느껴져서 내심 웃음을 흘렸다.
"아니에요. 저는 진짜 저랑 한두 살? 그 정도밖에 차이 안 날 줄 알았는데. 진짜 거짓말 하는 거 아니에요? 저 떼어내려고."
"아니라니까아. 진짜 삼십 대야."
여자들이 어려 보인다는 말을 좋아하는 거야 이젠 당연한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이었지만, 20대 애들보다는 확실히 효과가 잘 먹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유은설의 외모는 눈빛이나 표정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성숙한 느낌만 아니라면 정말 20대 중후반으로 보기에 충분한 수준이기도 했다.
얇은 여름용 후드를 걸치고는 있었지만 풀어둔 지퍼 사이로 드러나는 새하얀 면에 검은색 끈으로 연결된 비키니 차림의 몸매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고.
"아닌데..? 진짜, 진짜 많이 쳐 줘도 스물여덟? 아홉? 그 이상으로는 절대 안 보인다니까요?"
"얘는.. 주민 등록증이라도 보여줄까?"
"네. 보여주세요."
"어, 어..?"
그냥 대화의 흐름상 적당히 내뱉은 말에 바로 보여달라고 할 줄은 몰랐는지, 살짝 풀어졌던 표정이 작게 당황으로 물드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걸어둔 최면이 다시 효과를 발휘했는지, 이내 당황하는 느낌이 가라앉았다.
"진짜 못 믿겠어서 그래요. 어차피 내가 그거 보고 뭐 할 것도 아닌데, 한 번 보여줘도 괜찮잖아요."
"에휴, 알았어. 보여주면 되지?"
유은설은 졌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걸치고 있던 겉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지갑 안에서 곧바로 민증을 꺼내 내 쪽으로 내밀었다.
"봐, 진짜지?"
내가 민증을 받아 사진과 숫자를 확인하자 이제 됐냐는 듯 당당한 목소리로 묻는다.
"와.. 진짜네요..? 아니, 근데 이렇게 어려 보이는 게 말이 되나..? 보고도 안 믿기는데요?"
"정말.. 끝까지 그럴래?"
"아니, 누나 말은 믿는데. 너무 신기해서 그래요. 솔직히 지금도 스물여섯 정도로 밖에는 안 보이거든요."
"얘는.. 어디 가서 이십 대라고 말하면 놀림만 당할걸."
처음부터 계속해서, 노골적으로 듣기 좋은 칭찬만 해줬더니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거의 사라졌다.
지금은 그냥 예의상 빼면서 즐기고 있다는 느낌만 들었다.
"설마요. 오히려 이십 대라고 말해도 다들 믿을걸요? 나중에 한번 해 봐요. 누구 말이 맞는지."
"그런 걸 어떻게 하니? 창피하게."
"창피할 게 어딨어요. 그냥 누나가 예쁜 건데."
"정마알.. 그리고, 아직도 누나라고 부를 거야?"
"누나가 누나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거야, 뭐어.... 그래. 편한 대로 해."
아줌마, 사모님. 그런 단어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지만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다. 유은설도 내심 그렇게 불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적당히 말을 얼버무렸다.
"애들이랑 왔다고 했었죠? 애들은 몇 살이에요?"
"응? 첫째가 일곱 살이고, 둘째가 여섯 살이야."
"연년생이네요? 안 힘들었어요?"
"당연히.. 힘들었지. 그래도 낳고 보니까 힘든 게 싹 날아가는 기분이라 좋았어."
이번 발언과 표정은 확실히 어린 애들은 지을 수 없는 부드러우면서도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하반신으로 피가 몰릴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이런 여자를 따먹어서 완전히 쾌락에 녹여버리면 어떤 표정이 될까. 그렇게 생각하면 흥분을 참기 힘든 것도 당연했다.
"그럼, 애들이랑 남편 분은 놀러 가고 누나만 남아있는 거예요? 너무한데요?"
"아, 아니야. 애들이 아빠를 좋아하거든. 애들 아빠는 평소에는 바쁘기도 하고, 이럴 때 같이 놀아줘야지. 내가 남겠다고 했어. 애들이랑 놀아주는 것도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
"흐음.. 그래요?"
뭔가 느낌이 올 것도 같은데. 아직은 조금 애매하다.
"하긴, 애들 보는 게 힘들 것 같긴 해요.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되면.."
"..으응. 꼭 그렇지도 않아. 아예 아니라고는 못 해도, 가족이니까."
그냥 편하게 말이나 트려고 경계심을 풀어둔 건데. 나를 거의 경계하지 않는 탓인지 중간중간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좋다.
그야 뭐, 아무리 자기 애라고는 해도 애 보는 게 보통 일도 아니고, 그걸 둘이나 돌봐야 하면 정신 이전에 체력적으로 피곤한 게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 분은 어때요? 애들 돌보는 건.."
"어머, 누구세요?"
일단 애들 돌보는 일에서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그쪽 부분으로 더 깊게 파고들어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새로운 목소리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남자가 아닌 상당히 밝은 느낌의 여자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말을 멈추고, 시선이 홱 돌아가며 상대의 외모를 살폈다.
'와.. 이건 또..'
유서연과 같은 타입의 단발에 단정한 느낌을 주는 유은설과는 또 다른 긴 생머리에 C컵 정도로 보이는 가슴과 조금 더 날씬하고 매끄러운 몸매가 아주 훌륭하다.
'저런 걸 튜브탑 비키니라고 하던가..?'
하얀색의 유은설과는 달리 어깨끈조차 없는 검은색의 천으로 가슴을 빙 둘러 감싸놓은 수영복은 노출 면적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새하얀 어깨와 윗가슴,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 있어 꼴리는 느낌이 장난이 아니다.
얼굴 쪽은, 마찬가지로 합격. 유은설과 마찬가지로 성숙한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밝고 시원스러운, 조금 장난기가 느껴지는 인상의 미인이었다.
D컵부터 거유로 치는 내 기준에서는 가슴 사이즈가 조금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얼마든지 감사하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 그게.."
"은설 누나가 너무 예뻐서 헌팅하려고 왔었어요."
대화에 끼어들어 뭐라고 설명하려는 유은설의 말을 끊고, 당당하게 목적을 밝히며 유은설과 마찬가지로 최면을 걸어 경계심을 확 낮춰버렸다.
그랬더니, 곧바로 씨익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고는 양손에 들고 있던 음료수 중 하나를 유은설에게 내밀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내가 뭐랬니, 설이 너 정도면 젊은 애들한테도 충분히 먹힌다고 했지?"
"으읏.."
둘 사이에 뭔가 따로 오간 얘기가 있는 모양인지, 유은설은 부끄러운 듯 뺨을 살짝 붉히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음료수를 받아들며 슬쩍 시선을 피하기만 한다.
새로 온 여자는 그런 유은설의 반응이 퍽 재밌다는 듯 킥킥 웃어대고는, 유은설의 옆에 있는 비치배드가 아닌 내 바로 옆자리에 털썩 앉아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쳐 왔다.
"설이는 능력도 좋아. 이렇게 잘생긴 애가 먼저 말도 걸어주고. 아니, 아예 헌팅하러 왔다고 했지?"
"야, 야아..!"
둘이 사이가 꽤나 좋은 편인지, 서로 말도 편하게 하고 농담도 짓궂게 잘 주고받는 느낌이다. 지금이야 새로 온 여자 쪽이 일방적으로 놀려대고 있을 뿐이었지만.
아무튼,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노는 법이라고 예쁜 유부녀끼리 잘도 달라붙어 다닌다 싶었다.
"나이는 몇 살이야?"
"스물넷이에요."
"스물넷? 어머, 진짜 어린애네? 나는 몇 살일 것 같아?"
뜬금없이 사람을 어린애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내가 물어봐야 할 질문을 자기 쪽에서 먼저 건네는 것도 우습다.
"은설 누나랑 동갑이에요?"
"뭐야, 설이 나이는 이미 들었어? 응. 맞아. 동갑이야. 그런데, 나이 듣고도 안 가는 거야?"
"어차피 오자마자 남편 있다고 까였거든요. 지금은 그냥 돌아다니다 쉬고 싶어서 말 상대나 해달라고 달라붙어 있던 거였어요."
"흐응. 그랬구나아. 설이가 딱 마음에 들어서 왔을 텐데. 아쉽게 됐네?"
"뭐, 아쉽긴 한데 어쩔 수 없죠. 남편도 있고 애들도 있다는데. 은설 누나가 너무 예뻐서 얘기만 해도 재밌긴 해요. 오늘 거의 하루종일 돌아다닌 것 같은데. 누나만큼 예쁜 사람을 못 봤거든요."
"저, 정말..! 자꾸 누나 놀릴래!?"
방금까지만 해도 거의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잘만 받아주더니, 친구 앞에서 또 칭찬을 들이붓자 아까 이상으로 부끄러워하며 반쯤 정색까지 하면서 따지기까지 한다.
새로 온 여자는 그게 또 재는 모양인지 킥킥 웃어대고 있었고.
"아,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나? 나도 관심 있어?"
"누나도 은설 누나 못지 않게 예쁜데요 뭘. 꼬시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 상대만 해달라는 거고요."
"흐응.. 그래? 누나는 이재경이야. 너는?"
"최민석이에요."
"민석이라고 하는구나? 우리 민석이, 립서비스가 장난이 아닌데, 혹시 선수 아니야?"
"선수는 무슨요. 누나들, 제가 꼬시면 넘어올 거예요?"
"에이. 그건 아니긴 하지. 그치?"
"그거야 뭐.."
반쯤 농담 삼아 던진 말이긴 했지만, 이재경의 눈치 좋은 발언에 살짝 찔리는 기분이 들어 오히려 더 당당하게 밀고 나가자 두 사람 다 그건 절대 아니라는 듯 당황하지도 않고 당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 근데. 이렇게 부부 동반으로 여행오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누나들은 어디서 만나서 친해진 거예요?"
"우리? 원래는 대학 동기였는데, 결혼도 같은 시기에 하고, 임신도 같은 시기에 해서 병원에서부터 산후조리원까지 같이 붙어있으면서 엄청 친해졌지."
내가 먼저 노렸던 유은설이 아니라, 성격이 밝아 보이는 이재경 쪽에서 자연스럽게 말을 받아 대답해버렸다.
'1대 1이면 파고들기 쉬웠을 텐데. 두 명을 같이 건드리려니까 애매하네.'
막 본격적으로 유은설에 대해 파고들려고 했던 타이밍에 이재경이 끼어든 것도 있고. 거리는 여러모로 가까워진 느낌이지만 정작 얻은 정보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은설 누나는 애도 둘이라던데. 그럼 누나도 둘이에요?"
"아니? 나는 한 명이야. 딸 하나."
"그래도 누나는 좀 낫겠네요. 은설 누나는 애들이 좋긴 한데, 둘이나 있다 보니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애 돌보는 게 힘들긴 하지. 나도 딸 하나만 키우는데도 맨날 피곤할 정도인데, 설이는 아들만 둘이니까. 나한테는 맨날 괜찮다고 하더니, 민석이한테는 솔직하게 말했네? 조금 섭섭한데?"
"그냥.. 뭐.."
"사실 힘든 게 당연하죠. 여섯 살, 일곱 살이면 한창 체력도 넘치고 사고도 제일 많이 칠 때인데요."
"그건 그래. 애기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울기는 해도 맨날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어떻게 돌봐줄 수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유치원도 다니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니까. 여자애인데도 툭하면 어디서 넘어져서 돌아오고, 아주 정신이 없어."
육아 쪽은 정말 쥐뿔도 모르지만, 애초에 애들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 적당히 듣기 나쁘지 않은 선에서 애들이 힘들게 할 것 같다고 말해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두 분 다 남편분들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이렇게 같이 휴가도 와주고, 애들이랑도 잘 놀아주고."
이젠 더 경계심을 줄이고 거리를 좁히기도 애매하다 싶어서, 미리 생각해두고 있던 남편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상대가 이렇게 둘이 될 줄은 몰랐지만, 이 둘을 같이 따먹을 수 있다면 이 정도 불편함과 귀찮음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