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383화 (383/775)

< 383화 > 클럽 진짜 마음에 드는데? (5)

"아, 예?"

"잠깐 앉아서 좀 쉬고 싶은데, 합석 괜찮을까요?"

여자 쪽에서 먼저 다가올 거라더니, 앉은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사람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경험해보고 싶어서 온 만큼 당황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예, 뭐. 앉으세요."

"헤헤. 실례할게요!"

내가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여자는 곧바로 헤헤 웃음을 흘리며 맞은편에 앉아 빈 컵에 맥주를 콸콸 따라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한다.

'가슴은 C컵 정도고, 몸매도 확실히 괜찮네. 얼굴도.. 그럭저럭 괜찮고.'

가슴 쪽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제법 굴곡이 드러나는 몸매에 비해 얼굴은 귀여운 인상이고, 반대로 옷차림은 은근히 몸매를 강조하고 있어서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인상을 받았다.

내가 속으로 품평을 마치는 사이, 가득 차 있던 컵을 반 정도 비운 여자 쪽에서는 컵을 턱 내려놓으며 시원하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아.. 시원하다. 혼자 오신 거예요?"

"혼자 왔죠. 어제는 친구랑 같이 왔었는데, 오늘은 사람들 춤추는 거나 구경하려고 와 봤어요."

"어제요? 저도 어제 왔었는데, 왜 기억에 없지? 이렇게 잘생겼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는데..?"

"어제는 룸 잡고 놀았었거든요. 그래서 못 봤을 거예요."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리면서, 은근슬쩍 칭찬까지 해주는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아. 그랬구나. 어쩐지. 봤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지. 이름이 뭐예요?"

"최민석이에요. 그쪽은요?"

"이진아요. 나이는요? 아, 저는 스물넷이에요."

"오, 동갑이네요? 저도 스물넷인데."

"어, 진짜? 나보다 나이 많을 것 같았는데, 진짜 동갑 맞아?"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당연스럽게 말을 놔버리는 것도 클럽 특유의 문화일지도 모른다.

"민증 한번 볼래?"

"응. 못 믿겠어. 볼래, 볼래."

솔직히 말하면 나야말로 이진아 쪽이 나보다 연상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일단은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고 민증을 꺼내 이진아에게 보여줬다.

"와.. 진짜네?"

"그렇게 나이 많아 보였어?"

"아니이, 그런 건 아닌데. 분위기가 좀 여유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스물 다섯? 여섯? 아무튼 중반쯤은 넘을 줄 알았지."

"늙어 보인다고 돌려 까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분위기가 너무 어린애들 같지는 않았다는 말인데. 스물넷이면, 대학생이야?"

화제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질문이 날아드는 탓에 대화를 쉴 틈이 없다.

보통 클럽에 가면 남자들이 여자 기분을 맞춰주려고 열심히 입을 털어야 한다던데, 이것도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지 상대 쪽에서 무한한 관심을 보내오는 덕분에 대답만 해줘도 돼서 여러모로 편했다.

"고졸이야. 졸업하자마자 바로 군대 갔거든."

"그래? 그럼 지금은 무슨 일 하는데?"

"카페 하나 차리려고 준비 중."

"카페? 무슨 돈으로? 집이 잘살아?"

"설마. 재미 삼아 코인에 돈 좀 넣었다가 확 땡겨서 여유가 좀 생겼거든. 그거 털어서 해보는 거지."

"코인? 얼마나 벌었는데?"

"비밀이니까 말 안 할래."

"에이, 뭐야아. 궁금하니까 알려주라아."

그래도 나이가 스물넷쯤 되면 성격이 굳어질 법도 한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장난 아니게 자연스럽다.

이런 건 아마 타고난 성격이거나 자기 외모를 잘 이해하고 써먹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엔 내가 물어볼래. 스물넷이면 대학생이야?"

"응. 의성대 간호학과. 4학년이지롱."

대학 이름은 전혀 모르겠고, 간호 학과라. 뭔가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게 반응하기 미묘하다.

"4학년이면 한창 바쁠 때 아니야? 이렇게 놀아도 돼?"

"방학인데 뭐 어때? 그리고 간호 학과는 취업도 엄청 잘 돼서 취업 걱정은 없거든. 졸업장 받을 때까지는 막 놀아야지. 언제 또 이렇게 놀 수 있을지 모르는데."

"흐응. 그래?"

대학에 관련된 얘기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아는 게 전혀 없다 보니 듣기에는 재밌어도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게 어렵다.

대학 생활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간 들여서 다니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에선 어떤데? 귀여워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간호 학과라 남자가 없나?"

"학과에선 거의 희귀 동물 수준이지. 그래도 교양도 있고 오가면서 다른 과 애들이랑 마주칠 일도 있어서 번호는 달라는 애들은 꽤 있었지."

표정이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니 대학에선 제법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귀여운 인상에 몸매까지 좋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눈이 높아진 내 기준으로 봐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큼 예뻤으니까.

"남자 친구는? 있어?"

"흐응. 어떨 것 같아?"

이번 질문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살짝 미룬다.

"있을 것 같은데?"

"응? 왜?"

내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한 탓인지, 저쪽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그야 뭐, 예쁘잖아."

"꺄항항! 뭐야 그게에!"

사실 이유를 찾아보자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평일에 클럽에 올 정도로 시간도 많을 것 같으니까. 남자도 익숙한 것 같으니까.

그런 이유가 있었지만 최대한 듣기 좋은 말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래도 이진아는 지금 대답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깔깔 웃어댔다.

그리고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찔끔 흘렸는지 눈가를 비벼 물기를 닦아내며 웃음을 가라앉혔다.

"맞아, 남친 있어. 그래도 보통은 클럽에 왔으니까 없을 것 같다고 말하던데. 예뻐서 있을 것 같다고.. 푸흣..! 아, 진짜 엄청 웃었네."

"이게 그렇게 웃겨?"

"나도 몰라아. 그냥 갑자기 훅 들어오니까 빵 터졌잖아."

이게 그렇게 웃을 만한 말이었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본인도 뭐가 그렇게 웃겨서 이렇게 웃어댄 건지 모르겠는 모양이다.

"근데, 그럼 남친 있는 여자랑 이러고 있는 건데. 안 이상해?"

"그냥 같이 술 마시면서 얘기만 하고 있는데?"

"맞아, 맞아. '아직은' 얘기만 하고 있네."

내 대답에 킥킥 웃더니, '아직은' 부분에 은근히 힘을 줘서 말하는 걸 보니 벌써 2차, 3차까지 같이 가줄 생각이 가득한 것 같았다.

'싫은 건 아니지만..'

주변에 워낙 이렇게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없다 보니 신선한 느낌도 있고, 외모도 충분히 합격점이었지만 이제 겨우 첫 번째일 뿐이니까.

다른 여자들도 더 구경하고 싶다. 혹시 한예슬 같은 대박이 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럼 건전하게, 조용한 데 가서 더 얘기할래?"

"얘기만?"

"일단은?"

여자 쪽에서 이렇게 들이대는 것도 확실히 신선한 경험이다.

그나마 비슷한 경우라면 이지은이나 유혜연 때 정도겠지만 지금은 들이대는 수준 자체가 전혀 달랐다.

"나야 좋긴 한데, 지금은 됐어."

"뭐, 뭐야. 나 마음에 안 들어?"

분위기상 은근하게 거절하는 티를 내기도 애매하고, 상대가 들이대는 걸 받아주면 받아줬지 이렇게 쳐내 본 적이 없다 보니 너무 직설적으로 거절해버린 모양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귀여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야릇한 분위기를 풍겨대고 있던 이진아의 표정이 조금 황당하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건 아닌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클럽은 오늘이 두 번째거든. 조금 더 구경하고 싶어서 그래."

"..흥. 제대로 골라 먹고 싶다 이거지?"

은근하면서 노골적으로 들이대던 화법은 어디 가고, 순식간에 표정이 새초롬해져서는 노골적인 말과 함께 빈정 상했다는 티를 팍팍 낸다.

다른 여자들 같았다면 여기서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진아는 인상 자체가 귀여운 타입이라 그런지 그냥 가볍게 앙탈 부리는 정도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또 버리기에는 아까웠다.

'어쩔 수 없나?'

"정말로 구경만 좀 더 하고 싶어서 그래. 번호 찍어주면 이따가 나갈 때 내가 찾아갈게."

그래도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 준 덕분에 내 의도를 제대로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이진아에게 통화 창을 띄운 핸드폰을 내밀면서, '날 앞에 두고 다른 여자들과 비교하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은 날 고를 테니 기다려줄 수 있다.'라고 최면을 걸었다.

애초에 지금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사실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고, 당당하게 다가왔을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외모에 걸맞게 자신감도 상당한 편인지 최면이 굉장히 쉽게 들어갔다.

"..언제 나갈 건데?"

"열두 시쯤?"

"진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안 부르기만 해봐."

"당연히 불러야지. 약속했는데. 오, 프사도 예쁘네?"

"..흥! 나갈 때 연락해!"

그래도 곧바로 연락처 동기화를 시키고 메신저에 뜬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면서 입 발린 말을 해주자 기분이 살짝 풀렸는지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툭 내뱉고는 일어나 무대 쪽으로 가버렸다.

"그럼.. 또 오려나?"

멀어져가는 이진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리고는 맥주를 가볍게 홀짝이려는데.

"저기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상대가 찾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진짜 기다리고 있던 건가?'

뭐가 됐든 얼굴이 잘생기다 보니 여자들 쪽에서 줄 선 것처럼 다가오는 일도 경험해보게 된다.

클럽은 인싸들만 가는 곳이라고 내심 기피하고 있었는데, 직접 와보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클럽, 진짜 마음에 든다.

*

여자들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두 명째를 보내자마자 다음 사람이, 세 명째를 보내자마자 또 다음 사람이. 마치 릴레이라도 하듯 여자들이 다가온다.

나중에는 대놓고 기다리고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정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꽤 예쁜 애들도 전부 까이고 있으니까, 다들 호기심에 와보는 거 아니야? 일단 난 그런데. 잘생겼으니까 그냥 말 한번 걸어볼까 싶은 것도 있을 테고."

누가 날 꼬실 수 있는지, 다들 한 번씩 들이대 보고 있다는 뜻이다.

좀 아니다 싶은 상대는 그냥 보내고, 마음에 든다 싶은 상대는 연락처만 받아서 보냈다.

그렇게 열두 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즐길 만큼 즐겼으니 역시 이진아로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리고 슬슬 일어나려고 하는데.

"형님."

"아, 뭔 형님이야."

여태 얼굴 한 번 안 비추던 최우석이 불쑥 찾아왔다.

"달리 부를 말도 없잖습니까. 그것보다, 부킹 한번 받아보실래요?"

"부킹?"

"저도 이게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긴 한데, 여자분이 혼자 룸을 잡고 잘생긴 남자 좀 부킹해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쁘냐?"

여자 혼자서 룸을? 남자를 데려오라고?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긴 했지만 제일 중요한 건 예쁘냐 아니냐였다.

"에이, 애초에 못생겼으면 입구에서 컷 당했죠. 그리고, 손님끼리도 급이 있는 건데, 별로였으면 형님한테 왔겠어요?"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궁금하긴 하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이진아와 2차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룸을 잡고 남자를 데려오라는 여자한테도 흥미가 생기기도 했고.

잠깐 구경 정도는 하고 와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마음에 들면 이진아에서 갈아타기로 하고.

"가자."

"예.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기운차고 싹싹하게 대답하는 최우석의 대답을 들으면서 몸을 일으켜 이틀간 다녔던 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건 가장 안쪽에 있는 방.

구조상 가장 안쪽에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춤추는 홀이 창문 너머로 한눈에 보이는, 소위 VIP룸이라고 얘기를 듣긴 했었는데.

나야 일반 룸에서도 여자 꼬시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들어가시죠."

최우석이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길래, 신경 쓰지 않고 먼저 룸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룸을 잡았을 때도 여자들이 먼저 들어오고, 최우석이 뒤따라 들어와 분위기를 보곤 했었으니까.

그렇게 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테이블 소파 한가운데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자세로 앉아있는 여자를 보고 생각했다.

'..좆됐다.'

몽마가 되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길가는 사람 하나하나 정기가 보이다 보니 너무 정신이 없어서 평소에는 눈을 닫고 있는 느낌으로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을 때만 정기를 살펴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보려고 하지 않아도 여자가 품고 있는 정기가 보인다.

일반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고, 나와 비교해도 몇 배는 더 많은 압도적인 양의 정기가 여자의 몸 안에서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놀고 끝낼걸. 뒤늦게 후회가 밀려오긴 했지만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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