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 지기 싫은 여왕님 함락 시키기 (4)
"자, 잠까안.."
"괜찮아요. 그냥 씻겨주기만 할 게요."
"흐, 앗..!? 잠..!"
어떻게 저항해볼 틈조차 없이, 순식간에 만세 자세로 팔이 들려지더니 휙 하고 상의가 벗겨져 버렸다.
"피부도 엄청 깨끗한데요? 엄청 예뻐요."
"아, 아니이..! 꺄악!?"
이번에는 등 뒤에서 달칵 소리가 들려오고, 브라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리며 땀이 차 있던 가슴 위로 시원한 바람이 확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양팔로 가슴을 가렸더니, 곧바로 청바지의 단추가 툭 풀어지며 지퍼가 한번에 내려가버린다.
"아, 으아앗!?"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가슴에서 손을 내려야 하나? 그럼 다 보일 텐데? 하지만 아래쪽도..!
당황과 취기로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양쪽 골반으로 손가락이 쑥 들어오더니 그대로 속옷과 함께 바지를 확 끌어내려 벗겨버렸다.
"그, 그만하라구요오..!"
결국, 한쪽 팔로는 가슴을, 남은 한쪽 팔로는 허벅지 사이를 가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웅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등은 최민석에게 기대고 겨우 균형을 잡고 있는 상태라, 이제는 어떻게 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럼.. 저도 옷 좀 벗어야 하니까, 잠깐만요. 읏차."
"꺄, 꺄아악!?"
마치 레슬링이라도 하는 것처럼. 순식간에 허벅지와 등을 받쳐진 상태로 몸을 번쩍 들어 올려지고는 몇 걸음 만에 침대 앞까지 도착해 발목에 바지와 팬티만 겨우 걸쳐진 채로 풀썩 눕혀졌다.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지금도 뭘 어떻게 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가슴과 허벅지 사이만 겨우 가린 채로 어린애처럼 몸을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스륵, 스륵 하고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방에 있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둘 뿐이었으니, 누가 옷을 벗는 소리인지는 확인해볼 필요조차 없다.
쿵, 쿵, 쿵 하고 심장 뛰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거칠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틈조차 없이, 순식간에 스륵스륵 하는 소리가 멈췄다.
"씻으러 가죠."
"아으읏..!"
저항 같은 건 하지도 못하고 침대 아래로 이끌려 휙 일으켜지고, 여전히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다리 탓에 어쩔 수 없이 최민석의 몸에 달라붙어 그가 이끄는 대로 욕실까지 끌려왔다.
발목에 걸려있던 바지와 팬티는 언제 빼낸 건지, 욕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나마 남아있던 옷가지마저 전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잠깐 물 온도 좀 맞출게요."
"......"
몸은 여전히 자신한테 기대게 만들어놓고, 샤워기를 틀어 손바닥에 대고 물 온도를 맞추는 최민석을 보며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괘, 괜찮아.. 그냥 씻기만 한다고 했으니까..'
아직 까지는 시간이 있다. 일단 씻으면서 최대한 몸을 회복하고,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면 그때 나가도 괜찮을 것이다.
"흐우, 하아, 하아.."
일단은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여태까지는 눈을 뜨고 있었는지 감고 있었는지조차 모를 상태라 주변이 전혀 안 보였었는데, 욕실 안은 굉장히 밝았고 화려하다기 보다는 깔끔한 쪽에 가까웠다.
바로 정면에는, 샤워기와 함께 상반신 정도만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 벽면에 붙어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완전히 알몸 상태인 자신의 상반신과..
"흐, 읏..!?"
자신의 등 뒤로 몸을 받쳐주고 있는 남자 특유의 탄탄한 상반신이 눈에 들어왔다.
클럽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몸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매끄러운 근육질의 팔뚝, 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것처럼 푹 파인 쇄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나 인터넷 같은 곳에서 남자의 상반신 정도는 얼마든지 볼 수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인 탓에 겨우 진정시킨 가슴이 다시 거칠게 쿵쿵 뛰어대기 시작한다.
난생 처음, 직접 눈으로 본 남자의 몸은 취기와는 다른 의미로 열기가 확 올라올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까, 물 뿌릴게요?"
"히, 힉..!?"
발끝에서부터, 따듯한 물이 확 뿌려진 순간 자신도 모르게 펄쩍 뛰듯이 몸을 떨었다가 휘청거리며 최민석의 몸에 기대 겨우 균형을 잡았다.
"괜찮아요. 그냥 씻기기만 할 거예요."
"으으.."
깜짝 놀라긴 했지만, 물 온도가 적당히 따듯한 덕분에 발끝에서부터 무릎, 허벅지, 배 위까지 올라오는 동안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한다.
너무 긴장하고 있었던 탓인지 따듯한 물로 몸을 씻겨지기 시작하니 이대로 축 늘어지고 싶을 정도로 몸이 편안해졌다. 아주 잠깐 뿐이었지만.
"씻길게요?"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던 샤워기 물이 뚝 끊어지고, 거울 너머로 최민석의 손에 거품이 가득 묻은 타올이 들려져 있는 게 보였다.
"제, 제가 씻을..! 히익..!?"
어깨 위에서부터, 까슬까슬한 타올이 피부를 스치듯 미끄러지며 거품을 칠해나간다.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요."
어떻게 발버둥 쳐보려다가도, 뒤에서 들려오는 말 한 마디에 곧바로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짜증나..!'
최민석에게 몸을 씻겨지면서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덕분인지, 오늘 처음 만난 남자한테 어린애처럼 다뤄지며 몸을 씻겨지고 있다는 상황에 수치심과 함께 짜증이 울컥 올라왔다.
말로는 매너 있는 척, 신경 써주는 척하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 멋대로 남의 몸을 씻기고 있는 것 아닌가.
'..들어오자마자 멋대로 키스까지 해버렸고.'
키스는 처음이었는데. 그 처음을 거의 덮쳐지듯이, 아니 덮쳐져서 빼앗겼다는 사실도 화가 난다.
남자들한테 여왕님 취급받는 건 익숙했지만, 쉽게 몸을 내주는 순간 자신의 가치가 확 떨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한예슬은 단 한 번도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씻기는 건 또 왜 이렇게 잘하는 건데..?'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꾸욱 눌러 성의껏 거품을 칠해나가는 손길은 짜증과는 별개로 몸을 멋대로 편안하게 만든다.
자신의 기분과는 별개로 기분 좋아지고 있다는 것조차도 한예슬의 짜증을 한층 끌어올리는 요소일 뿐이었다.
민감한 장소는 피해서, 팔이나 등, 옆구리에서 배, 앞쪽 허벅지 같은 곳을 거품으로 칠해나갈 때마다 몸이 멋대로 힘을 빼고 늘어지려고 한다.
그리고는, 세심하게 발등이나 발목 뒤까지 문질러주고 나서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복부에서부터 미끄러지듯 위로 올라가 타올로 감싼 손바닥으로 가슴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윽..! 여, 여긴 알아서 씻을게요..!"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드릴게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계세요."
"그게 아니라..! 흑..!?"
아래에서부터 가슴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살짝 주무르며 가슴 전체를 타올로 문지른다.
"처음 봤을 때부터 생각했었는데, 몸매가 진짜 좋으시네요. 무슨 컵이에요? D컵? E컵?"
"저, 저질이야..!"
"에이. 남녀끼리 이런 데 왔으면 이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는 거지. 남자 안 사귀어 봤어요?"
"사, 사귄 적 있거든!?"
그런 적 없는데. 묘하게 깔보는 듯한 말투에 욱해서 제대로 생각도 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럼 익숙하겠네요. 무슨 컵인데요? 아, 말하기 부끄러우면 말 안 해도 괜찮아요."
"..E컵."
대놓고 놀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데, 자꾸만 욱하고 지기 싫은 기분이 들어 대답을 피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크네요. 만지는 감촉도 좋고."
"됐으니까.. 그만 좀 만지지..?"
어느샌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까지 놓고 있었지만, 최민석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계속해서 가슴을 주물거린다.
가슴을 아래서 받쳐 살짝 들어주는 덕분에 편하기도 하고, 주무르는 손길도 적당히 힘을 조절해 아프지 않고 묘하게 야릇한 기분이 든다.
그게 더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려던 것 이상으로 목소리에 날을 세우고 있었다.
"음, 그럼 이쪽?"
"히, 히익!?"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런 미련도 없이 가슴에서 손을 떼어내는가 싶더니, 가슴에 신경 쓰느라 살짝 벌어져 있던 허벅지 사이로 손을 쑥 집어넣어 버렸다.
"거, 거긴..!"
"여기도 깨끗하게 씻어야죠. 창피해요?"
"..뭐가 창피해? 말도 없이 갑자기 만지니까 놀란 거지."
또 쓸데 없는 자존심을 세우면서, 반사적으로 좁혔던 허벅지 사이를 벌려 최대한 당당한 척 행동했다.
다행히 최민석은 씻기는 것 외에 이상한 짓은 하지 않고, 손바닥으로 보지 위쪽을 쓰다듬듯이 몇 번 문질러주기만 하고는 빠져나가 엉덩이도 몇 번 주물러대고, 물을 뿌려 거품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나 싶긴 했지만, 어쨌든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 잘 넘어갔다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저도 씻고 나가야 할 것 같은데, 혼자 나갈 수 있겠어요?"
"그야 당연.. 히잇..!?"
"어이쿠. 안 되겠네."
이제는 충분히 쉬었으니 괜찮을 줄 알고 최민석의 품에서 벗어나 똑바로 서려고 했는데, 한 걸음 걷기도 전에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져 버릴 뻔했다.
"금방 올 테니까 좀 쉬고 있어요."
'열받아..!'
결국에는 최민석의 부축을 받아 욕실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까지 깨끗하게 닦아주고, 공주님 안기까지 당해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졌다.
'일어나야 하는데..'
욕실에서는 다시 샤워기 소리와 함께 몸을 씻는 실루엣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인다.
최민석이 나오기 전에 일어나서 옷도 입고, 나갈 준비까지 끝마쳐 놔야 하는데.
진탕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따듯한 물로 샤워까지 하면서 완전히 취기가 올라온 건지 머리가 멍하고 몸에 힘도 안 들어간다.
타고난 주량 자체가 도수가 높은 양주 두세 병으로도 거의 취하지 않을 정도로 셌던 탓에, 이렇게 다리가 풀리고, 몸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취해본 게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이젠 진짜 일어나야..'
"좀 괜찮아요?"
"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회복하고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이, 몸을 다 씻고 나온 최민석이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안부를 묻는다.
'저, 저게 뭐야..!?'
여태까지 봤던 그 어떤 남자보다도 '수컷'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매끈하고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상체와 그 아래쪽에, 아직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고 굵은 물건이 한예슬의 시선을 빼앗았다.
"하여튼, 적당히 좀 마시시지 그랬어요. 거기서 더 마셨으면 지금쯤 쿨쿨 자고 있었겠네."
이번에도 태연스럽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내뱉으면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짐승이 침대를 향해 소리없이 걸어온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욱하고 올라오는 승부심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난생 처음으로 직접 본 남성의 탄탄한 육체와 성기 탓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