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화 > 이 좋은 걸 인싸들만 하고 있었다고? (3)
최민석과 김현우에게 인사를 마치고 룸을 나온 최우석은 기분 좋게 걸음을 옮겼다.
'괜찮은 사람들로 보냈네.'
이창호. 클럽 골드에서 같이 웨이터 일을 하면서 1년쯤 어울리게 된 친구였다.
그래봤자 클럽 밖에서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고, 가끔 같이 담배나 피우면서 잡담을 나누거나 서로 빵꾸난 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정도의 사이일 뿐이었다.
몇 달쯤 전에 군대에 간다면서 일을 그만뒀길래 잊어버리고 지냈는데, 간만에 연락해서 자기 선임을 보낼 테니 적당히 서비스 좀 해달라는 얘기를 했었다.
뭐가 됐든 지명 손님은 많을수록 좋다. 하루만 오고 안 오더라도 그만큼 자신에게 돈이 들어오는 일이었으니 나쁠 건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군대에서 막 나왔다면 그렇게 좋은 손님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대뜸 룸을 잡더니 팁까지 쿨하게 건네줬다. 그것도 오만 원짜리로 두 장씩이나.
'뭣보다, 수준이 괜찮아.'
이창호의 선임이라고 했던 손님은 그냥저냥 외모도 호감형에 몸도 괜찮아 보이는 게 여자 손님들 쪽에서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할 수준은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팁을 건네준 남자는..
'붙잡아 놓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잘생긴 남자 손님은 기본적으로 부킹 성공률이 높기 때문에 단골이 될 가능성도 높고, 그런 만큼 부킹이 잘 되지 않아 불편한 심기를 맞춰주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돈도 꽤 있는 것 같았고.'
웨이터 일을 하면서 이런 쪽 눈썰미는 필수다.
잘생긴 남자 쪽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빛이나 표정, 몸짓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게 돈 많은 손님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최대한 급 높은 여자들로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그 얼굴이면 여자 손님들 쪽에서도 싫어할 이유가 없다. 같이 온 친구 쪽도 수준이 나쁜 편은 아니었고.
성격이 정말 개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짧게나마 얘기를 나눠본 바로는 성격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한창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홀을 천천히 돌며 여자들의 외모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
'괜찮은데?'
들어온 여자 둘을 가볍게 훑어본 순간 곧장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필요하시면 불러주시고, 좋은 시간 되십쇼!"
내 평가가 끝나기도 전에 최우석이 기운찬 목소리로 말을 빠르게 내뱉고는 기운찬 목소리와는 반대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최우석이 나간 문으로 힐끔 시선을 보냈다가, 다시 여자들을 살피기 위해 시선을 보낸 순간 자연스럽게 이쪽을 훑어보고 있던 시선과 똑바로 마주쳤다.
'마음대로 보라지 뭐.'
당장 겉모습만 봐서는 꿇릴 게 없는 입장이라, 내 쪽에서 먼저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의 몸을 마저 훑어내렸다.
한쪽은 등허리까지 내려가는 긴 생머리에, 다른 한쪽은 길이는 조금 더 짧고 끝부분에만 살짝 웨이브를 주고 옅은 갈색으로 염색도 했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스타일이 겹치지 않는다는 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뜻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키는 생머리 쪽이 조금 더 크고, 가슴도.. 생머리 쪽이 좀 더 크네.'
긴팔이라 노출 면적이 적긴 하지만 일반적인 브이넥과는 달리 얇아서 은근히 속이 비칠 듯한 느낌에 앞쪽이 더 깊게 파여 가슴골이 살짝 보일 정도다.
아래 입은 청바지도, 조금 연한 색에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까지 착 달라붙어 노출은 많지 않지만 보란 듯이 몸매를 과시하는 듯한 옷차림이었다.
'다른 쪽은..'
내가 생각하던 클럽 의상과 가까운 느낌이다.
가슴골과 어깨를 훤히 드러낸 얇은 민소매 셔츠에, 허벅지 위쪽에 아슬아슬하게 달라붙은 짧은 스커트와 숨김없이 드러낸 맨다리.
생머리 쪽이 은근하게 몸매를 과시했다면 이쪽은 그냥 대놓고 과시하는 수준이었다.
'생머리 쪽이 취향인데.'
이것저것 많이 살펴보긴 했지만 실제로는 2초 정도나 지났을까. 한순간에 스캔을 끝마치고 양쪽을 비교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둘 다, 어딘가 여왕님 같은 인상이긴 했지만 생머리 쪽이 더 도도한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으니까.
"일단.. 앉으실래요? 나가실 건 아니죠?"
김현우 쪽으로 살짝 시선을 보내봤더니, 반쯤 넋이 나가 있길래 내 쪽에서 먼저 대화를 텄다.
"..그럴까요?"
이번에는 여자들 쪽에서 짧게 시선을 나누더니, 각자가 나와 김현우의 옆자리로 다가와 조금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가깝게 앉았다.
시선이 마주쳐서 그랬던 건지 그냥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내 옆에 앉은 건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긴 생머리 쪽이었다.
"웨이터한테 제일 예쁜 분들로 부탁한다고 했었는데, 애가 일을 잘하네요. 아, 한잔하실래요?"
클럽은 처음이지만 여자는 익숙하다.
일단은 가볍게 칭찬부터 꺼내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긴 생머리와 김현우의 옆에 앉은 여자에게 각각 양주를 한 잔씩 따라서 테이블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 내 앞에 따라뒀던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으면서 다시 입을 연다.
"두 분이서만 오신 거예요?"
"네. 둘이서 왔어요."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자는 아무 말도 없고, 김현우의 옆에 앉은 여자 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여자들은 보통 혼자 오는 거 아니면 셋이나 넷씩 모여서 오던데, 둘이 많이 친한 가봐요."
실제로는 여자들이 몇 명씩 모여서 나이트에 오는지 같은 건 모른다.
그래도 내가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고 하면 어쩌겠는가. 일단 여자 앞에서는 긴장하고 움츠러든 티를 내는 것보다는 뭐라도 자연스럽게 떠드는 게 좋았다.
유서연 한테는 상대가 마음에 들면 재미없는 얘기도 재밌게 받아들일 테니 편하게 하라는 말도 들었었고 말이다.
"네. 중학생 때부터 친했거든요. 완전 찐친이에요."
내 옆에 앉은 긴 생머리는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앉았고, 저쪽은 섹시하고 여왕님 같은 인상과는 달리 나름 서글서글하고 사교성도 좋은 모양인지 대답도 잘해주는 게 나쁘지 않았다.
"저희는 고등학교에서 만났는데, 저놈이 인천에 좋은 클럽이 있다면서 한 번 놀자고 하도 재촉해서 왔거든요. 아, 우리 일단 통성명부터 할까요? 최민석입니다. 쟤는.."
"기, 김현우입니다."
갑자기 지목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누가 봐도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까지 살짝 더듬어가며 이름을 밝히는 친구 놈의 모습에 내심 혀를 찼다.
하기야, 24년 동안 여자 손이나 잡아보기는커녕 얘기도 거의 안 해봤을 놈이 갑자기 클럽에 와서 눈 튀어나오게 예쁜 여자랑 합석까지 해버렸으니 긴장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저렇게 굳어 있었을 게 뻔했으니 일단 의리상 적당히 챙겨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조금 아깝긴 하지만 마음에 더 드는 쪽은 아직 아무 말도 안 하고있는 긴 생머리 쪽이니까, 김현우의 옆에 앉은 여자 쪽에 곧바로 [이런 데서 노는 것 치고는 긴장하고 쑥맥처럼 구는 게 귀엽게 느껴진다] 라고 가볍게 최면을 집어넣었다.
"흐응.. 현우 씨라고 하는구나. 클럽 오는 건 처음이에요?"
"아, 그게.."
이해는 가지만 답답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여자들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면서 조언도 해주고 어떤 식으로 대화를 풀어갈지 시뮬레이션도 굴려주던 놈이 굳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맞습니다. 아는 후배한테 여기가 좋다고 얘기를 엄청 들어서 오고는 싶은데, 혼자는 못 오겠으니까 저까지 끌고 온 거거든요. 여자 손 한 번 안 잡아본 놈이 용기 한 번 내본 거죠."
"야, 야..!"
"뭐 어때 임마. 어차피 그렇게 바짝 긴장하고 있으면 누가 모르냐? 저기.. 옆에 계신 분도.."
"이채영이에요."
"아, 네. 채영 씨도 다 알고 물어보신 거잖냐. 그렇죠?"
"그거야 뭐.. 그렇긴 하죠. 헤헤."
최대한 김현우가 무안하지 않게 해주려는 건지 어줍잖게 배려해주지 않고 솔직하게 대답하면서도 멋쩍게 웃어준다.
확실히 성격이 괜찮은 여자였다.
내 옆에 앉은 여자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길래 나도 일단은 시선 한 번 안 주고 무시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채영 쪽에 다시 한번 [역시 처음이었구나. 긴장하고 있는 거 보니까 역시 귀엽다, 긴장 풀게 술이나 한잔 따라줄까?] 같은 생각을 재차 집어넣었다.
"처음이면 긴장할 수도 있죠, 뭐. 저도 처음 왔을 땐 엄청 긴장해서 그냥 돌처럼 서 있기만 했었거든요. 자, 한잔 마시고 긴장 풀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채영은 김현우의 앞에 있던 잔을 들어 직접 건넸고, 김현우는 거의 부장님한테 붙잡힌 신입사원처럼 굳어서는 컵을 받아들고는 남아있던 내용물을 한입에 꿀꺽꿀꺽 전부 마셔버렸다.
혹시 모르니, 적당히 [역시 귀엽다]라는 생각을 한 번 더 넣어주고, 슬슬 나도 상대가 필요하겠다 싶어 긴 생머리 여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이쪽 분도 클럽은 처음 오신 거예요?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으시네."
조금 기분 나쁘더라도 상관은 없으니까 일단은 과감하게, 당사자가 아닌 이채영에게 눈치를 보냈다.
"..한예슬이에요."
"아아. 예슬 씨라고 하는구나."
한예슬은 그제서야, 어째서인지 이쪽을 째릿 노려보면서 자기 소개를 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
이채영과 한예슬이 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나눴던 대화나 행동을 생각해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예슬 씨는 클럽 처음이에요?"
"......"
"아, 처음은 아닌데, 오늘은 나오기 싫다는 걸 제가 혼자 오기는 싫다고 억지로 끌고 나왔거든요."
한예슬이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자 이채영 쪽에서 끼어들어 대신 대답했다.
"그러셨구나. 억지로 나오셨으면 놀 기분이 안 날 수도 있죠. 그러시면 귀찮게 안 할 테니까 편하게 쉬다 가세요. 그래도 지금 그냥 가 버리시면 채영 씨도 불편하실 테니까요."
이채영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싫다는 사람을 굳이 붙잡고 비위를 맞춰줄 생각은 없어 적당히 배려해주고 넘어갔다.
한예슬이 워낙 예쁘고 몸매도 좋아서 아쉽긴 하지만, 꼭 한번 따먹고 싶어서 매달릴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 정도는 아니다.
우리 애들도 예쁘고, 에스테틱에 있는 직원들이나 따로 만나는 여자들도 다 예쁘니까.
나름 흠잡을 곳 없는 미인들만 모아놓은 내 주변과 비교가 가능하다는 시점에서 한예슬의 외모도 최상위권이라고 할 정도는 된다는 뜻이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클럽이니까.
결국 한예슬을 낚지 못하고 끝나게 되면? 최우석에게 시켜서 다른 여자들도 구경해보거나 내가 나가서 살펴보는 것도 괜찮다.
솔직히 말하면 다 같이 신나게 춤추고 있는 밖으로 나가는 건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최면만 쓰면 여자 쪽에서 나한테 먼저 호감을 갖고 다가오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기에 못 할 일까지는 아니었다.
"야, 현우야. 너라도 분위기 좀 띄워 봐라. 언제까지 굳어서 그러고 있을 거냐?"
"뭐 어때요. 긴장하고 있으니까 귀여운데요."
"으, 읏..!?"
완전히 한예슬 쪽에 신경을 꺼 버리고, 분위기나 풀어볼 겸 김현우에게 가볍게 한마디 하자 이채영 쪽에서 몸을 기울여 자기 어깨를 김현우의 어깨에 슬쩍 갖다 대면서 허벅지 위에 손을 올리고는 변호 아닌 변호를 해준다.
계속해서 귀여워 보인다고 최면을 넣어 놨더니, 효과가 제대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귀여워요? 쟤가요?"
"네. 귀여운데요?"
아무리 최면에 걸려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하더라도, 그걸 솔직하게 밝히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니 스스로에게 솔직하거나 어떻게 행동해도 꿇릴 게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제가 더 잘생겼죠?"
"으음.. 얼굴 쪽은 민석 씨가 이기긴 했네요. 그래도 현우 씨가 더 귀여운데요?"
"아이고, 살다 살다 내가 귀여움이 없어서 저놈한테 밀리는 날이 오네."
내가 농담조로 얘기를 꺼낸 만큼 이채영도 가볍게 농담조로 얘기를 받아넘기면서 더욱 김현우를 감싸고 돈다.
여전히 찰싹 달라붙어서는, 허벅지 위에 손도 올려둔 상태 그대로였다.
그렇게 김현우를 사이에 끼워놓고 이채영과 적당히 놀리고 풀어주면서 분위기를 풀어나가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달그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이쪽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표정의 한예슬이, 잔에 따라진 양주를 홀짝거리느라 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