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364화 (364/775)

< 364화 > 이 좋은 걸 인싸들만 하고 있었다고? (2)

"몇 년 만에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아니, 임마.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빵 사 먹을 돈도 없던 놈이 전역하고 3년도 안 돼서 외제차를 끌고 왔는데 안 물어볼 수가 있냐?"

그것도 그렇긴 하다.

나야 차 쪽은 잘 모르니까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이놈이 비싼 차를 끌고 나왔다면 뭔 일이냐고 물어봤겠지.

물론,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해도 이런 것까지 사실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기에 대충 생각해놓은 변명을 꺼냈다.

"코인으로 벌었지."

"미친, 코인으로? 얼마나?"

역시 전 세계를 들었다 놨던 떡밥답게, 그냥 얘기만 꺼냈음에도 '도대체 얼마나 벌었길래?' 같은 기대가 느껴진다.

"많이는 못 벌었어. 그것도 투자할 게 있어야 버는 거지, 그냥 유행하길래 나도 해본다는 생각으로 10만 원 20만 원씩 찔끔찔끔 넣어본 거거든."

"그래서, 얼만데?"

"8억 좀 넘게 벌었지."

"8억? 와.. 요즘 코인 끝물이라더니. 무슨 코인을 샀길래 그렇게 벌었냐?"

"너도 알걸? 도기 코인. 엄청 유명했잖아. 그때 한번 벌고 손 뗐어."

"아.."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이름을 말해주니 곧바로 납득한다.

당장 코인판에 관심도 없던 나도 그 시바견 그림은 알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짜 인생 역전했네. 하.. 존나 부럽다. 야."

중간에 짧게 흘러나오는 한숨에서 정말 절절한 부러움이 느껴진다.

"그러게 말이다. 인생 살만 하더라."

그래도 흙수저였던 입장에서 8억 갖고 무슨 인생 역전이냐, 이 정도로는 서울에 괜찮은 집 사는 것도 힘들다. 그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당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듣는 입장에서는 기만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얘기였으니까.

"아니 근데, 8억 중에 2억을 차에 쓴 거냐? 차에 관심 없지 않았었냐?"

"돈이 없었으니까 관심 없었지. 아니, 지금도 별 관심 없긴 한데, 돈 생기니까 비싼 차부터 사고 싶더라고."

"집은? 고시원 살고 있었다며."

"오피스텔에 전세로 들어갔어. 이것도 한 4억 들어갔다. 서울이 집값이 비싸긴 하더라."

"미친. 그럴 거면 그냥 지방에다 주택 하나 사지 그랬냐."

"어차피 혼자 살 건데, 쓸데없이 넓어서 뭐 하겠냐. 먼지 쌓이고 관리만 힘들지. 아무튼, 차 사고 집사니까 억이고 뭐고 빠져나가는 거 순식간이더라."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김민아가 들어간 오피스텔 얘기를 들어서 참고하기도 했고, 전부터 아는 사람한테 지금 생활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은 이것저것 생각해둔 덕분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한 2억 가까이 남았겠네. 아니면 어디다 더 썼냐?"

"그냥 작게 카페나 하나 차려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야. 직장생활은 또 하기 싫고, 남들처럼 사장님이나 해봐야지."

"허.."

김현우에게는 내 얘기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나랑은 달리 집이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도 아닌, 딱 평범한 수준이었으니까.

카페 얘기는 적당히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준비 중인 일이긴 하다.

아무래도 사람이랑 만나다 보면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될 텐데, 매번 이것저것 핑계 대면서 백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길래 유서연과 상의해서 카페를 차리기로 했다.

가게 관리는 적당히 매니저를 뽑아서 맡겨놓고, 카페 사장이라는 직함만 달고 있을 생각이지만 아무래도 카페 사장이라고 하면 적당히 돈도 있을 것 같고, 이미지도 나쁘지 않아서 나온 결론이었다.

"적금 들어놓은 것도 있어서 내가 쏘려고 했는데, 부러워서 안 되겠다. 오늘은 니가 쏴라. 괜찮지?"

"어차피 그러려고 했어. 그렇다고 너무 막 쓰진 말고."

유서연이 카드를 만들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클럽 가서 술 좀 먹는다고 돈을 막 쓰기에는 아직 아까운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근데 너.. 성형도 했냐?"

얘기하는 내내 차 안만 둘러보고 있더라니, 이제야 얼굴을 볼 생각이 들었는지 옆자리에서 똑바로 쳐다보면서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아깐 대충 봐서 몰랐는데, 진짜 성형했나 보네?"

"아, 뭔 미친 소리야. 성형은 안 했어."

"아닌데, 그냥 예전이랑 다른 사람 수준이잖아. 너, 최민석 맞긴 하냐?"

예전에도 그럭저럭 잘생겼다고 할 정도는 됐었는데, 어째서인지 차를 보고 비트코인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내 얼굴을 보고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찝찝하다.

'어쩔 수 없지 뭐.'

돈이야 대충 얼버무릴 수 있어도, 얼굴이 확 달라진 건 적당히 말로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라 최면을 쓸 수밖에 없었다.

"뭔 소리야. 원래 이랬잖아. 혼자 살게 되면서 이것저것 신경 쓰긴 했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아니, 어.. 그랬나..?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실시간으로 설명을 덧붙이면서 최면을 걸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정기의 소모량이 많다.

이 정도면 거의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정도의 상식을 바꾸는 수준 같은데, 이놈 머릿속에는 도대체 내 얼굴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었던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긴.. 원래도 원판은 잘 생기긴.. 했었지. 그래도 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인상이 확 달라지냐."

최면을 다 걸고 나서도 뭔가 미심쩍다는 기색이 사라지질 않아 예전이랑은 인상이 확 달라져서 그런 것 같다는 내용까지 덧붙이고 나서야 어떻게든 납득시킬 수 있었다.

'왜 기분이 더럽지?'

몽마가 되면서 정기가 쌓이는 효율도 좋아지고, 거의 매일같이 다른 여자들을 안아가면서 정기를 쌓은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벌벌 떨었을 정기 소모도 이제는 그냥 조금 아깝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을 정도라 괜찮긴 하지만..

"그래서, 이름이 클럽 골드라고 했었나?"

찝찝한 기분을 애써 털어내고는, 어제 들었던 클럽 이름을 네비에 찍자 곧바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좌표가 찍혔다.

"근처에 주차장도 많네. 차 세우긴 괜찮겠다."

느긋하게 차를 몰아서 인근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클럽 앞에 도착해 보니 오픈까지 시간이 30분도 넘게 남았는데도 줄이 장난 아니게 길었다.

다른 클럽도 다 이런 건지, 여기가 유독 장사가 잘돼서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야, 중간중간에 여자들 보이냐? 막상 오긴 왔는데 이렇게 보니까 쫄리네."

"..그러게."

김현우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면서, 앞에 서 있는 여자들을 쭉 훑어보니 확실히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줄에서 몸만 살짝 내밀어 보는 거라 제대로 평가하긴 애매해도, 비율만 놓고 보면 괜찮은 여자들이 꽤 보인다.

생각했던 것처럼 노출이 많지는 않았지만 옷도 잘 입고 맨살도 적딩히 드러나 있어 일단 보기에는 좋았다.

심지어는 우리 뒤로도 계속해서 줄이 세워지고 있는데, 뒤쪽으로도 괜찮은 여자들이 여럿 보여서 적당히 구경만 하고 있는데도 시간이 꽤 잘 지나갔다.

그렇게 적당히 여자도 구경하고, 잡담도 나누고, 핸드폰도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클럽 입구에 도착해서 정장 차림의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를 통과해 룸을 잡고, 김현우의 후임이 소개해준 웨이터를 지명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두 분을 모실 웨이터 최우석입니다! 지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룸으로 들어오자마자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모습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묘하게 박력 넘치고 싹싹한 태도 탓인지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웃는 빠른 손놀림으로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를 세팅하는 모습을 보니 인상이 괜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창호가 소개해줘서 왔는데, 서비스 좀 잘 해줘."

"아아, 창호한테 선임분 소개 해줄 테니까 제대로 서비스해드리란 말은 들었습니다!"

초면인데도 말을 자연스럽게 놓는 김현우와 자연스럽게 하대를 받아들이면서 싹싹하게 대답하는 최우석을 보니 이 상황이 뭔가 연기 같다는 느낌이 확 올라와 괜히 우스웠다.

'팁도 좀 주라고 했었지?'

나이트에 들어가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줄을 서면서 김현우에게 대충 들어뒀다.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나서서, 지갑에서 꺼낸 5만 원짜리 두 장을 최우석에게 건네며 최대한 가벼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

"현우 얘가 어제 전역해서 여자가 진짜 급하거든? 그렇다고 아무나 데려오진 말고, 오래 걸려도 괜찮으니까 최대한 급 높은 애들로. 알지?"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반말에 명령조로 말을 하려니 더럽게 어색했지만 일단은 미리 얘기하던 대로 팁도 건넸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돈을 받아드는 최우석에게 [최대한 급이 높은 여자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라는 최면을 가볍게 불어넣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죠! 마음에 안 드시면 오케이 하실 때까지 해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 한 잔 하시면서 기다려 주십쇼!"

최우석은 이번에도 배에서 힘껏 짜낸 것처럼 기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테이블에 올려둔 잔 위에 양주를 따라 각각 나와 김현우 앞에 공손하게 내려놓고는 빠른 걸음으로 룸을 빠져나갔다.

"어우.. 뭔데 벌써부터 진 빠지는 기분이냐."

기껏해야 룸 잡고, 웨이터 지명하고, 후임 소개로 왔다는 말밖에 안 한 놈이 벌써부터 지쳤다는 듯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는 거의 몸을 늘어뜨리면서 투털거린다.

"그래갖고 여자들 오면 얘기나 잘 할 수 있겠냐? 기껏 돈 써서 룸도 잡아줬는데."

"..맨정신으로는 못 할 것 같으니까 좀 취해야겠다."

하기야, 어제까지는 여자 손도 못 잡아봤을 놈이 대뜸 기세만 가지고 나이트클럽에 왔으니 긴장할 법도 하다.

여유로운 척하고는 있지만 표정이 살짝 굳어 뭔지도 모를 양주를 벌컥벌컥 삼키는 꼴을 보아하니 내 쪽에서 도와줄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넌 아직도 술 안 좋아하냐?"

"..으엑. 칵테일 같은 건 괜찮긴 하더만, 이런 건 아직 뭔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더라."

아무래도 혼자 마시기에는 조금 그랬는지, 대뜸 내 쪽으로 술잔을 건네는 모습에 망설이지 않고 받아 한입에 털어놓고는 대답했다.

어차피 나도 내가 얼마나 마셔야 취하는지 모를 정도였으니, 이깟 술 정도는 얼마든지 마셔도 상관없었다. 맛이 없다는 것만 빼면.

"그래도 덕분에 호강하네. 그냥 테이블이나 잡고 맥주 마시면서 부킹 받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룸도 와보고 양주도 마셔보고. 양주는 살면서 처음 마셔본다. 야."

"알았으니까 여자들 왔을 때 취해서 헤롱거리지 말고 적당히 마셔."

"어우. 그래야지."

나도 양주는 처음 먹어봤지만 이것도 다른 술처럼 맛있다는 느낌은 안 들어서 같이 나온 과일 안주나 집어 먹으면서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적당히 화제를 틀었다.

"근데, 어깨 벌어진 거 보니까 너도 군대에서 운동 좀 했나 보다?"

"오, 티 나냐? 너 전역했을 때 몸 좋아진 거 보고 나도 꼭 해야겠다 싶었거든. 하기 더럽게 귀찮긴 했는데, 할 것도 없어서 꾸역꾸역했지. 오늘 클럽 온 거 보면 하길 잘했다 싶기도 하네. 아, 나 복근도 생겼다. 볼래?"

"에이씨, 치워 임마. 남자 복근 봐서 뭐 한다고."

겨우 두 잔 먹고 취한 건지, 분위기에 취한 건지, 신나서 입고 있던 셔츠를 슥 끌어 올려 복근을 드러내는 모습에 질색하면서 손을 휘저었다.

한 번 군대 얘기로 물꼬를 트기 시작하니, 김현우도 하고 싶은 얘기가 어지간히도 많았는지 긴장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중간중간 양주까지 들이켜가면서 쌓인 썰을 마구 풀어놓기 시작했다.

'역시 남자끼리 모였을 땐 군대 얘기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기는 사건과 부대나 보직이 달라도 어느 정도 겹칠 수밖에 없는 공감대, 그리고 다르면 다른 대로 흥미가 생기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화제였다.

물론, 여자들 앞에서는 절대 꺼내면 안 될 화제기도 했지만.

그렇게 거의 30분 가까이 여기가 나이트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술이랑 안주를 깔짝대면서 떠들어대고 있는데, 어느 순간 문밖에서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최우석과 함께 여자 둘이 룸 안으로 들어왔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