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화 > 누가 더 맛있어요? (1)
확실하게 끝났다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혜연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나서 며칠간.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적당히 빈둥거리다가 학원에 가고, 에스테틱에서 적당히 쉬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빈둥거리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유혜연을 더 길들이면서 즐길 생각이었던 나로서는 유서연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다려달라고 한 탓에 조금 아쉬운 기분도 느끼고 있었다.
"..학원은 이제 그만 다닐까."
뭔가 게임 할 의욕도 나질 않아 침대 위에서 적당히 뒹굴거리며 생각을 정리하다 멍하니 중얼거렸다.
내가 무슨 통역사 수준의 능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당장 실제 외국인과도 능숙하게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회화반의 '진짜' 원어민 교사에게 인정도 받은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그래도 계속 꾸준히 학원에 다닌 이유는 조금 더 확실하게 익혀두자는 생각과 엘레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는데.
엘레나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매력적이라 버리기는 아까웠지만 굳이 앞으로 만날 여자도 많은데 굳이 집착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유서연, 김민아, 임예진처럼 몽마가 되기 전부터 꾸준히 관계를 쌓아온 것도 아니라 정말 몸만 즐기는 상대라는 느낌도 있었고.
"섹프 정도면 몰라도."
에스테틱 직원들이나 유혜연처럼 내가 원할 때마다 찾아가서 박아댈 수 있는 관계 정도가 딱 좋을 텐데.
아쉽게도 엘레나와는 그런 관계를 만들기에는 이미 강사와 학생이라는 관계가 너무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어쩐다.."
학원에 다니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더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시점에서 꾸역꾸역 다니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학원은 조만간 그만둔다고 치고. 엘레나와의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주변에는 없는 타입이라 아쉽단 말이지."
침대에서 느릿하게 몸을 뒹굴거리면서 다시 한번 떠올려봐도. 가슴이나 몸매는 그렇다고 쳐도, 금발에 외국인이라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매력이 너무 컸다.
"일단은.."
섹프 정도로 해둘까. 그렇게 생각하며 정리한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려는 순간.
──♪
"응?"
침대맡에 대충 던져둔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따로 정해둔 벨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아하니 유서연, 임예진, 김민아 셋 중 하나다.
누운 상태 그대로 뒹굴뒹굴 굴러 핸드폰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 화면을 확인해 보니 김민아에게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어, 야.]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조금 경직된 느낌이 들어 무슨 일 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 왜.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지금 방송 중이거든..? 통화 괜찮지..?]
김민아가 방송을 시작하는 게 오후 2시부터였던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방송을 켜고 2시간 정도 지났을 타이밍이었다.
"상관없는데. 무슨 일인데?"
[아니, 그게..]
"무슨 일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무슨 컨텐츠라도 하는 건가? 나도 김민아가 방송하는 걸 몇 번 보긴 했지만 그냥 유명한 고전 게임이나 신작을 이것저것 하는 평범한 방송이었다.
솔직히 재미 쪽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 것 같으니 넘어가고, 캠을 켠 시점에서 시청자가 모이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주제에 시청자 수가 상당했었다.
[나는 진짜 안 하려고 했거든..? 근데 시청자들이 자꾸 렐도 해달라고 해서..]
"야."
[아, 아니이..! 나는 당연히 니가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 한다고 했지..! 근데 자꾸 렐 못하는 거 숨기려고 상상 남친 갖다 쓰는 거 아니냐고 짜증 나게 하잖아..!]
이건 또 뭔.
나도 모르게 살짝 목소리를 깔고 말해버리긴 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상상 남친이라는 단어에 순간 당황해 말을 멈췄다.
'그래도 무슨 뜻인지는 대충 알겠네.'
김민아는 방송 첫날부터 얼굴만 보고 몰려든 시청자들의 남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있다고 대답했다.
보통 여자 방송인들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만 해도 시청자가 반 토막이 날 정도로 떨어져 나간다던데.
김민아는 방송 첫날이라 떨어져 나갈 시청자도 없는 수준이었고, 애초부터 돈 때문이 아니라 재미로 하는 방송이었던 만큼 부담이 적었다.
실제로 그 얼마 없는 시청자마저도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마자 확 줄어들었지만 김민아의 비주얼이 워낙 뛰어나기도 하고, 방송 자체는 즐겁게 하는 덕분에 시청자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였다.
아무튼, 지금 김민아는 방송 첫날에 밝혔던 남친의 존재가 사실은 '렐을 하기 싫어서 있지도 않은 사람을 만들어낸 게 아니냐.'라고 모함 비슷한 걸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일단 렐 하는 건..]
"당연히 안 되지."
[..봤죠?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니까요.]
이건 내가 아니라 시청자들한테 하는 말일 것이다.
어쨌든 나랑 한 약속을 지키려고 렐을 해달라는 요청은 꾸준히 거절을 해왔고, 시청자들은 계속해서 그 부분을 파고들다 보니 나한테까지 전화가 오게 된 것이리라.
[아, 씨. 뭘 돈 주고 부탁해요. 진짜 남친이라니까.]
말하는 걸 듣기만 해도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잠시 김민아가 시청자들과 투닥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가, 침대에서 내려와 곧바로 김민아의 방송을 틀었다.
[진짜 남친이면 방송 출현 한 번 해줘야지 ㅋㅋㅋ]
[데려와서 같이 듀오 하면 되는 거 아님?]
[남친이랑 듀오 좋다]
[그냥 이번 기회에 가짜 남친 이슈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자]
[나 같으면 여친이 같이 렐하자고 하면 절대 거절 안 한다]
실시간 시청자 수 82명. 뉴튜브로만 방송을 접한 나로서는 이게 많은 숫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채팅이 올라가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건 알겠다.
방송을 시작하고 아직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래도 채팅창이 시끌벅적한 게 보일 정도였으니 상당히 잘 풀리고 있는 편일 것이다.
'얼굴이 깡패니까.'
저 얼굴로 방송을 한다는데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
애초에 게임이 아니라 대놓고 여캠쪽으로 갔다면 사람이 더 많이 모였겠지만 그건 김민아가 알아서 할 일이었으니 굳이 참견할 생각은 없었고, 아무튼..
"방송 나갈 생각 없습니다."
[어, 어?]
"지금 채팅창 보니까 나보고 방송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아, 보고 있어?]
순간 화면 너머로 채팅창을 쳐다보던 김민아의 시선이 정확하게 캠 쪽을 향하며 이쪽을 똑바로 쳐다봤다가 다시 채팅창 쪽으로 내려갔다.
"일단, 제가 얘 남자 친구 맞고요. 렐 못하게 하는 건 그냥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게임을 더럽게 해서 그러는 겁니다."
[뭐, 뭘 더럽게 한다고 그래..!]
"게임을 깨끗하게 했으면 채금도 안 먹었겠지. 솔직히 말해서 너 렐하는거 뉴튜브에 올리면 그대로 노란 딱지 먹어도 할 말 없어."
[아, 씨..!]
갑작스러운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멈칫했던 채팅창이 순식간에 'ㅋ'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놀림을 당하는 김민아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차라리 이렇게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는 게 나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승률이 30퍼센트 간당간당한 정도였는데. 못하는 것도 적당히 못 해야 재밌는 거지. 탑에서 혼자 똥이란 똥은 다 싸면서 팀원이랑 싸우다 채금까지 먹으면 시청자들도 재밌게 못 봐줘. 너 욕 먹지 말라고 하는 말이니까 그냥 다른 게임 해."
[야아..!]
내가 말을 심하게 해준 덕분에 채팅창의 관심사는 이미 내가 아닌 김민아를 놀려대는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 있었다.
"아무튼 렐은 절대 허락 안 할 거니까 하지 말고, 방송에도 안 나갈 거니까 시청자분들한테 잘 좀 말해줘. 그럼 끊는다."
[잠..!]
이 정도면 할 만큼은 했다 싶어 김민아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통화하느라 소리는 꺼둬서 김민아가 뭐라고 하는지는 안 들렸지만, 채팅창에는 남친이 아니라 친오빠 아니냐는 얘기부터 김민아의 렐 실력에 대한 온갖 추측과 놀림이 난무하고 있다.
그래도 정색하지 않고 채팅창을 노려보며 열심히 떠들어대는 김민아의 표정을 보니 상황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서 그대로 창을 닫고 다시 침대 위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김민아의 방송에 나간다고 해서 얼마나 얼굴이 알려질지는 모르겠지만, 내 얼굴을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을 건 없었으니 합방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다른 여자를 건드릴 때 방송에 남친으로 나온 사람 아니냐고 알아보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까.
"에휴."
통화가 끊기고 침대에 눕자 다시 밀려오는 심심함에 '그냥 마스크라도 쓰고 나가볼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까똑!
잠깐을 못참고 알림음과 함께 다시 불이 들어오는 핸드폰을 낚아채 화면을 확인했다.
[유혜연 : 오빠. 지금 시간 괜찮아요?]
"오?"
유혜연이다.
지금 관계야 어쨌든, 저지른 죄가 있어서 한동안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유서연이 단단하게 못을 박아뒀었는데. 먼저 연락을 해온 걸 보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최민석 : 응. 지금 집이라 괜찮아. 왜?]
[유혜연 : 그게.. 오빠한테 보여줄 게 있어서요.]
메세지에서는 어지간히 쓸 일이 없다는 '..'까지 쓰는 걸 보니 뭔가 망설일 만한 일인 모양이다.
'보여줄' 거라면 유서연이 준비한다던 뭔가를 말하는 것이리라.
[유혜연 : 오빠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하셔서..]
[사진]
"......"
유혜연이 보낸 사진은 셀카였다.
물론 평범한 셀카는 아니고, 거울 앞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하반신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사진. 그것도 며칠 전까지는 가지런하게 정리된 음모가 자리하고 있던 부분이 뽀얗게 맨들맨들해져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새로 올라온 사진에는 안 그래도 빨갛던 유혜연의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게 익어서는 양손으로 보지를 활짝 벌려 안쪽의 선분홍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어떻게 찍은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겨우 사진 두 장만 봤을 뿐인데도 자지에 피가 몰려 힘껏 불끈거리기 시작한 탓에 당장 유혜연을 따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나갔다.
[최민석 : 서연 씨가 시킨 거야?]
[유혜연 : 제가 한다고 했어요.. 오빠가 이런 걸 좋아한다고 해서.. 별로에요..?]
별로냐고? 그럴 리가 없다.
내 취향 자체가 털이 있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정리된 맨들맨들한 보지인 데다가, 유혜연의 살이 통통하게 올라 앙다물고 있는 보짓살은 당장이라도 손으로 조물거려보고 싶을 정도로 예쁘고 귀여워 보였으니까.
[최민석 : 아니야. 깨끗해서 보기 좋네. 예쁘기도 하고.]
얼굴이나 몸매도 아니고, 보지에 대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완전히 나한테 빠져 있는 유혜연에게는 이마저도 칭찬으로 느껴질 게 분명했다.
[유혜연 : 다행이다.]
[유혜연 : 이거 말고도 언니랑 제가 준비한 게 있는데, 혹시 오늘 시간 괜찮아요?]
[최민석 : 지금? 서연이도 같이 있어?]
[유혜연 : 네. 지금 같이 있어요.]
아무래도 유혜연의 사진을 찍어준 게 유서연이었던 모양이다.
"서연이가 준비했으면 가봐야지."
사실 유서연이 없이 유혜연 혼자만 있었다고 해도 당장 따먹으러 갈 마음이 가득하긴 했지만 유서연이 뭔가를 준비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민석 : 지금 가면 돼?]
[유혜연 : 네. 지금 와주시면 돼요.]
[최민석 : 알았어. 지금 갈게. 20분 안에 도착할 거야.]
[유혜연 : 기다리고 있을 게요.]
기대가 확 차오르는 걸 느끼며 침대에서 뛰듯이 내려와 곧바로 현관을 나와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유혜연의 오피스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