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2화 > 오빠 성욕 푸는 걸 도와달라고?? (3)
상황은 일단 유서연과 계획해놓은 대로 흘러갔다.
취한 상태에서 받는 부탁은 거절하지 않지만, 유서연의 말이 더 우선시 된다는 설정을 살짝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의심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다.
나중에 그걸 왜 몰랐느냐고 따지더라도 애초에 술을 마시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까, 유서연이 자기 말을 무시하라고 시킬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해버리면 될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몸도 못 가누게 된 유혜연의 말을 무시하고 전화를 받아 순식간에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고 유서연을 소환했다.
아마 지금쯤, 욕실 밖에서는 유서연이 불륜 예방 부서라는 되도 않는 말을 해가며 유혜연을 구워삶고 있으리라.
"이걸 또 써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직 입 안에 남은 쓴맛을 지워내기 위해 유서연이 준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중얼거렸다.
예전에 성은영을 낚기 위해 잠깐 써먹었던 설정인 불륜 예방 부서라는 설정은 내가 아닌 유서연이 먼저 제안한 방법이었다.
어쨌든 정부에서 뭘 한다고 하면 어지간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일단 '정부에서 하는 일이면 어쩔 수 없지'하고 받아들이는 심리 때문에 최면에 써먹기 좋다던가.
나로서는 뭐가 됐든 유혜연을 내 편할 때 따먹을 수 있는 상태로만 만들어놓을 수 있다면 좋았기에 방법은 적당히 유서연에게 일임했다.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유서연의 신뢰도가 굉장히 높았기에 마음 편하게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나가는 시간은.."
일단 10분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었는데. 욕실에 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핸드폰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라 시간을 확인하기가 애매하다.
"..일단 씻을까?"
유혜연이야 꼼꼼하게 씻겨주긴 했지만, 나는 대충 씻고 말았으니까.
할 것도 없으니 유서연이 말한 대로 차가운 물로 시원하게 씻고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생수병을 대충 선반에 내려놓고 온도를 차갑게 맞춘 샤워기를 틀었다.
"끅..!"
차갑다.
내가 차갑게 맞춰놓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차가워서 나도 모르게 어깨를 확 움츠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찬물로 씻는 게 얼마 만인지.
고시원에서 지낼 때는 여름에 일 끝나고 돌아와서 가끔 찬물로 씻었던 것 같은데. 유서연의 집에 들어온 뒤로는 차가운 물로 씻은 적이 없는 것 같다.
"피트니스에서도 따듯한 물로 씻었으니까."
어릴 때는 집에서 온수가 안 나와서 한겨울에도 찬물로 씻는 게 일상이었는데. 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 나오지나 않으면 고마운 일이었다.
"..그래도 찬물은 좀 아니네."
완전히 끝까지 돌려놓은 온도 조절기를 중간까지 되돌려 미지근한 물이 나오게 만들고 나서야 움츠리고 있던 몸을 펴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타올로 거품을 내서 몸 곳곳을 깨끗하게 씻고, 머리도 감은 뒤에 양치까지 꼼꼼하게 하고 나서야 욕실에서 나왔다.
"아, 오.."
"......"
미리 계획했던 대로. 적당히 껄끄럽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유혜연의 시선을 피하면서.
"..일단 옷 좀 입을게."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음에도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진 공기를 느끼며 물기를 닦아내고, 옷을 입자마자 유서연의 옆자리에 최대한 조용히 힘을 빼고 앉았다.
"술은 깼어요?"
먼저, 유서연이 짜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존댓말로 물었다.
존댓말은 나한테 반말하는 게 너무 불편해서 되돌리고 싶다고 말하길래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반말로 시작했었는데, 사이가 좋아지면서 나는 말을 놓고 유서연이 존댓말을 쓰게 됐다고 하면 되니까. 유서연의 개차반 같았던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응.. 확실하게 깼어."
"진작에 이럴 걸 그랬네. 이제 본인 술버릇도 이해가 가죠?"
"..응. 미안해."
"민석 씨가 미안할 게 뭐 있어요. 그냥 몰랐던 건데. 진짜 미안할 사람은 따로 있지."
"읏..!"
나와 유서연의 시선이 순식간에 자신에게 몰리자, 유혜연이 흠칫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혼낼까요? 아니면 민석 씨가?"
유서연에게 맡기는 것도 괜찮겠지만, 여기선 내가 하는 게 이미지를 좋게 남기기에 좋다.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혜연아."
"..네."
"왜 그랬어?"
"죄, 죄송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오빠한테 반해서..! 히끅..! 저도..! 흑..!"
아직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까지 짜내는 유혜연. 이게 연기라면 넘어가 주는 게 예의다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화내는 거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오, 오빠아.."
"얼씨구."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참던 유혜연이 살짝 고개를 들려고 하자, 유서연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니, 애를 혼내라고 맡긴 건데, 적당히 넘어가 주려고 하면 어떡해요?"
"일단 얘기를 해 봐야지."
"얘기할 게 뭐 있어요? 그냥 민석 씨한테 반해서 그랬다잖아요. 자기가 직접 좋아한다고, 나 대신 자기랑 사귀자고 고백한 것도 아니고, 그냥 술로 사람 바보 만들어서 강간한 거나 마찬가진데."
슬그머니 위로 올라오던 유혜연의 고개가 다시 푹 숙여졌다.
그냥 봐줘도 별 상관없었을 텐데. 여기서 유서연의 반대를 무릅쓰고 용서를 해줘야 효과가 더 좋다는 뜻이겠지.
"혜연아."
"네에.."
"정말로 그래? 서연 씨 말대로야? 화 안 났으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죄송, 해요..!"
결국 다시 울음이 터졌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적당히 안아주고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면서 풀어주고 싶은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길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었기에 유혜연의 사과를 덤덤히 받아넘겼다.
"그래. 괜찮으니까. 직접 얘기를 해봐."
"언니가, 말한 대로..! 흑..! 저도, 처음엔..! 잘해보려고, 했는데에..! 오빠가..! 언니, 너무, 좋아해서어..!"
"그래, 그래. 그래도 이렇게까지 한 건 잘못한 일인 거 알고 있지?"
"흑..! 네에..! 죄송, 해요오..!"
"그래. 확실하게 사과 했으니까, 이번만 넘어가 주는.."
"이번이 여섯 번째에요."
이번에도 상황이 대충 끝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끼어드는 유서연. 정말 자기 동생인데도 봐주는 게 전혀 없다.
"그래..?"
그래도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한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계속 달래주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이젠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혜연아. 정말이야?"
"흑..! 네..!"
"후우.. 그래..? 그래도.. 이번에는 봐주기로 했으니까. 한 번에 넘어가기로 하자. 앞으로는 다신 이런 일 안 하기로 약속하고."
"약속..! 할게요..!"
"하여튼, 민석 씨는.. 이걸 대충 넘어가 주면 어떡해요? 아예 눈물 쏙 빠지게 혼내줘야죠."
"지금 울고 있으니까 됐잖아."
"쏙 빠져서 아예 안 나올 때까지 혼내야죠."
왠지 이번 건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아 유혜연이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여튼, 이번 일은 이걸로 끝내자. 본인도 반성하고 있다니까 믿어 줘야지."
"에휴. 마음대로 해요. 내가 당했나. 민석 씨가 당했지. 그래도 나도 화난 거 알죠?"
"알지. 내가 미안해. 앞으로는 진짜 술 안 마실게."
유혜연을 달래줄 때와는 달리 정말 모양만 내는 적당한 사과였지만 지금의 유혜연을 속이기에는 이걸로 충분했다.
적당히 눈치를 교환하며 분위기를 풀고, 유서연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런데, 이걸로 끝내도 괜찮겠어요? 우리 결혼하면 혜연이랑도 얼굴 자주 볼 텐데. 볼 때마다 어색할 거 아니예요."
"그거야 뭐.. 천천히 익숙해져야.."
"민석 씨. 그러지 말고, 혜연이도 같이 상대해 줘요."
"뭐..?"
유서연의 말에 당황한 척 살짝 텀을 두고 뜸들이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내긴 했지만 다시 들어도 어이가 없는 불륜 예방 부서에 대한 설명이 짧게 이어지고, 유혜연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면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기 더 쉬워질 거라는 얘기까지 시원스럽게 설명이 이어졌다.
물론 나는 듣는 내내 '그렇긴 하지만..'이라고 반응하며 계속해서 싫은 티를 내고 있었고.
"그리고, 어차피 민석 씨 나 하나로는 만족 못 하잖아요."
"아니, 그건 또 무슨.."
"우리 민석 씨 정력이 보통 쎄야지. 밤새 나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하면서도 다음날이면 멀쩡하게 불끈거려서 얼마나 힘든데요. 그렇다고 그거 만족 못 시켜주면 너무 미안하고."
"아니, 그거야.."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마요.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맨날 내가 먼저 뻗고 자기는 지치지도 않고 불끈거리는 걸 보면서 잤는데. 그걸 모르겠어요?"
"하아.."
사실 매번 상대가 뻗어버릴 때까지 한 뒤에도 자지가 불끈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몽마가 된 신체의 특성 덕분에 몸 안에 있는 정기를 순식간에 정력으로 바꿔 발기와 사정량을 유지할 수 있게 됐으니까.
한 번 싸고, 다음 사정을 하는 것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라 가라앉지를 않는다.
그 대신, 어느 선을 넘으면 정신적인 만족감은 확실히 올라오기 때문에 어지간히 흥분하지 않는 이상은 적당히 만족하고 쉬다 보면 알아서 발기가 가라앉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차피 법적으로도 문제없잖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혜연이가 상대면 크게 문제도 안 생길 것 같고. 숨기기도 쉬우니까 남의 시선 신경 쓸 일도 거의 없을 거예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서연 씨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하라는 건.."
"난 우리 민석 씨 믿으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아무 때나 하고 싶을 때 하라는 게 아니라 내가 바빠서 상대 못 해줄 때만 가끔 하라는 거에요. 지금처럼 내가 확실하게 허락할 때만."
"으음.."
"민석 씨 이번에 내 말 안 듣고 술 마시다 나한테 잘못한 거 맞죠?"
"..그렇지."
"그럼 이번만 내가 하자는 대로 해요. 일단 몇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하는 걸로."
"하아.. 알았어. 그런데, 혜연이는 괜찮대?"
"민석 씨 나오기 전에 얘기 다 해뒀어요. 민석 씨 허락만 받으면 자기도 하겠다고. 그래서 확실하게 혼내두라고 한 거예요. 그래야 서로 뒤끝 없이 다시 할 수 있으니까."
"허어.."
"......"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나와 유서연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유혜연은 내가 허탈한 척 한숨을 쉬며 쳐다보자 그대로 다시 고개를 푹 숙여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렇게 됐으니까, 지금 바로 한 번 해봐요."
"뭐? 지금?"
"왜요? 어차피 나 오기 전까지 둘이 잘만 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내 허락받고 하는 거니까 내 앞에서 해도 상관없잖아요."
"아니, 그래도.."
"해보기로 약속한 거, 맞죠?"
"..맞지."
어째 유서연한테 너무 휘둘리는 분위기라 조금 그렇긴 했지만, 덕분에 쓸데없이 컨셉을 유지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차피 사전에 합의된 연기인 만큼 불쾌한 것도 전혀 없었고.
"그럼 일단.. 혜연이 얼굴 엉망된 것부터 고쳐주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가자."
"으, 응.."
내 시선은 피했으면서도 유서연의 말은 곧장 들으며 몸을 일으킨 유혜연은 끝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색하게 굳은 걸음걸이로 유서연과 함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과 언니를 한자리에서 따먹을 줄은 몰랐는데. 확실히 기대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