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얘는 떠먹여 줘도 못 먹네 (3)
"술.. 한 병만 더 마시지 않을래요?"
"더 마시자고?"
생각보다 괜찮은 방법이다.
여기서 내가 안 된다고 말하면 아직 취하지 않았다는 의미였으니 조심할 수도 있고, 좋다고 하면 일단 술을 더 먹일 수 있으니 취하게 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
"벌써 취한 것 같은데, 괜찮겠어?"
"조금만 마실게요. 처음에는 엄청 별로였는데, 먹다 보니까 은근히 괜찮은 것 같아요."
마지막 잔을 삼킬 때까지도 표정이 조금씩 굳어지는 게 뻔히 보였는데. 뻔뻔함 만큼은 확실히 유서연 급이다.
호출벨을 눌러서 술을 추가로 시키고, 유혜연과 다시 한 잔씩 따라 느긋하게 마셔나갔다.
"하아.."
술이 한 잔씩 넘어갈 때마다 점점 눈꼬리가 내려가고 의미 없는 한숨이 연달아 흘러나온다.
이젠 저번보다 더 많이 취한 상태였으니 내 상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오빠아."
"왜?"
"일루 와바여."
완벽하게 확신을 가진 건지, 아니면 취해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앞뒤 재지도 않고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더는 뺄 필요도 없었다.
대답보다도 먼저 의자에서 일어나 맞은편에 앉아있는 유혜연의 옆으로 다가가 의자를 뺐다.
"여기 앉으면 돼?"
"네에. 앉아봐여."
"앉았는데?"
"히히. 잘해써여."
날 옆에 앉혀놓고 뭘 하려나 싶었더니. 그냥 앉혀놓고 좋다고 헤헤 웃기만 하고 있다.
'너무 먹였나?'
엄밀히 따지면 내가 권한 건 한 잔도 없었고, 내가 한잔 마실 때마다 유혜연도 따라서 한 잔씩 마시고 있었을 뿐이라 내가 먹였다고 하기에는 애매하긴 했다.
"오빠아."
"응?"
"머리.. 쓰다듬어주세여.."
"그래, 그래. 머리 쓰다듬어지고 싶었어?"
이건 또 무슨 부탁인지.
내심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설정에 충실하게 유혜연의 머리를 최대한 정성스럽게 쓰다듬었다.
유서연의 단발과는 대조되는, 아마도 그런 의도로 길렀을 긴 생머리는 타고난 건지 관리를 열심히 한 건지는 몰라도 굉장히 매끄럽고 부드러워 쓰다듬는 맛이 있기는 했다.
"하으..♡"
기뻐하고 있다.
뭘 시켜도 군말 없이 따른다는 설정인데. 겨우 머리나 쓰다듬게 하면서 좋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성격에 비해 순진한 면이 많다.
"그렇게 좋아?"
"네에.. 오빠 손.. 너무 좋아요.."
"어리광 부리는 것도 서연 씨랑 똑같네. 역시 자매라 그런가?"
"......"
한창 기분 좋게 내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던 유혜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렇게 취해 있는 와중에도 유서연과 닮았다는 소리에는 제대로 반응하는 걸 보니 정말 어지간히도 유서연이 싫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차마 그만하라고 하기는 싫었는지, 그렇게 몇 분 정도를 더 머리를 쓰다듬어지고 나서야 천천히 기울였던 머리를 당겨 내 손길에서 벗어났다.
"하아.. 손도 좀 줘보실래요?"
"이렇게?"
이번에는 또 뭘 하려고.
일단 시키는 대로 손을 내밀긴 했지만, 유혜연은 내밀어진 손을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두 손을 다 써서 붙잡았을 뿐이다.
"역시 커.."
그리고는 붙잡은 손을 주물거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확인하듯 만져내며 발정 난 표정을 지으며 그대로 빠져들었다.
'도대체 뭐야?'
유혜연이 나한테 욕정을 품고 있는 건 확실하다.
유서연이 말한 대로라면 나랑 유서연이 섹스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자위도 했을 테고.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어린애 같은, 소녀스럽다.. 라고 하기에는 또 묘하게 끈적끈적한 반응만 하고 있는지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아아.."
이번에도 몇 분이나 그렇게 남의 손바닥을 쪼물딱 거리다가, 아까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손을 떨어뜨렸다.
"오, 오빠?"
"그래. 이제 다 만졌어?"
"읏..! 기, 기분 나쁘셨어요..?"
"기분 나쁘긴. 그냥 조금 웃겨서 그래. 서연 씨도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렇게 손만 주물러대면서 좋아하더라고. 힐링이 된다나. 둘이 너무 똑같은 게 웃겨서 그랬어."
"그, 그렇구나아.."
물론 이건 내가 지어낸 말이다.
유서연과는 손잡는 것보다 펠라와 섹스가 먼저였으니까.
언제 처음으로 손을 잡았더라? 기승위로 하면서 몇 번 잡았었나?
아무튼, 밖에서 손잡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유혜연은 이번에도 유서연과 겹쳤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한번 당해서 그런지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다음 주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이번에는 한 번만 꽉 안아주세요."
이제는 말만 존댓말이지 자연스럽게 명령조로 말하고 있다.
"그래, 그래. 이리 와봐."
"..네에."
유서연이나 유혜연이 했던 것처럼, 이리로 들어오라는 것처럼 슬쩍 팔을 벌리자 유혜연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지더니 이마가 가슴 위로 툭 닿는 게 느껴졌다.
'..대충 안아주면 되겠지.'
꽉이라고 했으니까 조금은 답답할 정도로 세게.
양팔로 유혜연의 등을 감싸 안고는 그대로 힘을 줘 품 안으로 더욱 끌어당겼다.
"흐으읏..!"
누가 들으면 애무라도 당하는 줄 알 정도로 달아오른 숨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이제 됐어?"
"조, 조금만 더.."
이제는 아예 존댓말도 까먹었는지 말을 끝까지 내뱉지도 않고 품에 안긴 채로 후욱 숨을 들이켰다 내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아예 브레이크도 없이 끝까지 갈 수 있게 해줬는데, 도대체 왜 떠먹여 줘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는 걸까.
이런 것도 귀엽다면 귀엽지만 기대하고 온 것과는 너무 다른 행동이라 조금 답답한 기분도 들었다.
품에 안겨 깊게 심호흡을 반복하고 있는 유혜연은 이제 몸 전체를 움찔움찔 떨어대는 모습이 이대로 내버려 두면 품에 안긴 것만으로도 가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유혜연 쪽에서 먼저 신호를 보내왔다.
"이, 이제 됐어요."
가쁘게 올라온 숨소리와 함께 묘하게 다급한 목소리에 곧바로 팔을 풀어주자 이번에는 또 묘하게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한숨을 쉬며 숙이고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이번에는 오빠가 안겨요."
"알았어."
혹시 내가 섹스하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빙빙 돌아간다.
저번에 했던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유혜연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뭉클한 가슴 위로 고개를 파묻으며 체중을 실었다.
확실히, 가슴만큼은 여태 먹어왔던 여자들 전체를 통틀어서 최상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훌륭하다.
속옷과 겉옷 위로도 부드럽게 꾹꾹 눌리는 동시에 밀어내는 탄력이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었으니 직접 벗겨 확인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아흐읏..!"
고개를 파묻자마자 유혜연의 움찔하고 크게 떨려왔고, 그대로 양팔로 내 뒷머리를 감싸 안으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머리도 쓰다듬을게요."
요구는 여전히 소녀스러운 주제에, 요구하는 태도는 점점 당당해져서 이제는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대로 한쪽 손으로 내 뒷머리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한다.
"아으..♡"
이게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머리를 쓰다듬는 중에도 희미하게 몸이 움찔움찔 떨려오는 게 느껴진다.
'..모르겠다.'
어쨌든 섹스는 하고 싶을 테니 알아서 진도 나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희미하게 남아있던 긴장까지 다 풀어버리고 뭉클한 가슴 위로 완전히 체중을 싣고 몸을 맡겼다.
마음같아서는 시원스럽게 주무르고 싶은데. 아직 그럴 수 없다는 게 끝내 아쉬웠다.
"후아아.. 이제 됐어요."
"됐어?"
"네. 밥도 다 먹었으니까 가요."
"..어. 그래."
전체적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나 얕게 흘러나오는 숨소리만 들어보면 몸은 확실히 발정 난 게 분명한데. 표정은 더없이 개운하고 만족스러워 보여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 이게 끝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내색하지 않고 대리를 부르고, 주차장으로 나와 별스러울 것도 없는 잡담을 나누다가 대리가 도착해 차를 몰고 유혜연의 오피스텔 앞까지 도착했다.
유혜연을 배웅하기 위해 잠시 차에서 내리자, 우물쭈물 앞으로 다가온 유혜연이 긴장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치켜든다.
"마지막으로.. 뽀, 뽀뽀 한 번만 해주세요.."
키스도 아니고 뽀뽀랜다.
조금 심술을 부려서 뺨에다 해주려다가, 그랬다가는 다음 진도가 한참은 느려질 것 같아 촉촉한 입술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아으읏..!"
이번에는 다리까지 풀릴 뻔했는지, 아예 휘청이듯 무릎을 굽혔다가 겨우 균형을 잡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그, 그럼 가볼게요! 오빠도 잘 들어가세요!"
그대로 몸을 휙 돌려 도망치듯 오피스텔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아주 그냥 꿀이 떨어지네. 좋으시겠습니다."
그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차 안으로 돌아오자 대리 기사가 능글맞게 말을 걸어왔지만 받아줄 기분도 아니었다.
*
집으로 돌아와 문을 턱 닫은 순간.
"꺄아아아!!"
곧장 신발을 벗어던진 유혜연은 소음이고 뭐고 신경도 쓰지 않고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침대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그대로 다이빙하듯 몸을 날려 풀썩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다시 한번 최민석의 손을 잡았다.
그 두껍고 납자다운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며 감촉을 확인했다.
그 넓은 가슴과 탄탄한 팔뚝에 꽉 안겨 머리를 쓰다듬어졌다.
깊게 숨을 들이킬 때마다 들어오는 체취는 그대로 깊숙이 스며들어 머리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홀했다.
다시 최민석을 품에 끌어안고, 머리도 쓰다듬었다.
최민석은 보통 남자들과는 달리 머릿결도 굉장히 부드러웠다.
집 앞에서는, 차에서 한참 할까 말까 고민했던 입술 뽀뽀까지 받아버렸다.
그다음 진도는?
"몰라아아!!"
아무리 그래도 남녀 사이에는 진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처음부터 이상하고 음흉한 부탁을 하기에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염치없고 몰상식한 행동이었기에 최대한 자제했다.
다짜고짜 문란하게 몸을 섞기에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한, 그리고 일말의 무서움 같은 감정도 섞여 있기는 했다.
"흐응읏..!"
오늘 최민석과 있었던 일을 머릿속으로 끝없이 재생시키면서,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옷 안으로 밀어 넣은 손을 미끄러지듯 꼼지락거렸다.
찔꺽, 찔꺽, 찔꺽.
가느다란 손가락이 질구멍을 빙글빙글 돌리듯이 문지르고, 얕게 들락날락하며 빠르게 쾌감을 끌어올렸다.
"흐아앙..♡ 오빠..♡ 너무 좋아요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멘탈을 철저하게 박살 냈던 성욕에 대한 거부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행복한 쾌감만이 몸과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내일 있을 강의 같은 건 머릿속에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기에 유혜연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쾌락에 빠져들 수 있었다.
대학 생활에 있어서는 남들 이상으로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었던 유혜연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