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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294화 (294/775)

< 294화 > 오빠 술 못 마셔요? (7)

술은 처음 먹어본다.

몇몇 애들은 민증이 나오자마자 편의점으로 뛰어가서 술부터 마셔 본다지만, 유혜연은 애초에 그런 유흥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있으니 먹어야 한다면 먹겠지만, 먼저 마시겠다고 술을 찾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아무튼, 술을 먹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다.

'으..'

알 것 같다. 이게 취한다는 느낌인가 보다.

머리가 살짝 멍해지고, 몸도 뜨거워져 더운 느낌이 살짝 불쾌하고 이대로 드러누워 자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직 한 병도 다 못 먹었는데..'

별 알맹이도 없는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유서연은 이미 한 병을 다 비웠고, 최민석도 이미 자신과 비슷할 정도로 마셨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멀쩡해 보였다.

"벌써 취했나 보네?"

"..아니거든?"

주량 따위. 많든 적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일 텐데.

귀엽다는 말투로 살살 웃으며 말하는 유서연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히 울컥해서 최대한 힘을 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너무 놀리지 마.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것도 아닌데."

"놀리기는. 진짜 취한 것 같아서 물어본 건데. 봐. 얼굴 빨개졌잖아."

"읏..!"

유서연의 말과 함께 최민석의 시선이 곧장 자신의 얼굴로 향했다.

정말로 빨개졌을까? 취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건데. 어째서인지 그걸 최민석이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이고 싶었다.

그래도 최대한 당당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민석의 시선을 받아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은 것 같네. 혜연이는 딱 한 병까지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문제는 없겠다."

"그, 그래요..?"

"더 마셔도 괜찮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적당히 취하고 끝내는 게 좋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어디까지 마셔야 위험한지 제대로 알아둬야지. 안 좋은 술버릇이라도 있으면 더 조심할 수도 있는 거고."

최민석이 얘기를 훈훈하게 끝내는가 싶더니, 유서연이 다시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처럼 셋이 처음 모였는데, 조금 더 마셔도 괜찮잖아. 응?"

"그거야 뭐.. 더 마시고 싶어?"

유서연이 아닌 유혜연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으음.. 조금만 더..?"

사실, 굳이 더 마시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술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취한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유서연이 말한 최민석이 취했을 때의 상태. 그게 궁금해서라도 조금은 더 마실 필요가 있었다.

"그럼 마셔도 괜찮아. 억지로 마시는 것도 아니고, 너무 과하게만 안 마시면 괜찮으니까. 적당히 조절할 수 있지?"

"..그럴게요."

뭔가, 신경 써주는 것 같아 기분 좋다.

희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최대한 억누르며 잔에 따른 술을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해 나가며 마셨다.

유서연과 최민석은, 여전히 마시는 속도가 줄지 않는다.

유서연은 이미 한 병 반을 넘겼고, 최민석도 한 병을 넘겨 두 잔을 더 마시고 있는 상태.

한 병이라고 했으니까, 이젠 확실히 취했을 것 같은데. 막상 여기까지 와 보니 최민석의 주사를 '확인'할 만한 질문을 떠올릴 수가 없다.

뭘 해달라고 해야 하지?

애초에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평소의 최민석이 확실하게 '싫다'라고 할 만한 요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최민석과 둘뿐이었다면 과감하게 행동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바로 곁에 유서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저 인간은 취하지도 않는 건지, 두 병째를 거의 다 비우고 있으면서도 취하기는커녕 얼굴이 달아오른 기색도 없었다.

몽마가 되고, 신선한 정기를 매일같이 받아들이며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몸은 당연히 술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모르는 유혜연으로서는 유서연이 그냥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선 술고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혜연아."

"으응..?"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갑작스럽게 이름을 불린 탓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대답의 말끝이 살짝 늘어졌다.

"우리 애기. 술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까?"

바로 옆에서 최민석이 듣고 있는데. 더 멀리 떨어진 유혜연에게 마치 비밀로 나쁜 일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글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역시나.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최민석이 곧바로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핀잔을 준다. 하지만 유서연은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는 모양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유혜연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응? 보고 싶으면 보여줄게. 엄청 귀엽거든."

악마의 속삭임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마치 자신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것처럼 시기적절하고 절묘한 질문이다.

하지만 이걸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어쨌든 이건 최민석의 술버릇을 이용해 놀려먹는 행위가 아닌가.

이런 건 옳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보여줄 건데..?"

역시 이건 꼭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민석을 위해서라도.

유서연보다는 자신과 사귀는 게 최민석에게 더 좋은 일일 테니까. 이건 그렇게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조심스럽게 되묻는 질문에 유서연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며 은근하게 웃음을 흘렸다.

"보고 싶구나? 보고 있어봐. 민석 씨."

"아니,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 뭘 보여준다고.."

그것도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멀쩡한 상태로 다 듣고 있는데, 술버릇이라고 해서..

"손."

"응?"

"여기 손 올려봐."

"손은 갑자기 왜?"

올렸다.

사람도 아니고, 개한테 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내밀며 명령했을 뿐인데. 최민석은 왜 그러냐고 물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유서연의 손바닥 위에 손을 올린 상태였다.

"봐, 올렸지?"

"아니, 이건 그냥 서연 씨가 해달라고 하니까 해준 거고."

유서연의 표정은 대단한 쇼라도 보여준 것처럼 득의양양했지만 최민석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실제로 손을 올려주긴 했지만. 그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별 생각 없이 해줄 수 있는 일 아닌가?

마치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유서연은 곧장 다음 명령도 내렸다.

"뺨에 뽀뽀도 해줘."

"나 참.."

이번에도. 유서연의 뜬금없는 요구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쪽, 하고 유서연의 뺨에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이리 와서 안겨줘."

"하여간 장난은.."

유서연이 품에 안기라는 듯 팔을 활짝 벌리며 말하자 최민석은 픽 웃으면서도 앉은 자세 그대로 유서연에게 다가가 어린애처럼 커다란 가슴 위로 고개를 파묻듯이 안겼다.

"봤지?"

유서연은 품에 안긴 최민석의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여줬다는 듯 당당하게 물었다.

"그, 그냥 아까처럼 적당히 받아주는 거 아니야? 술 마시기 전에도 그랬잖아."

최민석이 어린애처럼 얌전하게 품에, 커다란 가슴에 안겨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부럽다.

당장이라도 유서연과 자리를 바꿔서, 자신이 해보고 싶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장면이었다.

"이래도 못 믿어? 그럼.. 이렇게 할까? 민석 씨?"

"응?"

"이제 만족했으니까 똑바로 앉아봐요."

"알았어."

유서연의 품에 안겨있던 최민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민석 씨."

"왜 자꾸 불러?"

"윗옷 좀 벗어볼래?"

"무슨..!"

"뭐? 옷은 또 왜 벗어?"

너무 뜬금없는 유서연의 말에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최민석이 옷을 벗지 않은 상태로 이유를 물었다.

"그냥 민석 씨 몸 좀 보고 싶어서 그래. 빨리 벗어봐."

"알았어."

분명 거짓말 같지는 않았는데, 거짓말이었나? 라고 생각하기를 잠시. 유서연이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를 갖다 대자 최민석은 곧장 입고 있던 윗옷을 홱 벗어 내려놓는다.

"으, 으와왓..!"

평생 내본 적 없는 기묘한 소리가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며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이 뜨거워졌다.

얼굴만이 아니라, 귀, 목, 그냥 온몸이 다 뜨겁다.

그만큼 최민석의 상반신은 자극적이었다.

여자만큼이나 매끈하고 하얀 피부, 군살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자리잡힌 쩍쩍 가라진 복근이나 가슴 근육. 그리고 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것처럼 움푹 패인 쇄골까지.

그리고 가슴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모, 몰라..!'

이렇게 갑작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자극적인 장면이라, 결국은 참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혜연이도 보고 있는데 벗으라고 하면 어떡해. 다시 입는다?"

"응. 빨리 입어."

유서연의 말이 맞았다.

최민석은 술에 취해도 전혀 취한 것 같지 않은 것처럼 멀쩡해보이지만, 누구보다 심각한 주사를 가지고 있었다.

스륵, 스르륵 하고 옷 입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별것 아닌 소리마저도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져서,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이 도무지 식을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 입었으니까 고개 들어도 돼."

"네, 네에.."

그런 문제가 아닌데. 그래도 최민석이 말했다고 무시는 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답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 술에 취했을 때만 해도 '정말로 빨개졌나?' 하는 의문이라도 들었었는데. 지금은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인생에서 가장 심각할 정도로 얼굴이 빨개져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엄청 빨개졌네."

"그러게. 혜연이한테는 자극이 너무 셌나보 다."

유서연이 킥킥 웃으며 어린애 취급하며 놀려대는 말도, 지금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욱하는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아무튼, 이상한 술버릇 같은 거 없으니까 혜연이 너도 오해하지 말고. 그냥 서연 씨가 장난 좀 친 거야."

"..네."

최민석이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저게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는 건 이제 초등학생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혜연은 차마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적당히 대꾸하면서 유서연에게 조심스럽게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그런데, 이래도 괜찮아? 나중에 화내는 거 아니야?"

"괜찮아. 어차피 기억도 못 하거든."

"뭐..?"

오늘은 이미 충분히 놀랄 만큼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아예 기억을 못 한다기보다는.. 대충 메꿔버린다고 해야 하나? 술 마실 때 뭘 시켜도 그냥 다음날 되면 아무 일도 없이 잘 마시고 집까지 돌아온 줄 알아. 마시면서 했던 얘기 같은 건 다 기억하는데, 자기가 시켜서 한 행동들은 기억을 못 하거든. 신기하지?"

"아직도 그 얘기야?"

옆에서 최민석이 이젠 조금 질렸다는 듯 힘 빠진 목소리로 끼어들었지만 도무지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기억을 못 한다고? 정말로?'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아니라면 유서연이 이렇게 다음날 싸움이 벌어질 만한 일들을 시킬 리가 없었다.

"그, 그럼.. 나도 뭐 하나만 시켜봐도 돼..?"

이것만큼은, 최면이 아닌 유혜연의 순수한 의지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덕분에 유서연만이 아닌 최민석도 살짝 의문 어린 시선을 보내왔지만,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빳빳하게 긴장해 있는 유혜연은 눈치챌 수 없는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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