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최면 에스테틱 프리지아 (3)
유서연과 함께 방에서 나와 복도를 가로지르자 로비 쪽에서 작게 웅성거리고 있던 소리가 잦아들었다.
"미안합니다. 아직 오픈도 안 했는데 이렇게 세워둬서."
"괜찮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나란히 서 있는 아홉 명의 앞에 서며 가볍게 사과하자, 임예진과 비슷한 큰 키 때문에 눈에 띄었던 두 명 중 한 명이 대표로 말을 받았다.
최면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나는 유서연과 섹스 프렌드 정도의 친분이 있고,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돈도 많다.
그리고, 그 재력을 이용해 마음에 든 상대인 유서연이 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즉, 이 가게의 사장은 유서연이지만 실질적인 주인은 나라는 의미였으니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내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 사업이 괜찮다 싶으면 새로운 지점을 내고 직원 중 마음에 든 누군가에게 지점을 맡길 거라는 정보를 유서연 쪽에서 뿌려둔 덕분에 내게 잘 보이고 싶을 것이다.
아까 내가 사업 쪽에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유서연에게 알아서 잘했을 테니 믿겠다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 분위기가 작게 술렁인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
얼핏 보면 차분한 것 같지만 은근한 기대가 어린 직원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명 한명을 천천히 살폈다.
아까도 생각했지만 얼굴 쪽은 말할 것도 없이 합격이고, 다들 피부도 깨끗하다.
애초에 에스테틱이라는 사업 자체가 마사지는 부가적인 서비스일 뿐이고, 피부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일하는 직원들 역시 신뢰를 얻기 위해 예쁘고 피부가 좋은 이들만 뽑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더 볼만한 게 있다면 키나 몸매 정도인데. 유서연이 직접 고른 직원들은 하나같이 키도 크고, 가슴도 컸다.
보정 속옷이 아니라면 최소 C컵에서 D컵 사이. 아주 크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저 정도면 내 기준에서도 주무르는 맛은 있는 수준이다.
아쉽게도 이젠 B컵까지는 그냥 빈유라고밖에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평가였다.
거기에 몽마로서 기준을 잡더라도, 다들 정기의 상태가 깨끗하고 양도 훌륭하게 모여 있으니 유서연이 얼마나 열심히 사람을 골랐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명 한명의 얼굴과 몸매를 전부 살피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얼굴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상대를 정했다.
"그럼, 하연 씨."
가슴에 붙인 명찰에는 '성하연'이라고 깨끗한 글씨로 이름이 적혀 있어 초면에도 이름으로 부르기 편했다.
170이 넘는 큰 키에 윤기가 흐르는 긴 생머리와 차분한 눈빛, 가슴도 꽉 찬 D나 E컵 정도로 보이는 게 안는 맛이 있을 것 같다.
사실 눈으로만 본다면 전부 마음에 들긴 했지만 방금 내 사과에 대표로 대답했던 덕분에 제일 눈에 띄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네."
짧게 대답하는 목소리도 조용하게 착 가라앉아 듣기 좋아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일단 정식 근무도 아닌데 이런 부탁 드려서 미안하지만, 저도 마사지 한 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
"예. 괜찮습니다. 마사지는 VIP룸에서.."
"일단은 일반실에서 받아볼게요. 피부 관리는 별 관심 없고, 마사지 쪽은 흥미가 있긴 했는데, 아직 받아본 적은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오늘은 따로 일정 더 없지?"
"예.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을까요?"
성하연을 따라가기 전에, 남아 있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묻자 유서연이 나서서 대답했다.
"됐으니까 퇴근시켜드려. 다들 내일부터 출근하셔야 하는데, 오늘이라도 푹 쉬어야지."
"그렇게 할게요. 다들 들으셨죠?"
유서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자고 눈짓을 보내자 성하연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걸어갔고, 뒤를 따라 걷는 사이 뒤에서 '네' 하고 다 같이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죠."
멀리 갈 것도 없이, 복도 첫 번째에 있는 1번실 안으로 들어와 다시 한번 안을 둘러봤다.
'확실히 분위기가 비슷하네.'
마사지물 AV. 물론 여기서는 남자 쪽이 손님이고, 여자 쪽이 마사지사라는 차이 정도는 있었다.
"따로 희망하는 코스가 있으신가요?"
"제가 이런 쪽으로는 아는 게 없어서 그런데. 그냥 전신 마사지 같은 것도 있죠?"
"네. 있습니다."
"그럼 그런 쪽으로 가볍게 부탁드릴게요. 따로 더 정할 부분이 있으면 하연 씨가 알아서 해주시고요."
솔직히, 내가 아는 마사지라고 해봐야 군대 외박 나가서 갔던 사우나에서 본 때밀이 아저씨가 해주는 마사지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그냥 식당에서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으니 아무거나 달라고 하는 정도의 귀찮은 주문이었을 텐데. 성하연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잠시 나가 있을 테니 탈의하시고 불러주세요. 탈의하신 옷이나 기타 물품은 이쪽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성하연은 로커 바로 옆에 있는 깔끔한 나무 바구니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방 한구석에 있는 로커에서 검은색 사각팬티를 한 장 꺼내 건넸다.
눈으로 볼땐 몰랐는데, 직접 만져 보니 감촉이 부직포 같은 방수 재질 같은 느낌이었다.
"다 벗고, 이것만 입고 있으면 되는 거죠?"
"예. 불편하시면.."
"불편할 게 뭐 있어요. 그냥 잘 몰라서 물어본 겁니다. 그런데, 탈의실 같은 건 따로 없나요?"
"로비에 샤워실과 탈의실 겸 파우더 룸이 있습니다만, 남성 고객용 속옷은 따로 비치해두지 않아서 이쪽으로 안내해드렸습니다."
하기야, 여성 전용 업소 탈의실에 남자가 입을 만한 사각팬티를 넣어 두면 최면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아마 그런 이유로 이렇게 각 방마다 로커 안에 내 전용으로 따로 준비해둔 것이리라.
일단 궁금증도 해결됐고, 잠시 성하연을 내보내고 옷을 다 벗어 건네받은 속옷 차림으로 갈아입고 다시 성하연을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보는 앞에서 벗어도 상관없긴 했지만 초면에 괜히 노출증이라고 오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일단, 천장 방향으로 누워주세요."
순간 내 몸을 빠르게 위아래로 훑어내리는 성하연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누가 본다고 부끄러울 몸도 아니고,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심리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시키는 대로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혹시, 알러지나 피부 질환 같은 게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시술 시작하겠습니다."
순간 복부 위로 차갑고 미끄러운 오일이 주르륵 흘러 내려와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어버렸다.
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놀라는 것도 잠시. 오일을 몸 전체에 펴 바른 성하연이 가느다란 손과 팔꿈치로 내 몸 곳곳을 꾹꾹 누를 때마다 적당히 기분 좋은 자극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좋지는 않은데?'
차라리 예전에 군대 후임이 자기가 스포츠 마사지를 할 줄 안다고 야매로 해준 걸 받았을 때가 더 시원한 것 같았다.
유서연이 실력 없는 사람을 뽑아왔을 것 같지는 않고, 애초에 시원하게 기분 좋은 쪽이 아니라 몸에 좋은 마사지일지도 모른다.
몸에 긴장을 풀고 마사지를 받으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쯤 작게 숨소리만 내던 성하연의 입이 열렸다.
"고객님 몸이.. 굉장히.. 건강하시네요.."
"몸이요?"
어깨와 팔에 힘을 주고 내 몸을 꾹꾹 눌러대며 말하는 탓에 중간중간 힘을 주느라 말이 멈추기는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되물었다.
"예.. 마사지는.. 근육이 뭉친 곳이나.. 관절이 비틀린 곳을.. 풀어주는게.. 목적인데.. 고객님은.. 그런 곳이.. 전혀 없어서.."
아무래도 이게 성하연의 마사지가 생각보다 별로였던 이유였나보다.
일반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정기가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주는 덕분에 근육도 뭉치지 않아서, 뭉친 근육이 풀어지면서 느껴야 할 시원함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생각도 못 했네.'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몸이 너무 건강해서 마사지가 시원하지 않으면, 그냥 마사지를 안 받아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러면 그냥 몸은 똑같이 건강한데, 몸이 안 좋은 사람들에 비해 돈도 시간도 아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간간히 찾아와서 기분 좋게 마사지도 받고 욕구도 풀려던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모르겠다.'
뭐가 됐든 간에 아프고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조금씩 기분 좋은 느낌은 있다. 거기에 예쁜 여자가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름 즐거움은 되지 않겠는가.
마사지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는 걸 그만두고, 열심히 내 몸을 주무르고 있는 성하연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처음 보고 느꼈던 인상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차분한 눈빛이었지만 마사지를 하느라 숨도 조금 가빠지고, 땀도 송글송글 맺혀있어 처음 보다 괜찮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몸을 숙이고 힘을 꾹 줬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옷 위로도 가슴이 흔들리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 나름대로 성욕도 조금씩 올라왔다.
"하연 씨."
"말씀.. 하세요.."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제가 아직 직원분들에 대해서 들은 게 없거든요."
"스물.. 일곱입니다.."
나이가 젊긴 했지만 역시 나보다는 연상이다.
나야 이제 나이가 스물 넷이었으니, 일반적으로는 아직 대학 졸업장도 못 받았을 나이라 사회에서는 나보다 연상인 상대를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남자 친구는 있어요?"
"아뇨.. 없습니다.."
"의외네요. 예쁘셔서 인기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지금은.. 후우..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없는 게 아니라 안 만들었다는 건가.
그렇게 일에 진심인데도 유서연한테, 나한테 걸렸다는 게 조금 불쌍했다.
"그럼, 이직은 왜 하신 거예요?"
"일하던 곳보다.. 계약 조건이.. 훨씬 좋았어요.."
나름 현실적인 이유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네.. 다들.. 하아.. 조건이.. 너무.. 하아.. 파격적이라.."
유서연이 계약 조건을 어떻게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있던 곳보다는 다들 좋은 조건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적당히 최면을 걸어서 싼값에 부려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분명 '왜 이게 더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지?' 같은 위화감이 생기고 최면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으니 유서연 성격상 그냥 돈을 더 써버렸을 것이다.
그 조건에 나와의 섹스는 들어가 있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대우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 마음 편하게 따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에 성하연의 손이 허벅지까지 도착해 단단한 근육을 힘껏 주물러댔고, 열심히 땀 흘리는 성하연의 모습에 슬슬 성욕도 올라와 적당히 자지를 발기시켰다.
정기의 흐름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내 의지로 자지를 가라앉히거나 세울 수 있었는데, 이미 선 걸 가라앉히는 건 어려웠지만 이미 어느 정도 할 마음만 들었다면 세우는 건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
열심히 허벅지를 주무르는 성하연의 시선이 마사지용 속옷을 뚫어버릴 기세로 우뚝 솟아오른 텐트 쪽에 닿았다.
잠시 그쪽을 바라보던 성하연은 계속해서 성의껏 손을 움직이며 마사지를 이어 나가며 입을 열었다.
"필요하시면.. 이쪽도.. 마사지해드릴까요..?"
내가 굳이 최면을 걸 필요조차 없이. 유서연이 걸어놓은 최면이 깔끔하게 효과를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