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1화 > 최면 에스테틱 프리지아 (2)
모텔에서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내고, 엘레나를 학원까지 데려다줬다.
시간은 정확하게 아홉 시 오 분 전. 유서연이 아홉 시 반 정도에 맞춰서 와 달라고 했으니 시간이 꽤 남는다.
유서연이 차린 마사지 샵도 강남 외곽에 있었고, 학원 역시 강남권 인근에 있는 탓이었다.
가능하면 마사지 샵도 아파트 인근에 차리고 싶었지만, 수준 높은 손님들은 여전히 강남 쪽을 선호하는 탓에 고객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나.
어차피 집에서 차만 몰면 30분 정도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으니 그리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얘는.. 아직도 반응이 없네.'
유서연이 말했던 대로라면 분명 제대로 멘탈을 깨놓고, 집착도 키워놨으니 뭐라도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혜연에게서는 단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나마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기본 프로필이었던 사진이 예쁘게 찍은 셀카로 변했다는 것 정도일까.
앞으로 며칠만 더 기다려보고도 반응이 없다면 유서연과 함께 술자리를 핑계로 다시 한번 건드려볼 생각이었다.
학원 주차장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유서연이 찍어준 주소로 차를 몰아 시간 맞춰 도착했다.
[최민석 : 지금 주차장 도착했는데, 올라가면 돼?]
[유서연 : 네. 준비 다 끝났으니까 올라오시면 돼요.]
주차장에 들어오기 전에 확인해본 바로는 건물 1층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카페, 그리고 2층과 3층을 통째로 마사지 샵으로 쓰는 것 같았다.
에스테틱 프리지아. 이름은 별 뜻 없이 어감 좋은 단어로 골랐다고 했는데, 유리로 된 자동문 너머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도 깔끔한 내부와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서오세요.""
자동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여러 목소리가 겹쳐진 인사가 동시에 들려왔다.
"오셨어요?"
직원들이 양손을 배꼽 위에 올린 채로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하고, 유서연이 가벼운 걸음으로 옆으로 다가와 커다란 가슴을 꾹 눌러 붙이듯이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우선 직원들은.."
유서연이 내 옆에 달라붙는 사이 숙였던 고개를 되돌리고 공손하게 서 있는 여자들을 가볍게 훑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직원들의 숫자는 총 아홉 명.
전부 키는 평균보다 컸고, 임예진처럼 170이 넘어 보이는 키도 둘 정도 보였다.
얼굴이야 유서연이 직접 골라서 데려왔으니 지적할 필요도 없고, 한명 한명이 서글서글하고 부드럽다거나 고양이처럼 도도하다거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풍기는 등 각자 개성도 느껴져 골라 먹는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은 명찰이 있으니까 굳이 소개는 필요 없을 것 같고. 생각날 때마다 오시면서 차차 알아가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대충 넘어가도 돼?"
각자 자기소개라도 시켜줄 줄 알았더니, 대충 넘겨버리는 유서연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김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들 실력이나 경력은 확실하니까요. 경력은 어디서 얼마나 쌓았고, 무슨 대학을 나와서, 무슨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듣고 싶으세요?"
"..됐다. 서연이 니가 알아서 잘했겠지."
"그렇죠?"
유서연을 믿는 것도 믿는 거였지만, 뭐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홉 명의 자기소개를 들어봤자 지루하기만 할 것 같아 나 역시 대충 넘겨버리기로 했다.
유서연이 다 안다는 듯이 말하며 몸을 기울여 조금 더 달라붙자, 순간 직원들의 눈빛에 생기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 저는.. 사장님한테 가게 내부 좀 안내해드릴 테니까. 다들 잠시만 기다리고 계실래요?"
사장님이라는 게 날 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를 잠시. 직원들이 동시에 '네.' 하고 대답했고, 유서연의 팔에 이끌려 로비에 모인 직원들을 뒤로하고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단, 2층은 손님들이 이용하는 공간이에요. 로비는 방금 보셨으니 넘어가고, 마사지실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셋팅해놨어요."
"..어디서 많이 본 분위기네."
방 한가운데 놓인 사람 두 사람 정도 누울 만한 높은 침대에, 뭔지 모를 화장용품들이 쌓인 선반과 복도보다 아주 조금 더 어두운 조명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예전에 참고삼아 봤었던 미약 마사지 AV같은 데서 나올 법한 배경이었는데, 노골적으로 어두운 영상 속 배경과는 달리 눈을 감아도 빛이 거슬리지 않고, 뜨고 있어도 어둡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딱 좋은 밝기라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기본적으로 손님 한 명당 1인 1실이고, 2인실도 준비돼 있긴 하지만 그쪽은 방이 두 개밖에 없어서 회전률이 좋진 않을 거고, 그냥 누가 다른 손님을 소개해서 데려왔을 때 같이 받으면서 안심시키는 용도 정도로만 쓰면서 메인은 1인 1실로 운영할 거예요."
1인 1실. 손님과 마사지사 단둘이 이용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손님은 내일부터 받을 예정이고, 괜찮은 손님들은 차차 최면을 걸어서 주인님이 원하시면 '성감 마사지' 코스도 받을 수 있도록 해둘 예정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기대되네."
솔직히 말하면 마사지 플레이 같은 거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건 나를 위해 만들어진 여자를 수급할 수 있는 일종의 양식장 같은 곳이었으니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다음에 보여드릴 방이 본론이에요."
"그래?"
솔직히, 마사지 샵 하나를 최면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것도 정신 나간 일인데. 과연 뭘 준비해놨길래 이렇게 자신하는 걸까.
이번에는 유서연이 너무 미친 짓을 벌이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불안과 기대를 느끼며 방을 나서서 복도 가장 안쪽으로 이끌려 걸어왔다.
복도 가장 안쪽에서, 한번 옆으로 꺾어 들어가자 다른 곳과 똑같이 생긴 문 위로 명패에 적힌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VIP룸?"
"네. 가게의 VIP 손님.. 그러니까, 주인님 마음에 든 손님들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 공간이에요."
유서연의 짧은 설명과 함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집에 있는 킹사이즈 침대보다도 더 커 보이는 동그란 원형 침대였다.
"나중에 괜찮아 보이는 손님들은 주인님한테 프로필이 넘어갈 거고, 거기서 주인님이 제대로 즐기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방문 때 VIP룸으로 안내해드릴 거예요. 내용은.. 섹스의 쾌감으로 인한 여성 호르몬의 분비로 미용 효과를 보는.. '특별한' 마사지사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마사지 정도로 해둘 테니까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마음껏 즐기시면 될 거예요."
유서연이 말하는 특별함은 아마 내 자지 사이즈나 정력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요컨대, 이 방에서는 뭘 하든 간에 여자를 느끼게만 한다면 마사지 서비스로 믿게 만들어 놓겠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이쪽에는 이것저것 마사지 '도구'들도 준비해 놨으니까 편하게 생각나시면 써 보세요."
출입문 옆에 있는 모던한 디자인의 캐비넷을 열자 그 안에는 끈이 연결된 핑크색 로터 몇 개와 사이즈 별로 주르륵 진열된 스위치 기능이 달린 딜도, 돌기가 올록볼록 솟아오른 그림이 그려진 콘돔 박스 몇 개가 들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저쪽이 욕실이에요. 저희 집 정도는 아니지만 두 사람은 들어가서 샤워도 하고 몸도 담글 수 있게 적당히 욕조도 하나 준비해 뒀어요."
마지막으로 방 한쪽 구석에 있는 불투명한 유리에 둘러싸인 공간을 가리키며 말하는 유서연을 보며 감탄을 담아 중얼거렸다.
"..진짜 제대로 준비했네."
"주인님한테 드릴 선물이니까요. 아, 그리고. 밖에 있는 직원들도 제가 미리 최면을 걸어뒀으니까, 원하실 때 오셔서 마음대로 즐기셔도 괜찮아요."
"걔들한테는 뭐라고 걸어뒀는데?"
"음.. 주인님하고 하는 섹스는 가게 업무의 일환이고, 주인님 마음에 제대로 들면 저처럼 자기 가게를 개업해줄 거라고 믿게 해놨어요. 이런 쪽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자금을 모아서 자기 가게를 개업하는 게 목표거든요."
"내가 개업 안 시켜주면?"
"그럼 자기 일하고 마는 건데요. 뭘. 나중에 따로 일 잘하는 애 하나 뽑아다 관리직으로 올려주고 좀 더 챙겨주면 자기들도 뭔가 떨어지는 게 없나 생각하게 될 거고, 어차피 주인님이랑 하다 보면 자기들 쪽에서 하고 싶어서 안달 낼 테니까요."
"......"
확실히, 유서연이 악독하다고 말하는 임예진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나도 양심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처지기는 해도, 유서연이 최면을 이용해서 사람을 아예 골수까지 제대로 이용해먹는 모숩을 보니 확실히 한 수 밀린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꼬박 몇 달에 걸쳐 정성들여 준비한 최면이다 보니 구조나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이 정도면 예진이 것도 기대할만하겠네.'
임예진이 뭘 준비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몰라도, 유서연 이상으로 시간이 걸리는 걸 보면 상당히 스케일이 클 것 같다.
거기에, 임예진이 정말로 이 악물고 혼자 준비하지는 않을 테고. 유서연 역시 임예진의 계획을 알고 보완할 만할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조언도 해주고 있으리라.
아무튼, 아직 눈앞에 다가오지 않은 일은 제쳐두기로 하고. 일단은 여기까지 왔으니 체험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밖에 있는 애들. 지금 바로 데려올 수도 있는 거지?"
"원하시는 대로 고르셔도 괜찮아요. 아니면, 전부 데려와서 노셔도 괜찮고요."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아하니 이미 확실하게 최면이 자리 잡은 모양이다.
이런 면에서는 유서연이 나보다 철저하게 알아보고 준비하는 타입이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아, 3층은 뭐 하는 곳이야?"
"비품실 겸 직원 휴게실이에요. 휴게실 하나에 층을 다 쓰는 건 조금 낭비 같기는 했는데, 따로 필요한 것도 없고, 보안상 윗층은 전부 저희가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냥 공용 휴게실 하나에 각자 개인 준비실처럼 쓸 수 있게 침대나 개인 냉장고 같은 것도 넣어서 방을 하나씩 줬어요."
직원 복지도 이 정도면 아예 돈지랄이 따로 없는 수준이었지만 유서연은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다.
"이 건물 자체가 그냥 제 소유고, 1층에 있는 카페도 전세로 들어와 있는 거니까 남의 눈치는 아예 신경 끄셔도 괜찮으실 거예요."
"그래, 그래. 아주 철저하게 준비했네."
강남 지역에 건물 하나. 이번 사업에 돈을 얼마나 썼는지는 굳이 물어보고 싶지 않아 대충 머리만 쓰다듬어주고 넘어갔다.
"이제 뭐, 따로 설명할 건 없는 거지?"
"으음.. 아, 직원들 프로필이 궁금하시면.."
"나중에 궁금하면 말할게. 가자."
"네!"
조금 뒤에 돌아올 VIP룸을 잠시 둘러보고, 유서연의 어깨를 끌어안고 함께 방에서 나와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로비로 향했다.
따먹을 수 있는 상대가 갑자기 아홉 명이나 늘어났지만 유서연의 말마따나 아홉 명을 동시에 불러다가 즐길 생각은 없다.
섹스는 기본적으로 1대 1이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았고, 아무리 많아도 두 명까지. 그 이상은 내 쪽이 정신 사나워서 사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