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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276화 (276/775)

< 276화 > 여동생은 언니를 이길 수 없다 (3)

"진짜 대단해."

"응..?"

뭔가 대단한 얘기라도 할 것처럼 뜸을 들이더니. 한다는 말이 고작 대단하다는 세글자뿐이라니. 너무 김빠지는 설명이었다.

"그러니까, 뭐가 대단하다는 건데?"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이 듣기엔 너무 진도가 빨라서.."

"아, 진짜..! 나도 이제 대학생이거든!? 됐으니까 그냥 말해!"

이젠 어린애 취급보다 이렇게 살살 놀리듯이 뜸 들이는 게 더 짜증 났다.

"그럼 뭐.. 배꼽 있지?"

"배꼽..?"

"거기까지 닿을 정도로 크거든."

"그게 무슨.."

아.

유서연에게 말했던 대로. 유혜연 역시 알 건 다 아는 나이였기에 유서연이 뭘 말하는 건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했으니 곧바로 알아들어야 정상이었지만 배꼽보다 조금 더 위라는.. 그 말도 안 되는 규격 탓에 더 오히려 이해가 늦었을 뿐이었다.

"거짓말 하지 마..! 그, 그러니까.. 구조상 말이 안 되잖아..!"

그래. 말도 안 된다.

안타깝게도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유서연의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고 자란 유혜연은 또래 여자들이 호기심에 한두 번씩은 보게 된다는 야동조차 한 번도 보지 않고 자랐다.

더러우니까.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니까. 그런 이유를 대며 스스로 피한 탓에 성에 대한 지식이 평균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도, 그런 덕분에 인체 구조적인 방향에서의 반박을 떠올려낼 수 있었다.

여성의 자궁은 배꼽보다 조금 더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 남성기가 배꼽까지 닿을 수 있단 말인가.

인체 구조상 불가능하다. 그게 유혜연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실전을 겪은 유서연에게는 우스운 반박일 뿐이었다.

"말이 왜 안 되니? 크기만 되면 배꼽까지 닿을 수도 있어. 그냥 끝까지 들어와서 꾸우욱 짓눌러서 밀어붙인다니까? 거기서 더 억지로 넣으려고 하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더 들어오고."

"그, 그게.."

말이 되나? 안타깝게도 유혜연이 가진 성 지식은 지금 들은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깊지 않았다.

정말로? 그게 되나? 무작정 부정하고 보기에는 자신은 영상 시청 경험조차 없는 무경험자였고, 유서연은 실제로 최민석을 겪어본 경험자였기에 '내가 겪어봤다니까?'라고 말해버리면 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는 것. 그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그렇게 크면.. 아플 텐데.."

"당연히 처음에는 아프지. 그런데 하다 보면 달라. 뱃속이 꽉 차서 숨이 턱 막혀오는데, 뱃속에서 막 찌릿찌릿하고 전류가 흐른다고 해야 하나? 머리는 어질어질한데 몸은 아예 녹아버릴 것 같아서.. 이건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겠다. 아무튼,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지."

"......"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귀까지 열이 올라오는 걸 보면 지금쯤 자신의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있을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그게.. 크다고 해서 성욕이 강하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우리 애기는 성욕도 엄청 세. 아침에 일어나면 솜이불도 들어 올릴 정도로 딱딱하게 서 있고, 같이 욕실에 들어가서 살짝만 안아줘도 바로 서거든. 성욕이 아니라 정력이 세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그게 그거긴 해."

"다른 거 아니야..?"

"다를 거 없어. 정력이 세면 그만큼 조금만 흥분해도 잘 서고, 남자는 흥분해서 선 시점에서 성욕이 올라온 상태인 거니까."

"......"

아까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아는 게 없는 탓에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혜연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이번에는 유서연 쪽에서 짧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성욕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거라는 생각을 버리라니까? 성욕은 그냥 생리현상일 뿐이고, 그걸 잘 참느냐 못 참느냐가 중요한 거란 말이야. 중요한 건 성욕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성욕에 휩쓸려서 문란하게 행동하나 안 하나. 그 정도만 기준으로 잡으라고."

그런가?

어째서인지 유서연의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져서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질문 하나에 혼란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나중에, 네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쳐. 그럼 그 사람한테 성욕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거랑, 딱 너만 바라보면서 너랑 자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어느 쪽이 더 좋을 것 같아?"

"그.. 건.."

유혜연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좋아하는 남자는 당연히 최민석이었고, 최민석이 자신에게 성욕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흣..!"

여전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들켰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히끅 숨을 삼켜버렸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심장이 거칠게 뛰어대고, 얼굴만이 아닌 몸 전체가 뜨겁게 화끈거렸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남친이라도 생기면 알게 될거야."

유서연은 그런 유혜연을 보며 내심 웃음을 흘렸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애기도 진짜 장난 아니거든."

움찔.

제대로 정신을 차릴 틈조차 없이 최민석의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유혜연의 몸 전체가 움찔 떨려왔다.

이번에도 반응은 확실하게 드러났지만 유서연은 여전히 모르는 척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봤으니까 알겠지만, 키도 크고 어깨도 넓은 편이란 말이야. 몸도 엄청 탄탄하고. 아무튼, 그 몸으로 꽉 끌어안아 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어대고.. 같이 씻으러 들어가서도 서로 씻겨주다가 못 참고 해버리는 편인데.. 거품으로 미끌미끌해진 상태에서도 꽉 붙잡아줘서 안심되면서도 두근거린다고 해야 하나? 막 애교부리고 싶은 거 있지?"

"......"

"아까도 말했지만 크기도 엄청 커서 그대로 붙잡혀서 안으로 푹 들어오면.. 진짜 여자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껴버리거든. 아니, 너무 느껴서 아무 생각도 못 하게 되니까 그건 아닌가?"

"......"

"그리고, 당연히 잠도 같은 침대에서 자니까. 정력도 엄청 세다고 했었지? 욕실에서 한두 번 한 걸로는 못 참고 침대에서도 서로 꽉 끌어안고 하는데.. 매일 내가 먼저 지쳐서 잠들 정도로 해주거든. 그럴 때마다 애기가 날 엄청 원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아, 쉬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서로 끌어안고 꽁냥거리다가 하기도 해. 그럴 때도.."

"......"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서연이 즐겁게, 행복하게 떠들어대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화내는 수준을 넘어서 이대로 주저앉아 서럽게 울어버릴 것 같아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참아내느라 필사적이었다.

저게 내가 알던 유서연이라는 사람이 맞나?

사귀는 남자 얘기를 하면서 저렇게나 행복하고, 기쁜 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가?

그렇게 행복한가? 최민석.. 민석 오빠랑 하는 동거가? 연인 간의 성행위가?

과장일지도 모른다.

가끔 주변에 있었던 학생 커플이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떨었던 것처럼 유서연 역시 별것 아닌 일을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이 씻으며 사랑을 나누고, 같은 침대에서 몸을 섞으며 잠들고, 같은 침대에서 깨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는 사실일 것 아닌가.

그렇게 둘이 함께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숨이 막혀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히끅거리며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다치기 전에는 같이 헬스장도 다녔었는데.."

"..나."

"응?"

달싹달싹 떨리기만 하며 제대로 벌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고, 간신히 목소리를 내자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던 유서연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 소리가 끊어지고 나서야 겨우 막혔던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아 후우 하고 짧게 숨을 들이켜고, 최대한 발음이 떨리지 않게 힘을 줘 말을 이어 나갔다.

"나.. 슬슬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 하긴. 슬슬 시간도 늦었는데, 들어가 봐야지. 일어나자."

"으응.."

유서연이 먼저 의자를 빼고 미련 없이 일어섰고, 유혜연도 뒤를 따라 일어나 함께 카페 밖으로 나왔다.

"집까지 태워다 줄까?"

"..아니야. 택시 타고 갈 거니까 먼저 들어가 봐."

원래라도 유서연이 뭔가 해준다고 한다면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정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유서연과 떨어지고 싶었다.

"그럼 뭐.. 아무튼 비밀로 해줘서 고마워. 다음에 셋이서 밥이라도 먹자. 언니 가볼게?"

"..으응. 잘 가."

오늘 몇 번이나 들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머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었다.

유서연이 완전히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택시를 잡은 뒤에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로 이사 온 오피스텔 앞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오피스텔의 입구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집으로 들어와 현관에 서 있는 상태였다.

대충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방으로 들어와서, 불을 켜지도 않고 외출복 차림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 몸을 웅크렸다.

"..흑."

그제서야, 둑이 무너진 것처럼 참았던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며 히끅거리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쁜..! 흑..! 년..! 흐윽..!"

시간으로 따지면 2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쌓인 시커먼 감정은 오롯이 유서연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유서연이 자신에게 뭘 잘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달리 할 말은 없었지만 그 외에는 원망할 대상이 없는 탓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더는 울 기력조차 남지 않고 나서야 침대에서 내려와 물을 따라 마시고, 다시 돌아와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억울하다. 도대체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이젠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는데, 유서연이 했던 말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최민석과 욕실에서, 침대에서..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들.

하지만 한참을 울면서 감정이 가라앉은 탓일까. 여전히 분하고 억울한 감정은 남아있었지만, 아까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 대신, 유서연이 말한 최민석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그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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