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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270화 (270/775)

< 270화 > 완전 꼬마 유서연인데? (2)

아니, 여자애는 아니다.

아직 앳된 분위기가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애'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기도 하고, 유서연의 동생이라는 걸 증명하듯 똑바로 서 있음에도 드러난 가슴의 굴곡이 굉장히 훌륭했다.

다만, 키가 너무 작아서 애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150.. 중반쯤 되나?'

155? 156? 그쯤 돼 보이는데, 아무튼 평균 키보다도 훨씬 작은 편인 건 확실해 보였다.

'아무튼, 자매가 쌍으로 대단하네.'

키는 작아도 가슴만큼은 예전 유서연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크다.

최소 E컵. 작은 체구를 생각하면 크기는 비슷해도 사이즈는 F컵까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모텔 욕실에서 엘레나의 가슴을 주무르며 한 발 뽑고 왔음에도 눈앞의 가슴 역시 홀딱 벗겨서 제대로 크기와 모양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가 눈으로 몸매를 빠르게 훑어내리는 사이, 현관으로 들어온 유서연의 동생 역시 못마땅한 눈빛과 함께 노골적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어..?"

표정을 관리하는 것도 잊어버렸는지, 눈에서 힘을 빼고는 '뭐지?' 하는 얼빠진 표정으로 다시 한번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한걸음 뒤로 주춤 물러나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거네.'

한 번 겪어본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짧은 반응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별 게 아니야. 그냥 정기의 궁합이 굉장히 '잘' 맞으면 생기는 일이지. 사실 그렇잖아?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잘생기고 예쁜 인간인데 그렇게 마주칠 때마다 반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호감 정도는 얻을 수 있어도.'

이지은과 정혜수의 일을 겪은 뒤에, 향설에게 직접 물어서 제대로 들은 답변이었다.

'특히 정기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런 일이 많지. 상대의 정기에 더 많이, 강하게 영향을 받게 되는 거니까. 당연히 더 강하게 반하게 될 테고. 그래봤자 못생기면 금방 싫어지겠지만.'

결론은 나와 정기가 맞는 상대라면 가까이서 마주치기만 해도 이렇게 호감을 사는 수준을 넘어 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이거 어떻게 못 하나?'

배부른 소리긴 하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귀찮다.

지금까지는 이랬던 경우가 이지은 한 명뿐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 두 명째가 됐으니 제대로 고민해볼 일이었다.

이지은이나 유서연의 여동생까지는 괜찮았지만, 앞으로도 무조건 예쁜 여자만 걸린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고, 집착이 강한 상대한테 스토킹 같은 것도.. 이건 너무 나간 생각이긴 했다.

'나중에 물어보면 되겠지.'

어차피 내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혼자 끙끙대며 고민할 바엔 기다렸다가 나중에 향설에게 물어보는 게 나았다.

그보다도 지금은 눈앞의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애를.. 아니, 여자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저기, 서연 씨 동생이라고 하셨었죠?"

"아, 네..! 마, 맞아요..!"

정말로 반쯤 혼이 나가 있었는지, 내가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당황하며 대답하는 모습이 조금 귀엽다.

눈매가 유서연을 닮은 탓에 기본적으로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인상이었지만 얼굴도 예쁘고 이렇게 허둥대며 인상을 무너뜨리니 누가 봐도 귀엽게 느껴질만 했다.

"서연 씨한테 얘기는 들었으니까, 일단 들어오세요. 커피라도 타 드리겠습니다."

"네, 네에.."

처음에 보였던 그 세상 불만 가득한 표정은 어디로 가고, 완전히 얼이 빠져서는 거실로 향하는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온다.

'..처음 써보네.'

나도 임예진도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이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건 유서연 뿐이다.

당연히 서민한테 친숙한 믹스 커피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괜히 비싸 보이는 커피 메이커 기계뿐이라 잠깐 손이 멈췄지만 유서연이 하는 걸 몇 번 지켜본 적이 있는 덕분에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맛은 보장하기 힘들었지만.

"드세요. 처음 타 보는 거라 맛은 보장 못 하지만."

"가, 감사합니다. 앗, 뜨..!"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여동생에게 커피를 건네주자 또 당황하며 커피를 호록 삼키려다가 깜짝 놀라 펄쩍 뛴다.

다행히 커피는 쏟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요. 그냥 조금 놀라서.."

"데이셨으면 일단 얼음물이라도.."

"아, 아니에요!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으시면 다행이고요."

여동생의 맞은편에 앉으려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하니 급하게 팔을 휘저으며 괜찮다고 강하게 어필하길래 다시 제대로 앉아 맞은편에 앉은 여동생과 시선을 맞췄다.

"으읏.."

입을 데여서 그런 건지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눈을 마주치자 살짝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해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힐끔 시선을 보내 눈을 마주쳐왔다.

"저기.."

"말씀하세요."

"그 인간.. 아니, 언니 애인이시라고요..?"

"네. 맞습니다. 이렇게 말하려고 하니까 조금 부끄럽긴 한데, 서연 씨랑 사귀는 중입니다."

앞에 잠깐 튀어나온 호칭이 살짝 신경 쓰였지만 동생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건 이미 들어둔 뒤였기에 굳이 지적하지 않고 대답했다.

"으.."

아직 정신이 없는 건지 자기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또다시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일단.. 최민석이라고 합니다. 동생분은 성함이.."

"유, 유혜연이에요."

일단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인지. 다시 말을 걸자마자 곧바로 표정을 풀고는 살짝 당황하며 자기 이름을 밝혔다.

"서연 씨는 온다는 연락을 못 받았다고 했는데,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그게.. 그냥.. 저도 근처에서 살게 돼서.. 그냥 인사만 하러.."

"이사오신 건가요?"

"네에.. 대학이 이 근처라서.. 졸업까지는 여기서 지내려고.. 오늘 이사 왔어요.."

여전히 중간중간 시선을 피하고 있기는 해도 최면을 걸 필요도 없이 대답이 술술 나오는 점은 마음에 든다.

"사이가 좋으신가 보네요."

"아, 음..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애매하게 둘러서 말하는 걸 보아하니 내가 유서연한테 자기 얘기를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통은 서로 원수라고 하는 경우도 많은데, 정말 좋으신가 보네요. 그보다, 서연 씨는 저녁때나 들어올 것 같은데. 따로 용건이 없으시면 다음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모처럼 오셨는데,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연락도 없이 온 건데요! 죄송하실 필요 없어요!"

그렇긴 하다. 물론 생각으로만 동의했을 뿐이지 굳이 말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서연 씨한테 동생분이 있다는 건 듣긴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까 신기하네요."

"신기.. 해요?"

"서연 씨도 예쁘긴 하지만 동생 분도 이렇게 예쁘실 줄은 몰랐거든요. 자매니까 닮을 수 있기는 해도 분위기도 정말 비슷하고요."

"아.. 하하.."

보자마자 둘이 너무 닮아서 놀란 건 진심이고, 일단 예쁘다고 칭찬도 해줬는데 유혜연의 표정은 뭔가 기쁜 듯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런데, 서연 씨한테 제 얘기는 전혀 못 들으셨나요? 아까 보니까 남자친구라고 말하니까 놀라신 것 같았는데."

"그게.."

유서연이 내 존재를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선은 몰랐다는 척 가볍게 운을 띄웠다.

일단은 적당히 분위기를 띄우고 가족들에게 나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는데, 어째서인지 긴장하고 있던 유혜연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네. 오기 전까지 전혀 몰랐어요. 부모님한테도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언니가 왜 말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말투도 갑자기 차분해졌다.

'뭔가 느낌이 좀..'

노골적이다.

잠시 갑자기 왜 이러나 고민했었는데, 유서연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린 순간 금방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유서연한테 너라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들은 적이 없다. 유서연이 비밀로 하고 있던 것 같은데, 너도 몰랐냐? 뭔가 이상하지 않냐?'

대충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기서 더 나가면 내가 유서연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있는 거고, 유서연이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겠지.

'하여튼 자매가 쌍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

그래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이미 속내를 알아냈다는 것과 나에게는 별다른 악의를 품고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해서 바라는 대로 해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서연 씨도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겠죠. 그냥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말하는 게 부끄러웠을 수도 있고요."

"무, 뭔.. 걔가.. 아, 아니. 언니가요?"

본인이 원했던 것과는 달리 내가 유서연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보내자 유혜연의 표정이 당황을 넘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기야, 유서연이 어떤 성격인지 안다면 남자친구가 생긴 걸 부끄러워서 가족에게 숨겼다는 게 얼마나 어이없게 들릴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네. 서연 씨도 은근히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니까요."

"하.."

유혜연은 도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입만 벙긋거리다가 끝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짧게 한숨만 쉬었다.

"저기..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을까요?"

"부탁이요..?"

"네. 서연 씨가 저랑 사귀는 걸 왜 가족분들한테 말을 안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은 제가 서연 씨랑 따로 얘기해볼 테니까 당분간은 가족분들한테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서요."

"그건.."

"부탁드릴게요."

여기서 유혜연이 폭주해서 가족들한테 언니한테 남자친구가 있다. 우리한테 비밀로 연애질이나 하고 있었다고 폭로해도 최면으로 어떻게 어떻게 수습은 가능하겠지만 그것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그냥 여기서 유혜연에게 비밀로 하도록 최면을 거는 게 훨씬 간단하고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알았어요."

부탁과 동시에 최면을 조금 세게 걸어 집어넣자 유혜연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더 최면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일단, 유서연을 싫어한다. 나한테 반했다. 이 두가 지는 확정 사항이니까 넘어가기로 하고. 이 둘을 전제로 상황을 만들면 되겠지.

'일단은..'

[유서연이 최민석 앞에서 내숭을 떨고 있다. 자신의 본래 성격, 과거 등을 전부 숨기고 착하고 얌전한 여자인 척해서 최민석을 붙잡아두고 있다.]

이 정도면 될 것이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혜연에게 재차 최면을 집어넣자 다시 한번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며 표정에 짜증스러운 기색이 흘러나왔다.

우습게도 이번 최면은 정기의 소모량이 굉장히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유서연에게서 최민석을 빼앗고 싶다.]

나중에 또 이것저것 추가로 최면을 걸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히 유혜연이 내게 집착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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