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267화 (267/775)

< 267화 > 선생님.. 이 아니라 누나요? (3)

"고마워요. 아니, 고마워. 누나."

"하아아.."

결국 내가 아예 말을 놔 버리자 엘레나 역시 지친듯 한숨을 길게 내쉬며 긴장하고 있던 몸을 풀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정말.. 너무 그러시면 저도 곤란해요."

"어허."

"뭐, 뭐예요."

"누나도 이제 말 놔야지. 나만 반말해?"

"..아, 알았어."

엘레나는 이번에야말로 다 내려놨다는 듯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눈에 힘껏 힘을 주고는 시선을 똑바로 맞춰오며 또박또박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적당히 할 줄도 알아야지! 상이라고 해도 다 그렇게 막 해도 된다는 건 아니란 말이야! 진짜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 말이야!"

말 놓는다고 어색해할 때는 언제고.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아무렇지도 않게 혼내려고 하는 게 또 나름 신선하다.

뭐가 됐든 정색하고 화내지 않는 걸 보아하니 크게 감정은 남지 않은 것 같고, 적당히 뻔뻔하게 받아넘기면 될 것 같았다.

"진짜 못 참겠어서 그랬던 거라니까."

"참아야지! 애들도 아니고, 그렇게 억지로 하면..!"

"아니, 누나도 생각을 해봐. 자기 얼굴이나 몸매가 어떤지는 알 거 아니야. 누나 살면서 누나보다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 몇이나 봤어? 본 적이 있기나 해? 남자는 진짜 미친다니까?"

"아, 아니..!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엘레나는 당황하면서도 빽 소리치고는 있지만 그새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조금 뻔하고 오글거리기는 말이긴 해도 거짓말은 하나도 없고,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엘레나 역시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예쁜 여자들은 의식하고 지내건 의식하지 않고 지내건 간에 자기가 예쁘다는 자각 정도는 다 하고 사는 법이니까.

"나도 억울하단 거지. 내가 좀 심하게 한 건 인정하는데, 누나 안고 욕실에 들어올 때도 계속 서 있었단 말이야. 더 하고 싶은 거 겨우 참은 거라고. 솔직히, 진짜 제대로 했으면 누나 기절할 때까지 계속할 수도 있었어."

"그, 그래도..!"

"다 거르고. 이것만 솔직하게 대답해봐. TV나 인터넷에서 말고 밖에서 누나보다 가슴 크고 몸매 좋은 사람 본 적 있어? 솔직히 TV에서도 못 봤을 것 같은데."

"그, 그래도.."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눈빛이나 목소리에서 힘이 확 빠져나갔다.

내가 보기에 엘레나의 가슴은 최소 F컵 이상이다. 그 정도면 서양인을 기준으로 해도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의 크기인데.

현실이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직접 F컵, G컵 이런 식으로 직접 검색하지 않는 이상은 쉽게 볼 수 없으리라.

거기에 저렇게 피부도 깨끗하고 거의 처지지도 않은 탄력 넘치는 가슴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정말 희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거 봐. 누나도 알잖아. 거기에 얼굴도 연예인이나 모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예쁘고. 나도 경험이 없는 건 아닌데, 진짜 못 참.. 읍..?"

"아, 알았으니까.."

그만하라는 건가.

양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탓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귀까지 빨개진 걸 보니 어지간히도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살짝 오글거릴 정도로 칭찬했던 적이 없기는 해도 그동안 경험했던 여자들은 대부분 예쁘다는 말 자체는 익숙하게 받아들이곤 했었는데.

엘레나는 이런 쪽에 면역이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엘레나의 손을 대충 밀어내고, 쉬면서 가볍게 토크나 해볼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누나 정도면 예쁘다는 말은 지겹게 들었을 텐데.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솔직히 남자한테 인기도 엄청 많았을 것 같은데."

"아, 음.. 그게.."

뭔가 이유가 있나? 아직 고개는 숙이고 있는 상태 그대로였지만 말투나 목소리에서부터 대답을 망설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숨길만한 일까지는 아닌 모양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숙였던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다섯 살 때 한국으로 이민 왔었잖아."

"그랬지."

김민아 덕분에 성적이 높아지고, 꾸준히 펠라를 받기 시작하면서 같이 밥도 먹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들었던 얘기였다.

"아주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초등학생 고학년 때쯤부터 조금씩 가슴이 커지기 시작하더라고. 그런데.. 그 나이 때 애들 알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야 그 나이 때는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을 때라 그런데 관심 자체가 없었지만 조금 빠른 애들은 사귄다고 붙어 다니기도 하고, 야동 같은 것도 슬슬 접하면서 관심을 가질 때였다.

"평범한 애들 사이에서 나만 확 튀니까 시선이 장난 아니기도 하고, 조금 조숙한 애들은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기분 나쁠 정도로 들이대고. 중학교 때부터는 그게 더 심해져서.. 진짜 장난 아니었거든."

"그래서, 남자들한테는 아예 철벽 치면서 지냈다고?"

"철벽.. 까지는 아니어도 그냥 어울릴 생각 자체를 안 했지."

"그래도 남자들 꼬이는 건 어쩔 수 없었을 텐데. 대학에선 장난 아니었을 것 같은데."

나야 대학 생활을 해본 적 없었으니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썰 같은 걸 보면 남자 대학생이야말로 여자랑 섹스에 미친 놈들 그 자체였다.

당장 유서연이나 임예진만 봐도 대학에서 남자들이 귀찮게 굴었다고 듣기도 했었고.

"대학에선 뭐.. 철벽 쳤지. 그때도 얼마나 짜증 났는지 알아!? 뒤에서는 빨통이니 뭐니, 외국인들은 개방적이라 벌써 해봤을 것 같다느니, 꼬시면 넘어올 것 같다느니! 내가 안 피하게 생겼냐고!"

"아니, 뭐.. 그렇긴 하네."

도대체 그런 얘기를 어디서 어떻게 했길래 본인 귀에까지 들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저 정도면 피해 다닐 만도 했다.

아니, 남성 혐오에 안 걸린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도 솔직히, 학원에서도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사람들 한둘은 매번 꼭 있어서 짜증 나 죽겠단 말이야."

"어, 음.. 미안..?"

"아, 아니. 너야 뭐.. 상이 이런 거니까 어쩔 수 없잖아. 별로 기분 안 나쁘기도 하고.."

꼴렸다.

너무 뜬금없기는 해도, 나는 노골적으로 쳐다봐도 괜찮을 정도로 특별 취급이라고 생각하니 은근한 정복감이 올라와 자지에 불끈 힘이 들어가 버렸다.

"누나."

"어, 응?"

"나 섰어."

"꺅!? 뭐 하는 거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벌떡 일어나 엘레나의 앞으로 성큼 다가가 자지를 들이밀자 엘레나 역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아니, 누나가 나만 특별 취급 해준다고 생각하니까.. 꼴.. 아니, 흥분돼서..?"

나도 모르게 꼴려서, 라고 말하려다가 엘레나가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도록 말을 다듬었다.

"아, 알았어. 나가서 더 하게 해줄 테니까, 조금만 더 쉬고.."

"지금 해줘. 그냥 입으로 한 번만.. 아니, 아니다. 기다려봐."

"갑자기 또.. 어디 가는데!?"

당황과 황당함이 반씩 섞인 엘레나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욕조에서 나와 세면대를 살폈다.

칫솔, 치약, 샴푸, 바디워시.. 아쉽지만 여기에는 없다. 그러고 보니 방에 간이 자판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떠오른 순간 젖은 상태 그대로 욕실 밖으로 나와 현관 옆에 있는 자판기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있을 줄 알았다."

오래 된 싸구려 모텔에는 잘 없는 편이지만 요즘 새로 생긴 고급 지향 모텔에는 어지간해서는 카운터만이 아니라 방에도 자판기가 꼭 한둘씩은 있었고, 음료수부터 해서 즐거운 시간을 위한 갖가지 도구들도 파는 경우가 많았다.

방바닥을 축축하게 적시며 벗어둔 옷에서 지갑만 꺼내 대충 던져놓고 자판기 앞으로 돌아와 결제를 끝마치고 전리품을 챙겨 욕실로 돌아왔다.

"뭐하고 온 건데..?"

"이거 가지러 갔다 왔지."

"그게.. 뭔데..?"

"러브젤. 몰라?"

"..아."

아나 보다. 기승위는 모르면서 러브젤은 어떻게 아는 건가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몰랐던 걸 보면 대충 용도만 아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걸로 뭘 하려고.."

벌써부터 불안한 모양인지 목소리와 표정에서 긴장한 기색이 묻어나왔다.

"이상한 거 아니야. 파이즈리라고 알아?"

"..그게 뭔데?"

파이즈리는 또 모른다. 아니, 저 가슴을 달고 살았으면 행위 자체는 알 수밖에 없다. 아마 그걸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만 모를 가능성이 컸다.

"들으면 알 것 같은데. 가슴 사이에 자지를 끼우고.."

"..싫어."

"아. 왜."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여태까지 중 가장 단호한 태도로 딱 잘라 거절당해버리자 나도 모르게 따지듯이 되물었다.

"그냥 싫어. 내가 남자들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소리가 그거였단 말이야. 뭘 그렇게 끼워보고 싶다는 건지. 진짜 짜증 났다고."

'망할 새끼들.'

뒤에서 음담패설을 할 거면 좀 안 들키게 할 것이지. 도대체 왜 이런 혐오감을 심어놨단 말인가.

서로 누나동생 하기로 하고, 말도 놓으면서 사이가 가까워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큼 이렇게 자기 할 말을 확실하게 하면서 딱 잘라 거절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날 편하게 여기게 된 건 계산 밖이다.

아니, 그냥 엘레나가 파이즈리에 불쾌감을 느낄 줄 몰랐던 게 문제였을 뿐이니.. 아무튼, 파이즈리는 꼭 받아보고 싶었으니 설득이 필요했다.

"누나 기분은 알겠는데. 진짜 한 번만 해주라. 나 진짜 너무 받아보고 싶어서 그래. 부탁해. 누나. 응?"

"뭐, 뭐야..! 그렇게 말해도 안 해줄 거야!"

솔직히 이런 건 익숙하지 않은데.

그냥 체면이고 뭐고 내려놓고 욕조로 들어와 엘레나한테 찰싹 달라붙어 부탁했다.

애교.. 까지는 못하겠다.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평생 애교 같은 걸 떨어본 기억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냥 대충 불쌍한 척하면서 애걸하면 되나?

"해보고 기분 나쁘면 그만해도 괜찮으니까. 응? 제발 한 번만 해주라. 누나. 응?"

"아으.. 정말..! 싫다니까..!"

살짝 마음이 약해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해주기 싫다는 마음만큼은 여전히 확고해 보인다.

'최면.. 까지는 쓰기 싫은데.'

최면이 이것저것 원하는 대로 하기에는 편해도, 전부 그걸로 넘겨버리면 뭔가 해냈다 싶은 달성감 같은 게 또 부족해서 섹스까지 가는 데만 최면을 쓰지, 섹스 도중에는 최면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나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상 받는 거잖아. 이것도 상 주는 거라고 치고 한 번만 해주라. 응?"

"윽..! 상이라고 해서 다 해주는 거 아니라고 했지!"

대충 나오는 대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아까보다 더 반응이 좋다.

애초에 상이라는 걸 전제로 최면을 걸어놨으니까 무시하기 힘든 건가? 조금 반칙 같기는 하지만 새로 최면을 거는 건 아니니까, 이걸로 파고들어 보면 괜찮을 것 같다.

"응? 진짜 한 번만. 앞으로도 진짜 열심히 공부할게. 부탁이야."

사실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성적을 좋게 받는다고 해서 엘레나가 뭔가 이득을 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제대로 동기부여를 하고, 거기서 성과가 나올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게 해놓은 만큼 내 공부를 제대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 역시 이미 충분히 생겨났을 것이다.

이번에도 안 먹히면 다른 수를 찾아내야겠지만.. 다행히도 상과 공부를 들먹인 효과가 있었는지,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던 엘레나는 지친 듯 힘없이 표정을 풀더니 살짝 분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짜.. 한 번만 해주는 거야. 그리고, 공부도 제대로 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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