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248화 (248/775)

< 248화 > 친구인데, 노예입니다 (2)

지금이야 부모님이 성실하게 노력해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부족함 없이 살 정도는 되지만, 어린 시절 김민아의 집안은 가족 셋이 좁은 거실 하나에 방 하나, 샤워실 겸 화장실 하나만 달랑 딸린 집에서 지냈을 정도로 가난했다.

당연히 요즘 애들처럼 컴퓨터 같은 건 꿈도 못 꿨지만, 그래도 학교 운동장이나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면 이름도 모르는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 수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다.

집은 가난했지만 가정은 화목했던 덕분에 크게 남들이 부러웠던 적은 없다.

그래도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던 게 있다면, 어느 순간 새로 들어온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였을까.

모랫바닥 위로 후줄근한 시소와 그네, 작은 미끄럼틀만 있던 동네 공원과는 달리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는 바닥도 깨끗하고 알록달록했고, 그네나 시소도 그간 봐왔던 것들과는 달리 깨끗하고 모양도 예뻤다.

미끄럼틀은 공원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높았고, 타기 위해 올라가는 길도 일자 계단이 아닌 작은 놀이터처럼 블록을 쌓아 여기저기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신기한 형태였다.

지금이야 그 정도 놀이터는 흔하게 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동네에 딱 하나뿐인 고급스러운 놀이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김민아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들은 그 놀이터에 들어가 놀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그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아니면 경비 아저씨들이 들어와 놀지 못하도록 혼내고 쫓아냈던 탓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공원에서 뛰어놀 나이가 지나서도 그 놀이터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 대신, 학교 소풍으로 서울에 있는 커다란 놀이공원에 놀러 갔던 것이 김민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즐거운 추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놀이터 따위는, 그래. 놀이터 정도는 '따위'라고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한 놀이기구가 가득한 장소에서 자유 이용권을 끊고 해가 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날은 드물게도 용돈도 넉넉하게 받아서, 학교 앞에서 파는 걸 구경만 했던 솜사탕이나 슈퍼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동글동글하게 말린 모양의 소프트아이스크림, 귀여운 캐릭터 모양의 쿠키 따위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다.

분명 거짓말로라도 즐겁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좋은 추억이다.

"..지겨워 죽겠네."

그래도 그렇지, 시간 감각도 희미해진 채로 며칠이고 이런 곳에서 지내게 된다면 당연히 질릴 수밖에 없다.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 최민석에게 들었던 대로라면 이 놀이공원에서의 추억이 김민아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크게 인상을 남긴 기억이라는 의미였다.

"차라리 나도 섹스하는 꿈이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가?"

언니들은 둘 다 최민석이랑 섹스하는 꿈이었다고 하는데, 서연 언니는 꿈이라지만 며칠 내내 섹스만 하느라 정신을 놔 버릴 뻔했다고 했었고, 예진 언니는 불감증이 다 낫지 않았을 때의 꿈이라 기분 좋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지루했다고 했었다.

아마 자신 역시 최민석과 섹스하는 꿈을 꿨다면 상당히 고달프지 않았을까 싶다.

관람차 안에서, 시끌벅적한 놀이공원을 내려다보며 몇 번이고 떠올렸던 생각을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꿈속이라 그런지, 놀이공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놀이공원 곳곳을 돌아다니고, 놀이기구 역시 줄도 서지 않고 원하는 대로 탈 수 있다.

처음에는 일단 즐기고 보자는 생각으로 모든 놀이기구를 섭렵하고, 재밌었던 건 두 번, 세 번씩 다시 타며 시간을 보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질려버렸다.

공원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얼굴도 흐릿해서 유령처럼 시끌벅적하게 걸어 다닐 뿐이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자신이 놀이공원에서 먹었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 쿠키 따위의 과자와 엄마가 싸줬던 김밥뿐이었다.

지루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깨는 거냐고.."

서연 언니가 나흘. 예진 언니가 닷새라고 했었던가?

아쉽게도 여긴 꿈 속이라 그런 건지 얼마가 지나도 해가 지지도 않고, 시계 같은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도 하나도 안 보이는 탓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우.. 이제 또 뭘 하지..?"

관람차에서 내려서, 질린 눈으로 놀이공원을 돌아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꿈이라 그런지 잠도 못 자고 쓸데없이 체력만 쌩쌩해서는 정신적으로 지치기만 하는 탓에 더더욱 기운이 없었다.

꿈에서 깨면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서 잠만 자야지. 그런 결심까지 마쳐둔 뒤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흐르는 대로 시끌벅적한 인파 사이를 걷던 도중.

"어..?"

문득,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게 언니들이 말했던 그거구나. 미리 들어둔 이야기가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놀이공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부터 해방감이 올라왔고,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을 한 번 떠올리며 놀이공원의 풍경을 한 번 둘러보고는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아아.."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시끌벅적한 놀이공원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침대 위에서 눈을 뜬 김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시 눈을 뜨고도 여전히 놀이공원 한가운데 서 있었다면.. 상상만 해도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붕붕 휘저으며 생각을 지워냈다.

"아무튼, 몽마가 된.. 거겠지..?"

임예진이 그랬듯이, 김민아 역시 가장 먼저 확인해본 것은 평소와 달리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지는 가슴 쪽이었다.

"와, 와아.."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가슴 위로 손을 얹은 순간. 손바닥 한가득 묵직하게 잡히는 감촉에 놀라며 탄성을 흘렸다.

튀어 오르듯이, 침대에서 털썩 내려와 거울 앞에 서서 그대로 살짝 답답한 티셔츠를 휙 끌어 올린 순간.

"와.."

아까보다는 조금 더 짧은, 그러면서도 더 깊은 놀라움이 서린 감탄을 다시 한번 흘렸다.

"진짜 미쳤나 봐.."

B컵이면 그래도 평균은 되는 사이즈였기에 마냥 작다고 소침해 하지는 않았지만 김민아 자신도 여자인 탓에 크기에 대한 아쉬움과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생각 정도는 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거울 너머에 보이는 자신의 가슴은 작다거나 평범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거유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크기가 되어 훌륭한 굴곡을 드러내고 있었다.

'..모양도 예뻐.'

정말 이게 자신의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크고 예쁜 가슴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려고 한다.

동시에 약간의 아쉬움도 남았다.

신장 차이가 조금 있기는 해도, 임예진보다 조금 더 큰 가슴이 되길 원했었는데. 아쉽게도 눈대중만으로도 자신의 가슴이 임예진보다는 조금 작다는 게 느껴졌다.

가슴에 대한 평가는 여기까지 해두고, 다음은 몸 전체를 확인해보기 위해 남의 집에서 알몸이 된다는 약간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옷을 전부 벗어 찬찬히 위에서 아래로 자신의 몸을 훑어내렸다.

'살이 조금 붙었나..? 골반도 살짝 커진 것 같고.'

여자인 이상 자기 몸매가 어떤 타입인지 정도는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알게 된다.

유서연 같은 경우에는 전형적인 글래머한 타입의 몸매였고, 임예진 같은 경우에는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건강하고 모델 같은 타입의 몸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민아는?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고 마른, 슬렌더한 체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너무 마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말랐으면서도 딱 보기 좋은 정도의 체형이 되어있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살짝 넓어진 골반 역시 전체적으로 굴곡이 더 늘어나 더 섹시해진 느낌이었기에 만족스러웠고.

"피부도.. 와.. 머리도..?"

원래도 하얗긴 했지만 정말 애기 피부처럼 잡티 하나 없이 뽀얗게 변한 살결이나 윤기가 흐르는 머릿결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반칙이네."

충분히 감상을 마치고, 다시 옷을 챙겨입으며 놀라움과 허탈함이 반씩 섞인 심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조금이라도 더 예뻐지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운동만 하거나 피부 관리에 온갖 귀찮음을 이겨내는 기본이고, 개중에는 수백, 수천씩 때려 박으며 관리나 수술을 받는 여자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노예 계약이라는 조건이 걸리긴 했지만 이렇게 아무런 고생도, 부작용도 없이 확 예뻐질 수 있는 게 반칙이 아니면 뭐겠는가.

아마 이런 식으로 예뻐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알려진다면 노예 계약을 해서라도 하겠다는 여자들이 줄을 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와 앉은 채로 언니들에게 들었던 얘기를 다시 한번 정리해본다.

"최면도 쓸 수 있게 된다고 했고, 정기.. 도 눈에 보인다고 했었지?"

눈앞에 최면을 걸 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최면 쪽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의식을 집중해 보니 정기가 뭘 말하는 건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아주 텅텅 비었네."

아니, 아주 바닥까지 내려가 보면 희미하게 남아있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커다란 그릇에 물 몇 방울 남아 있는 수준일 뿐이다.

"이러면.. 걔한테 받아야 하는 거겠지..?"

싫은 건 아니지만, 뭔가 조금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남자랑 몸을 섞는 건 더 꺼려지고, 마냥 싫다는 것도 아니라, 그냥 조금 뭐라고 해야 할까..

삑, 삑, 삑, 삑.

"어, 어?"

집이 너무 조용한 탓이었을까. 닫힌 문 너머, 거실까지 지나야 있는 현관에서 누군가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고개를 홱 돌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시간은 막 오후 다섯 시를 넘겼다.

아직은 이 집안사람들의 일정을 모르는 김민아로서는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예상하는 건 무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터벅터벅 걷는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다녀왔다는 목소리라도 들렸으면 나가서 인사라도 했을 텐데. 누군지를 모르니 괜히 움직이기가 망설여진다.

'도둑.. 은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아파트, 그것도 17층에 도둑이 들 리는 없으니까. 비밀번호도 제대로 누르고 들어왔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아."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멍청한 소리를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온 최민석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마구 복받쳐 오르며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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