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학습 의욕 증진 프로그램 (2)
데스크에 앉아있던 여자 역시 강사였는지 내 소개와 함께 가벼운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았고, 내 소개를 들은 외국인 강사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와 인사를 건네왔다.
"엘레나 로빈슨이에요. 편하게 엘레나라고 불러주세요."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엘레나 로빈슨. 이름이 엘레나고 성이 로빈슨이면 보통 성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잠시 떠올랐지만 본인이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하는데 괜히 따질 필요는 없었다.
"엄청 잘생기신 분이 들어오셨네요. 교재는 지금 가져다드릴 테니까, 일단 빈자리에 앉아계실래요?"
"알겠습니다."
짧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움직여 엘레나의 얼굴을 살핀다.
역시 외국인답게 은은한 웃음기가 감도는 부드러운 눈매에 푸른 눈동자가 가장 눈에 띄었고, 살짝 도톰하면서 윤기 넘치는 입술이 은근하게 색기를 풍기는 게 인상적이었다.
'입술은 진짜 장난 아니네.'
적당히 도톰한 게 인상적이면서도 과하다는 느낌은 조금도 없이 섹시한 느낌만 들어서 저 입술 위로 귀두만 얹어놓고 쪽쪽 빨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였다.
어지간해서는 쉽게 흥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처음 보는, 새로운 타입의 미녀에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걸 정기까지 사용해가며 억누르느라 살짝 고생했을 정도였다.
'저건 안 먹으면 손해인데.'
바로 조금 전에 딴생각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하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저런 걸 앞에 두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정기만 쏟으면 일단 먹을 수는 있고..'
몽마가 되면서 최면에 드는 정기의 효율이 상당히 좋아진 것도 있고, 이지은과 임예진, 김민아를 상대로 수급해둔 정기도 상당했기에 이제 여자 두셋쯤은 정기 걱정 없이 따먹을 수 있는 상태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 따먹느냐인데. 나한테 호감이나 성욕을 품게 만들어서 관계를 개선 시켜 나가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지만 그래서는 공부가 아니라 연애질에만 집중하는 꼴이 되리라.
'..아예 처음부터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써먹는 게 낫겠네.'
나름 타협안이라고 떠오른 방법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학습과 성욕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귀찮음은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잘생겨진 얼굴 탓인지 조금씩 힐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하고 기다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엘레나가 돌아왔고, 싱긋 웃으며 책상 위로 책 한 권을 턱 내려놨다.
"기본적으로 토익 자체가 암기를 기반으로 하는 과목이라 수업 자체는 간단하게 진행될 거예요. 마무리로 그날그날 배운 내용에 기출 문제를 섞어서 시험이 진행되고요. 민석 씨는 일단 처음이시니까 가볍게 들으시면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시고, 시험도 부담감 없이 문제 형식만 본다는 마인드로 보시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 시선도 있으니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깔끔하게 필요한 대답만 내뱉었다.
'시험을 본단 말이지.'
마침 생각해둔 최면이랑 조건이 딱 맞았기에 내심 웃음을 지었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엘레나는 다시 교단으로 돌아갔고, 싱긋 웃을 때와는 다른 조금 진지해진 표정으로 다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은.. 몇 년 만에 하는 공부라 그런지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학생 때 나름 성실하게 쌓아둔 게 있어서 그런지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가르치는 엘레나 본인도 목소리가 조금 높은 톤에 또렷한 타입이라 집중하기도 어렵지 않았고, 설명 역시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해줘서 이해하기도 쉬웠다. 평가가 좋은 학원이라더니, 확실히 수업 분위기 자체가 괜찮았고.
그래도 빈둥빈둥 놀면서 머리가 굳은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시험은 30문제 중에 12개나 틀려서 잘 봤다고는 못 할 수준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내 쪽에서 다가갈 필요도 없이 엘레나 쪽에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수업은 괜찮았나요?"
"이렇게 배워본 게 처음이라 잘 모르긴 몰라도 목소리도 좋으셔서 집중도 잘 되고, 설명도 이해하기 쉬웠고요. 잘 가르치시던데요?"
"다행이네요. 칭찬 고마워요."
진심과 아부가 반씩 섞인 칭찬에 엘레나의 표정이 확 밝아지며 상큼한 웃음을 흘린다. 얼굴이 예쁜 여자는 아무래도 방심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 편인데, 엘레나는 속이 음흉하거나 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머리가 너무 굳었는지 생각보다 점수가 낮게 나와서 기분이 좀 그렇네요."
"어머. 아니에요. 민석 씨 정도면 따로 준비 없이 하신 것 치고는 잘 나오신 편이에요. 반 이상 맞췄다는 건 그래도 기초는 있다는 뜻이니까요. 어차피 저희 학원 토익반은 토익 점수가 아니라 회화에 필요한 단어 위주로 가르치는 편이기도 하고요."
위로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은 고맙지만 사실 점수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점수를 보고 조금 기분이 가라앉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기분 나빴냐고 하면 그렇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고, 살짝 아쉬운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아무튼, 밑밥은 충분히 뿌렸으니 최면을 사용하기 전에 살짝 주변을 살폈다.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이미 대부분 빠져나가서 조용하긴 했지만 아직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람들도 몇 있었기에 여기서 최면을 쓰기는 조금 애매했다.
"수업 관련해서 조금 상담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잠깐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상담실도 있으니까 거기서 얘기해요."
여기서 들으려고 했으면 조금 내 쪽에서 조용한 곳에서 얘기하자고 최면이라도 써야 했을 텐데. 배려심이 있는 건지 눈치가 좋은 건지는 몰라도 잘된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엘레나와 함께 상담실로 들어왔다.
"커피 좀 타올 테니까 잠시만 앉아계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커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일단은 배려를 받아들여 일인용 소파에 앉아 엘레나가 커피 타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봤다.
섹시한 오피스 정장에 몸매 좋은 금발 외국인은 머그컵에 믹스 커피를 타는 모습만으로도 화보집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림이 좋았다.
"자, 믹스 커피지만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뜨거운 커피도 아니고 얼음을 띄운 아이스 커피라 거절하지도 못하고 입만 살짝 대고 호록 삼키고 잔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정기를 흘려보내며 최면을 준비했다.
"사실 같이 들어왔던 강사분한테 토익 쪽은 굳이 학원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교보재나 인강, 토익 어플 같은 걸로 공부가 가능하다고 들었거든요."
"..확실히 요즘에는 독학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긴 하죠. 그런데요?"
"저도 듣고 나서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서는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아서 수업을 신청한 거고요."
이름이 지영.. 이라고 했던가? 그 여자한테 미리 들어둔 이야기 덕분에 어떻게 최면을 걸지 가닥을 잡기가 쉬워졌다. 나름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죠. 사실 독학이라는 게 본인의 의지랑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힘든 일이니까요."
원래 말이 많은 타입인지 맞장구도 잘 쳐준다. 덕분에 혼자 말만 쏟아낼 필요가 없어서 말하기가 더 편했다.
"아무튼, 그래서 수업을 신청하긴 했는데 공부를 너무 오래 안 해서 그런지 수업받으면서도 집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으음.. 하시는 말은 이해가 가는데..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긴 힘든 문제네요."
당연하다. 애초에 공부 자체가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아무리 억지로 시켜도 효율이 안 나오는 법이니까.
내가 노리는 건 그 점을 이용한 일종의 동기부여였다.
"학원 홈페이지에서 선생님 프로필을 봤거든요. [학습 의욕 증진 프로그램을 운영하신다고요.]"
"학습 의욕.. 아, 네. 홈페이지는 보시는 분들이 잘 없는 편인데. 보셨구나."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믿게 하려니 정기의 소모가 조금 컸지만 말 그대로 '조금'일 뿐이다.
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기만 해도 정기의 소모는 확 줄어드니까. 같은 최면이라도 이런 식으로 꼼수를 조금만 부려도 효율을 확 높일 수 있었다.
"제가 여기에 등록한 것도 그걸 본 게 가장 큰 이유거든요. 지금도 신청 가능한 건지 여쭤보려고요."
"아, 음.. 그게.. 혹시, 데스크에서 뵌 강사분한테도 물어보셨나요?"
시종일관 엷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던 엘레나의 표정에 처음으로 난처한 듯 살짝 불안한 기색이 드러냈다.
"아니요. 예전에 보고 기억만 해뒀었는데, [어제 보니까 없어졌더라고요.] 그래서 강사님한테 직접 물어보려고 했거든요."
"..다행이다. 예전에 너무 의욕이 넘쳐서 만들었던 거라 저도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잠깐 홈페이지 확인 좀 해봐도 괜찮을까요?"
"아, 예. 괜찮습니다."
나름 [너무 심했나 싶어서 금방 지웠다]라고 최면으로 얼버무려뒀는데, 외국인이라고 다 성에 관대하고 개방적인 건 아닌 모양인지 생각보다 반응이 격했다.
"하아.. 제대로 지워졌구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자기 프로필을 확인한 엘레나는 내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긴장을 풀며 몸을 늘어뜨리고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프로필에 적혀있던 학습 의욕 증진 프로그램의 내용이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성실하게 따라오시는 분들에게는 특별한 상을 드립니다♥] 라는 조금 의미심장한 문구를 적었다고 기억하게 만들었고, 본인 역시 조금 음란한 상을 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떠올리게 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그 프로그램은 이제 안 하시는 모양이네요. 나름 기대하고 온 건데, [아깝게 됐네요.] 진작 와서 신청할 걸 그랬네."
"아깝.. 으음.. 그렇네요."
"네?"
"아, 아뇨. 저도 막상 프로필에 올려만 놓고 한 번도 해본 적은 없거든요. 나름 의욕에 차서 했던 일인데 해보지도 않고 지웠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아깝다 싶어서요."
내가 걸었던 최면의 내용을 그대로 입에 담는 걸 보니 상당히 최면이 잘 먹히는 타입이다.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으니 최민석에게만 비밀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줘도 괜찮을 것 같다.]라고 최면을 걸자 엘레나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희미하게 망설이는 기색을 띠었다.
'어우, 거의 다섯 달 치는 쓴 것 같은데?'
처음에 학습 의욕 증진 프로그램이라는 걸 만들었다가 잊고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지만 그 내용이 음란한 일이라고 구체화 시키는 과정에서 정기가 어마어마하게 날아갔다.
정혜수 때처럼 상황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황에서 최면을 건 것도 아니고, 김민아 때처럼 타의로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한다는 방어 기재도 없이 순수하게 자기 의욕만으로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게 만든 탓이었다.
다섯 달 치 정기면 어플을 사용할 때 기준으로 100만 가까이 썼다는 소리였으니 정말로 소모가 장난이 아니긴 했지만, 정기를 쏟아부은 보람만큼은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저도 사실 한 번쯤은 진행해보고 싶었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는 비밀로 민석 씨한테만 해드릴까요?"
최면 덕분에 오히려 본인 쪽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은근한 눈빛으로 권하는 엘레나의 표정에 다시 한번 하반신에 피가 몰리려는 걸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정말요? 저야 감사하긴 한데.. 그 [특별한 상]이라는 건.."
"그건 말이죠.."
엘레나에게 건 최면에 맞춰 이쪽 역시 살짝 기대하는 기색을 풍기며 묻자, 엘레나는 은근한 색기와 장난기가 어린 표정을 지으며 도톰한 입술을 혀로 살짝 핥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