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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234화 (234/775)

< 234화 > 들어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2)

"그러니까, 제가 질투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네."

이런 말 뒤에 좋은 말이 따라오는 경우는 없다.

애초에 최민석과의 관계 자체가 상식적인 선에서는 감당이 불가능할 정도로 뒤틀려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민아 씨가 주인님과의 관계가 최면으로 이용만 당하는 관계였다고 생각했었는데도 여기까지 왔다는 건, 어떤 이유든 간에 결국 주인님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싶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맞나요?"

"그건.."

최민석의 앞에서는 아니라고, 돈 때문이라고 빽빽 소리 질렀지만 이렇게 차분한 분위기에서, 제삼자에게 본심을 지적당하니 마냥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스스로도 '이유'에 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으니까.

최면에 걸렸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그를 향한 감정이 원인이라면 원인이겠지만 정확히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아직 모르겠다.

조금 창피한 이유지만, 1년 가까이 쌓아왔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가 버릴 정도의 섹스를 맛본 후에는 더더욱 그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 역시 김민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대답하기 어렵다면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아직 민아 씨한테는 몽마가 될지, 되지 않을지를 선택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거고, 어느 쪽이든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은 없다는 거예요."

알고 있다. 어느 쪽을 고르든 간에 후회할 것 같아서.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도 이것저것 물어보며 눈치나 보고 있는 거였으니까.

"우선, 민아 씨가 몽마가 된다고 생각하면 얻을 수 있는 건 확실하죠. 주인님과 더 깊은 관계가 되고, 외모, 최면.. 그 정도는 이미 들으셨죠?"

"일단은.."

"얼핏 보면 손해가 없는 것 같지만 잃는 것도 있죠. 민아 씨가 정확히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님과 연애나 결혼.. 그런 관계는 불가능해요. 주인님의 성향이나 몽마라는 특별성 때문이죠. 그럴 생각도 없겠지만, 다른 남자랑 사귀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는 유서연의 설명에 가슴이 철렁했다.

최민석과 사귀고, 결혼하고. 부끄럽지만 욕실에서 정신을 차린 뒤부터 내심 그런 상상도 떠올렸던 김민아로서는 감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몽마한테 이성은 음식 같은 거예요. 얼굴이나 몸매, 목소리, 성격 같은 온갖 요소에 따라 맛없고 맛있고가 결정되는 음식. 민아 씨나 우리 같은 경우는 특별 취급이긴 하지만 주인님한테 나만 봐달라고 할 정도는 아닌 거죠."

"그건..!"

"납득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지낼 수 있는 거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도 있으니까요. 단지 그 이상은 무리라는 거예요. 괜찮잖아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지내고, 기분 좋게 섹스도 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으니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지내는 거죠. 우리는 일단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여자를 음식 취급한다는 건 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다. 몽마라서.. 라고는 해도 충격적인 관점이었다.

하지만 유서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넘어가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쪽도 뭐.. 이상할 거 없다고 생각해요. 다들 그렇잖아요? 잘생긴 게 좋고, 예쁜 게 좋고, 남녀 가리지 그냥 맛있는 요리 한 번 먹는다는 느낌으로 별생각 없이 원나잇 같은 거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유서연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오히려 더 뭐가 뭔지 헷갈리고 어지러운 기분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애들도 아니고, 세상에 그런 식으로 문란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문란한 생활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을 자신에게 대입해보려고 하니 거부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은 천천히 생각해봐야 할 일이고, 몽마가 되지 않으면 어떨 것 같아요?"

"그, 그거야.."

"주인님이 이런 상황에서 싫다는 걸 억지로 밀어붙이실 성격은 아니니까 민아 씨가 싫다고 하시면 미련 없이 풀어주실 거예요. 몽마가 되지 않은 상태로 섹스만 하고 싶다고 하시면.. 그것도 해주실 가능성이 크고요."

"저, 정말요..?"

몽마가 되지 않으면 억지로 붙잡지는 않겠다. 그 말은 이미 최민석에게 들었지만 후자 쪽은 가능성조차 떠올려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이었다.

"어쨌든 민아 씨 정도 되는 여자가 자기 쪽에서 섹스하고 싶다는데. 거절하진 않으시겠죠. 몽마가 돼서 특별 취급을 받는 게 아니라, 특별 취급을 받고 있어서 권유를 받으신 거예요. 주인님은 이미 민아 씨를 특별하게 여기고 계실 거에요."

"그, 그런.."

최민석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은 이미 몇 번이고 들은 말이었지만 이것 역시 제삼자에게 직접적으로 듣고 보니 부끄럽고 간질거리는 기분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쉽게 기뻐하면 안 되는데, 이러면 너무 쉬운 여자 같지 않은가.

유서연은 김민아가 얼굴이 빨개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몽마가 되지 않으면 지금 이상의 관계는 무리겠죠. 그냥 친구 사이로 남아서 가끔 섹스만 하는 정도일 거예요. 이쪽도 연애나 결혼 같은 건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다른 좋아하는 남자분이 생긴다면 아무 문제 없이 사귈 수는 있을 거예요. 아마 잠자리에서는 만족 못 하겠지만.."

"아.."

그 부분은 이미, 아주 예전에 생각했던 일이었다.

고시원에서 한참 자위에 빠졌을 때. 온갖 야동을 찾아다니면서도 최민석과 비슷한 수준의 자지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정력에 대해서는 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수준 차이가 심했으니까.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자신의 입에 세 번. 모텔에서 일곱 번은 한 것 같은데. 당사자는 아직도 쌩쌩한 상태가 아니었던가.

아마 최민석의 반이라도 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최민석은 정말로 싫다면 기억까지 지워주겠다고 했지만 그게 최민석과의 섹스를 알아버린 몸까지 원래대로 돌려준다는 말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애초에 기억을 지운다는 일 자체는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그럼.. 지금처럼 지내다가 나중에 결정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요? 제가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유서연의 말대로 최민석에게 물어볼 일이긴 하지만  보류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최민석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천천히 생각해보라며 기다려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답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하아.. 일단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그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걔가 시킨 거예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제가 먼저 주인님이라고 불렀었고요."

"저는 그렇게 하라고 하시긴 했는데.. 정확히는 언니가 그렇게 하라고 혼내서.. 아, 싫다는 건 아니에요. 뭐라고 해야 하나.. 막 복종하고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흥분되는 것도 있거든요."

"......"

임예진이라는 사람은 그래도 유서연에 비하면 나름 표정도 밝고 성격도 평범해 보였는데, 이쪽 역시 정상이 아닌 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복종? 지배? 그냥 평범한 남녀 관계 외에는 생각해본 적 없었던 김민아로서는 단어 하나하나가 상식을 벗어났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럼 저도.. 몽마가 되면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되는 거예요..?"

주인님이라는 단어 자체가 상식에서 동떨어져 있긴 했지만 자신과 무관한 일이었다면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저렇게 최민석을 주인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싫은.. 가..?'

모르겠다. 스스로가 최민석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아양 떠는 모습을 떠올리려고 하니 간질거리는 수준을 넘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라 상상 자체가 되질 않았다.

"글쎄요. 주인님이 그러라고 시키시면 해야겠지만 제 쪽에서 강요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뭐야! 나한테는 살벌하게 쳐다보면서 주인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으면서!"

"너는 처음 올 때부터 노예라고 소개하셨잖아. 민아 씨는 노예가 아니라 친구 사이라고 하셨고."

유서연은 억울하다는 듯 항의하는 임예진의 말을 가볍게 받아넘겼고,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어차피 몽마가 된다는 것 자체가 주인님 소유가 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호칭 같은 건 어떻게든 될 일이기도 하고."

"씨이.. 억울해서 그렇지. 난 언니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소름 끼쳤었는데. 나도 동생 한 명 들어온다고 하니까 조금 기대했었단 말이야."

"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임예진의 말에 잠깐 잊고 있었던, 여기까지 오게 된 목적이 떠올랐다.

유서연이 소름 끼쳤다는 얘기도 조금은 신경 쓰였지만, 일단은 그것부터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였어요! 어쨌든 두 분이 저보다 먼저 민석이랑 좋아하는.. 아무튼, 그런 사이에 제가 끼어든 거니까 죄송하다고 사과도 드리고, 양해도 좀 구하려고.. 어쨌든 이렇게 된 거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말없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두 사람의 알 수 없는 시선에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 끝에 먼저 입을 연 건 임예진 쪽이었다.

"그럼.. 언니라고 불러볼래요?"

"네..?"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서요. 그럼 일단 말부터 편하게 해요. 네? 언니라고 해봐요."

"어.. 언니..?"

묘하게 밀어붙이는 태도에 조심스럽게 임예진을 언니라고 부르자 임예진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움찔거렸다. 잘은 몰라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크흠..! 그리고 말도 편하게 할까? 민아 너도 말 편하게 해도 괜찮아."

"그럼 그럴.. 게.."

그냥 말만 놓는 건데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습관적으로 존댓말로 대답하려다가 임예진의 강렬한 시선에 결국 어색하게 말을 놔버렸다.

김민아가 말을 놓자 임예진이 들뜬 표정으로 유서연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언니, 언니랑도 말 편하게 해도 괜찮지?"

"..나중에 주인님이 고치라고 하면 고쳐야 돼. 알지?"

"응응. 알지. 어차피 주인님도 대충 편한 대로 하라고 하실 텐데. 괜찮잖아. 그치?"

"그렇겠지. 마음대로 해."

"들었지? 이제 언니랑도 말 놔도 괜찮아."

"아, 네, 아니, 응.."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 둘이 보기에 최민석은 굉장히 이것저것 대충 넘어가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어색하게 말을 놓으며 대답하자 임예진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김민아의 옆에 앉더니 귓가에 대고 웃는 표정과는 달리 진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서러웠는지 아니? 처음만큼은 아니지만 요즘도 가끔 무섭단 말이야. 서연 언니. 나는 그래도 내 생활도 좀 생각하는 편인데, 언니는 진짜 주인님밖에 몰라서.. 아무튼 너랑 만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 진짜로.“

유서연. 저 사람이 그렇게 무섭나?

김민아가 보기에는 유서연이나 임예진이나 다를 거 없이 이상한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유서연 쪽이 더 차분한 분위기였기에 그나마 정상으로 보였기에 공감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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