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 너 같으면 화가 안 나겠냐? (1)
평생을 뚜벅이로 살다가 차가 생기면 어떤 기분이 들까.
눈앞에 번쩍번쩍 광이 나는 신차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별다른 감상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산 게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생겨난 차라 그런 것이리라.
그래도 차가 생긴 만큼 행동 범위가 늘어난 건 좋았다.
아무리 택시를 타도 한두 시간씩 걸리는 거리는 돌아다니기 번거로운 면이 있었는데. 내 차가 있는 만큼 그동안 귀찮아서 가지 않았던 곳도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최민석 : 나 차 샀다.]
[김민아 : 차? 무슨 돈이 있어서?]
[최민석 : 할부로 싼 거 하나 뽑았지. 이제 뚜벅이 아님ㅋ]
[김민아 : 그럼 차 뽑은 김에 한 번 놀러 와. 만나자고 맨날 불러도 멀다고 안 왔잖아. 이번에 얼굴이나 한번 보게.]
[최민석 : 얼굴만 볼 거야?]
[김민아 : 닥치고 오기나 해.]
김민아에게 차를 샀다고 말했을 때부터 대화가 이렇게 흐를 거라고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달에 한두 번씩은 꼭 놀러오지 않겠냐고 꼬시는 김민아를 무시하는 것도 조금 아쉬웠는데, 차 타고 한 시간은 넘게 걸리는 거리라 매번 귀찮아서 안 가고 미루기만 했던 걸 이번 기회에 만나기로 한 것이다.
"민아도 어떻게 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 하는데."
내가 몽마가 되기 전이었다면 오늘의 만남에 아무런 생각도 갖지 않고 간만에 김민아랑 떡칠 생각에 기대나 하고 있었겠지만 몽마가 된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김민아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다. 가슴이 조금 작은 편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김민아는 유서연이나 임예진과 비슷한 수준으로 외모가 훌륭했다.
갖고 싶다. 얼굴이야 당연히 합격점이고, 유서연과 마찬가지로 내가 한참 정기가 없어 허덕일 때 욕구 해소와 정기 수급을 도와주고, 친구처럼 지낸 사이라 유서연처럼 애착이 가는 상대라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서연이나 예진이랑은 납득시키는 난이도 자체가 다르다는 게 문제야.'
운전 중에 잡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김민아를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유서연과 임예진은 모양새가 어땠든 간에 자기 쪽에서 날 원하게 만들었고, 별다른 최면이랄 것도 없이 성적 욕구를 이용해 상하 관계를 완전히 정해놓은 뒤에 내가 몽마라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김민아는? 나한테 별 관심도 없던 여자를, 최면을 이용해 돈 받고 자지를 빨게 만드는 창녀로 만든 거나 다름없다.
아무리 노예계약이 채결되더라도 몽마끼리는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합의하에, 악감정을 남기지 않고.. 아니, 최소화 시키면서 김민아를 몽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에게 걸린 최면을 받아들인 뒤에도 나와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야 했다.
"씨발.. 절대 안 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나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원하는 대답을 듣는 것 자체는 쉽다. 최면을 풀고 날 죽일 듯이 노려보는, 혹은 덤비려고 드는 김민아를 힘으로 제압하고 정기를 이용해 몸을 발정 나게 만들어 잔뜩 안달 나게 만들던, 이성이 날아갈 때까지 범하면서 원하는 대답을 받아내면 된다.
하지만 그건 결국 그때뿐인 대답에 불과하고, 몽마가 된 김민아는 억지로 노예가 된 거나 다름없으니 원망이 커지면 커졌지 절대로 줄어들지는 않으리라.
'차도 한 대 뽑아주고, 원하는 만큼 섹스도 해주고, 이것저것 지원해 주면.. 될 리가 없겠지.'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노예는 결국 노예다. 나야 그렇게 행동할 생각이 절대 없었지만, 상대가 죽으라면 죽으라는 명령까지 들어야 하는 관계를 억지로 맺게 만들어놓고 잘해준다고 해서 앙금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만나보고 생각하자."
계속해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을 잊어버리려는 듯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계속해서 오만가지 잡생각을 떠올리며 차를 몰았다.
사고나 안 난 게 다행이었다.
*
공무원이 꿀이라고, 철밥통이라고 누가 말한 걸까.
꿀은 꿀이었지만 상한 꿀이었고, 철밥통은 철밥통이었지만 평생 어깨에 들쳐메고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더럽게 무거운 철밥통이었다.
근무지가 좋은 곳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김민아가 배치받은 기관은 업무량이 더럽게 많고 야근도 잦은 곳이었다.
근무지가 집에서 가까우면 뭘 하겠는가. 퇴근 시간이 늦어져서 퇴근에 한두 시간씩 걸리는 것보다 더 피곤한 상황인데.
집에 오면 피곤해서 씻는 둥 마는 둥 기절하듯 잠드는 게 일상이었고, 그나마 빨리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에도 피로가 쌓여서 뭘 하지도 못하고 집에서 인터넷 방송이나 보는 게 일상이었다.
'때려치우고 7급이나 해볼까..'
인터넷에 보면 9급 합격하고도 다시 7급 시험 쳐서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런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은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지금 같은 생활 환경에서 7급 준비가 가능할 리가 없다.
부모님은 아직도 맞벌이로 열심히 일하고 계신데, 여기서 일이 힘들다고 기껏 얻은 일자리를 던져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고.
"하아아.."
김민아는 침대에 멍하니 누운 채로 한숨을 쉬었다.
기분이 조금만 우울해져도 수시로 떠오르는 직장에 대한 고민은 매번 다 부질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지금은 버티고 버텨서 다른 보직으로 발령 나기만을 기다리며 어찌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지금처럼 근무 조건이 좋지 않은 곳이라면 멘탈이 깨질 것 같았다.
"아으.. 섹스하고 싶어.. 정액 먹고 싶어.."
스스로는 여자가 입에 담을 만한 말이 아니라는 자각 정도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말이라도 중얼거리지 않고서는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는다.
자기 전에, 혹은 아침에 정액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릴 것 같은데. 이것 역시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최민석이 사는 곳까지 가려면 못해도 한두 시간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주말이든 퇴근한 후든 간에 그 거리를 왕복할 만큼 체력이 있었다면 피곤하다고 느끼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서 최민석이 찾아와주길 바라는 것도 이기적인 생각이다.
물류 창고에서 상하차 같은 일을 한다고 했었던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하고 돌아오는 생활 패턴상 체력적인 피로도 자체는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몇 달 전부터 가끔씩 최민석에게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권하고는 있었지만 서로가 귀찮아서 나중에 나중에 하며 미루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진짜아.."
결국은 불끈불끈 올라오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허벅지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꼼지락대며 질척거리는 소리를 흘려대고 있었다.
찔꺽.. 찔꺽.. 찔꺽..
"하으.. 흐응.. 흐으응.."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부족하다.
최민석의 그 크고, 단단하고, 뜨거운 물건에 몇 번이고 질내사정 당하며 가버리는 쾌감을 알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 계속하다 보면 어떻게든 가버릴 수는 있겠지만 사라지지 않는 안타까운 느낌에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딜도를 떠올렸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무래도 자위로는 너무 부족하다 싶어 두 달쯤 전에 부모님 몰래 샀던 물건이었지만 너무 큰 걸 사면 숨기기가 어렵고, 들켰을 때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적당한 사이즈로 샀던 게 문제였다.
그것도 평균적인 사이즈보다는 크다고 할 정도는 됐지만 최민석의 그 완벽하다 못해 흉악한 수준의 자지와 비교하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아흐으응..! 하고 싶어..! 하고싶다구우..!"
결국 하는 거라곤 최민석에게 박히던 그 쾌감을 떠올리며 열심히 보지를 쑤셔대는 것뿐이었다.
찌걱! 찌걱! 찌걱!
"응으읏..! 읏, 앙..! 흐으응..!"
부족한 쾌감이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느끼다 보니 점점 절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막상 가버리고 나면 허무한 기분만 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는 조금 풀릴 것이다.
"아으, 앗, 앙..! 앙..! 흐으으읏..!!"
간신히 끌어올린 절정과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발을 쭉 뻗고 꽉 조인 허벅지가 움찔움찔 떨려온다.
최민석과의 섹스에서 느꼈던 오르가즘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한 절정은 몇 초 가지도 않고 가라앉아 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아직 손가락을 빼내지 않은 보지에서는 애액이 주륵 흘러내린다.
"하아.."
이미 익숙하다는 듯 머리맡에 둔 물티슈로 애액을 닦아낸 김민아는 기다렸다는 듯 밀려드는 현자 타임에 한숨을 쉰다.
남자가 겪는 현자 타임과는 달리 주말 대낮부터 자위나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한심함에서 오는 감정이었기에 스트레스는 조금 풀렸지만 그만큼 기운이 빠져 피곤하기만 했다.
"잠이나 잘까.."
안 그래도 피곤한 몸이 나른해지기까지 했으니 그래도 잠은 잘 올 것이다.
불규칙적인 수면 시간? 그런 건 월요일에 출근했다가 퇴근하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금 자더라도 제대로 피로가 풀리지 않아 밤에도 제대로 잘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아마 출근 없이 잠만 자라고 한다면 지금 자고, 밤에 또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내일 낮까지도 푹 잘 자신이 있었다.
까똑!
"뭐야아.."
한참 나른한 피로감을 느끼며 본격적으로 잠에 빠져들려던 김민아는 느닷없이 들려오는 알림 소리에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팔을 뻗어 대충 휘적거리다가 핸드폰을 잡아 이불 안으로 끌어당겼다.
연결되어 있던 충전기가 툭 소리와 함께 빠져나갔지만 알 게 뭔가. 충전이야 자고 일어나서 또 하면 그만인데.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어..?"
메세지를 보낸 상대를 확인한 순간. 이불 속에서 간신히 실눈만 뜨고 있던 눈이 번쩍 뜨였다.
최민석에게 온 메세지였다.
평소에도 사소한 메세지 정도는 주고받긴 했지만 주말 낮부터 이렇게 연락이 온 경우는 없었기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세지를 확인했다.
[최민석 : 야]
[최민석 : 나 차 샀다.]
"차..?"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최민석이 보리차나 유자차 같은 걸 샀다는 부장님 개그를 치는 게 아니라면 이 메세지가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컸다.
"차 샀으면.. 드라이브 삼아서 진짜 와볼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일단은 상황 파악을 위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고 간 보듯이 답장을 보냈다.
[김민아 : 차? 니가 무슨 돈이 있어서?]
[최민석 : 할부로 싼 거 하나 뽑았지. 이제 뚜벅이 아님ㅋ]
"진짜 샀나 봐..!"
듣는 사람도 없음에도 혼자 들떠서 중얼거릴 정도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간만에 최민석을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간만에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김민아는 곧장 새로운 답장을 보냈다.
[김민아 : 그럼 차 뽑은 김에 한 번 놀러 와. 만나자고 맨날 불러도 멀다고 안 왔잖아. 이번에 얼굴이나 한번 보게.]
차마 제발 와서 섹스 좀 해달라고 굽히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가볍게 권하는 척 보내기는 했지만 실상은 이번에도 거절당하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쿵쿵 뛰어대고 있었다.
[최민석 : 얼굴만 볼 거야?]
"당연히 섹스까지 해야지. 내가 미쳤다고 얼굴만 봐..? 지도 다 알고 있으면서.."
최민석의 다 알면서 놀려대는 말투에 투덜거리면서도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가 없다.
평소라면 멀어서, 피곤해서. 대충 그런 이유를 대면서 나중에 만나자는 답변이 왔을 텐데. 오늘은 거절이 아닌 '그럼 만날까?' 같은 뉘앙스의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김민아 : 닥치고 오기나 해.]
평소처럼. 평소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며 평소처럼 까칠하게,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투로 답장을 보냈고.
[최민석 : ㅇㅋ 오늘 말고 내일 갈게. 어디서 볼래? 니네 동네니까 아무 데나 주소 좀 찍어서 보내봐.]
"꺄아아아..!!"
답장이 돌아온 순간 행복으로 가득 찬 비명을 소심하게 지르며 배개를 팡팡 쳐댔다.
내일 최민석을 만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몸을 짓누르고 있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