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사실은 즐기고 있는 거 아니야? (1)
"하아.."
택시에서 내린 정혜수는 짧게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겼다.
택시에 탈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견딜 만 했는데, 앉아서 조금 쉬다 보니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냥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힘들다. 마음 같아서는 저기 보이는 벤치에 누워 눈이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조금만 더 걸으면 집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나쁜 새끼.."
듣는 사람도 없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걷다 보니 가라앉았던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라 혐오 가득한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동시에, 자신이 보였던 온갖 수치스러운 반응들이 떠오른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화끈거리는 느낌에 걸음을 멈추고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최민석의 기준에서 보자면, 여러모로 '적당히' 해준 덕분이긴 해도 충분히 잘 참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정혜수의 기준에서는 치녀, 걸레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첫 경험에, 혐오하는 사람을 상대로, 흉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받아들였음에도 좋다고 앙앙대며 신음을 쏟아냈으니까.
"분명 처음에는 아팠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만 해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안쪽에서 쓰라린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으니 아팠던 것만큼은 분명했다.
조금 아픈 것도 아니고, 참지 못하고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로 아프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게 말이 되나? 정혜수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분하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신음을 흘리고 있던 자신의 모습도, 뻔히 다 알면서도 아프지 않았냐고 묻던 최민석의 얼굴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을 정도로 열불이 터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건 또 왜 이러는 거냐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택시에 탔을 때부터 가슴이, 정확히는 유두가 예민해져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브라 상태라 옷에 쓸리고 있는 거라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제대로 속옷도 입고 있는 와중에 가슴이 조금만 흔들려도 희미하게 스치는 느낌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느껴졌다.
원인이야 뻔하다. 최민석. 그 재수 없는 인간이 변태같이 가슴만, 겨드랑이만 집요하게 빨아댄 것이 원인일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측이었지만 그 이외에는 도저히 이유를 떠올릴 수 없었다.
멈췄던 걸음을 신경질적으로 빠르게 옮기며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누르고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
몸이 무겁고, 피곤하고, 졸리다. 그런 와중에도 양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예민한 감각이 거슬려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그 잠깐 동안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7층입니다.]
띠잉. 하는 알림음, 안내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번쩍 뜬 정혜수는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도어락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띠리릭-!
"아, 씨이..!"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묘하게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빨간 불이 들어오자 정혜수는 확 올라오는 짜증에 씨근거렸다.
평소라면 그냥 '잘못 눌렀네' 정도로 넘어갔을 만한 사소한 실수였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도 짜증이 치밀어오를 만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삑. 삑. 삑. 삑. 띠리링-.
빨간 불이 사라지기를 잠깐 기다렸다가, 다시 한번 신중하게 번호를 누르고 나서야 안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현관으로 들어왔고, 그대로 문을 닫으며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
거실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어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셨다면 자신도 망설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거실에 들러 얼굴 정도는 비추는 게 맞다.
평소라면 의식조차 하지 않고 당연하게 했을 행동이, 피로와 짜증으로 뒤덮인 지금 상태에서는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후우우.."
현관에서 굳은 것처럼 서 있던 정혜수는 가슴을 가득 채운 답답한 감정을 풀어내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딱딱하게 굳어 있던 표정을 의식하며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대로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버리면, 부모님이 와서 물어보실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냥 피곤해서 그랬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오시지 않으면? 그대로 넘어가면 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하다고는 해도 자신의 행동 패턴이, 사고방식이 최민석이라는 개새끼 때문에 휘둘린다는 상황 자체가 진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좀 늦었네?"
거실문을 열고 한 걸음만 살짝 몸을 들이자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물으셨다.
"지은이랑 카페에서 떠들다 보니까 늦었어요. 아빠는요?"
"회식 있으시대. 저녁은 먹었니?"
"먹고 오는 길이니까 저녁은 안 차려주셔도 괜찮아요."
사실 몸만 피곤한 게 아니라 배도 조금 고팠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까지 먹어야 했기에 적당히 둘러댔다.
"얘는, 먹고 올 거면 미리 연락을 했어야지. 괜히 기다렸잖니."
"깜빡했어요. 아무튼, 저녁은 괜찮으니까 엄마도 쉬세요."
"그래. 우리 딸도 푹 쉬렴."
"네. 안녕히 주무세요."
인사를 건넨 동시에 곧바로 문을 닫았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동시에 억지로 힘을 주고 관리하고 있던 표정이 힘없이 풀어지며 지친 얼굴로 돌아왔다.
"하아.."
별다른 알맹이도 없는 대화가 왜 이렇게 힘든 건지. 그래도 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희미한 위안을 얻으며 방 안으로 돌아와 문을 닫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풀썩 몸을 눕혔다.
몸이야 모텔에서 씻어뒀고, 화장 역시 땀을 잔뜩 흘린 탓에 씻는 김에 다 지워뒀다. 화장이 지워져서 못생겨진다면 이 악물고 화장까지 고쳤겠지만 정혜수는 타고난 원래 얼굴에도 자신이 있었다.
덕분에 자기 해야 할 준비들. 화장을 지우고, 씻고, 피부 보습도 해두고.. 그런 것들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아."
옷 갈아입어야지. 해야 할 일을 다시 떠올린 정혜수는 피곤한 몸을 다시 억지로 일으켰다.
옷 정도야 내일 갈아입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최민석의 재수 없는 얼굴이 떠오른 순간 이를 악물고 저 멀리 날려버렸다.
스타킹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 옷과 속옷은 깔끔하게 개서 빨래 바구니 안에 집어넣었다. 평소라면 적당히 휙휙 던져 넣었을 텐데.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듯한 행동이었다.
그 뒤에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불을 끄고 다시 침대에 엎어진 정혜수는 그대로 이불을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
피곤하다. 완전히 긴장을 푼 탓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온몸이 나른하고 무거웠다. 이 정도 몸 상태라면 분명히 눕자마자 잠들어야 하는데.
"아, 진짜..!"
눈을 감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얕게 들썩이고, 들썩이는 움직임에 맞춰 얇은 티셔츠 안에서 젖꼭지가 희미하게 스치는 느낌이 거슬려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몸은 당장이라도 의식을 내려놓고 잠들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거슬리는 느낌 하나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있었으니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한 번만 하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애써 외면하고 있던 생각이 결국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하고 싶지 않다. 몸은 원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재수 없는 인간이랑 하고 와서 몸이 민감해진 것 같아 자위를 한다니.
방에 들어오기까지 뿌리쳤던 사소한 일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패배를 인정하는 행동 같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그보다도 이 거슬리는 느낌을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냥 확인만 해보는 거니까."
결국 정혜수는 변명하듯 중얼거리며 셔츠 안으로 양손을 집어넣어 건드리지도 않았음에도 발딱 서 있는 유두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민감해져있다.
손가락으로 유두의 감촉을 느끼는 게 아니라, 유두로 손가락의 감촉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살결이 스치는 감각이 예민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조물조물 문질러본다.
"후우.. 후.. 하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멍하니 유두를 조물거리고 있었지만, 딱히 기분이 좋다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었다.
대신, 쾌감이라고 부르기에는 한두 발짝 정도 모자란 애매한 느낌만이 올라오는 탓에 답답한 한숨만이 얕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족해.."
결국, 지금의 상태는 한 번 가버리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인정했다.
양쪽 유두가 다 민감해진 탓에 한쪽만 내버려 두기에는 아쉬웠지만 결국 한쪽 손을 내려 속옷 안으로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흥읏..!"
민감해진 건 위쪽만이 아니다. 아래쪽 역시, 몸이 안달 난 탓인지 이미 준비를 마치고 은근한 습기를 머금은 채로 민감해져 쾌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 손으로는 유두를 조물거리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질구멍에서 흘러나온 애액을 펴 바르며 클리를 빙글빙글 돌리듯이 문질렀다.
"하응.. 아앙.. 항.."
섹스와는 달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적당한 쾌락에 몸이 기분 좋게 달아오른다.
"아으응.. 흐응.. 하으응.."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서는 질척거리는 소리와 달뜬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기분 좋아. 지는 것 같다던가, 부끄럽다던가. 그런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고, 가끔 하던 자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쾌감에 빠져들어 기분 좋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흥으응.. 흥.. 하아앙.."
평소보다 더 깊게 빠져든 만큼, 몸이 달아오르는 속도 역시 평소보다 빨랐다.
찌륵, 찌륵, 찌륵..
속옷 위로 꿈틀거리며 클리를 문지르는 손가락이 점점 속도를 늘려가고, 유두를 조물거리는 손가락에도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흐응, 읏, 응..! 흐읏..!"
조금씩 빨라지는 움직임에 맞춰 가빠지는 숨이 절정을 향해 빠르게 나아간다.
갈 듯 말 듯한 느낌을 천천히 끌어올리며 아슬아슬하게 절정에 달하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페이스였다.
"읏, 앙..! 아흐으응..!!"
움찔! 움찔!
발가락을 꽉 오므린 다리가 쭉 뻗어지고, 허리가 얕게 들썩이며 온몸이 움찔움찔 떨려온다. 처음에는 약간의 습기만 느껴졌던 보지는 어느새 완전히 미끈미끈해져 있었고, 움찔거리는 질구멍에서는 미끈미끈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흐, 후.. 후우.. 하.."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진 절정이 끝나고. 정혜수는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며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진짜 미쳤어.."
막 가버린 탓에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릿속이 뿌연 상태에서도 수치심만큼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이기고 진다는 것 자체가 자기만의 생각이기는 했지만,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또 져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
'내일부턴..'
절정 직후의 나른함과 쌓여왔던 졸음이 한 번에 몰려들며 눈이 감기고 의식이 멀어진다. 마지막에 떠오른 결심을 끝맺지도 못한 채, 수마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