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지은이랑 헤어져 주세요 대신.. (3)
나름대로 이것저것 최면을 주입하긴 했지만 결국 요약하자면 간단한 내용이었다.
[최민석은 쓰레기 같은 남자지만 이지은은 설득이 먹히지 않을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있다. 이지은이 최대한 상처 받지 않도록 하면서 그와 헤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단짝이라더니.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애초에 이지은이 걱정돼서 미행까지 하고, 몰래 이런 자리까지 만들었으니 정혜수가 얼마나 이지은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덕분에 이지은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최면을 거는 것 역시 쉬웠다.
"..어떻게 하면 헤어져 주실 건데요?"
"애초에 사귀고 있질 않다니까."
"그딴소리는 됐어요. 어떻게 하면 지은이 앞에서 사라져 줄 건지나 말해요."
나를 바라보는 정혜수의 눈빛은 이미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싸늘하게 식어 적의를 뿜어대고 있다. 눈빛과 마찬가지로 적의를 숨길 생각조차 없는 존댓말까지가 인내심의 한계점일 것이다.
"말했잖아. 지은이가 마음을 접으면.."
"그 망할 가식 좀 집어치워요. 제가 그쪽이 무슨 생각인지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아요?"
호칭도 '오빠'에서 '그쪽'으로 변했다. 여러모로 알기 쉬운 태도라 오히려 조금 재밌을 정도였다.
"가식이 아니라 진심이야. 그리고, 뭘 받고 헤어지면 그게 더 지은이한테 실례 아니야? 내가 돈을 달라고 하겠어, 뭘 달라고 하겠어?"
"......"
정혜수는 따귀라도 한 대 날릴 것만 같은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드라마에서는 사위나 며느리한테 돈 봉투를 건네면서 헤어지라고 겁박하는 장면이 흔히 나오곤 하지만 그것도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정혜수나 이지은이나 집이 못 사는 편은 아닌 모양이지만 드라마를 재현할 정도의 재력은 없을 테고, 나 역시 경제적으로 부족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면허를 따면 바로 차를 살 예정이니 같이 드라이브나 가자고 말을 꺼내기도 했으니 돈으로 날 회유한다는 방법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탁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정혜수의 입장이라도 그럴듯한 답은 내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럴듯하지는 않아도 철저하게 내 형편에 맞춘 답은 내릴 수 있었다.
[정말, 정말 기분 나쁜 일이지만 자신의 몸을 이용한다면 교섭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최민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사진이나 영상을 남겨뒀다 보여준다면 아무리 이지은이라도 실망할 수밖에 없을 테니 어떻게든 헤어지게 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해야한다가 아닌 가능할지도 모른다. 자기 스스로 생각해낸 것처럼 생각의 방향성만을 살짝 주입하자 침묵하고 있던 정혜수가 움찔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떠오른 생각에 혐오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방법이 하나 떠올라버린 덕분에 그쪽으로 사고가 굳어버렸을 것이다.
[어떻게든 이지은을 도와주고 싶다.]
괜히 망설이지 말라는 뜻으로 다시 한번 최면을 던져준다. 정혜수의 생각과 거의 완전히 일치하는 덕분에 별 의미도 없는 수준이었지만 망설이는 마음을 떠미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제가.."
"응?"
뿌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간신히 짜낸 듯한 목소리에 곧바로 태연스럽게 대답하자 이쪽을 죽일듯한 눈빛과 함께 이를 간 정혜수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대신.. 해주면요?"
"대신해준다니, 뭘?"
"후우.. 지은이랑 헤어져 주겠다고 약속해주면, 저도 그쪽이랑 해줄 수 있다고요."
속이 부글부글 끓는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쉬면서도 말을 끝맺은 정혜수는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원하는 결과가 나와버렸다. 여기서 고개만 끄덕여도 상황 종료였지만 이왕 컨셉을 잡았으니 조금 더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말은 쉽게 하면 못써."
"네..?"
갑작스러운 훈계조의 말투에 이쪽을 노려보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정말로 이런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릴 뻔했다.
"말만 그렇게 한 거지, 면허만 따고 지은이도 대학 생활 시작하면서 바빠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거리를 두려고 했었어. 지은이가 워낙 진지해서 받아주긴 했지만 네 말대로 사귈 생각도 없으면서 계속 이러는 건 말도 안 되니까."
"......?"
이어지는 말에 정혜수의 눈빛이 침착을 되찾지 못하고 당황으로 물든다. 저 눈빛이 어떻게 돌변할지를 기대하면서, 본론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혜수 네가 정 원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겠지만 억지로 무리할 필요는 없어."
아주 잠깐의 침묵 끝에, 당황으로 물들었던 정혜수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와 다시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개새끼."
"갑자기 왜 욕을 하고 그래? 오빠 상처받는다?"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고 작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다시 한번 능청을 떨어준다.
말만 그렇게 했을 뿐이지, 은근히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도했고, 이미 확실하게 날 쓰레기라고 이미지를 박아놓은 정혜수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뻔했다.
"그 나이 때면 호기심에 한 번 해보고 싶을 수도 있는 거지만,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아. 어떻게 할래?"
이지은 때처럼 하루를 기다려준다거나 할 생각은 없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했으면서도 바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있으니 노골적일 정도로 상투적인 말이었다.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누가 보더라도 억지로 대답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그럼 언제 할까? 오빠는 지금이라도 괜찮은데."
"저도.. 지금부터라도 괜찮아요."
결국 어쩔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뜬 정혜수는 희미하게 체념이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서 계속 얘기하는 것도 좀 그러니까, 일단 일어나자. 지은이랑 어떻게 거리를 둬야 할지도 얘기해볼 필요가 있고,"
"..알았어요."
그래도 이지은을 들먹이자 흠칫하면서도 곧바로 뒤를 따라 몸을 일으켜 카페를 나섰다.
목적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지은과 들어갔던 모텔. 정혜수는 여러모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순히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럼, 일단 씻을까?"
"그 전에, 확실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면허만 따고 나면 제대로 지은이랑 거리를 두고, 확실하게 연락을 끊겠다고요."
"아예 연락까지 끊는 건 조금 그렇긴 한데, 그게 지은이한테 좋은 일이라면 그렇게 해야지. 너무 의심하지 않아도 돼.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어딨겠어?"
"..됐고, 오빠가 약속을 안 지킬 수도 있으니까 오늘 하는 건 동영상으로 찍어 둘 거예요."
정혜수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끊어내고, 일방적으로 영상을 남기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는다니까. 굳이 영상까지 남길 필요는 없지 않아? 나야 괜찮은데, 여자들은 이런 거에 민감하잖아."
"어차피 저만 유출 안 하면 아무도 모르니까 상관없어요. 이것까지 거절하면 그냥 나갈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나야 혜수만 괜찮다면야 상관없어."
솔직히 말하면 몽마라는 입장 상 영상이 남는 건 여러모로 찝찝했지만 말 그대로 정혜수가 유출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정혜수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지은에게 보여주는 건 몰라도 영상을 퍼트릴 이유가 없었으니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씻는 것부터 남길 생각은 아니지? 일단은 둘 다 씻고 나와서 영상을 찍든 하자."
"..알았어요. 그럼.."
"같이 들어갈까? 표정이 굳은 걸 보니까 처음이라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같이 씻으면서 미리 긴장 좀 풀어두자. 괜찮지?"
정혜수가 일방적으로 통보했듯이, 나 역시 거절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당당하게 정혜수의 의견을 물었다.
"..쓰레기 새끼."
"상처받는다니까 그러네. 자, 벗자."
"..하아."
벗자고 말하면서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자 정혜수는 결국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역시 둘 다 수준이 높다니까.'
이쪽의 시선을 의식하는 탓에 긴장한 기색으로 옷을 벗기 시작하는 정혜수의 몸을 훑어보며 다시 한번 평가를 내렸다.
날씬하고 가슴이 조금 작은 이지은에 비해 정혜수는 가슴이 큰 만큼 골반이나 허벅지의 라인이 더 두드러진다.
어느 쪽이 내 취향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단연 정혜수 쪽이었다.
키는 평균 정도면서도 키가 큰 편인 임예진과 가슴 크기가 비슷하다. 조금 더 작은 신장 차이를 생각하면 정혜수는 확실히 가슴이 크다고 할 정도는 됐다.
"속옷 예쁘네."
"......"
하얀색과 연분홍색이 어우러진 이지은의 귀여운 속옷과는 달리 정혜수의 속옷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계통의 심플한 디자인이라 조금 더 성숙한 분위기였다.
정혜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치마와 스타킹까지 벗고, 잠시 손을 멈추고 망설이다가 손을 등 뒤로 보내 브라의 후크를 풀었다.
달칵, 하고 후크가 풀어지는 소리와 함께 브라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어린 나이답게 훌륭하게 탄력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 좋은 가슴이 작게 흔들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크기에 반해 조금 작은 유륜과 살짝 튀어나온 유두가 묘하게 탐스러워 보인다. 우선은 정혜수의 매력 포인트를 하나 체크해두고, 아래쪽으로 시선을 보내자 시선을 느낀 정혜수가 흠칫 몸을 떨었다.
"......"
하지만 이번에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아주 잠깐 망설였다가 곧바로 천천히 팬티를 아래로 내려 가장 은밀한 부위를 드러냈다.
'털이 조금 많은가?'
엄밀히 따지면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보지 위쪽에만 가지런히 털이 나서 깔끔했던 이지은과 비교되는 탓에 조금 신경 쓰인다.
그래도 보지 자체는 조금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양이라 나름 합격점을 줄 정도는 됐다.
"..흥."
자연스럽게 허벅지 사이를 훑어내리는 시선에 흠칫하며 몸을 움츠리던 정혜수는 잠시 흠칫하더니, 어깨와 허리를 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다.
저런 태도가 더 정복욕을 자극한다는 사실은 모르는 걸까. 이지은을 천천히 조교 하느라 제대로 풀지 못한 욕구 탓에 바지 안쪽에서부터 자지가 불끈거리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 있어. 아니면, 너도 오빠 벗는 거 구경할래?"
"..쯧. 됐어요."
진심으로 기분 나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럽게 혀를 찬 정혜수는 그대로 몸을 홱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
나 역시, 망설임 없이 옷을 휙휙 벗어두고 자지를 우뚝 세운 채로 정혜수의 뒤를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