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 친구한테는 비밀인 모텔에서 섹스 (1)
기세 좋게 내 팔을 끌어당기며 걸어간 건 좋았지만, 이지은이 근처에 있는 모텔을 찾아뒀을 리도 없고, 그렇게 3분 정도를 걷다가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며 힘이 빠지려고 하기에 픽 웃으며 인근에 있는 모텔을 검색해 찾아 들어갔다.
"아으.."
제법 깔끔한 외견의 모텔 건물 앞에 선 이지은은 '정말로 들어가는 건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지만 끝내 도망치지 않고 방을 빌려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먼저 씻을래?"
"그, 그게.."
먼저 씻겠냐는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이지은의 두뇌는 핑핑 돌아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렸다.
씻는다.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어제 자기 전에도 씻었고, 오늘 아침에도 씻고 나왔지만, 운전 연수를 받으면서 땀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디테일하게 떠올리는 건 무리였지만 서로가 가까워지면 땀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적어도 최민석에게 그런 냄새를 맡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먼저? 나중에? 순서가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진지하게 생각했다. 먼저 씻고 나오면, 긴장한 마음으로 최민석이 씻고 나오는 걸 기다려야 했고, 나중에 씻는다면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에, 확실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와 최민석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 먼저.."
"그래. 기다리면서 다시 생각하고 있어. 정말 아니다 싶으면 말 안하고 나가도 괜찮으니까."
"아, 안그럴 거에요."
"그래그래."
얼굴은 빨개진 주제에 애써 괜찮은 척하는 이지은의 모습에 픽 웃음을 터트린 최민석이 샤워실 앞에 가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방 한쪽 면이 전부 샤워실 유리로 되어있는 이 방에는 탈의실이랄 만한 장소가 없었다.
"......"
이지은은 침대에 걸터앉은 자신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시원스럽게 상의를 벗는 최민석의 등을 홀린 듯이 쳐다보며 얼굴이 점점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등.. 넓다..'
어깨가 넓다고는 생각했지만, 직접 벗은 뒷모습을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하다. 뭐가, 어떻게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하게 각진 뒷모습은 여자의 몸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겨울이라 긴소매에 꽁꽁 싸매져 보지 못했던 팔뚝도, 옷 밖으로 빠져나와 보니 자신이 만졌던 감촉 그대로 각지고 탄탄해 보였다.
"너무 열심히 보는 거 아니야? 그렇게 보고 싶으면 차라리 같이 씻을까?"
"아, 아니에요!"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장난스럽게 툭 던지는 최민석의 말에 이지은은 그대로 몸을 홱 돌려 침대에 엎어지듯 누워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보지도 않고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쳐다봤다는 걸까. 그 정도까진 절대 아니라고 믿고 싶었지만 이지은은 자신이 최민석의 몸을 열심히 쳐다봤다는 사실 자체는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래쪽은 어떨까, 오히려 자신도 모르게 이 뒤로 이어질 최민석의 탈의 장면을 보고 싶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최민석이 짧게 웃음을 터트리고, 스륵스륵 옷이 볏겨지는 소리가 멎는다. 그리고 샤워실 문이 열렸다가 탁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이지은은 베개에 파묻었던 머리를 천천히 들어 샤워실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쏴아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몸을 씻는 최민석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인다.
자세한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이지은은 이번에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침을 꼴깍 삼키며 그 흐릿한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최민석의 샤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샤워기 물을 맞으며 이를 닦고, 타올로 거품을 내서 몸 곳곳을 씻어낸 뒤 다시 샤워기를 뿌려 거품을 씻어냈을 뿐이다.
그 뒤에, 안에 수건이 걸려 있었는지 수건으로 몸을 씻는 듯한 움직임이 보였고, 이지은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후우.. 지은아? 오빠 다 씻었으니까 너도 씻고와."
"아, 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몸을 일으키고, 콩닥콩닥 뛰어대는 심장을 의식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
"왜?"
"아, 아니에요."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최민석은 새하얀 가운을 두르고 있어서 달리 노출이랄 만한 부위가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도, 목 아래로 깊게 파인 쇄골과 가슴팍 정도는 보인다. 이지은은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빤히 시선을 보내려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옷 갈아입을 건데.."
"알았어. 안 보고 있을게."
정신 놓고 최민석의 몸에 빠져들었던 자신과는 달리, 자신과 교대하듯 침대에 걸터앉은 최민석은 쿨하게 대답하며 자신이 머리를 파묻었던 베개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덕분에 몸을 보여지며 부끄러워할 일은 없어졌지만, 안달복달 못했던 자신과는 달리 여유로운 모습에 또 마음이 복잡해졌다.
'연애는 안 해봤다고 했는데..'
그럼 오빠도 처음이라는 말 아닌가? 그런데 왜 저렇게 여유롭지? 역시 내가 애 같아 보여서 그런 걸까?
남녀 관계, 특히나 성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거의 경험이 없는 이지은으로서는 섹파나 노예 따위의 단어를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기에 이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상 몸을 섞으면 저런 반응도 달라질 것이다.
몸만이라면 자신도 충분히 성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최민석이 자신을 애 취급하더라도 몸까지 섞은 상대를 마냥 어린애로 볼 수만은 없을 테니까.
거기에, 만약 최민석이 자신과의 관계에 만족하고 빠져든다면..
'나, 난 몰라..'
경험도 없는 처녀 주제에 남자를 자기 몸에 빠져들게 만들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떠올린 이지은은 부끄러움과는 또 다른 근질거리는 감정에 고개를 붕붕 저으며 도망치듯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모텔에 와본 건 처음이고, 당연히 모텔 욕실에 와본 것도 처음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는 샤워기와 한구석에 위치한 두 명은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 법한 목욕탕 같은 욕조, 벽면에 넓게 자리한 거울까지.
자신의 집이나 친구들 집에서 본 가정집 욕실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확 느껴지는 습한 수증기는 최민석이 조금 전까지 몸을 씻었다는 증거였다.
'진짜 하는구나..'
살짝 고개만 돌리는 것만으로도 벽면에 넓게 자리 잡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평소와는 다르게 희미하게 홍조가 오른 얼굴은 스스로가 봐도 어색했다.
몸매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쁘지 않다. 딱 그 정도였다. B컵이 작은 가슴은 아니었지만, 기껏해야 평균보다 아주 조금 나은 수준일 뿐이고, 자신보다 조금 더 키가 크고, 조금 더 가슴이 큰 정혜수와 비교하면 아쉬운 몸매였다.
과연 최민석이 만족할 수 있을까. 이지은에게 있어 이건 일종의 승부였다. 최민석에게 제대로 여자로 보이기 위한, 더 나아가서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승부.
하지만 막상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점검해보니, 가진 무기가 영 믿음직스럽지가 않았다. 이지은의 외모를 생각해보면 작은 아쉬움에 불과한 수준이었지만 여자라면 어쩔 수 없는 고민이기도 했다.
몸 전체를 시원하게 씻어내린 최민석과 달리 이지은의 샤워는 머리 아래로만 이뤄졌다.
얕게 한 화장이긴 했지만 무기가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이었으니 남기고 싶었다. 머리 역시, 아침에 나오면서 감고, 윤기가 나도록 제대로 세팅해놨는데, 지금 감아버리면 머릿결 역시 나빠질 것이다.
다행히 세면대에는 싸구려긴 해도 머리끈이 제대로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지은은 머리를 위로 묶어 올려 깔끔하게 몸만 씻어낸 뒤 욕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지은 역시, 최민석과 마찬가지로 하얀 가운을 입고 나왔다. 이제부터는 어차피 벗게 되겠지만, 다짜고짜 알몸으로 나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이제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정말로 괜찮겠어?"
"..괜찮아요."
욕실에서 나온 이지은이 우물쭈물하면서도 침대맡까지 다가오자 앉아있던 최민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여전히 부끄럽고, 이건 아니지 않나 싶으면서도 도저히 포기하고 싫다는 마음만큼은 그대로였다.
"자, 이리 와봐."
"꺗..!"
대답과 동시에 최민석의 손이 이지은의 손목을 붙잡고 살짝 잡아당겨 그대로 자신의 옆에 앉혔다.
지금은 서로의 몸이 하얀 가운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곧 벗겨질 것이다. 서로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알몸을 드러내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러운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게 된 결과에 이지은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어댔다.
손목을 붙잡고 있던 최민석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턱을 살짝 붙잡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 서로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
"이젠 안 멈출 거야."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에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불쑥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고, 다시 한번 서로의 입술이 겹쳐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말캉한 혀가 맞닿은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우읏.. 움..? 후우움.."
긴장으로 꽉 다물어진 이빨을 혀끝으로 톡톡 두들긴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도 잠시. 이내 가벼운 버드 키스 따위가 아니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진득한 키스를 떠올린 이지은은 쿵쿵 뛰어대는 가슴을 의식하며 최민석의 혀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우움.. 움.. 후응.."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얽혀들고, 안에서 질척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입 안 곳곳을 희롱당하는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움찔 떨어댄다.
이지은이 아는 키스란 서로의 사랑을 조금 더 성적으로, 격정으로 나누는 행위였지만 지금 그 인식이 변했다.
난생처음으로 겪어본 남녀 간의 진한 키스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음란했다.
나도 뭔가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어색하게 혀를 움직여보자 입 안에서만 퍼지던 질척한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온다.
"움.. 츄룹.. 츕.. 츄웁.."
끈적하게, 질척하게, 그런 형용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서로의 혀가 미끄러지고, 입 안 곳곳이 문질러지는 감촉과 소리 외에는 어떠한 자극도 없다.
덕분에 이지은은 익숙하지 않은, 찐득한 첫 키스에 숨이 차오를 때까지 그 감각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