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169화 (169/775)

< 169화 > 난 마음에 드는데? (1)

몽마가 되면서 꾸는 꿈은 본인의 무의식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일이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본인의 인격, 행동 원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란 의미다.

최민석 같은 경우에는 어린 시절의 암울한 생활 그 자체가 그러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별다른 사건 없이 평화롭게 자란 사람들은 무슨 꿈을 꾸게 되는 걸까.

유서연은 최민석에게 처음 강간당했을 때의 꿈을 꿨다. 그녀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그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경험이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건 임예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불감증이라는 체질 탓에 욕구 중 하나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임예진의 인생은 보통 사람 이상으로 흔들림이 적었다.

그러니 당연히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은 사건 역시 유서연과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뷰릇..! 븃..! 뷰르르릇..!

"아으응..♡"

질내를 가득 채운 굵고 단단한 기둥 끝에서 용암처럼 뜨거운 액체가 울컥거리며 쏟아져 들어온다.

뷰르르릇..! 뷰릇..! 븃..!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몇 번이고 불끈거리며 기세 좋게 이어진다.

화상이라도 입을 것 같은 열기가 뱃속을 뜨겁게 달구며 안쪽을 마구 녹여내리는 것만 같은 강렬한 쾌락.

그전까지만 해도 평생 성욕을, 성적 쾌감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던 임예진은 당시에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낯선 감각이었다.

"하아아..♡"

기분 좋다.

사정 후에 잔뜩 민감해진 자궁을 꾹꾹 누르며 문지르는 귀두도, 아직도 멀었다는 듯 불끈거리는 움직임도. 그야말로 여자를 범하기 위한 '수컷' 그 자체다.

"그래도 진짜가 좋은데.."

이곳이 꿈속이라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꿈속의 최민석이 주는 쾌감은 기분이 좋기는 해도 진짜와 비교하면 약간 모자란 느낌이 있었다.

몸이 불감증이었을 때를 기준으로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 움직이는 것 자체는 느낌도 거의 들지 않았고.

"아직도? 아직도 안 되나?"

처음부터 꿈에서 깨어나 보려고는 했지만 무언가에 꽉 막힌 것처럼 깨어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막힌 느낌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으니 조만간 깨어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빨리 일어나서 결과를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임예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깰 수 있는데도 못 깨는 이유야 아마 몸이 변하고 있어서겠지? 언니도 며칠씩 누워 있다가 그렇게 가슴이 커졌으니까. 곧바로 깨어나면 몸이 변할 시간이 없었겠지.'

처음 그 결론에 다다랐을 때는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이 두근거리고 즐거웠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 하나하나가 가슴이 커지는 과정이라면?

직접 사이즈는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유서연의 가슴은 눈대중으로만 봐도 두 치수는 커진 것 같았다.

못해도 꽉 찬 F컵. 아니면 G컵은 된다는 소리인데. 그쯤 되면 서양인들 사이에서도 확실하게 거유라고 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닌가.

같이 최민석을 씻기면서 봤을 때 확인한 바로는 살도 찌지 않고 몸매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불륨감이 한층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언니랑 비슷한 수준으로 가슴이 커진다고 하면..'

그래도 D컵까지는 노려볼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옷 위로 간신히 라인만 드러날 정도의 가슴이 아니라, 확실하게 크다고 알 수 있는 크기가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오래 꿈을 꾸고 싶으면서도 빨리 깨어나 결과를 확인해보고 싶어 안절부절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기를 한참.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때가 되어서야 정말로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금만 더.. 있는다고 뭐가 변하진 않겠지?"

애초에 몸이 변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도 자신의 추측일 뿐이고. 그 추측대로라고 해도 몸이 다 변했으니 깨어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으니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변화가 더 생기지는 않으리라.

"..일어나자."

마음먹은 순간 자신의 위에서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던 꿈속의 최민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많이 안에 사정 당했는데, 안에서 정액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덕분에 다시 한번 역시 꿈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아."

깨어났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보이는 익숙한 천장. 그리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

눈을 뜬 자세 그대로 생각을 정리하던 임예진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위로 올라갔다.

'커졌어..!'

그것도 조금 커진 정도가 아닐 것이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답답한 정도를 넘어 조금 아플 정도였으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 앞에 선 임예진은 우선 천천히 자신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내렸다.

가슴이야 속옷 안에 갇혀 있으니 벗기 전까지는 그대로인 게 당연했고, 골반이나 허벅지 라인이 조금 변했나?

확인을 위해 그대로 윗옷을 벗어버리고, 그대로 브라까지 풀어 답답하게 갇혀 있던 가슴을 밖으로 드러냈다.

"아.."

커졌다. 벗기 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자신의 가슴은 분명히 몽마가 되기 이전보다 커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슴을 확인한 임예진의 표정은 만족이 아닌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눈으로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커지긴 했다. 커진 크기에 비해 조금도 처지지 않았을 정도로 형태도 예뻤고, 피부도 이전보다 매끈해졌다.

거기에, 골반이나 허벅지의 라인 역시 조각상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끄러운 굴곡이 잡혔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예상에 미치지 못하는 부족한 가슴 사이즈뿐이었으니까.

"망했어.."

지금의 유서연 만큼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전의 유서연만큼은, 못해도 그보다 조금 작은 정도까지를 마지노선으로 잡아놨던 임예진으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일 뿐이었다.

"..에휴."

한참을 거울 속의 가슴을 노려보던 임예진은 결국 짧게 한숨을 쉬며 허망한 마음을 접고 옷을 챙겨 입었다.

'브라..는 안 입는 게 낫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크기가 커졌으니 그만큼 가슴이 아래로 쳐져야 정상인데, 몽마가 된 자신의 가슴은 중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속옷 없이도 예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짜는 절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 자신이 움직이는 그대로 생생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계속 안 입고 지내면 나중에는 처질지도 모르고, 큰 만큼 무거워졌으니 계속해서 입고 다니긴 해야겠지만 딱히 사이즈가 맞는 속옷도 없는 상태에서 입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시간은.. 4시네. 주인님은 집에 계시려나?'

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오자 곧바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유서연과 눈이 마주쳤다.

"아, 일어났어? 따로 몸에 이상은 없지?"

"응. 괜찮은 것 같아."

아무런 사심도 없이 안부를 물으며 웃는 유서연과 달리 임예진의 시선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유서연의 가슴을 힐끔거린다.

안다. 자신과 유서연은 기본적인 체형부터가 달랐으니까.

몸 어디를 봐도 군살 하나 없이 매끄럽게 빠진 자신의 몸과 유서연처럼 가슴이 큰 여성 특유의 육덕진 몸매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같은 여자의 시선으로 봐도 유서연이 살쪘다는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고, 그렇다면 결국 가슴이 더 큰 쪽이 좋은 것 아닌가.

'실망하시면 어떡해..'

외모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자 입장에서 가슴이란 일종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었기에 자신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은?"

"아직 안 오셨어. 한두 시간은 더 있다가 들어오실 거야."

"어디 가셨는데?"

"데이트."

"......?"

너무 뜻밖의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눈을 껌뻑였다.

"누, 누구랑요?"

"이지은. 나이는 올해로 스물이랬고, 운전 학원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쪽에서 번호 좀 달라고 했길래 줬다고 하셨어."

이지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이 잠든 사이에 만난 상대일 테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나이는 스물? 어리다. 자신도 유서연도 최민석보다는 연상이었으니 나이가 어리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나름 어필할 만한 포인트다.

아니, 그보다도 신경 쓰이는 건 유서연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연한 태도였다.

"아니, 언니는 왜 그렇게 태연해?"

지금이야 사이가 좋지만 처음 마주쳤을 때의 유서연을 떠올려보면 자신보다 질투심이 심하면 심했지, 절대 못 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의 유서연은 그때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최민석의 데이트 상대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닌데, 이젠 익숙해져야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그게 무슨.."

"..앉아봐."

이번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따지려는 순간. 짧게 한숨을 쉰 유서연이 TV를 끄며 말했다.

"어, 응."

유서연이 가끔씩 보이는 싸늘한 분위기에 움찔하면서도 곧바로 살짝 거리를 두고 앉아 시선을 맞췄다.

"생각해봐. 우린 이제 인간이 아니잖아."

"..그렇지."

아직까지는 그다지 체감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은 더더욱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네 상태를 봐."

"내 상태? 왜?"

"몸에 정기가 거의 남아 있질 않잖아."

"......?"

유서연의 영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기? 그게 뭔데? 말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유서연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사 표현으로는 충분한 반응이었다.

"하아.. 깨어나서 몸이 변한 거 못 느꼈어? 지금이라도 몸 상태에 집중해서 느껴봐."

"집중하라니, 뭘.."

"빨리."

"..알았어."

유서연의 짜증 어린 목소리에 찔끔하며 눈을 곧바로 눈을 감고 몸에 의식을 집중한다.

"..아."

의식을 집중한 순간 곧바로 느껴지는 텅 비어있는 감각에 바로 유서연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가득 차 있어야 할 그릇이 텅 비어있다. 아니, 바닥까지 긁어내 보면 조금은 남아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새삼 이걸 왜 몰랐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지만 눈을 뜨자마자 온 신경을 가슴에 집중한 탓에 몰랐던 모양이었다.

"느껴지긴 하나 보네. 아예 텅 비어있지? 네 몸을 몽마로 바꾸면서 가지고 있던 정기를 다 써서 그런 거야."

설명은 충분했다.

정기라는 건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다. 굳이 더 설명을 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걸 얻는 방법은 두 가지야. 하나는 그냥 많이 먹고, 푹 쉬면서 정기를 쌓는 거고, 다른 하나는 섹스를 통해서 정기를 흡수하는 거지. 너도 몽마가 뭔지는 대충 알고 있지?"

"..알지."

몽마보다는 서큐버스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긴 했지만 최민석은 그 둘에 별다른 차이를 두지 않았으니 부르는 방법만 다른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먹고 자는 걸로 얻는 정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돼. 사는 데는 별문제 없겠지만 주인님처럼 최면 같은 건 절대 못 쓰지. 그럼 남은 방법은 섹스뿐인데. 너, 주인님 말고 다른 남자랑 자고 싶어?"

"절대 싫어."

생각만 해도 확 올라오는 불쾌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주인님한테 정기를 받는 수밖에 없는데. 주인님은 정기를 어디서 얻으시겠어?"

"그야.."

다른 여자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유서연이 했던 말 역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야 최민석 이외의 남자는 원치 않겠지만, 최민석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몽마한테 섹스는 일종의 식사 같은 개념이라더라. 그리고, 그냥 먹이 취급받는 여자들이랑 우리는 엄연히 달라. 주인님이 다른 여자를 먹더라도 우리처럼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니까."

"..그래도 마음에 안드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나도 그렇긴 한데. 그건 이따가 주인님 오셔서 얼굴 한 번 보면 해결될 걸."

"뭐가 어떻게 해결되는 건데?"

"직접 보면 알아. 나도 그건 말로 설명 못 하겠으니까."

유서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TV를 켜고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다르게 최민석을 직접 마주친 순간 유서연이 느꼈던 감정은 거의 본능 깊숙한 곳에 자신이 이 사람의 소유물이라는 명제를 때려 박는 듯한 강렬한 복종감이었다.

사소한 질투 정도는 오히려 더 생겨나겠지만, 결국 주인님만 만족한다면 다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임예진 역시, 자신과는 별반 다를 바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었으니 구구절절 말로 설득할 필요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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