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저도 몽마 할래요! (3)
임예진에게 걸어둔 최면이 조금씩 흔들리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동안 최면이 깨지려는 조짐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몽마의 시선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즉석에서 수복하는 것도 가능해.'
상대에게 다시 정기를 사용해 깨져가는 부분을 수복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소모되는 정기 역시 새로 최면을 거는 것보다 적게 드는 방법이었다.
'지금 할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직접 풀어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임예진 스스로가 최면을 깨는 게 차라리 혼란이 덜 할 것이다.
"어..?"
최면이 깨졌다.
원래라면 최면이 쉽게 깨지지는 않겠지만 워낙 이상한 점이 확실하기도 하고, 원래라면 의식하지 않았어야 할 부분을 직접 알려줘서 의식시킨 결과였다.
"왜 몰랐지..? 최면.. 정말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임예진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내 안색을 살폈다.
"말했잖아. 최면을 걸 수 있다고. 원래라면 사람이 밥도 안 먹고 며칠씩 방에서 자고 있으니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있었지?"
"..네."
실시간으로, 직접 최면을 겪은 덕분에 임예진은 유서연보다 깔끔하게 최면이라는 능력을 받아들였다.
남에게 건 최면이라면 짜고 쳤다고 의심이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몽마고, 최근에는 남을 몽마로 만들 수도 있게 돼서 서연이를 먼저 몽마로 만들었어. 가슴은 그 과정에서 커진 거고."
"......"
의심이라기보다는 황당함. 직접 겪은 게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걸 정말로 믿어야 하나. 그런 표정이다.
잠시 말없이 고민하던 임예진은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시선을 맞춰오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 불감증을 해결해주신 것도 주인님이 몽마..라서 가능했던 건가요?"
이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다.
그래도 몽마가 된 뒤에 임예진을 꾸준히 안으면서 알아낸 점도 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대답은 해줄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건 내가 몽마인 거랑은 관계없어. 그냥 너랑 내가 워낙 상성이 좋기도 했고, 내가 정력이 워낙 세서 가능한 일이었지."
사람마다 가진 정기는 각각 다르고, 그중에는 나와 상성이 좋은 정기나 좋지 않은 정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표본은 아직 편의점 알바생 한수영과 유서연, 임예진밖에 없었지만 유독 임예진이 내 정기를 잘 받아들이고, 정기가 빠르게 섞였다.
불감증은 정기가 너무 진하게 뭉쳐 어지간한 수준의 정기로는 반응조차 하지 않는 체질 탓일 것이고, 내 경우에는 상성이 좋은 정기를 끝없이 쏟아부어 반응을 이끌어낸 결과였다.
"증거를 대라고 해도 더 댈만한 건 없어. 정 의심되면 다른 사람한테 최면 거는 건 보여줄 수 있긴 해. 보여줄까?"
"아, 아니에요. 못 믿는 게 아니라, 너무 황당한 얘기라서.."
증명은 최면을 걸었다 푸는 걸로 충분했다는 말이다.
"그, 그럼 혹시, 저도 몽마가 되면.. 언니처럼 가슴이 커질 수 있는 건가요..?"
"......"
이번에는 되려 내 쪽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거 말고 몽마가 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몽마가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고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걸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닌가?
"..솔직히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잘 몰라. 처음 해본 일이거든. 서연이 같은 경우에는 가슴이 커지고 피부가 좋이지긴 했는데, 너는 아마 서연이처럼 커지지는 않을걸."
유서연의 변화가 나름대로 대단하긴 했지만 다른 사람처럼 보일 정도의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원본을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더 매력적인 모습이 됐다고 해야 하려나.
향설의 말을 들어보면 내 몸 역시 이성을 유혹하고 성관계에 최적화된 형태로 바꾼 거라고 했고.
아무래도 임예진의 가슴을 유서연 수준까지 키우는 건 오히려 몸매의 비율이 망가져 부자연스러울 테니 그렇게 되지는 않으리라.
"그, 그래도 커지기는 하는 거죠?"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아무래도 임예진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서연과의 가슴 크기 차이를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자들의 가슴 크기는 남자들의 자지 크기처럼 자신감의 척도 같은 느낌이 있긴 했으니 이해 못 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연이 만큼 커지는 건 아니지.'
그래 봐야 별로 보기 좋지도 않을 테고. 나로서는 각각 다른 타입의 몸매를 즐길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인 셈이었다.
"그럼, 몽마가 되면 또 뭐가 어떻게 변하는 건가요?"
2번째에 생각했던 질문을 들었지만 뭔가 기분이 미묘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최면이라는 걸 믿으면서도 미심쩍어했던 주제에 이제는 몽마가 되는 걸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게 티가 난다.
'이것도 안 물어보고 결정하는 것보다야 낫긴 한데..'
그래도 나름대로 이성적인 모습을 보였던 유서연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다.
아니, 애초에 오르가즘을 느껴보고 싶어서 몸까지 팔았던 전적이 있었으니, 원래 성격 자체가 자기 욕망에는 거침이 없는 타입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교육을 제대로 안 하기는 했어도 유서연이랑 달리 제멋대로 행동하기도 했었고.'
반대로 일주일 섹스 금지라는 벌 이후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말을 잘 듣게 되기도 했으니까.
"일단 겉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아. 서연이처럼 몸이 조금 바뀔 수는 있겠지만 겉모습 자체는 평범한 사람이랑 똑같으니까."
"언니는 조금이 아니던데.."
"..아무튼. 그리고 섹스를 통해서 정기라는 걸 얻을 수 있게 되고, 그 정기를 이용해서 최면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향설을 보면 그 외에도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았지만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면뿐이니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부작용 같은 건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거의 없고. 다만.."
나도 변하고 나서 알았던 문제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긴 하다.
"우리 목숨을 노리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어."
나도 몽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고, 유서연에게도 깜빡하고 나중에 말해준 일이긴 했지만 원래라면 미리 확실하게 해뒀어야 할 부분이다.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바티칸이라는 곳에서 예전에 대대적으로 몽마를 사냥했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걔들한테 걸리면 죽을 수도 있어."
"......"
역시 유서연처럼 몽마로 만든 뒤에 알려줘야 했었나?
짧게 이어진 침묵에 그런 생각이 떠오른 순간.
"그쪽은 저희가 몽마라는 걸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우리가 인간이랑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고, 최면을 쓸 수 있는 건 몽마밖에 없으니까 들킨다면 그쪽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지."
이건 유서연을 몽마로 만들고 바티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확인을 위해 향설을 깨워 직접 들은 이야기였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덕분에 한 번만 더 급한 일 아닌 걸로 깨웠다간 그냥 한달동안 어플을 지워놓겠다는 경고까지 들어버렸지만.
아무튼, 몽마를 직접 찾아낼 능력은 없어서 깨끗한 정기를 가진 일반인을 여럿 섭외해서 사람이 많은 동네를 돌아다니게 하고, 그런 인간에게 걸려든 몽마를 사냥하는 방식을 몇 년씩이나 계속했다고 했던가.
그래도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는 걸로 봐서는 사냥이 끝났다고 판단된다는 것 같았다.
정작 본인도 잠에서 깨고 우연히 만난 다른 몽마 생존자에게 들은 이야기였으니 완벽하게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이제 남은 건 임예진의 결정뿐이다.
가능성이 적다고는 해도 목숨이 걸린 일이었으니, 거절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할래요."
"응?"
"저도 몽마 할게요."
유서연도 그랬지만 임예진도 내 예상과는 달리 결정이 너무 빨랐다.
"그렇게 쉽게 결정해도 괜찮겠어?"
"조금 무섭기는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직 조금 현실감이 없는 것도 있고, 주인님이나 언니도 크게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어차피 저는 주인님 없으면 평생 욕구불만으로 살아야 할 텐데. 지금은 그쪽이 더 무섭거든요."
나에 대한 애정만으로 결정을 내린 유서연과는 또 다른 화끈한 결정이다.
딱히 몽마가 되는 걸 거절한다고 해서 임예진을 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이 정도 착각은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을 것이다.
한참 부족하기는 해도 자위로 절정에 달할 수 있는 유서연과는 달리 임예진은 갑자기 생겨난 성욕에 비해 내가 아니면 가버릴 수 없는 몸이었으니 이런 집착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고.
"알았어. 그리고, 몽마가 되면 말로만 주인님 노예 하던 지금까지랑 다르게 정말 내 말에 완전히 복종해야 하는데. 이것도 괜찮겠어?"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요 뭘."
분명 설명에 들인 노력은 비슷한데 유서연과 비교하면 뭔가 날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튼, 동의는 확실하게 받았다.
"그럼 지금부터 몽마로 만들어줄 건데. 아마 서연이처럼 며칠 잠들어 있게 될 거야. 그래도 몸에는 이상이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부탁드릴게요."
"..오냐."
잘 부탁한다는 말에서 가슴 크기를 향한 열망이 느껴지는 탓에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더 따지지 않고 임예진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정기를 흘려넣었다.
털썩.
이번에도 정기를 흘려 넣은 순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임예진의 눈이 푹 감기며 그대로 균형을 잃고 침대 위로 엎어져 버렸다.
엎어진 임예진의 몸을 바른 자세로 눕혀놓고, 이불을 덮어놓은 뒤에 방문을 닫고 나왔다.
이번에는 유서연의 방에 재워놓은 덕분에 마음 편히 내 방에서 컴퓨터도 하면서 시간도 보낼 수 있으리라.
"아, 근데 이러면 또.."
욕구를 풀어줄 상대가 없다.
3시쯤이면 유서연도 일이 끝나고 퇴근하겠지만 오늘은 퇴근하고 그대로 친가로 돌아가서 가족 문제부터 정리하고 오라고 했으니 몇 시나 돼야 돌아올지 모르는데.
"오늘 안에는 오겠지..?"
그래도 자기 전에는 몇 발 빼둬야 푹 잘 수 있는데.
성은영이 있긴 하지만 딸이 있는 집에 한밤중에 찾아가기도 찝찝하고, 한수영이 있는 편의점 역시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는 영 불편한 곳이라 내키지 않았다.
"하여튼, 빨리 여자를 더 늘리든가 해야지."
적어도 내가 필요할 때마다 찾아올 여자가 두세 명은 더 있어야 이런 상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임예진까지 몽마로 만드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부터는 집 안이 아니라 밖으로 돌아다닐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