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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161화 (161/775)

< 161화 > 저도 몽마 할래요! (2)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발해 회사 근처에 최민석을 내려주고, 먼저 출근한 유서연은 곧장 1팀장을 찾아갔다.

"최민석 그 사람. 내보내세요."

"네..?"

뜬금없는 명령조에 1팀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아무리 부모의 빽이 있다지만 실질적인 권한이라고는 없는 일개 낙하산이 하기에는 지나친 요구였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마세요. 최민석 그 사람. 일 그만두게 하시라고요."

"자, 잠깐만요. 2팀장님 기분은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잘 일하던 인원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쫓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요?"

우물쭈물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려는 1팀장의 말을 끊고 되묻는다.

이 뒤에 이어질 말이야 뻔하다.

1팀장이 자신의 감시역이라는 건 서로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이 일을 아버지도 알고 있냐고, 그렇게 막 나가도 되겠냐고, 이런 일은 보고할 수밖에 없다고 역으로 자신을 위협하려고 들겠지.

당연히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이쯤에서 포기했을 테고, 애초에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몽마가 된 지금이라면 이 정도 강짜쯤은 얼마든지 부릴 수 있다.

"계속 말해보세요. 그리고, 뭔데요?"

처음 사용해보는 최면은 오히려 이쪽이 어색할 정도로 숨 쉬듯 자연스럽게 성공해버렸다.

최면이 적용된 순간 1팀장의 눈빛에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결국은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최민석을 쫓아내는 일은 이미 허락받은 일이고, 유서연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자신 역시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원래부터 자신의 눈치를 보던 사람이었던 만큼 이런 식으로 겁을 주는 최면에 필요한 정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냥 애초에 강한 최면을 걸어버리면 그만이긴 했지만, 주인님에게 받은 정기를 함부로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어차피 말없이 일 그만두고 도망간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도 그렇게 도망간 셈 치고 처리하면 되잖아요?"

"그, 그게 아무래도 본인 의사로 그만두는 게 아니면 일이 시끄러워질 수도 있어서.."

"그건 1팀장님이 알아서 설득해주세요. 설득 못 하셔도 상관없긴 한데, 그렇게 되면 제가 좀 실망할 것 같네요."

이런 류의 갑질을 자주 해본 건 아니라 익숙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색하지도 않았다.

"..알겠습니다. 민석이한테는 제가 잘 말해보겠습니다."

1팀장이 거부할 가능성? 그런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가 최민석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는 해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 각오까지 하면서 그를 싸고돌 이유는 없었으니까.

"잘 부탁드릴게요. 얘기 끝나면 보고해주시고요."

침울한 표정을 짓는 1팀장을 뒤로하고 여성 휴게실로 들어온 유서연은 곧장 최민석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유서연 : 얘기 끝났어요. 지금 들어오시면 1팀장이 알아서 정리해줄 거예요.]

[최민석 : 수고했어.]

"아아..♡"

고작 수고했다는 메세지 한 줄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에 오싹 소름이 돋으며 달뜬 숨이 흘러나온다.

잠에서 깨어나 최민석을 마주한 순간부터. 자신이 완벽하게 그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에게 명령받고 싶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주고 싶다. 이전처럼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그에게 복종하고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넘쳐흘렀다.

그렇다고 해서 보상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건 최민석의 곁에서 지내다 보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으리라.

*

"아, 팀장님. 안 들어가시고 뭐 하세요?"

창고 근처 골목에서 내려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유서연의 메세지를 받고 창고 쪽으로 걸어가자 창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입구에서 1팀장과 마주쳤다.

아마 누가 듣지 못하도록 내가 창고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얘기를 끝마칠 생각이겠지.

"어. 민석아. 조금 할 얘기가 있어서."

"예? 뭔데요? 아직 날도 좀 추운데. 들어가서 얘기하면.."

"창고는 말고. 근처에 카페라도 가서 좀 얘기하자."

"카페요? 좀 있으면 차 들어올 시간인데.."

"괜찮으니까. 일단 가서 얘기하자."

"..알겠습니다."

1팀장이 계속해서 심각한 표정을 지어주는 덕분에 나 역시 적당히 분위기를 파악한 척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1팀장의 뒤를 따랐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번화가인 만큼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노리고 아침 일찍부터 오픈한 카페가 꽤 있어 찬바람 맞으며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까, 2팀장, 아니 유서연 그 인간이 절 내보내라고 했다고요?"

"..미안하다. 네가 안 나가주면 나까지 잘릴 판이라 어쩔 수가 없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 참.. 이렇게 뜬금없이 사람을 쫓아낸다고요?"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사람 한 명 살리는 셈 치고 부탁하마. 주변에는 네가 저번 달부터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전해두고, 퇴직 처리도 이쪽에서 알아서 깔끔하게 해줄 거야. 당연히 퇴직금도 제대로 나올 거고."

그냥 잡음 없이 일만 그만두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것저것 알아볼 필요 없이 저쪽에서 잘 해결해준다니 잘된 일이다.

"후우우.."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화난 것처럼 굳은 표정을 길게 한숨을 쉬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표정을 살짝 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절 수 없죠. 어차피 제가 버틴다고 해도 유서연 그 인간 계속해서 지랄해댈 텐데. 팀장님까지 같이 짤리는 것보단 낫겠죠."

"민석아.."

이쪽이야 그냥 후련한 기분이 들 뿐이었지만 1팀장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말씀하신 대로 뒷처리만 잘해주세요. 그냥 제가 갑자기 무단결근하고 도망쳤다고 정리해버리시면 다시 찾아올 겁니다."

"..그래. 그 부분은 확실하게 해둘 테니까 걱정 마라."

"알겠어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볼 테니까 팀장님도 일하러 가보세요. 곧 차 들어오겠네."

일이 해결된 마당에 더 이상 이 아저씨랑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할 필요는 없다. 조금 쌀쌀맞은 태도긴 했지만 지금 내 입장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행동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고 뒤돌아 가게를 나왔다.

"이걸로 일단 일 그만두는 건 해결 됐고. 다음은 예진이 차례네."

임예진 역시 유서연과 마찬가지로 종속 계약을 포함해 몽마로 만든다.

다시 한번 내가 몽마니 뭐니 떠들면서 임예진을 설득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본 일인 만큼 어떻게 해야 할지 대강 감이 잡혔다.

가능하면 그 과정에서 최면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임예진이 잠든 유서연을 건드리는 일을 막기 위해 유서연을 신경 쓰지 않고, 그 방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최면까지 걸어뒀으니 설득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유서연은 아직 일하는 중인 탓에 출근할 때와는 달리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와 문을 열자 거실에서 곧바로 인기척이 다가왔다.

"누, 누구세.. 주인님..? 벌써 오셨어요?"

"오늘부로 일 그만뒀거든. 이것저것 할 일도 있어서."

"할 일이요?"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임예진에게 설명할 순서는 대강 정해뒀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 거실이 아닌 유서연의 방으로 들어가 임예진을 침대에 앉혀놓고, 맞은편에 앉아 말을 꺼냈다.

"서연이 가슴이 커진 이유. 궁금해?"

"구, 궁금해요..!"

임예진은 유서연의 가슴이 어지간히도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가볍게 던진 질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부터 임예진의 앞에서 유서연의 가슴을 보란 듯이 주무르며 강조한 이유 자체가 일단은 상식 밖의 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니 시작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단, 서연이 가슴을 커지게 한 건 내가 한 거야."

"주인님이요..?"

의심..이라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애매한 반응이다.

유서연의 가슴이 커진 건 몽마가 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뿐이고,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유서연을 몽마로 만든 건 나였으니 가슴을 커지게 만든 것 역시 내가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혹시, 몽마라고 알아?"

"몽마..요..?"

"아니면 뭐, 서큐버스라던가. 대충 남자들 정기 빨아먹는 악마 같은 거 있잖아. 만화나 소설에 나오는 거."

일단은 단어를 설명하는 것부터가 문제다.

남자들이야 인터넷을 하다 보면 서큐버스 같은 단어는 흔히 나오기도 하고, 게임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종족이었으니 쉽게 접할 수 있겠지만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임예진이 뭔가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만화나 소설? 지금은 내 노예일 뿐이지만 이름만 들어도 아는 명문대인 세연대에 들어갔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을 테니 그런 걸 봤을지도 의문이다.

"알긴 아는데.."

다행이다.

단어부터 막혔으면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이해시켜야 했으니 여러모로 분위기가 무안해졌을 텐데. 알고 있다면 설명의 대부분을 생략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몽마거든."

이 부분은 두 번째 말하는 건데도 도저히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쪽팔린다.

서큐버스라고 하기엔 내가 남자였고, 인큐버스라고 하면 서큐버스의 반대 단어긴 하지만 거기까지 아는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뭔가 단어 선택도 몽마보다 중2스러운 느낌이라 입에 담기 부끄럽고.

"그리고 최근에 서연이를 몽마로 만들어줬는데. 그 과정에서 가슴이 커진 거야."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설득? 뭐가 됐든 내가 몽마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를 입에 담지 않는 이상 진도를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냥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깔아버리고 당당하게 명제를 깔고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게 무슨.."

임예진은 말을 끝까지 맺지 않고 내가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 건 아닌지, 당황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래도 무슨 개소리냐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같은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상대를 미친놈 취급했을 텐데. 그래도 노예와 주인이라는 상하 관계를 확실하게 해둔 덕분에 아무리 허무맹랑한 소리라도 무시하지는 않는 것이다.

"증거도 있어."

"증거요..?"

"응. 몽마는 남들한테 최면을 사용할 수 있거든. 간단하게는 성욕이 끓게 하거나 느껴지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일을 당연하게 믿게 만들 수도 있지."

"......"

여전히 임예진의 표정은 미묘하다. 아니, 살짝이지만 오히려 믿지 않는 기색이 조금 더 늘어났다.

당장 자기가 내 말을 의심하고 있는데, 믿게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설득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잘 생각해봐. 서연이가 방에서 잔 게 며칠이지?"

"그건.."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예진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믿지 않았다면 남에게 최면을 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할 유서연과는 달리 직접 최면을 걸어두니 확실히 편하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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