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서큐버스 시스템-150화 (150/775)

< 150화 > 노예계약 (2)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까.

대뜸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몽마라고 말해야 할까? 최면을 통해 내 말을 의심하지 않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납득시키기는 편하겠지만 가능하면 최면은 쓰지 않고 싶다.

유서연이 몽마가 되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물론 몽마가 된 유서연은 내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내게 품는 감정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단순히 ‘믿게 한다’라는 최면조차도 상대에 따라서는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법 아닌가.

내가 유서연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사실 여부를 떠나 의심할 여지 자체를 잘라버렸다는 사실 자체에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능하면 유서연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했다.

"서연아.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됐지?"

"...1년하고 5개월 정도 됐어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그리고 그 짧은 시간 중에서도 유서연과 내 상하 관계가 뒤바뀌게 된 시간은 더더욱 짧았다. 도저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에는 우리 사이가 엄청 안 좋았잖아."

엄밀히 따지자면 유서연이 날 일방적으로 날 갈궈댔을 뿐이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상황이 변했지. 기억나?"

"...기억나요."

당시의 유서연은 날 보기만 해도 몸이 발정 나는 최면에 걸려서, 스스로의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휴게실에서 자위에 빠졌다가 결국은 그 사실을 내게 발각당해 강간당했다.

전부 내가 설계해놓은 상황이긴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걸었던 최면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때 내 얼굴만 보면 참기 힘들 정도로 몸이 달아올랐었잖아. 집에서 자위할 때도 내 생각만 났었을 테고."

"그건..."

이제와서는 아무래도 좋을 뿐인 일이었지만 유서연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뒤에, 같이 살게 된 뒤에는 안 그랬지? 자연스럽게 흥분하기는 했어도, 전처럼 갑작스럽게 몸이 막 발정 나지는 않았을 거야."

"...맞아요."

결국 유서연에게 걸었던 최면은 몸을 발정 나게 하는 것, 그 대상이 나에 한정된다는 것뿐이었다.

유서연의 집에서 동거하게 된 뒤로는 유서연에게 걸었던 최면을 풀어버렸고, 유서연은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로 내게 복종하며 지냈다.

결국 최면이라는 현상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처음. 유서연을 손에 넣었던 때를 파고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하지? 분명 아무런 감정도 없이 스트레스 해소용이었던 상대였는데, 갑자기 얼굴만 봐도 몸이 달아오르고, 자위할 때도 그 생각밖에 안 난다는 거."

"이, 이상하긴 하지만..."

이상하다고는 해도 이것만으로 최면이라는 가능성을 떠올릴 수는 없다. 애초에 정상인이라면 아무리 이상한 상황이라도 그런 가능성 자체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내가 그렇게 만든 거야. 나만 보면 발정 나도록. 자위할 때도 내 생각만 나도록."

"......"

유서연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내게 말하지 않았던, 자신밖에 알 수 없던 일들을 내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뒤에 이어진 유서연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하신 건데요...?"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말을 믿기 위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고 있었다.

‘얘는 진짜 미워할 수가 없네.’

사람을 개같이 굴려대던 인성이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내 앞에서만큼은 이렇게 다 줄 것처럼 굴어대니 귀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도 조금 설명하기 애매한데. 일종의 최면 같은 거야."

그동안이야 나만 편하면 그만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막상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니 이걸 믿어줄까 싶을 정도로 사이비스러운 단어다.

하지만 유서연은 여전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최면이라는 단어를 읊조렸다.

머릿속에는 이미 뇌절이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명을 멈출 수도 없다.

"내가 인간이 아니라 몽마...거든. 영화에 나오는 서큐버스나 뱀파이어 같은 거."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커밍아웃이었지만 설명을 어떻게 했든 간에 마지막에는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임을 밝히지 않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유서연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쿨하게 이야기를 넘겨버렸다.

"조금 믿기 힘들긴 하지만... 일단은 믿을게요. 그런데, 그걸 저한테 밝히시는 이유는요? 저한테 최면을 걸던 저희 부모님한테 걸던 마음대로 하시면 될 텐데."

오히려 자기 쪽에서 내 의도를 읽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맞아. 최면은 너희 부모님한테 걸 생각이지. 그리고 너한테 이걸 밝힌 이유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일 수는 있겠지만, 지금 유서연의 태도를 봐서는 그냥 최대한 심플하게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제 다른 사람도 몽마로 만들 수 있게 됐거든. 그런데 그러려면 상대방 동의가 필요하니까. 동의를 받으려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설명 정도는 해야 하잖아? 그래서..."

"자, 잠깐만요."

일단 믿고 넘어가는 것도 여기까지가 한계였던 걸까.

유서연은 드물게도 내 말을 먼저 끊으며 눈살을 찌푸리고 짧게 심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그러니까, 주인님은 사람이 아닌 몽마고, 남들한테 최면을 걸 수 있는데, 다른 사람도 몽마로 만들어줄 수 있게 돼서, 저를 몽마로 만들 생각이라는 거죠?"

확실하게 할 말만 하겠다는 듯 따박따박 말이 끊어졌지만 내용 자체는 깔끔하게 정리됐다.

"맞아. 믿기 힘들겠지만..."

"믿을게요. 말하신 대로 믿기 힘든 일이기도 하고, 여전히 안 믿기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면 제가 겪은 일이 설명이 안 되니까요. 뭣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여전히 안 믿기면서도 믿겠다니. 결국 믿어서 손해 볼 건 없다는 마인드에서 내린 결론이었지만 믿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저를 몽마...로 만드려고 하시는 이유는요? 제 문제가 최면으로 해결될 수 있는 거면 그럴 필요는 없을 텐데."

"말했잖아. 그렇게 할 수 있게 됐다고. 네 문제랑은 관계없어. 그냥 갖고 싶어서 그런 거지. 결국 노예 계약 같은 거거든. 네가 몽마가 되면 지금처럼 서로 말로만 노예 주인님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거야."

"노예..."

"억지로 시킬 생각은 없으니까 싫으면 거절해도 돼. 어차피 몽마끼리는 최면도 안 걸려서 최면으로 억지로 하면 서로 감정만 상할 텐데. 그럴 거면 그냥 지금 그대로가 낫잖아? 어차피 지금도 내 노예나 다름없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제안이었지만 유서연은 이미 평범과는 담을 쌓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고 있었으니 충분히 해볼 만한 제안이었다.

"제가 몽마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별거 없어.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바뀔 테고, 그냥 나처럼 최면이나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게 생기겠지."

정기에 대해서는 몽마가 된 다음에 설명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유서연을 내가 아닌 다른 남자랑 자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 유서연이 정기를 얻을 방법은 나와 섹스하는 것뿐. 달라지는 건 조금도 없었다.

향설이 요구한 것도 몽마의 수를 늘리라는 것뿐이었지, 다른 몽마들을 통해 정기를 모으라는 조건은 없었고.

"그럼 할게요."

"응?"

"어쨌든 몽마가 되면 완전히 주인님 소유가 되는 거잖아요? 그럼 할래요."

"허..."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빠른 결정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보통이었다면 미친 사람 취급받았을 말을 진지하게 받아줄 때부터 느끼긴 했지만, 아무래도 유서연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내게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흠흠. 정말 동의한다는 거지? 한 번 하고 나면 못 무른다?"

"네."

고민의 여지조차 없는 깔끔한 대답에 나 역시 더 묻는 것을 그만뒀다.

인간을 몽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우선은 상대방의 동의를 얻을 것.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인간을 몽마로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상대가 충분한 양의 정기를 가지고 있을 것. 신체적인 변화는 달리 없지만 종 자체가 바뀌는 일인 만큼 많은 양의 정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편의점 알바생 한수영은 가지고 있는 정기가 적고, 내가 정기를 부담해주려고 해도 정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 자체가 작기 때문에 몽마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유서연은 상당히 여유로운 수준으로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유서연을 완전히 내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섹스를 통해 유서연의 정기를 내 정기와 섞어 내 색으로 물들어야 한다.

이것 역시 이미 충족되어있다.

애초에 서큐버스 시스템을 얻은 뒤로 나와 가장 많이 몸을 섞은 상대가 유서연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향설이 했던 것처럼. 유서연의 이마에 가볍게 손가락을 올리고 정기를 흘려넣는다. 그리고 그 순간.

털썩.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서연의 눈이 스르륵 감기며 몸이 침대 위로 힘없이 허물어졌다.

"그럼 이제... 어...?"

완전히 잠들어버린 유서연을 제대로 눕혀놓고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순간 잊고 있던 일이 떠올랐다.

"...이러면 또 못하잖아."

유서연은 잠들었고, 임예진과 성은영은 내일이나 되야 돌아온다. 한수영 역시 밤 한밤중까지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으니 다시 욕구를 풀 상대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몇 번 하고 재울걸..."

아침부터 불끈불끈했던 걸 유서연이 올 때까지만 기다리자는 생각으로 참고 있었는데, 유서연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 탓에 나도 모르게 일을 휙휙 진행해버린 탓이었다.

"어떻게 안 되나...?"

당장 못 한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지만 바로 옆에 유서연이 잠든 모습을 보면서 참는 것도 고역이라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서큐버스 시스템을 실행시켰다.

[최민석 : 혹시 여자를 몽마로 만드는 동안 섹스해도 괜찮을까요?]

[향설 : 당연히 안 되지. 가진 정기로 몸이랑 혼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건데. 거기다 다시 정기를 들이부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섹스가 아니라 어지간하면 몸 건들 생각도 하지 마.]

가차 없는 답장과 동시에 말 걸지 말라는 듯 건드리지도 않은 어플이 스스로 종료된다.

"...최소 하루는 걸린다고 했는데."

결국엔 오늘도 참을대로 참았다가 편의점이나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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