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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139화 (139/775)

< 139화 > 몽마 (1)

"으음…."

아침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넓고 푹신한 침대와 커튼 사이로 비치는 푸근한 햇살, 전기세 걱정 없이 밤새 유지된 적당한 온도의 난방 덕분에 아침은 항상 쾌적하다.

하지만 오늘은 약간의 거슬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 명만 보낼 걸 그랬나."

결국 피트니스를 다니며 정예주를 길들인 이후로는 별다른 변화 없이 한 해가 지나갔고, 새해도 빠르게 지나가다 설 연휴를 맞이했다.

나야 설이라고 해서 돌아갈 집도 없지만 유서연과 임예진은 가족들에게서 집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기껏해야 2, 3일 정도는 괜찮겠다는 생각에 둘을 집으로 보냈다.

덕분에,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고 없는 지금 온몸에 부드럽게 달라붙는 살결도,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나른한 쾌감도 없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며칠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유서연의 집에 들어온 뒤로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섹스를 하며 지낸 탓에 스스로도 조금은 '너무 많이 하지 않나?' 같은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 하반신이 불끈거리면 한 발 뽑아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지, 잠에서 깨자 이렇게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위는 싫고."

여자와 하는 섹스가 남이 정성껏 차려준 한 상 차림이라면 자위는 자기 스스로 밥만 지어서 맨밥을 먹는 수준으로 심심한지라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은 수준이다.

그다지 기분도 좋지 않고, 싸봤자 별로 만족도 되지 않고 말이다.

"후우…."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등받이에 몸을 기대긴 했지만 불끈거리는 하반신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 발 빼고 싶은 욕구만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유서연과 임예진을 제외한다면 연락이 닿는 여자는 김민아, 성은영, 정예주. 이렇게 셋이지만 성은영은 아예 딸과 함께 남편이 있는 해외로 가버렸고, 김민아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고, 정예주 역시 연휴에는 비번이라며 다른 트레이너가 대신 나올 거라며 미리 말을 전해왔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한참 오피를 다닐 때 받아뒀던 연락처가 서너 개. 그리고 연휴에도 영업하는 오피는 있을 테니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있고, 결국은 두 사람이 돌아오는 건 앞으로 이틀을 더 보내야 하니 꼴릴 때마다 그렇게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평소처럼 자기 전에 한 발 빼고 싶어지면, 오피에 가서 빼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야 하나?

"그냥 안 하고 말지."

안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하루종일 게임이나 하면서 보내다 보면 이틀 정도는 금방 지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띠링-!

침대 선반에서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메세지 :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지.]

"뭐야…?"

서큐버스 시스템에 이런 기능이 있었나? 아니, 없다. 서큐버스 시스템은 메세지 같은 기능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고, 대상 탐색과 최면 기능 외에는 아무런 것도 없는 심플한 어플이었으니까.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는 가능성도 없었다.

[메세지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주변에 여자가 없으면 찾아서 먹을 생각을 해야지. 이미 길들여 놓은 여자가 오는 것만 기다리겠다고? 그러고도 니가 남자야?]

"아니, 이게 뭔…."

저쪽은 생각이 다를 지 몰라도, 나한테는 지금 이 메세지를 보내는 상대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는 부글부글 끓던 성욕이 순간 잊혀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 듣고 있는 거 맞죠? 당신 대체 누굽니까? 나한테 뭘 원하는 건데요?"

[메세지 : 거참. 그게 그렇게 중요해?]

"중요합니다. 뭘 먹어도 알고는 먹어야죠. 아니, 안 알려줘도 어쩔 수 없긴 한데. 어지간하면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얘기나 좀 해봅시다."

이미 서큐버스 시스템이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상대 쪽에서 뭘 원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말이 안 되는 게 아닌 이상은 시키는 대로 따를 생각이었다.

[메세지 : 쯧. 귀찮게 하네. 좀 더 나중에 나오려고 했는데.]

나오려고 했다? 직접 만나러 온다는 뜻인가? 의미심장한 메세지에 머리가 복잡해지려는 순간.

"여기야. 여기."

바로 옆에서 나른함 섞인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크게 숨을 삼켰다.

직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자리에 은발의 여자가 다리를 쭉 뻗고 나른한 표정으로 누워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도대체 언제? 어떻게?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여자의 얼굴과 몸매에 시선을 빼앗겨 그녀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속옷조차 없이 속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슬립을 입은 여자의 몸매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길고 매끈하게 빠진 몸매는 군살 하나 없이 완벽한 곡선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가슴과 허리는 확실하게 굴곡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가슴은 유서연보다도 크면서도 조금도 처지지 않는 완벽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핑크빛의 젖꼭지 역시 살짝 튀어나와 당장이라도 빨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은 매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얼굴은….

"……."

장난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퇴폐미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눈웃음치듯 자연스럽게 살짝 내려간 눈꼬리가 미친 듯이 정복욕을 자극해온다.

내가 멍하니 그녀의 모습을 훑어내리며 하반신을 껄떡대기 시작하자 그녀는 픽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왜, 하고 싶어?"

"하게 해줄 겁니까?"

"아니."

망할.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긴 하지만 순간 이 여자랑 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어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인가. 어쨌든 다시 이성을 되찾게 된 셈이니까.

"오해는 하지 마. 네가 별로라서 그런 건 아니니까. 오히려 당장 먹고 싶을 정도로 땡기긴 하지만…. 지금 먹어버리면 공들인 의미가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그게 무슨…."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 볼까? 내가 누구일 것 같아?"

갑작스럽게 들어온 질문에 입을 꾹 다물었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최면 어플. 그저 섹스에만 이용하라는 듯이 못을 박아둔 정기 시스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이상할 정도로 색기가 넘치는 여자. 그리고 노골적이기까지 한 어플의 이름까지.

이 정도로 요건이 갖춰지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밖에 없다.

"…서큐버스."

"그렇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시원스러운 대답이었다.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어차피 그동안 신나게 최면을 써댔으니 현실성 운운할 단계는 진작에 지났고, 오히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답을 눈앞에 들이밀어준 덕분에 속이 시원했다.

"서큐버스가 원하는 게 뭐겠어? 돈이라도 달라고 할까?"

돈이 필요했다면 처음부터 최면을 통해 정기가 아니라 돈을 벌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큐버스 시스템이라는 어플이 요구했던 것은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정기를 원하는 겁니까?"

"맞아. 서큐버스한테 필요한 건 정기뿐이거든. 인간이 밥을 안 먹으면 굶어 죽는 것처럼 서큐버스도 정기가 없으면 점점 약해지다 죽어버리니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늘어놓는 설명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큐버스의 생태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내가 계속해서 최면을 사용할 수 있느냐는 것과 그녀에게 정기를 건네는 게 내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 아닌가 뿐이었다.

"그래서, 저를 통해서 정기를 수급하는 이유는 뭡니까? 최면만 쓸 수 있으면 정기 정도는 직접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아니, 최면까지도 필요 없을 것이다.

저 얼굴, 저 몸매로 꼬신다면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나름대로 여자에 면역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기 힘들 정도였으니 어지간한 남자라면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으리라.

이번 질문 역시 예상하고 있던 걸까. 침대에서 느릿하게 뒹굴거리던 움직임이 스르륵 멈추며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지. 직접 하려면야 못 할 것도 없지만 여러모로 귀찮거든."

귀찮다.

최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남에게 대뜸 던져준 것 치고는 지나치게 가벼운 이유였지만 여러모로 게을러 보이는 그녀의 인상을 생각해보면 왠지 그렇구나 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생각해 보라구. 너도 여자면 다 좋은 건 아니잖아. 얼굴도 예뻐야 하고, 몸매도 좋아야 하고, 안쪽도 제대로 기분 좋아야 좀 먹어볼 마음이 들잖아? 나도 잘생기고, 몸도 좋고, 자지도 큰 남자가 좋다구. 거기에 여자랑 달리 남자는 정력도 좋아야 하니 마음에 드는 먹잇감 하나 찾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단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막 먹는 것도 싫구."

"……."

먹는다는 표현은 조금 신경 쓰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잘 생기고 몸 좋은 남자라면 그래도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자지도 크고 정력까지 좋아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는다면 찾는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찾는 것과는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이리라.

"얼굴은 조금 애매했지만 너 정도면 남자 중에서는 그래도 최상급이겠지만…. 넌 살면서 너만큼 큰 남자 본 적 있어?"

"없죠."

살면서 남의 물건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내 크기가 남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크지 않다는 자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치? 눈을 조금 낮춘다고 쳐도 여전히 찾기 힘들구, 먹어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도 않구. 그러니까 대신 정기를 모아오게 만드는 거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강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직 내가 원하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럼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이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듣자 하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 정기가 필요한 것 같은데요. 혹시…."

"네 정기를 빨아먹고 있는 거 아니냐구?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벌였겠어? 그냥 내가 확 덮쳐서 다 빨아먹으면 그만인데. 살살 돌려서 물어보려고 하지 마. 읽으려고 하면 네 생각 정도는 다 읽히니까."

"…아니라면 다행이네요."

생각을 읽히고 있다는 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기를 얻으려면 뭘 해야 해? 섹스지? 남성과 여성의 기운이 성적인 접촉을 통해 뒤섞이고 합쳐지는 과정을 거친 정기가 필요하기 떄문에 서큐버스가 남자를 원하는 거라구. 네가 다른 여자랑 섹스해서 그런 정기를 만들어주면, 난 굳이 남녀를 가릴 필요 없이 완성된 정기만 받아 가면 되는 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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