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개인과외 (2)
정예주를 이렇게 완전히 실신 시켜 버린 건 이걸로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제한도 없어졌으니 마음껏 즐겨보자는 생각에 마구 했을 뿐이니 상관없었지만, 이번에는 명백하게 내 조절 미스였다.
"뭔가 적응이 되면서도 안 된단 말이지."
처음에는 그냥 조임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정작 사정을 참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했다면 사정감 역시 평소보다 빠르게 차오르고 참기 힘든 게 맞지 않겠는가.
"음. 단순히 기분만 좋은 거랑은 뭔가가 달라."
차분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묘한 확신이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처음 정예주의 입으로 한 발 뽑았을 때도 평소와 달리 묘하게 욕구가 끓어올라 스파에 들어가지도 않고 집으로 직행해 곧바로 욕구를 풀어내고 나서야 진정되지 않았던가.
정예주에게는 분명 다른 여자들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게 확실했다.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뭔가 이상하다고는 해도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사용한 정기가 아깝기도 했으니 그냥 피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정예주의 몸을 확인해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최면까지 갈 필요조차 없이, 정예주를 구슬릴 방법을 떠올린 나는 실신해 있는 정예주의 몸을 씻기고, 옷까지 전부 입혀 놓고 얌전히 정예주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으음…."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운동용 매트 위에 누운 채로 잠들어 있던 정예주의 눈살이 희미하게 찌푸려졌고, 희미한 신음 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정예주는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처음으로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기절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적당히 조절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제대로 정리 운동을 마치기 위해서는 고객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족스럽게 사정하셔야 하니 오히려 잘하신 일입니다. 잘못을 따지자면 제대로 버티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정예주라면 당연히 이렇게 말할 줄 알았다.
내가 정예주에게 걸어놓은 최면 자체가 남성이 느끼는 쾌감에 중점을 두기도 했고, 그간 봐왔던 착실한 태도는 남에게 잘못을 떠넘길 만한 성격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면, 정예주가 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진지하고, 착실한 성격이었다는 점이었다.
"고객님."
"네?"
무언가를 결심한 듯 진중한 눈빛과 목소리에 대답하자, 정예주는 후우, 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죄송합니다만, 제 역량으로는 고객님을 제대로 케어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희 센터에는 경력이 많은 트레이너분들이 대기 중이니 전담 트레이너를 교체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말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빠져 침울해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익숙해지려고 했겠지만 오늘 두 번째 실신을 경험하면서 자존감이 팍 깎인 모양이었다.
물론, 나로서는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정예주에게 들인 정기가 얼마인데, 정예주 쪽에서 싫다고 하더라도 내 쪽에서 놔줄 생각이 없었다.
"꼭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죠?"
"그렇습니다만, 저로서는…."
"그럼 예주 씨한테 계속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예주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단언했다.
이유 같은 건 그냥 적당히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렇게 곧바로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정예주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입을 놀리는 건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섹스에서 느끼는 쾌감은 단순히 육체적인 부분이 다가 아닙니다. 상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흥분 역시 쾌감을 늘리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 그래서 저한테 맞춰주시는 것 아닙니까."
이것 역시 내 편한 대로 정예주의 몸을 즐기고, 키스 같은 애무까지 허락받기 위해 했던 말에 불과했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단순히 신체적인 쾌락만이 아닌 정신적인 흥분 역시 섹스에 있어서는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였으니까.
"…그런 부분들 역시 경험 많은 트레이너분들이 더…."
"그게 아니라, 같은 이유로 예주 씨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실력 이전에, 상대가 중요하다는 거죠. 피트니스에서 일하시는 트레이너 분들 중엔 예주 씨만큼 미인인 데다가 제 취향에 맞는 분은 없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아무리 능숙하게 상대해주신다고 하더라도 예주 씨와 할 때만큼 흥분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반쯤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발언이었지만 정예주는 화를 내기는커녕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동안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사이가 제법 괜찮아지기도 했고, 정예주 본인 역시 특전 탓에 내게 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는 탓에 나오는 반응일 것이다.
성희롱이라고 화를 냈다면 그건 그것대로 구워삶을 방법을 생각해두고 있었지만 불쾌해하지 않는다면 일이 편해진다.
"일단 운동을 꾸준히 할 생각이라서요. 이왕 한다면 예주 씨처럼 제 이상형인 분과 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효율이 좋을 겁니다."
"자, 잠시만요. 저는 어디까지나 트레이너로서…."
"압니다. 저도 사심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냥 어디까지나 사실이 그렇다는 겁니다. 예주 씨도 힘드신 건 알겠지만 조금만 더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어느샌가 뒤바뀐 상황은 정예주가 아닌 내 쪽에서 양해를 구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거절할 리가 없다.
스스로 그만두겠다는 것도 내 눈치를 보면서 양해를 구했는데, 내 쪽에서 계속해달라고 부탁하는 걸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정예주는 결국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하지만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리고, 예주 씨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따로 연습을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네…?"
"솔직히 말하면 예주 씨처럼 한두 번씩 해서는 섹스에 익숙해지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차피 예주 씨가 익숙해지는 게 저한테 좋은 일이기도 하고, 차라리 주말에 날을 잡아서 제대로 연습해보는 쪽이 나을 것 같아서요."
결론은 피트니스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사적으로 만나서 즐기고 싶다는 말이었지만 정리 운동이라는 명분 덕분에 내 요구는 그저 순수하게 정예주를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포장됐다.
"아, 안 됩니다. 지금 고객님께 배우는 것도 죄송한 일인데, 사적으로 만나서까지 도움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주말에는 하는 것도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데, 예주 씨 같은 미인이 상대해주시면 감사하죠."
"하, 하지만…."
미인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간신히 원래대로 돌아오던 정예주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정도 얼굴이면 예쁘다는 소리 정도는 심심찮게 들었을 텐데, 이렇게 하나하나 알기 쉽게 반응해주니 괜히 놀려주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와 참기 힘들 정도였다.
"저야 남는 시간에 예주 씨 도와드리면서 노는 셈 치고, 예주 씨는 주말에 연습하는 셈 치면 서로 좋잖아요?"
"그래도 너무 죄송해서…."
"제가 부탁드리는 건데 죄송할 게 뭐가 있습니까. 정 고마우시면 저녁이라도 사 주시고요. 네?"
"아,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예주의 손을 꽉 잡으며 밀어붙이자 정예주는 결국 새빨개진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마침 내일부터 주말이니까 내일 어떻습니까? 일정이 있으시면 다른 날도 괜찮고요."
"…괜찮습니다."
붙잡은 손을 놓지 않고 얘기하자 여전히 부끄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장소는…. 저희 집은 가족이 있어서 힘들 것 같고, 예주 씨는 어떤가요?"
"저는 괜찮긴 한데…. 차라리 그, 모텔 같은 곳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오늘처럼 짧게 하고 끝낼 게 아니니까요. 제대로 시간을 들여서 연습할 거라면 자택에서 하는 쪽이 편할 겁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집이든 모텔이든 차이는 없겠지만 이왕 한다면 정예주의 집에서 하고 싶었을 뿐이다.
볼 것도 없는 모텔보다는 처음 가보는 여자의 집에서 즐기는 쪽이 더 나을 테니까.
최면으로 섹스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놨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예주가 알고 있는 섹스에 관한 경험은 전부 나와 관계한 것뿐이고, 내게 배운 것뿐이다.
결국 실전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정예주로서는 내 말이 그럴듯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집에서 하도록 하죠."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시고, 시간은 1시 정도에 찾아뵈면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1시에 뵙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깔끔하게 약속을 정리하고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정예주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인사를 돌려줬다.
'벌써 집으로 들어간다라.'
예상 밖의 조절 실패, 그리고 그로 인해 정예주의 멘탈이 깨지면서 나온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몸부터 완벽하게 길들여놓은 뒤에 천천히 공략해나갔을 텐데, 만약 그렇게 진행됐다면 한동안은 샤워실에서만, 정예주를 신경 써가며 욕구를 풀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길들이는 과정을 집에서 진행할 수 있게 된 건 상당한 쾌거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아…! 오셨어요?"
정예주의 집에 들어간 뒤에는 어떻게 길들이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자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있던 유서연이 도도도 달려와 팔짱을 끼고 달라붙었다.
최근에는 평소보다 내려오는 시간이 2, 30분씩 늦어졌고, 오늘은 그보다 더 시간을 잡아먹었으니 유서연은 이미 의심의 단계를 넘어 내가 정예주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완전히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서연아."
"네?"
그럼에도 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자연스러운 태도는 기특할 수밖에 없었다.
"슬슬 세 번째도 생길 것 같은데. 괜찮지?"
"…괜찮아요."
뜬금없는 통보였지만 유서연은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분하게 대답했고, 팔짱을 낀 자세 그대로 내 품에 파고들듯이 한층 더 달라붙어 왔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우리 서연이, 버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에…."
품에 안긴 유서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하자 팔짱을 낀 팔에 힘이 조금 빠져나가며 안심한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예진이한테도 잘 말해두고."
"그럴게요.“
임예진 역시 유서연처럼 얌전히 받아들이기야 하겠지만 아무렇지도 않을 리는 없으니, 유서연이 적당히 다독여주게 해두면 될 것이다.
물론 밤에는 나도 제대로 위로해줘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