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회원제 피트니스 (3)
정예주가 느낀 최민석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외모는 미남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고, 체격도 좋았다.
딱히 외모를 따질 생각은 없었지만 잘생긴 쪽이 더 인상이 좋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외모에 대한 평가일 뿐이고, 트레이너로서의 시점으로 본다면 최민석은 조금 이상하긴 해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 고객이었다.
운동 경력은 1년 정도에 다시 1년을 쉬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의 운동 패턴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한 최민석의 몸은 도저히 1년 차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몸이었다.
운동 좀 했다는 남자들이 허세를 부리는 일은 흔했지만 이건 너무 뻔한 거짓말에 뻗대려는 느낌도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도, 최민석은 성실했다.
초보자라는 말에 걸맞게 몸을 쓰는 법은 서툴렀지만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을 비처럼 흘려대는 와중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루틴을 끝마쳤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인 만큼 찾아오는 손님들은 다들 부유하고, 가진 재력만큼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다.
좋게 말해서 자신감이 넘친다고 표현했을 뿐이지, 일만 아니었다면 상종조차 하지 않았을 인간들이 대부분에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인들과 적당히 놀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최민석은 성격도 평범하고 성실하게 운동만 하는 만큼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업무와 무관한 부분에서 최민석이 조금씩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처음과 비교한다면 확실하게 규칙적이고 여유가 생긴 호흡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은 뭔가….
'섹시해.'
직업 특성상 운동하는 남자 정도는 지겨울 정도로 봐왔다.
하지만 다들 그냥 같이 운동하는 사람 정도로만 보였었지, 최민석처럼 보기만 해도 이상한 기분이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잘 생기긴 했는데.'
외모에 관해서는 트집 잡을 부분이 없이 훌륭하다.
하지만 잘생긴 사람이라면 당장 TV만 켜도,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얼마든지 볼 수 있을 텐데, 왜 최민석에게만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최민석에게서는 뭔가 좋은 향기가 풍겼다.
순서를 따지자면 최민석을 섹시하다고 느꼈던 것보다 이쪽이 먼저였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향이지?'
운동하는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라고 한다면 당연히 진한 땀 냄새다.
남들보다 코가 예민한 편이라 체취에 민감했지만 다행히도 정예주는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 냄새를 좋아했다.
물론 남의 냄새가 좋다는 건 아니고, 자신이 운동하는 와중에 흘리는 땀 냄새나 운동 후에 길게 숨을 들이켜며 시원한 공기와 함께 뒤섞이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결단코 타인의 땀 냄새를 좋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자신의 것 역시 그때그때 즐기기만 할 뿐이지 씻지 않고 내버려 두면 악취로 변해버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몸도 청결하게 관리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보자면 최민석은 완전히 예외라고 부를 수 있는 케이스였다.
'땀 냄새는 맞는데…. 거기에 뭔가 다른 향이 섞였어.'
정예주는 규칙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운동하는 최민석을 지켜보며 은근하게 숨을 깊게 들이켜고 있었다.
"…후우."
이번에 흘러나온 숨은 최민석이 아닌 정예주의 것이었다.
'확실히 복숭아 향이랑 비슷한 것 같아.'
매일매일 최민석의 체취를 주의 깊게 맡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땀 냄새라는 단어가 풍기는 텁텁한 느낌과 달리 향긋하면서도 은은한 달콤함이 느껴지는…. 그런 향이 찐한 땀 냄새와 뒤섞여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그런 향을 만들어냈다.
"끄으으…! 끝났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최민석의 체취에 빠져들어 있던 사이, 어느샌가 스트레칭까지 끝마친 최민석이 개운한 표정으로 쭉 기지개를 켰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예주 씨도요. 처음에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확실히 익숙해지니까 할만하네요."
"다 고객님이 열심히 하신 결과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잘 가르쳤던 간에 결국은 배우는 사람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야 결과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최민석은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마사지 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알겠습니다."
정예주의 대답과 동시에 최민석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깔아둔 매트에 몸을 눕혔다.
나름대로 고급 시설인 만큼 제대로 다른 층에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시설도 있었지만 최민석은 간단하게 받고 싶을 뿐이라며 정예주에게 마사지 받기를 희망했다.
정예주로서도 어차피 마사지 정도는 트레이너로서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었으니 더는 권하지 않고 최민석이 원하는 대로 마사지를 해주고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은 발바닥부터.
냄새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니, 다른 의미로는 조금 신경 쓰였지만 막 운동을 마친 뒤의 냄새는 딱히 거슬리지 않았고, 최민석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맡고 싶을 정도라 한쪽 손으로 발목을 붙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 발바닥을 꾹꾹 주무르는 정예주의 손놀림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후우우….진짜 시원하네."
만족스러워하는 최민석과는 별개로, 정예주는 양쪽 발에서 시작해 발목, 종아리, 허벅지까지 올라가며 마사지를 하는 와중에도 내심 최민석의 몸에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근육의 유연성이나 탄력은 단련보다는 타고난 부분이 크다.
체대 생활을 하면서도 남자의 근육이라면 질릴 정도로 봤었고,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도 고객을 꽤 받아봤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근육은 보지 못했다.
매일 주무르면서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
'또 이 표정이네.'
정예주에게 PT를 받기 시작한 지도 4주가 지났다.
처음에는 더럽게 힘들었던 운동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정예주라는 사람을 좀 더 차분하게 살필 수 있었다.
얼굴이야 말할 것도 없는 A급이고, 몸매 역시 임예진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비율이 훌륭하다. 섹시한 모델 같은 임예진과 비교하자면 이쪽은 건강미인 같은 느낌이었으니 굳이 우위를 가릴 필요도 없었고.
외모 외의 평가라면 운동에는 굉장히 진심이라는 것 정도가 있다.
지금도 마사지를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표정이 진지해진 상태로 감탄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슬슬 건드려도 괜찮겠어.'
정예주의 마사지는 분명 시원하고 기분 좋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확히는 부족해졌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야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지만 운동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체력에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마사지를 받고 나서도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
그런 와중에 정예주 같은 여자가 바로 곁에 있었으니 건전하게 운동만 하러 왔던 목적에 사심이 들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취향도 대충은 알았고 말이지.'
여자가 얼마나 흥분했는지, 어디에 흥분하고 있는지 정도는 이제 조금만 주의 깊게 봐도 알 수 있다.
특전의 효과 덕분에 정예주는 나한테 어느 정도 성적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땀 냄새 페티쉬인지는 몰라도 내 체취에 흥분하고 있었다.
그마저도 운동 모드에 돌입하면 금방 잊어버리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최면으로 비집고 들어갈 여지는 충분했다.
'등록이야 진작에 해뒀으니까 집에 가서 건드리면 되겠지.'
한 번 대상 등록을 해두면 최면에 거리 제한은 없다.
그럴 마음이 들었을 때부터 정예주를 건드리는 건 운동이 충분히 익숙해진 뒤부터라고 결정해둔 참이었으니 이제 슬슬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후우….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예주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마사지까지 전부 마치고, 땀만 가볍게 닦아낸 뒤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목적지는 3층에 있는 공용 스파였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유서연이 도도도 달려와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하아아…. 주인님 냄새…."
"그게 그렇게 좋아?"
"너무 좋아요…."
사실 유서연이야 내가 뭘 하더라도 좋아할 테니 정예주와 비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코가 예민한 건지, 내 냄새가 딱 취향에 맞는 건지는 몰라도 정예주는 나에 대한 호감이 없는 상태에서도 냄새에만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탈의실의 개인 로커에 미리 준비해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주변을 둘러보자 곳곳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 넓은 스파에 손님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애초에 소수의 회원만으로 굴러가는 회원제 클럽이었으니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오늘은 사람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그럭저럭 예쁜 여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다.
부잣집이라도 성형이라도 하지 않는 한은 타고난 얼굴은 어쩔 수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주변을 살피며 남들의 외모를 품평하듯이, 주변에서도 은근하게 품평하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시선을 보내오는 눈빛이 합격이라는 듯 빛나는 순간.
"저 왔어요!"
E컵의 거유와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듯 하얀 비키니 차림의 유서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다시 찰싹 달라붙었다.
그것만으로도 호감을 보내오던 여자들의 눈빛이 아쉬운 기색을 띄우며 흥미를 잃었다는 듯 휙 돌아갔다.
옆에 있는 상대가 어지간해야 간이라도 보지, 유서연 정도 되는 여자가 잔뜩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오며 달라붙어 있으니 건드려볼 마음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혹시나 괜찮은 여자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둘러봤을 뿐이지, 처음으로 손에 넣은 여자가 얼굴이나 몸매 면에서 압도적인 유서연 같은 여자다 보니 눈이 높아져 버린 탓이었다.
미션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유서연이나 임예진이 있는데 굳이 급도 안 되는 여자랑 뒤엉킬 생각은 없었다.
"…에휴."
"왜 그러시나요?"
"스파도 좋긴 한데, 여기서는 편하게 즐길 수가 없잖아."
목욕이야 편하게 즐기자는 주의지만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한두 발 빼고 쉬는 것도 좋은데, 여기서는 강제로 목욕만 즐겨야 하다 보니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그건 저도 아쉬워요. 개인 휴게실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뭐, 숙박 시설은 아니니까."
"차라리 호텔에 있는 피트니스 쪽으로 옮길까요?"
"됐어. 여기서 못한 만큼 집에서 하면 되지."
"아잉…♥"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유서연의 가슴을 꽈악 움켜쥐자 유서연이 흥분 어린 콧소리를 흘렸다.
어차피 조금만 공을 들이다 보면 PT룸에서 정예주와 즐길 수도 있을 거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쪽이 더 손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