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회원제 피트니스 (2)
'면접 볼 때 얼굴도 보고 뽑나?'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두 명 모두 외모가 훌륭했고, 운 좋게도 내 담당을 맡은 여자는 내 취향에 더 가까운 차분한 타입의 여자였다.
"트레이너분이신가요?"
"네. 트레이너 정예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잘 부탁드립니다."
첫인상과 마찬가지로 목소리 역시 차분하고, 깔끔하게 끊어지는 말투로 봐서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는 타입처럼 보인다.
"고객님은 헬스 트레이너를 요청하셨습니다만, 따로 원하시는 사항이 있으십니까?"
"어…. 제가 운동 쪽은 잘 몰라서 대답하기가 좀 애매한데요."
"근육량을 늘리고 싶으시다든지, 식스팩을 만들고 싶으시다든지, 삼대 중량을 늘리고 싶으시다든지, 체력을 늘리고 싶으시다든지….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나마 운동으로 얻어내고 싶은 목표를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아하."
이런 식으로 예시를 들어주니 확실히 이해하기 쉽다.
물론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를 대충 이해했다는 것뿐이지, 원하는 바를 제대로 풀어내서 말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니까…. 적당히 기분 좋게 땀도 좀 흘리고, 지금 몸 상태를 유지할 정도만 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체중과 근육량 유지, 그리고 과하지 않은 운동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고 싶으신 거군요."
"맞습니다."
정예주는 내가 개떡같이 해놓은 설명을 깔끔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줬다.
"체중과 근육량 유지의 경우에는 단기적인 스케줄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만, 고객님의 일정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일정이요?"
"주에 몇 회, 몇 시간 정도를 운동에 투자하실 수 있으신지, 일정에 맞춰 스케줄을 짤 수 있습니다."
"음…. 아마 평일은 전부 올 것 같고, 시간은 2시간 정도면 충분할까요?"
같이 운동을 나오는 유서연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유서연이야 내가 정했다고 하면 아무런 불만도 갖지 않고 따를 것이다.
주말에 나오지 않기로 한 건 단순히 내가 귀찮아서, 정확히는 귀찮아질 게 뻔했으니까였다.
할 게 더럽게 없던 군대에서도 운동하는 게 귀찮아서 하루만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생활에 여유가 넘치고 놀 거리도 많은 지금 상황에서 매일 운동한다는 일정을 짰다간 금세 귀찮아질 게 뻔했다.
내 대답을 들은 정예주는 곧바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합니다. 그럼…."
"아! 유서연 님 맞으신가요?"
정예주가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다른 트레이너의 활기찬 목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유서연은 자신을 부른 트레이너에게 힐끗 시선을 보냈다가.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곧바로 내 쪽으로, 정확히는 나와 대화 중이었던 정예주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훑어내렸다.
"필라테스 신청하신 거 맞으시죠? 필라테스 트레이너 이은혜라고 해요. 와아. 몸매도 엄청 좋으시구, 피부도 엄청 깨끗하신데요? 오늘 처음 오신 거죠? 필라테스실로 안내해드릴게요!"
정예주와는 반대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이은혜의 말에 유서연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가 봐. 난 2시간쯤 걸리는 것 같으니까 먼저 끝나면 적당히 기다리고 있어."
"네. 운동 열심히 하세요. 가요."
"아, 네!"
유서연은 내가 허락하고 나서야 이은혜에게 시선을 보냈고, 잠시 눈치를 살피던 이은혜 역시 그제서야 앞서 걸어가며 유서연을 안내했다.
두 사람이 저 멀리 떨어지고, 정예주는 큼큼, 하고 짧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속적인 관리를 원하신다면 우선은 고객님의 일정에 맞춰 전담 등록을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전담 등록은 뭡니까?"
"저희 클럽은 기본적으로 고객분들의 요청에 맞춰 해당 타임에 근무 중인 트레이너를 배정해드립니다만, 고객님처럼 지속적인 관리나 지도를 원하시는 분들께는 전담 트레이너가 배정됩니다. 그럴 경우, 고객님의 일정에 맞춰 전담 트레이너의 근무 타임이 변경됩니다."
"그러니까, 예주 씨한테 계속 배우게 된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원하신다면 다른 트레이너분을 배정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럴 필요까지야. 예주 씨한테 배우죠 뭐."
이왕 배운다면 우락부락한 남자보다는 내 취향인, 예쁜 여자한테 배우는 게 더 즐겁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그럼 제 쪽에서 전담 등록을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방문하시는 시간도 정해놓으셨나요?"
"세 시 반 정도에 올 것 같네요."
퇴근하고 곧바로 차를 몰아서 여기 도착했을 때가 3시 20분 정도였으니 10분 정도 여유를 두면 그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확인했습니다. 그럼 PT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는 게 아닌가요?"
"피트니스는 주로 혼자 운동하시는 분들이 이용하시는 편이고, 고객님처럼 트레이너에게 지도를 받으실 때는 개인실을 이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정예주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개인실은 원룸보다 조금 넓은 정도였지만 피트니스와 마찬가지로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탁 트인 느낌도 나고, 나름 이것저것 운동기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게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고객님은 체격이 꽤 좋아 보이시는데, 혹시 운동 경험이 있으신가요?"
"시키는 대로만 해서 아는 건 없긴 한데, 친구한테 1년쯤 배우긴 했습니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어중간하게 아는 척을 하는 것보다는 완전히 초보라고 못을 박아두는 쪽이 낫다.
솔직하게 아는 게 없다고 밝히자 정예주의 고개가 다시 한번 작게 끄덕여진다.
저게 그녀 나름의 버릇인 모양이었다.
"우선, 몸을 조금 확인해봐도 괜찮을까요?"
"몸을요?"
"예.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 최적화된 루틴을 짜기 좋습니다. 물론 원치 않으시면…."
"상관없습니다. 뭐, 벗으면 되나요?"
"…상의만 벗어주시면 충분합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개인실이라 주변에 보는 눈도 없고, 나는 곧바로 상의를 훌렁 벗어 바닥에 내려놨다.
몸이 늘어진다는 건 내 기분일 뿐이고, 실제로는 예전보다도 훨씬 보기 좋게 각이 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
정예주의 차분한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몸을 쭈욱 훑어내린다.
바지는 벗지 않았지만 짧은 반바지 차림이라 허벅지까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였다.
"……?"
차분하게 허벅지까지 내려갔던 정예주의 시선이 의문 어린 기색을 띠더니 다시 위로, 그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운동을 1년만 했다고 하셨었죠?"
"예."
"헬스가 아니라, 다른 스포츠도 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나 격투기 같은 거라도."
"없습니다."
격투기는 관람도 해본 적이 없었고, 학교에 다닐 때도 수행평가로 시키는 것들이 아니면 체육 시간에도 빈둥거리기 바빴다.
군대에서도 축구는 했었지만 짬이 좀 찬 뒤로는 하지 않았었고.
"혹시…. 몸을 직접 확인해 봐도 괜찮을까요?"
"예. 뭐…."
"실례하겠습니다."
내 대답이 들려오자마자 성큼 다가와 거리를 좁힌 정예주의 손이 조심스럽게 뻗어 나와 옆구리를 꾸욱 누르고 주무른다.
"이건…."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혼자 작게 중얼거리더니 옆구리를 타고 올라가 겨드랑이 아래로, 등허리를, 어깨와 목을, 허벅지 안쪽과 종아리, 발목까지 주물러댄다.
색기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이었지만 제 3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성희롱이라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만한 상황이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가 없습니다."
"네?"
표정만 보면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심각해 보이는데, 대답은 정반대로 깔끔한 단답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잘 사용되지 않거나 단련하기 힘든 근육들까지도 제대로 발달 되어 있습니다. 근육량을 늘리고 싶으신 거라면 모를까, 완성도라는 면에서는 손댈 부분이 없을 정도입니다."
"……."
조금 빨라진 말투로 설명을 늘어놓는 정예주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감탄마저 어려 있다.
예전에 비해 몸이 좋아졌다는 것 정도야 거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설마 이런 말까지 들을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제 와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의미도 없고.'
원인이야 어차피 서큐버스 시스템일 텐데, 서큐버스 시스템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해봤자 나만 손해다.
몸이 나빠진 것도 아니고 좋아졌으니 손해 본 것도 아니었고.
"음…. 아무튼 그냥 지금 상태만 유지할 정도로 가르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예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저히 초보로 보이지 않는 놈이 1년만 운동했는데 이 정도다, 라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적당히 철판 깔고 넘어가기로 했다.
허세든 뭐든 고객이 가르쳐달라는데 어쩌겠는가.
정예주는 잠시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도 괜찮겠습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결과적으로는 지금 몸 상태도 확인했고, 원하던 대로 운동도 시작했으니 충분하다.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고하셨습니다."
"허억…. 허억…. 허억…."
정예주의 수고했다는 말과 동시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털썩 드러누워 헉헉대며 턱까지 차오른 숨을 들이켰다.
가벼운 준비운동이 끝나고, 정예주의 지시에 따라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정예주는 신체 접촉 같은 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달라붙어 성실하게 자세를 교정해줬지만, 성욕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았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이런 운동도 있나?' 싶을 정도로 난생처음 보는 자세들을 취하고 반복하는데, 평소엔 의식조차 하지 않고 지내왔던 근육들이 미친 듯이 땡겨오는 탓에 그다지 격하게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금세 숨이 차올랐고, 조금의 용서도 없이 철저하게 트레이닝을 이어나간 끝에 나온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이게 진짜 기분 좋게 땀 흘리는 게 맞습니까…?"
"지금은 자세나 근육을 의식하고 움직이는 데 익숙하시지 않아서 그렇고, 어느 정도 적응하신 뒤에는 적당히 숨이 찬 정도로만 끝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지금은 온몸이 쑤셔대는 탓에 일어나고 싶지도 않을 정도다.
정예주는 바닥에 드러누운 나를 내려보기를 잠시, 차분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근육통이 조금 있으실 것 같은데, 원하신다면 마사지를 조금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사지요?"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정도입니다만, 효과는 확실히 볼 수 있으실 겁니다."
마사지라. 어차피 당장 일어나고 싶지도 않은 상태였으니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픈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그럼 뭐,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예주가 해준 마사지는 아프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살면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나 싶었을 정도로 시원했다.